초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 sutta 강의
마하시 사야도
U Ko Lay 영역(英譯)
김한상 우리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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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는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정신과 물질 대상들과 결부된 거짓말같은 그릇된 말을 할 기회가 생기지 않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사라짐뒤에 무상과 소멸의 참 본성을 보게되어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는 한 대상에 거짓말을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그 대상과 관련하여 중상하고 허튼소리를 할 기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살생하고 훔치고 삿된 음행을 하고 그릇된 생계에 종사하는것과 같은 그릇된 행동을 저지를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동안 실체를 보게 될때마다 대상과 관련하여 그릇된 말(miccha-vācā)을 삼가하는 바른 말(正語), 그릇된 행위(miccha-kammanta)을 삼가하는 바른 행위(正業), 그릇된 생계(miccha-ājiva)를 삼가하는 바른 생계(正命)가 고찰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삼가함으로써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라는 계의 도가 바른 견해(正見)의 도를 닦는데 연관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일어남, 꺼짐, 앉음, 감촉함, 생각함, 뻣뻣한 느낌, 뜨거운 느낌, 통증, 들음, 봄등을 알아차리는 매 시기마다 바른 견해(正見)가 팔정도와 함께 개발됩니다. 사제(四諦)가운데 고제(苦諦)는 올바르게 잘 이해해야만 하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고제(苦諦)는 보고 듣고 감촉하고 알고 하는 등의 각 단계에서 감각의 육문(六門)에서 분명해지는 오취온(五取蘊)입니다. 그래서 고제(苦諦)는 육문(六門)에서 벌어지는 각 현상을 알아차림으로써 바르게 잘 이해될것입니다. 보고 들음을 알아차려서 고제(苦諦)가 개발되는 순간마다 닦아야 할 법(dhamma)인 팔정도가 닦아집니다.
그래서, 보고 들음을 알아차려서 고제(苦諦)를 관찰하게되면 팔정도가 닦아집니다. 그러니까 팔정도를 닦기 위해서는 보고 들음을 알아차려서 고제(苦諦)를 관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비단계의 도(pubbabhaga-magga)인 위빠사나 명상을 닦는 동안 보고 들음을 알아차려서 분명해지는 고제(苦諦)가 반드시 바르게 잘 이해해야 하는 대상(ārammaṇa)이고 고제(苦諦)를 이해하기 위해 꼭 닦아야 하는 도제(道諦)가 주체(ārammaṇika)입니다.
고제(苦諦)를 관찰해야만 팔정도가 닦아지고 위빠사나 도가 완성될때에야 비로소 열반이 증득될수 있음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제(苦諦)가 대상(ārammaṇa)이고 도제(道諦)가 도를 닦는 주체(ārammaṇika)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물질(rūpa), 정신(nāma),상카라(saṅkhāra)와 같은 괴로움의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오로지 괴로움만을 인지하는 것으로 귀결될뿐이기 때문에 평화와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열반을 관찰해야 한다.’라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교법(sāsana)의 번창에 해악을 끼치는 주장이 나돌기 때문에 이러한 부언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