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518광주민주화항쟁일을 맞아 지난 5월 18일(월)부터 27일(수)까지 단식기도회에 들어갔습니다. 그에 맞춰 우리교구 사제단도 한마음으로 5월 19일(화)부터 22일(금)까지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단식기도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9일(화) 시국미사 때 발표한 성명서를 첨부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천주교안동교구사제단 단식기도회 성명서
(2015년 5월 19일 - 22일)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배부르게 되리니.”(마태 5,5)
1. 우리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다. 그 사명의 완성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에 있다. 하느님 나라란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직접 통치하는 곳, 당신 뜻대로 다스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은 통치자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요 자녀로서 모두가 평등하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다. 그리고 백성이 주인이라는 이 사상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수백 년 간 민중의 피땀으로 쟁취한 것이다.
2. 본격적 민주항쟁의 시작은 우리 천주교에서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복자품에 오른 124위를 비롯하여 수많은 순교자들은 차별적인 계급제도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꿈꾸었다. 이후 여러 열강이 한반도를 위협할 때 독립투사들은 외세의 지배를 거부하며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해방 후에도 어린 학생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민주 열사들이 독재에 항거하며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투신했고, 그 결과 우리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쟁취한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정부 수립에 이어 정권교체까지 이루어내면서 우리에겐 발전과 희망만 있을 줄 알았다.
3.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주권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자본과 마몬이 주인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본이라는 새로운 우상은 우리의 정신을 망가트려 우리가 자유인이었음을 망각하고 새로운 종살이에 순응하도록 만들고 있다. 나아가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본은 친일과 독재의 후예들을 이용해 국민의 삶을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자본의 지배를 받는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보다 국민을 자신들의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 여길 뿐이다. 경제 살리기로 국민을 현혹하여 탄생한 이명박 정권은 경제가 최고라는 허상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보다 국민을 이익 창출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민족의 젖줄인 4대강을 파헤치고, 나라의 살림을 자유경쟁이란 미명하에 무방비로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재벌을 위해 노동자를 탄압하고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을 통제하였다. 수상한 자원외교와 방위산업체의 비리 등으로 수백 조의 빚더미만 국민에게 남겨놓았다. 나아가 나라의 존망이 걸린 핵발전을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확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두 정권이 공들여 쌓아온 남북 간의 신뢰를 단번에 무너트렸다. 대화를 단절하고 경제협력을 철회함으로써 온 국민이 염원하는 평화통일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4. 지난 18대 대선은 국가 폭력을 앞세워 국민의 최소한의 인권조차 짓밟고 억압하는 반민주적 독재 정권에 대한 심판의 기회였다. 선거는 국민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최종 수단이다. 그러나 2008년 12월 당시 여당은 1960년 제정한 부정선거관련자에 대한 처벌조항을 폐지하였다. 그리고 심판의 대상인 정권은 자신의 치부를 덮어줄 인물을 차기 대통령으로 내정하고,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선거에 개입하는 크나큰 범죄를 저질렀다. 그로 인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국방부 관계자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즉, 지난 대선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우리의 표를 강탈해간 부정선거이며 그 자체로 무효이다. 그럼에도 내란사범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수혜자 박근혜 현 대통령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5.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비판이 들끓던 작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때도, 1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을 위한 정부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차라리 정부가 무능했다면 우리 아이들이, 이웃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얼마든지 구조가 가능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점점 드러나는 사실은 정부가 구조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해경은 밖으로 나오라는 방송도, 들어가서 구조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탑승객들의 탈출을 구경만 했으며 오로지 선원만을 구조했다. 게다가 민간 어선과 잠수사, 국내 구조함과 외국 군대의 협조까지 막았다. 이는 누군가의 지시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세월호는 1980년 5월의 광주와 닮았다. 당시 전두환은 박정희 유신 독재와 신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을 총칼로 짓밟았다. 모든 언론을 통제하여 그 진실이 드러나는 데 수년이나 걸렸다. 수천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지만 아직도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를 찾지 못했다. 세월호 역시 독립 언론이 생방송으로 취재하지 않았다면 그 진실이 묻힐 뻔했다. 그리고 선장 한 명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울 뿐, 누가 구조 방해를 지시했으며 대통령은 7시간동안 왜 사라졌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세월호가 우연한 사고라면 왜 정부는 특별법 제정을 방해하고, 시행령을 통해 특별조사위원회의 무력화를 시도하는가. 왜 1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도 못하고,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가. 왜 유가족들이 노숙한 채 농성과 단식을 하며 최루액을 맞아야 하는가. 원하지도 않았고 논의한 적도 없는 보상금을 내세워 왜 유가족을 파렴치한으로 내모는가!
6. 이제 세월호 침몰에 관한 초기 방송이나 정부의 발표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었으며, 세월호 침몰사고 자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항간에는 세월호의 실소유주는 유병언이 아니라 제3의 기관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런 모든 의문에서 벗어나려면 하루속히 세월호를 인양하여 진상규명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행태를 보면 세월호의 진상 규명은 요원해 보인다. 결국 세월호 참사는 부정한 자본을, 불의한 권력을 지지하고 눈감아준 우리의 탓이기도 하다. 국민은 자신들의 행복과 안녕을 보장하도록 정부에 권한을 위임해주었다. 그런데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부라면 과연 존재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참사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나아진 게 없는 정부에 분노한다. 그리고 수많은 곳에서 권리를 빼앗긴 채 신음하는 국민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단식기도회를 갖는다.
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과가 아니다. 형식적인 재발방지 약속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며, 부정선거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하느님 나라는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를 누리는 곳이다.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해 인간을 옥죄는 모든 구속과 독재에 저항할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2015년 5월 19일
천주교 안동교구 사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