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에 설립된 북간도 캐나다장로교 교회와 학교들 2부
북간도 3.13 만세시위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는 어느 독립운동단체나 뛰어난 지도자가 이룬 것이 아닙니다. 1860년대 조선말부터 생명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와 소작인이 되어 피눈물로 논밭을 개간한 조선 상놈과 천민들의 70년 동안의 노고의 결과입니다.
조선 양반과 관료들의 수탈과 학대를 피해서 1907년에 북간도에 자리를 잡은 조선인은 529개 마을, 1만 5,356세대에 3만 4,133명이 되었습니다.
1909년에는 3만 4,133세대 18만 4,867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계급차별과 학대 없는 신천지에서 자유롭게 사는 기쁨도 잠시였고 추수가 끝나면 청조의 관리와 토비와 마적에게 털리는 고통, 개간한 논밭을 억울하게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고통, 지주들에게 약소국 백성으로서 학대당하는 삼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고통과 굶주림으로 울부짖을 때 고통 소리를 절박하게 들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경북도에서 사역하는 그리어슨과 던칸 막레 등의 캐나다 선교사들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그리어슨은 1902년에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서 북간도 훈춘을 통과하여 용정에 이르는 긴 선교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북간도 선교를 결정하여 김문삼 조사(한인 전도사)를 보내어 그들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방문하여 신앙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며 꿈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1906년에 드디어 용정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1908년에 김계안 전도사를 북간도 전임 전도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고 1909년부터 상주하게 하였습니다. 이어서 김내범목사와 김영제목사를 전담 목사로 파송하였습니다. 1913년부터는 용정에 선교스테이션을 세워서 베이커 선교사, 푸트선교사, 롭 선교사가 상주하게 되었습니다.
미션스테이션은 신앙, 교육, 의료 삼박자 선교로 북간도에 거주하는 20여만 명의 조선인들에게 위로와 희망, 꿈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살길을 찾아 헤매던 많은 조선인들이 치유와 회복의 복음, 수난과 부활의 복음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자들을 훈련시켜 세웠으므로 지도자들은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마을에 복음을 전하려 함께 다녔으며 교육과 계몽운동을 동시에 벌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립학교를 70여개 정도 세우도록 기여한 북간도 최초의 민족운동단체인 ⌜간민교육회⌟ 의 임원들과 회원들이 다 크리스천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선교 방향과 목적이 복음전파와 함께 국가회복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리 안에 뭉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16년 일제가 조사한 전간도 조선인학교는 총 182개 이었습니다.그 중에 민간이 세운 학교는 83개였고 각 종교계가 세운 학교는 99개 이었습니다. 그 중에 개신교가 세운 학교는 71개, 천주교가 세운 학교는 9개, 단군교 5개, 유교공교회는 8개, 대종교는 3개, 시천교는 2개, 천도교는 1개 이었습니다. 북간도에 있었던 기독교 개신교파는 캐나다장로교, 남감리교, 동아기독교, 안식교 그리고 성결교가 있었지만 북간도 전체를 아우르는 교단은 캐나다장로교이었습니다.
당시 캐나다장로교 교회 곁에는 반드시 학교가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중에는 학교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교회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선교사도, 목회자도 복음과 함께 항일민족교육을 장려하였기 때문에 3.13 용정 만세 시위 때 창동학교, 명동학교, 정동학교, 광성학교 학생들이 총 동원되어 앞장서며 시위를 주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순국열사들의 빈소를 4일 동안 지키며 3월 17일의 장례를 또 한 번의 만세시위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화산처럼 가슴이 타오른 청년들은 여러 북간도 독립운동 단체에 들어가 무장독립군이 됩니다.
캐나다장로교회 지교회를 지회로 해서 만든 간도국민회에 450명의 청년과 학생들이 들어갔습니다. 동아기독교가 주도한 신민단에 200여 명이 들어갔습니다. 캐나다장로교를 기반으로 해서 만든 훈춘한민회에 250명이 들어갔습니다. 간도국민회의 재정적 지원을 바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최진동의 도독부가 연합한 북로독군부에 460명이 들어갔습니다. 천주교인 중심의 의민단에 300명이 지원하였습니다. 유림과 공교회를 배경으로 하는 복벽파인 광복단에 200명, 의군부에 340명명이 들어갔습니다. 1920년부터 간도국민회와 훈춘한민회와 행보를 같이한 대한의사부(라자구의사부)에는 200명이 들어갔습니다. 대종교에 기반을 둔 북로군정서(서로군정서)에는 1,200명이 들어갔습니다.
1919년 후반에 세워진 북간도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에 근 3,700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자원해서 독립군이 되었습니다. 당시 북간도에 거주하는 100명 중 한 사람이 독립군이 된 것입니다.이런 저항할 수 없는 흐름은 어느 독립운동단체나 소위 말하는 몇몇의 운동가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독립운동의 제사상에 바치는 아버지, 맨 몸으로 삭풍을 맞으며 자식새끼 굶기지 않으려고 지악스럽게 논밭을 개간한 상놈, 천민 아버지가 자식을 포기하고 아들을 조국의 미래에 바쳤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몸으로 살아낸 어머니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자식을 독립전쟁에 보내며 해방을 새날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의 애국애족의 피 끓는 열정과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부름에 생명과 청춘을 바친 지고지순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립을 열망하는 지도자들의 헌신과 노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조선 교우들의 나라 잃은 처지를 아파하며 기도하며 공감해준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들의 믿음과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역사와 교과서는 몇 사람의 영웅이나 지도자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의 이름을 높이고 무덤을 웅장하게 단장하지만 고난을 감수하며 묵묵히 살아낸 초라한 백성들의 기도와 눈물이 진정 북간도 독립운동과 해방의 에너지였습니다. 자신의 몸을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학생들과 청년들이 있어서 1910년대 북간도의 하늘은 뜨거웠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태어나 우리의 고생과 고통을 짊어지고 이름 없이 역사의 자락에 묻혀버린 그분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아래는 1910년대에 세워진 캐나다장로교 교회와 학교 일람표입니다.
일람표를 보시면 그 당시의 교회와 학교의 거대한 흐름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어떻게 북간도 독립운동을 주도해 갔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일람표를 보기 전에 몇 가지를 염두에 두십시오.
첫째 일람표는 1906 ~ 1919년의 북간도지역 캐나다장로교 교회와 학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둘째 교회 이름과 학교 이름이 일치하지 않아서 이중 표기되었을 수 있습니다.
셋째 교회 이름과 지역 이름이 일치하지 않아서 이중 표기를 하거나 잘못 정리하거나 누락시켰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확인해야할 과제입니다.
넷째 지역을 몰라서 이중 표기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섯째 캐나다선교부가 직접 세운 학교, 캐나다장로교회의 지도자들이 세운 학교, 교회가 세운 학교 그리고 개인이 세운 학교를 망라하였습니다.
여섯째 동명이교들이 있습니다. 경신대학살 때 불 탄 학교들 이름 중 찾지 못한 것은 다 보통명사로 적었습니다.
일곱째 이명동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두 개를 다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덟째 학교 존속 기간이 1,2년이나 3,4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서전서숙, 길동기독학교, 나자구무관학교, 북일학교, 종명학교(신풍학교) 등
아홉째 당시 주소와 현재 주소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이중 표기하였을 수 있습니다.
열 번째 1915년 북간도 조선인들의 교회당이 94개, 1916년 기독교 학교 수가 48개 였습니다.
그 후로도 교회와 학교는 계속 성장하였습니다. 교회가 조선 이주민들의 의지와 구심점이 되었고 교육은 간도 조선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1910년대 북간도 캐나다장로교 교회들과 학교 일람표 (1911 ~ 1912)
교회명 (설립년도, 설립자) | 학교명 (설립년도,설립자) | 소재지 | 만세시위 /경신대학살 | 기타 |
13. 장은평 (1911/ 양진섭, 양형섭, 양종식,양형식, 이태언) | 보진학교(1912년 12월, 양태현, 양환봉, 이태언, 양형식) | 연길현 수신사 | 참여/ 토벌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하. 614쪽 | *집단망명 |
14. 장백현 (1911/ 이은경, 조덕수, 오주섭) |
| 장백현 신흥덕촌 | 참여/ 토벌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하. 614쪽 | *집단망명 |
15. 적안평 (1911/김계안, 김봉렬, 이태언장로, 염창화) | 배문학교(강백규, 최봉렬, 허동규, 이태현, 김상호, 이종윤, 최자익, 염창화) | 연길현 적안평 |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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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국자가 (1911/ 유기연, 유찬희 장로, 서성권, 박의섭, 유우일, 유흥원, 강익태, 유한풍, 남성호) | *숭신학교( 1914/ 박서양, 문재린, 서성권 외 6명) | 연길현 국자가 | 참여/토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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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정동 (1911/강익태, 유한풍) | 정동학교(1908년 10월 28일/ 강백규, 강희헌, 유한풍) *정동중학(1912년/김윤승, 백유정, 진석호, 강익태, 유한풍) | 화룡현 개운사 자동(현,용정시 광개향 자동촌) | 참여/ 토벌 | *학교가 먼저 세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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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화룡현 (1911/남성호) |
| 화룡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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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은포 (1911/김약연, 심성문, 엄방진) |
| 화룡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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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간장암(장암촌) (1911/강백규, 김영섭, 김동의, 김동희) | 홍동학교 배영학교(화전사허문동) | 연길현 용지사(현,용정시 동성향 동명촌) | 참여/토벌 | *경신대학살, 교회, 학교 소실 |
21. 두도구 (1911/강찬규, 홍일표, 이순창, 조명환, 조병수) | 기독교의숙 (1917/중국조선민족교육사료집1, 468쪽 ) | 연길현 두도구 상부지 | 참여/ | *집단망명 |
22.신풍(쌍신) (1911/진형권) | 신풍야소학교(1907/황병길, 김종대, 김진오, 박기홍) | 훈춘현 신풍촌 | 참여/토벌 | 1911년 여름 페쇄/ 일제 김종대 납치*종명학교로도 불림. |
23. 일송정 (1911/공원보, 박병섭) | 남녀학교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하. 614쪽 | 훈춘현 용지향 |
| *집단망명 |
24.금당촌 (1911/오재영) | 숭신학교 (1904년, 오재영, 오수현, 유문과, 박경하, 한빈, 강정빈) 교회 건물 사용 | 훈춘현 경신향 흑정자 | 참여/토벌 | *학교가 먼저 세워짐 *재건 후에 신광학교로 개칭 |
25. 구사평 (1912/ 이태) | 구사평학교 | 훈춘현 경신향 구사평 | 참여/토벌 | *최석승⌜훈춘조선족이민사⌟283쪽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355쪽 |
26. 탕동(의란구남) (1912/최선화, 김순문) |
| 연길현 의란구 | 참여/ 토벌 |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하⌟,355쪽 |
26. 마적달 (1912/이동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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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춘현 춘화향 | 참여/토벌 | *최석승⌜훈춘조선족이민사⌟287쪽 |
27. 하다문 (1912) | 하다문 용진학교(1906년 1월 5일) |
| 참여/ | *최석승⌜훈춘조선족이민사⌟287쪽 |
부기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에 저항하는 크리스천들이 간도로 집단이주하였다.
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을 세우고 학교를 세워 신앙구국의 의지로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줄기차게
추구하였다. 그 신앙과 민족교육의 에너지와 의지가 폭발하여 일어난 것이 북간도 용정의 3.13만세시위 였다.
만세시위 후,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가 설립되었으며 독립운동은 철혈광복단의 15만원탈취사건, 봉오동전투 그리고
청산리전투로 나타났다.
1910년대 북간도의 독립운동은 북간도 캐나다장로교 교회와 학교의 유명, 무명의 지도자들에 의해
견인되었지만 우리 역사는 망명지사들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바로 잡아서 자리매김을 해야할 부분이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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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택, 김해진 주필, ⌜연변문사자료 제 5집, 교육사료전집⌟, 연변정협문사자료위원회, 1988
3.김택, 김해진 주필,⌜연변문사자료 제 5집, 교육사료전집⌟, 연변정협문사자료위원회, 1988
4.박규찬 외, ⌜중국조선족교육사⌟, 동부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1
5.심영숙 저, ⌜중국조선족력사독본⌟, 민족출판사, 2016
6.호이전, 문홍복 주필, ⌜연변문사자료 제 8집, 종교사료전집⌟, 문사자료위원회, 1997
7.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중국조선민족문화대계 6 종교사⌟, 민족출판사, 2006
8.양봉송 저,⌜훈춘조선족발전사⌟, 연변대학출판사, 2018
9.최석승 저, ⌜훈춘조선족이민사⌟, 연변교육출판사, 2015
10.차재명 원저 ⌜조선예수교장로회사시 상⌟,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8
11.양전백, 함태영, 김영훈 원저 ⌜조선예수교장로회사시 하⌟, 한국기독교사연구소,2017
12.서굉일, 김재혼 저⌜규암 김약연 선생⌟, 고려글방, 1997
13.김춘선 주필,⌜항일전쟁과 중국조선족⌟, 연변인민출판사, 2015
14.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중국조선민족문화대계 5 사상⌟, 민족출판사, 2006
15.김철수 저, ⌜연변항일사적지 연구⌟, 연변인민출판사, 2001
16.서굉일 저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7
2021.11.19.금
우담초라하니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