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 브라질, 친숙한 이름의 나라지만 생각해 보니 그 나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아마존 열대우림, 축구로 유명한 나라 그 정도, 브라질 여행 전에 브라질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나의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서 브라질 역사를 가볍게 살펴봤다.
투피-과라니계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브라질은 1500년도 포르투갈 탐험가 카브랄(Cabral)에게 발견되면서 포르투갈 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 초 유럽 곳곳이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침략당할 때 포르투갈도 예외가 아니었다. 포르투갈 왕실은 나폴레옹 군대가 침공하자 저항하는 대신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도망하였다. 이때가 1808년이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포르투갈 왕실은 1821년 황태자 페드루(Pedro)를 남겨놓고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남겨진 페드루는 황제로 즉위하며 1822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식민화된 것도 독립한 것도 모두 포르투갈에 의해서라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 후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었고 노예제도 폐지요구 등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면서 1889년 혁명이 일어났고 그 결과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공화제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1937년에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어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여러 번의 또 다른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계속 교체되다가 1985년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 이런 파란만장한 브라질 역사를 들여다보니 우리나라만이 격동의 시기를 겪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흔을 눈앞에 둔 나이에 브라질 여행을 꿈꾸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감행하기로 했다. 우선 브라질 여행 동반자를 구해야 했다. 이것은 쉽게 해결되었다. 최근에 교수직에서 은퇴한 대학 친구와 미국에서 교수하고 있는 대학원 후배에게 얘기하니 둘 다 반갑게 수락해 주었다. 예순이 넘은 세 여자가 감히 꿈꾸는 브라질 여행! 막상 가려니 생각할 게 많았다. 너무 먼 나라였다. 또 너무 넓은 나라였다. 치안이 불안하다는 것도 또 다른 걱정거리였다. 우선 장소 선택부터 해야 했다. 브라질은 남미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이 넓은 나라에서 제한된 일정 안에 여행 장소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브라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아마존이지만 이곳은 과감히 포기했다. 20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이곳까지 넣는 것은 무리였다. 브라질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이구아수 폭포를 중심으로 시간적, 공간적 제한을 고려하며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코스를 브라질 지도에 표시해 보니 ‘鳥足之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1 브라질에서 다녀온 장소 여행계획을 짜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천천히’, 그리고 ‘무리하지 않기’였다. 하지만 이 다짐은 시작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5월 어느 날 인천공항에서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 정도 지나 LA 공항에 도착했다. ‘무리하지 않기’를 실행하기 위해 도착한 날 여행 동반자인 후배 집에서 묵었다. 다음 날 12시경에 비행기를 타고 중간 경유지인 댈러스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경, 댈러스에서 2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상파울루행 비행기를 탔다. 10시간 정도 걸려 상파울루 과룰류스 공항에 도착해, 공항에서 4시간 이상을 기다렸다가 '포즈 두 이구아수(Foz do Iguazu)' 행 비행기를 탔다. 이구아수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미국에서 이구아수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을 계산해 보니 19시간 정도였다. 이 대단한 여정을 예순이 넘은 세 여자가 감당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했다.
브라질 치안이 불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차라 위험요인을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가이드를 미리 섭외해서 공항에서 픽업부터 가능하게 계획을 짰다. '포즈 두 이구아수' 공항에 도착하니 섭외해 둔 가이드가 피켓까지 들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풀숲 사이로 구불거리는 좁은 시골길을 지나니 낮은 건물들이 어우러진 소도시의 거리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험할 것이라는 걱정을 비웃기나 하듯이, 여행의 시작인 '포즈 두 이구아수'는 시골 정취가 가득한 정감 가는 소박한 도시였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이구아수 폭포 드디어 여행의 시작이다. 고대하던 이구아수 폭포로 출발한다. 폭이 3km, 높이가 80m 이상이 되는 폭포가 275개나 되는 이구아수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 중 하나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다. 가끔 두 곳 중 어느 곳을 보는 것이 좋은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답은 절대로 두 곳을 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이란 그 먼 나라까지 가서 어느 한쪽만 보고 온다면 아름다운 조각상의 반만 보고 오는 아쉬움을 갖게 될 것이다. 브라질 쪽에서는 폭포의 탁 트인 전망과 광활한 풍경을 볼 수 있고,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폭포에 더 가까이 다가가 폭포의 강렬하게 몰아치는 힘을 체험할 수 있다.
오늘 일정의 첫 번째 장소는 이구아수 폭포가 있는 브라질 국립공원이다. 1939년에 조성된 브라질 국립공원에는 이구아수 강기슭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1.2km에 달하는 이 산책로로 들어서면 사진에서 많이 보던 아기자기한 폭포들이 눈에 들어온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물보라와 무지개는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이 산책로는 폭포의 가장 장관을 이루는 악마의 목구멍(Devil’s Throat) 아래에서 끝난다. 악마의 목구멍은 이구아수 폭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한 감동을 주는 곳이다. 악마의 목구멍의 장관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아르헨티나 쪽으로 가야 하지만 브라질 쪽에서도 약간의 간을 볼 수 있다. 악마의 목구멍 가까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강 한가운데로 나가면 초입에서 보았던 아기자기한 모습 대신 분노를 토해내듯이 내뿜는 거세고 웅장한 물줄기로 어느 샌가 바뀌어 있다. 이 산책로 끝에서 거센 물줄기 파편에 무방비 상태로 몸을 맡기면서 이 광대하고도 눈부신 광경에 흠뻑 취해 볼 수 있다.
그림 2 브라질 국립공원 입구에서 본 이구아수 폭포
그림 3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다음날 아르헨티나 쪽 이구아수 폭포를 보기 위해 아르헨티나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국경을 넘는 절차는 비교적 간단했다. 아르헨티나 국립공원은 브라질 국립공원보다 산책로도 다양하고 볼거리가 많다고 알려져 있기에, 가능하면 여러 산책로를 걸으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폭포를 감상하고 싶었다. 아르헨티나 쪽 폭포를 보기 위한 출발점은 카타라타스(Cataratas)역이었다. 아르헨티나 국립공원 입구에서 카타라타스역까지 기차가 30분마다 운행되고 있었다. 이 역에서 낮은 산책로(Circuito Inferior)와 높은 산책로(Circuito Superior)로 진입할 수 있다. 낮은 산책로를 걷다 보면 브라질 국립공원에서 멀리 보았던 아기자기한 폭포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높은 산책로로 올라가면 강에서 모여든 물줄기가 아래로 떨어지는 광경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1986년에 개봉한 영화 미션(The Mission)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림 4 낮은 산책로에서 본 이구아수 폭포
그림 5 높은 산책로에서 본 이구아수 폭포
카타라타스 기차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리면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산책로가 시작된다. 한동안 철제 다리의 유실로 악마의 목구멍으로 갈 수 없다는 여행객들의 아쉬움에 찬 원성을 들었던 차라 이 산책로의 재개는 행운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세찬 물줄기가 온몸을 부딪친다. 눈을 들어 보니 악마의 목구멍이 바로 앞에 있었다. 이구아수 폭포에서 최고의 절정은 여기서 보는 악마의 목구멍이다. 2km 정도의 높이에서 U자형 틈새로 우렁찬 굉음과 함께 맹렬히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자연의 절대적인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악마의 목구멍이란 이름에 걸맞게 분노를 뿜어내는 듯이 맹렬하게 퍼붓는 물줄기가 부딪쳐 일으키는 물보라를 흠씬 맞으며 바라보는 이 장엄한 광경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기억 속에 꼭 붙잡아 놓고 싶었다. 악마의 목구멍과의 감동적인 만남을 뒤로 역으로 내려오니 너구리과에 속하는 콰티(Coati)와 매혹적인 색을 입은 다양한 새들이 반겨준다. 국립공원은 이과수 폭포가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열대우림과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기에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그림 6 악마의 목구멍
그림 7 콰티 (Quati)
그림 8 영롱한 색의 새
파라티 (Paraty) 다음 여행지는 파라티다. 브라질에서 가야 할 곳을 구글에서 찾았을 때 목록에서 2번째로 올라와 있던 곳이었다. 생소한 곳이었지만 식민지 시대의 도시라는 역사성도 있고 해안 도시라는 점에도 끌렸고 또한 리우데자네이루를 가는 중간에 있는 도시이어서 중간에 들르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가려니 교통이 편치 않았다. 비행기로 갈 수 없었고 육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포즈 두 이구아수로부터 육로로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포즈 두 이구아수에서 상파울루까지는 비행기로 가고 상파울루에서부터 육로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상파울루 과룰류스 공항에서 파라티까지 가는 밴을 이용할 수 있었다. 파라티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 밴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밴이 출발하자 피곤이 몰려왔다. 한참 졸다 보니 밴이 경사가 심한 비탈진 산길을 따라 브레이크를 열심히 밟으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상파울루의 고도가 이처럼 높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시간쯤 지나 파라티에 도착했다.
숙소가 있는 역사지구(Centro Historico)로 들어갔다. 정말 작은 도시였다. 포즈 두 이구아수보다도 작았다. 조약돌이 깔린 구시가지 바닥은 굴곡이 너무 심해서 자동차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걷는 것이 빠를 정도였다. 웬만하면 바꿀 만도 한데 17세기 도시가 조성될 때 깔았던 도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단다.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매력적이었다. 흰색 벽에 다양한 색상의 문틀, 격자 창문, 약간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장식들은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브라질 식민지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도시의 역사는 17세기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투갈인들이 인근 미나스 제라이스 지역의 금을 수출하기 위한 항구로 설립한 것이 그 기원으로 식민지 시대에는 금과 기타 물품을 유럽으로 운송하는 주요한 항구의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식민지 스타일의 건물과 교회가 남아 있다.
그림 9 역사지구 거리
그림10 조약돌길
그림 11 흑인 노예를 위한 교회
위 교회는 흑인 노예들을 위한 교회였단다. 금으로 치장한 다른 교회와는 달리, 너무도 단출한 장식과 흑인 성인상이 놓여 있는 내부 모습이 누구를 위한 교회였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식민지 시절에는 흑인 노예나 원주민들을 위한 교회와 지배계층인 유럽계통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구별되어 있었단다. 교회에서까지 이처럼 철저히 차별적이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위선을 보여주는 듯해서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림 12 보트여행
그림 13 골드 트레일
파라티는 그림 같은 해변과 수많은 섬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해안 도시이다. 그래서 보트 투어는 빼놓을 수 없는 놀거리 중 하나다. 해안에 나가면 보트 투어 호객 행위가 많은 것으로 보아 여행사들뿐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투어도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전문 여행사가 제공하는 보트 투어를 선택했다. 이 투어는 인근 몇 개의 섬에 정박하여 수영, 스노클링, 카약 등을 즐길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활동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던 우리는 다음번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파라티 인근에는 다양한 동식물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세라 다 보카이나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a Serra da Bocaina)이 있다. 이 공원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브라질 내륙에서 포르투갈로 금을 운반하기 위해 건설한 포장도로인 골드 트레일 (Gold Trail)이 남아 있다. 이끼에 뒤덮인 돌길은 사람이 걷기엔 무척이나 불편했다. 울창한 숲속에 있는 이 트레일을 걸으면서 식민 시절의 브라질을 상상해 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묘미 중 하나였다.
리우데자네이루 (Rio Dejaneiro) 다음 행선지는 리우데자네이루이다. 파라티에서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역시 자동차로 움직여야 했다. 상파울루에서 파라티까지는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했기에 끊임없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산길을 내려왔다면 리우까지는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가는 길이기에 푸른 바다의 정취를 즐기며 갈 수 있었다. 파라티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가니 (물론 버스로 가면 시간은 더 걸린다.)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독특한 형세의 산과 깊고 푸른 바다를 품은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 리우의 치안이 안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코파카바나(Copacabana) 해변 근처로 숙소를 정했다. 숙소에서 몇 블록 걸어가니 코파카파나 해변이 나온다. 독특한 형세의 산과 황금빛 바다로 둘러싸인 코파카바나의 해변은 약 4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해변으로 나가면 Avenida Atlântica로 알려진 산책로를 중심으로 한쪽 편에는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과 초현대식 빌딩이 교묘하게 섞여 있고, 반대편 황금빛 모래사장에는 비치 발리볼 코트와 작은 노천 바들이 줄지어 있다. 코파카바나 해변은 자연의 아름다움, 문화적 활력, 레크리에이션 기회가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리우데자네이루를 상징하는 매혹적인 곳이다.
그림 14 코파카바나 해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