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수업 11일째. ※
나에게 머무는 너의 시선.
여기저기서 터지는 후레쉬.
너와 나만의 무대.
※ ※ 위 험 한 연 출 、※
\.분위기 좋은 한 식당.
달그락 달그락. 포크와 나이프 움직이는 소리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짓는게 전부고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고, 침묵 끝에 승원이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먹고 이제 뭐하려고?"
"도서관 가야지."
당연스레 나오는 내 대답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 승원이.
"시험 다 끝났잖아."
"그래도 우리는 예비 고3이야."
"몇달이나 남았는데."
"별로 안남았어! 3학녀 전까지 정석 전과정은 다 예습해야지.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데.
정말 미치겠어. 난 그동안 도데체 뭘한건지. 후우. 다른 애들은 벌써 12단원을 끝냈을텐데."
"나 안끝냈는데?"
자랑스레 말한 승원이. 보고있자니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직도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한 승원인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시험이 별로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저렇게 여유만만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잘한다. 시간이 어딨다구.. 너 나랑 같이 오늘 도서관 가자.
내가 왠만한 건 설명해줄께. 3학년은 정말 장난 아니란 말야 긴장해야지."
"에에 싫어. 난 도장갈래."
검도 3단인 승원인 오늘도 역시 도장엘 가겠다고 징징댄다.
휴 승원이네 아줌마가 항상 속타서 가슴을 두드리는 게 조금 이해될 법하다.
승원이 동생은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더만….
이 녀석은 아직도 운동에나 관심이 있지 공부엔 흥미가 없나보다.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응? 우선 급한거 부터 해야지."
"안돼애. 나 한달 뒤에 단심사 있어. 4단따면 도장차려야지."
"맘대로 해라. 난 몰라. 으휴 정말 몇시까지 도장에 있을꺼야? 끝나고 놀러가게."
"11시쯤? 지금 가면 대학생 누나들 수업하고 있겠다."
"눈길주면 죽어!!"
"알겠어요."
순순히 대답하곤 옆에 있던 가방을 집어드는 승원이. 나도 따라서 일어난 후
처벅처벅 걸어갔다.
딸랑-.
문을 열고 나오자 쌀쌀한 바람이 우릴 맞이 했다. 확실히 이번 겨울은 따듯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이 추위가 도데체 어딜 가겠나.
호호 손을 불어가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같이 꼭 안은 채로 걸어가는 연인들.
너무도 익숙한 겨울풍경에 한 눈을 파느랴. 어느새 내 손을 자기 허리에 두른
승원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약간 서운한 듯 내 머리를 툭 치는 승원이.
"아야."
"도데체 뭘 그렇게 봐."
"그냥 이것저것. 에엑 그렇다고 머릴 때리면 어쩌냐. 막 공부하러 갈라는 사람한테."
장난스레 고개를 숙이는 승원일 보고 푸하 웃음을 터트린 후
가벼운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다 달았을 때 나는 옆에 위치한 도서관으
로 승원인 반대쪽에 위치한 검도장으로 각각 발걸음을 돌렸다.
"이따 갈께! 바람피고 있다 걸리면 알지?"
"알았어 마누라~."
믿음직스러운 승원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빨리 도서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의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책상에 두꺼운 문제집을 올려놓았다.
문제집의 두께를 보고 경악을 할 박승원의 표정이 그려지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아무래도 그 놈을 한번 대리고 도서관엘 와바야지.
한 몇분이나 버틸까? 한 30분? 공부는 한 몇 페이지 정도 할까?
사삭.
종이 넘기는 소리와 무엇을 쓰는 소리 빼곤 아무런 소음도 나질 않았다.
나도 서둘러 정신을 차리곤 공부에 몰입했다.
대학은 꼭 장학금으로 가야하니까….
물론 지금까지 상위 3%를 곧줄 유지해왔지만 3학년이 고비다.
힘겨워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니 어쩌면 약이 될수도 병이 될수도 있는
때 이다. 이럴 때 일수록 분발해야지.
1시간 40분쯤? 문제집 3장을 끝내곤 힘겨운 숨을 내 뱉으며 시간을 봤다.
시간은 10시 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가면 딱 시간이 맞을 것 같다.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를 모두 마시곤 도서관 밖을 나왔다.
"으으. 추워."
바람이 쌩쌩부는 거리를 걸으며 더욱 그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추운 날 같이 걸으면 참 따듯한데.
발걸음을 재촉하며 그 아이가 땀흘리며 운동하고 있을 검도장을 향해걸었다.
"승원!"
"하아..왔네?"
문을 열자마자 친구와 대련을 붙고 있었는 지. 호구를 쓰고 있던 승원이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날 맞았다. 손을 올려 호구를 벗는데 으악. 이마의 땀이 비다 비.
평소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그 아이의 이마를 대충 꾹꾹 눌러줬다.
씩 웃는 승원이. 힘들지도 않나.
"아 덥다."
"밖엔 엄청추워. 나 오느랴고 코 얼었잖아."
"아으 더워. 집에 가자마자 샤워해야지."
툴툴대는 승원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옆에 있던 샌드백을 주먹으로 쳐봤다.
약하게 쳐서인가. 약간 흔들리고 마는 샌드백.
조금 더 힘을 줘서 쳐봤다. 아까보다 좀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 오는 샌드백.
재미를 붙이곤 계속 주먹으로 쳐봤다. 한창 하고 있는데….
"아악!"
박승원놈의 장난기가 또 발동했는지. 내 반대편에서 샌드백을 확 쳐버린 그 아이.
갑자기 세개 다가온 샌드백을 이기지 못하고 난 샌드백을 정통으로 맞아 빨개진
얼굴을 감싸쥔 채 도장 바닥에 주저 앉았다.
기분 좋게 웃는 그 놈의 얄미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주욱었어!"
장난으로 그 아이의 몸을 때려댔다. 킬킬 웃으며 손쉽게 방어 하는 그 아이.
또 오기가 발동되어 좀 더 세게 그 아이의 등을 퍽퍽 때렸다.
죽었어! 오늘 등에서 불나게 해주마!
"아아. 항복항복."
드디어 꼬리를 내린 박승원이 손을 휘저으며 도장 바닥에 철퍼덕 누웠다.
나도 장난스럽게 철퍽 소리를 내며 따라 누웠다. 푸하. 갑자기 막 웃음이 났다
혼자서 킬킬 대고 웃는데 옆에서도 킥킥대는 소리가 났다.
"푸..푸하하. 너 이렇게 보니까 진짜 웃겨"
"남말 하시네"
바닥에 누운 채 서로의 모습을 보며 좋아하던 우리는 한참을 웃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몸을 탁탁 털고선 옷을 갈아입겠다며 승원이가 탈의실로 들어갔고
옆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마시며 시원함을 느꼈다.
.. ※ 배우수업 12일째. ※
나에게 머무는 너의 시선.
여기저기서 터지는 후레쉬.
너와 나만의 무대.
※ ※ 위 험 한 연 출 、※
"으..정말?"
"어 그렇다니깐. 원래 걔가 쫌 그렇잖냐."
"그래도 왠일이야. 와. 놀랐겠다."
유난히 신호가 안 바뀌는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승원이랑 초록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말을 멈추곤 무언가를 장난스럽게 바라보는 승원이.
"뭘 그렇게 봐?"
"너 나 저거 해라."
"응?"
그 아이가 빼족 가리키는 곳으로 나도 시선을 옮겼다.
' 중 · 고등학교 과외 '
라는 큰 타이틀이 붙여져 있고 그 밑에 잘잘한 세부 설명과 연락처가
적혀 있는 홍보 종이 였다. 근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이게 어쨌다구?"
"박승원 선생님하라고."
허 참. 장난기 가득해서 날 쳐다보는 그 아이. 도데체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인거야. 어이 없는 눈으로 그 아이를 삐죽 쳐다보는 데 넉살좋게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박승원.
"할꺼지? 그렇게 믿겠습니다."
"웃겨 증말. 됬어 장난 그만."
"장난아닌데? 내일 토요일이지. 음 그러면 4시까지 우리집으로 와."
"야아. 진짜 미쳤어."
"엄마도 분명 좋다고 할껄. 그럼 선생님 내일 4시에 뵈요."
"돌았어! 아우. 박승원."
"머리 짱 좋지. 니 남편이 이 정도라니까."
떽떽데는 내 목소리는 아에 귀에 들리지도 않는단 듯이.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머리를 넘기는 박승원. 이게 건들건들 해가지고
게다가 이게 또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사고가 물들어 버린건 아닐까?
"집 다왔다. 내일 봐."
멍하니 입벌리고 그 아일 쳐다보는 사이에 벌써 우리집까지 걸어왔다.
가볍게 손을 흔들고 멀어지는 그 아이의 뒷모습.
"잘가!"
"오냐!"
캄캄한 골목아래 그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퍼졌다. 밝은 기분으로 그 아이의 뒷모습을 끝까지 쳐다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곤 주머니에 들어있던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썰렁한 냉기.
오늘도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나보다.
아무도 없는 집 안. 깜깜한 거실 불을 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으으.."
온 몸이 뻐근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누웠다.
여하튼 박승원이랑 돌아다니고 온 날은 몸이 말이 아니라니까.
풋..아까 나에게 선생님을 하라던 그 아이의 경쾌한 목소리가 내 귀에서
다시 한번 울렸다. 대책없는 그 아이를 보면서 어이없어 했던 나였지만 막상 책상을 뒤적거
리며 승원일 뭐부터 설명해줘야 할까 하고 생각하는 난 무엇이란 말인가.
"토플은 어느 정도 가능할라나."
작년에 내가 처음 시작했었던 토플교재를 꺼냈다. 모든 문제풀이나 단어정리는
연습장에 했어서 새것마냥 깨끗한 토플 교재. 첫 장부터 차례로 넘겨봤다.
설마..이정도 어휘력은 있겠지?
옛날 참고서들을 보며 쿡쿡 대다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날 4시.박승원네 집.
"안녕하세요."
"아이구. 유연이 왔네? 승원인 애들이랑 놀다와서 자."
"에에?"
"4시전에 깨워달라는 걸 깜빡했네. 올라가서 유연이가 직접깨워.
참 그나저나 승원이한테 얘기들었어. 바쁜시간 쪼개서 어째.
근데 난 그말듣고 참 고마운거 있지. 승원이 그놈이 내 말을 듣니.
니 말은 그래도 들으니까 잘 좀해줘 알겠지? 학교 선생님들이 니 칭찬
많이 하더라. 우리 승원이도 좀 이끌어줘."
"헤헤. 네 아 근데 저도 잘 못해서;"
"니 반만 하게되도 내가 소원이 없겠다. 어느정도 지 아빠 만큼 영향력 있게
키워야지. 쟤한테 사업물리는 건 이미 포기했으니까. 그냥 서울대학이나
입학하게끔. 응?"
"네에."
최대한 공손히 보이려 애쓰며 한걸음한걸음을 옮겼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아줌마의 다정한 부름이 내 발목을 잡았다.
"유연아."
"네?"
"과외비는 어느 정도로 할까?"
당황한 나의 얼굴이 내가 마음대로 머무리기도 전에 놀라버렸다.
커다래진 눈으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냥 아줌마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그래도 챙길껀 챙겨야지. 그냥 일반 과외 정도로 줄께.
그래도 되지?"
"아니 전.."
"괜찮아 유연아. 얼른 올라가봐. 아줌마도 과일 깍아서 올라갈께."
다정하게 웃어보이곤 부억쪽으로 들어가는 아줌마를 보면서
한참동안을 그 자리에 멈춰선 채로 떨리는 다리를 달랬다.
후우..
어쩌면 처음부터 승원이가 이런 의도로 내게 제안을 한 것일까.
누구보다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승원이니까.
왠지모를 씁슬함에 그 아이의 방문을 여는 손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박승워...푸훗."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에 아까 무겁던 마음을 어딜로 가고
가벼운 웃음만 나왔다. 자는 모습을 보니 아직도 영락없이 애구만.
배게 하나는 팔로 꽉 안은 채 머리는 헝크러진 채로 콜콜 자고 있는 승원이.
"야야야. 얼른 인나봐."
일부러 조금 힘을 준 후 그 아이의 어깨를 팍팍 쳤다.
움틀 거리며 다시 잠속으로 빠지는 그 아이.
"아아..엄마 5분만."
"나 니 엄마 아냐. 빨리 일어나라.얍얍!!"
완전히 재미를 붙인 난 침대에 걸터 앉은 채 본격적으로 그 아이를 공격(?)
했고 이리저리 굴러 다니며 공격을 피하던 승원이가 그제서야
부비적대며 눈을 빼꼼히 떴다.
※ 배우수업 13일째. ※
나에게 머무는 너의 시선.
여기저기서 터지는 후레쉬.
너와 나만의 무대.
※ ※ 위 험 한 연 출 、※
"무슨놈의 남자가 그렇게 잠이 많어."
눈을 부비적대다가 나의 잔소리에 부시시한 얼굴로 웃어보이는 승원이.
몸을 일으킨 후 머리를 탁탁 털곤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다.
나도 맞은 편에 의자를 꺼내어 앉곤, 일부로 콰앙. 소리를 내며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흠칫 눈을 크게 떠보이는 승원놈.
왠지모를 흐뭇함에 가방에 있던 단어장이며 정석. 성문등을 무서운 손놀림으로 펼쳤다.
"이게 다 뭐야."
"니가 할 것들. 왜? 너무 적어?"
멍한 이놈의 눈동자가 내게 미쳤냐고 묻는 듯 했다.
공부거리를 보니까 갑자기 짜증이 나는 듯 승원인 머리를 손으로 마구 헤집었고
나는 그런 승원일 보면서 웃음 참기가 매우 힘들었다.
"어이구. 공부얘기만 나오면 몸이 뒤틀리지?"
"에씨..나 아직 졸린데."
툴툴..변명이 끊이지않는 승원이의 귀를 끌어당겨.
문제집 가까이에 얼굴이 오게 만들었다.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는 승원이.
단어장 첫장을 척 핀후. 시계를 봤다 4시 30분이군.
"5시까지 외운담에 시험보자. 못 외운 개수대로 이마때려야지.이히"
핸드폰 안테나를 틱틱 거리며 즐겁게 웃는 나를 짝 째려보고는
궁시렁 대며 단어장을 집어드는 승원이. 하는 꼴을 보아하니.
적어도 5시까지는 못 외울 것 같다. 아니 10시가 되도 다 외울 수 있을까.
"아이구. 우리 승원이 잘되?"
껄렁한 자세로 단어장을 보며 흔들대는 승원일 보고 기특해하며
과일접시를 조심히 내려놓는 아줌마. 흡족한 표정이 가득하시다
"과일좀 먹으면서 해.아줌만 나갈께.호호"
아줌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시고 박승원 놈은 아줌마가 놓고가신 과일쥬스를
한번에 반 이상을 마신 뒤 또 다시 건들거리며 지깐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으으.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나도 풀어야 할 문제집이 몇장인데.
정석을 펴들고 공부를 하려는 순간.....
"아씨!! 나 이거 안해!"
후아. 결국엔 박승원놈이 단어장을 내 팽겨치고 말았다.
저..저게.10분도 하지 않았어.
"주욱어!! 야 여기 나온건 기본 단어야 이것도 안 외울꺼면 나가죽어."
"차라리 나가 뒤지지. 아 외우는 거 짱싫단말야."
"알았어. 그래. 그럼 설명하자. 국.영.수. 중에 뭐가 제일 좋아?"
"국어."
그래.공부못하는 애들이 국어를 좋아하더라고.
쯔쯔 불쌍한놈. 고3국어는 장난이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구나.
"국어는 우선. 그 작품에서 나타내는 걸 잘 알아야되거든?
거의다 그 작가와 연관이 된건데.. 음. 예를 들게 모가있냐."
녀석의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도저히 책을 찾으려 해도. 온통 만화책뿐이지.
어?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발견한 한 책. 어린왕자.
으크크. 박승원이 이렇게 감수성 풍부한 책을 읽는담말여? 오오. 다시봐야겠어.
"아 그거 몇년전에 읽은건데. 아직도 있네?"
그럼그렇지. 박승원의 말에 난 크큭 웃곤 그 책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앞표지에 그려져있는 어린왕자의 그림은 누구나 한번씩 본
익숙한 그림이였다.
"어린왕자도 작가의 환경이 많이 담겨있어.
예를 들어 장미는 작가의 아내를 표현한거래."
"마누라가 성격이 더러웠네."
"풋..그렇지. 아마 엄청 스트레스였을껄."
"난 어린왕자놈 부럽던데."
쌩뚱맞은 소리를 꺼내는 승원이. 응? 부럽다니? 뭐가?
어린왕자 피부가 하얘서 부럽다는건가. 쟤도 충분히 깨끗한데
.
.
"자기가 원하는 거 뭔지 안담에 그거 갖었잖냐.
그게 난 부럽더라."
※ 배우수업 14일째. ※
나에게 머무는 너의 시선.
여기저기서 터지는 후레쉬.
너와 나만의 무대.
※ ※ 위 험 한 연 출 、※
아리송한 그 아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 했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거만한 시선으로 날 쳐
다보는 박승원. 도데체 아까 한 말은 무슨 뜻 이였을까?
시간이 몇분 쯤 흘렀을까. 아직도 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내가 웃긴지 박승원은 쿡쿡 대며
웃기 시작했다. 내 얼굴이 기분 좋게 찡그려 졌다.
"됬다. 그만해 쳇. 아리송한 말이나 해대고. 너 내일까지 이거 다 외워."
"뭐냐. 괜히 자기가 안되니까 숙제나 내고."
"내일 일요일이니까 시간 많잖아. 이것 좀 외워. 알겠지? 말들어. 난 니 선생님이야."
"큭.. 그래그래. 근데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선생님말고 애인해줘야지."
"응?"
"시내나가자."
아직도 놀 것만 생각하는 놈의 여유에 그냥 웃음만 나왔다. 이제부터 시작해도
고3 때 적응할까말까구만. 이놈은 뭘 믿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걸까.
하지만 나 조차도 일요일날 나가 놀자는 승원이의 말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있다.
오랫만에 데이트인데.
하루쯤 논다고 공부에 큰 영향을 주진 않겠지?. 그래 처음 부터 너무 무리하면
얘도 지레 겁먹곤 아예 시작을 하지 않을지도 몰라.
저런 생각으로 날 합당화 시켜 놓곤 그 아이에게 가벼운 승낙을 했다.
"2시까지 육교 옆."
"오케이."
약속을 잡아 놓은 우리는 다시 공부에 초점을 돌렸고, 나는 오늘에서야
승원이네 아줌마의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하곤 내 앞에 있는 이 무대포녀석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으으.. 이건 무슨 동갑내기 과외하기도 아니고.
후으.. 아마 커플도 이런 커플은 없으리라.
이윽고 승원이가 12번째 하품을 했을 때. 드디어 오늘 주어진 지옥의 시간이 끝났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가 가방을 챙겼고, 승원인 옆에 있던 침대로 몸을 던진 채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아으.. 저거 한 것도 없으면서.
"다음에 검사해서 안해있으면 죽을 줄 알어!."
"아..몰라."
방 문고리를 손으로 열은 후 아직도 침대에서 뒹글 거리고 있는 녀석을 응시했다.
"나 간다~."
"데려다줄까?"
"아니 됬어. 나 갈꼐 내일 봐."
"바이~."
방 밖으로 나왔을 때. 밑에 층에서 아줌마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왔고,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문 밖까지 배웅해주는 아줌마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후. 우리 집까지 태워다주시는
승원이네 기사아저씨의 차에 몸을 맞긴 채 힘들기만 했던 오늘 오후를 되새겼다.
.
.
\.다음날
"으챠챠챠. 으아. 날은 따듯하네."
"언니 또 나가게?"
"주말인데. 당연히 데이트 약속이 있지."
입을 빼쪽이다가 읽던 책으로 고개를 돌리는 유정이를 보며 미소가 떠올랐다.
꽤 예쁘장한 얼굴 때문에 화이트데이 같은 기념일엔 언제나 커다란 선물들에 싸여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집에 들어오는 유정이. 하지만 눈은 꽤 높은지 그 많은
추종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해 외로운 솔로 생활을 보내는 유정이다.
아무 옷이나 꺼내 입으려 하는데 드륵 거리며 문자의 진동을 느끼며 핸드폰을 꺼냈다.
[아마 내 친구들 몇명 만날 것 같어. 예쁘게 하고 오세요.]
박승원놈의 문자였다.
아무 옷이나 꺼내 입으려던 손을 거둔 채 꼼꼼히 옷을 점검 했다.
그나마 제일 낫다고 생각하는 치마를 꺼내 입곤 어색한 솜씨로나마 화장을 한 채
오늘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내려가는 내내 예전의 우리 모습이 떠올라 자꾸만 날 웃음지게 만들었다.
유난히 내 친구들에게 친절한 승원이에게 질투를 느껴 나도 일부로
승원이의 친구들과 즐거운 척 놀며 친절히 대했고.
그 때 마다 숨기지 못하는 승원이의 질투어린 시선은 그 날 하루 내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요인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걸 복수하려는 지 내 친구들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며 즐거운 듯 웃는
승원이의 모습은. 그 날 하루 내내 날 히스테리 속에 살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런 우리둘의 숨겨진 전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내 친구들은 승원이가 착하다며
칭찬해주기 일쑤였고, 승원이의 친구들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왜 이렇게 혼자 큭큭 대면서 와."
"어?"
내 앞에 서 있는 승원일 보며 놀란 낯을 해 보였다. 응? 이 곳은 약속장소가 아닌데
내 눈앞에 서 있는 건 분명 말끔히 차려 입고 나온 승원이였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그냥 왔어. 가자."
"어?응."
알딸딸해 하며 날 향해 내민 승원이의 손을 잡았다. 아직 약속시간 30분이나 남았는데.
연예의 기초조차 모르는 듯 해보이면서도 은근히 사람을 감동시키는 내 남자친구를 향해
함박 웃음을 지어보이곤 팔랑팔랑 걸음으로 시내를 향했다.
※ 배우수업 15일째. ※
나에게 머무는 너의 시선.
여기저기서 터지는 후레쉬.
너와 나만의 무대.
※ ※ 위 험 한 연 출 、※
"오늘 근데 뭐하려고?"
"오후엔 우리 둘이 놀다가. 저녁엔 친구 놈들이랑 놀고."
"친구 누구? 그 성현이였던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승원이. 휴일이라 그런지 시내에는 사람이 참 많았고
각 가게에서 나오는 커다란 노래소리가 흥겹게 거리를 휘감았다.
꽤 걸어 다리가 아프다 할 무렵. 좀 늦은 감이 있는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꽤 맛있는 스파게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당 안
새로 인테리어를 했는 지 깔끔해보이는 실내엔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표정으로 이 얘기 저 얘기와 함꼐 밥을 먹고 있었다.
창가쪽을 유난히 좋아하는 승원이 땜에 우리는 창가옆에 있는 2인 테이블에 앉았고
같은 메뉴를 주문한 후 음식이 나올 때 까지 가벼운 농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어제 박승원 공부하는거 보니까 가관이데."
"정유연 소리지르는 거 보니까 가관이데."
"뭘! 소리지르는 것도 예쁘지 않냐? 응?"
"시내엔 병원없지?"
벙 쩌서 아무말도 안하는 나한테 브이를 보이며 입모양으로 'Win'이라고
말하는 박승원. 표정은 의기양양해서. 쳇. 이 말싸움 하나 이기는게 뭐가 좋은 거라고
말싸움을 그만 둔 우리는 테이블 밑에서 발로 서로를 툭툭치며 장난을 하고 놀았고
의자에 몸을 기대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승원이.
"어? 내놔. 죽었어 이거 안 좋은거야."
"땡. 맛있는거야."
씨익 미소와 함께 하얀 막대기를 입에 무는 박승원.
저걸 피면 어린나이에 폐암에 걸릴 확률과. 뇌가 다 자라지 않은 청소년에겐 치명적이고
자신감과 사회성을 잊어버리게 된다던데.(☜평소 금연방송을 즐겨봄.)
"빨랑! 피지마 저거 피면 진짜 안 좋데 승원아."
"하루에 좀만 피면 괜찮아."
어흑. 누가 도데체 저 녀석을 철 좀 들게 할까. 그래도 꽤 매너는 있는지
담배연기를 창가 쪽으로 뱉는 녀석. 그래서 창가에 앉자고 했구만
금연 선두두자인 난 계속 뻐끔대는 그녀석의 입을 째려봤고.
이렇게 불만스러운 가운데도 지금 이 녀석의 모습이 꽤나 멋있다는 건 할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다.
"딴 여자애들은 내가 담배피는 거 보면 껌벅 죽던데."
"체. 웃기네. 밥이나 먹어."
우리 앞엔 먹음직스러운 피자 스파게티가 두 접시 놓여졌고.
그제서야 담배를 지져끈 채 포크를 집어드는 박승원.
가끔 눈이 마주치며 나름대로 맛이 괜찮은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친다.
"어? 소리야."
"하이 정유.(정유연의 줄임말.) 너 핸드폰 안 받고 뭐하나 했더니
승원이랑 있었구나. 내가 3번이나 했는데 놀자고"
"정말? 힝. 난 몰랐어. 진동으로 한담에 가방에 넣어서 그런가봐."
"바보븅. 그래서 그냥 진영이랑 나왔어. 안녕 승원아"
꽤나 예쁘게 꾸미고 온 소리가 웃으며 박승원에게 인사를 건넸고
나를 힐끗 쳐다본 박승원은 예의 그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를 응시했다.
"안녕 못한데."
"어? 왜?"
"정유연이 잔소리 했어. 이거 땜에"
재떨이에 놓여져 있는 담배를 손으로 가르쳐 보이는 승원이. 그리고 이제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소리.
"유연이가 저거 워낙 싫어하잖아. 그럼 잘 먹어. 난 자리 저쪽이야. 안녕~."
내 머리를 한 번 툭치곤 소리가 가벼운 걸음으로 끝자리로 향했고
나는 조금 울리는 머리를 손으로 쓰윽 쓰담으면서 앞에 있는 박승원을 가만히 노려봤다.
여유있는 눈 웃음을 지어보이며 '왜?' 라고 입모양을 뻐끔하는 놈. 으으. 하여튼
"다 먹고 향수사러가자."
"응? 왠 향수?"
"엄마가 사오래. 만약에 까먹고 안 사오면 강물에 던져버리겠데."
"풋..응 알았어.가자."
어린 애 같은 모습으로 또 승원일 협박했을 아줌마를 생각하며 혼자서 빙그레 웃었다.
잠시 조용한 침묵속에 식사만 말 없이 했고. 어느 덧 접시를 비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값을 치루곤 시내 중앙 쪽에 위치한 커다란 미용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샤넬꺼 어디있어요?"
그 비싸다는 샤넬 향수를 찾는 승원이. 손님의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했는지
싱글 거리는 미소로 안내하는 점원. 아 이런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원인 내 손을 잡은 채 샤넬 매장으로 들어갔고
명품은 말만 명품이 아닌지. 매장안에 감도는 분위기가 나에겐 버겁기만 하다.
"주세요."
별로 둘러 보지도 않은 채 손가락으로 하나를 척 가르친 채 달라고 하는 승원이
그 향수가 꽤나 비싼 거였는지 점원의 표정엔 환한 미소가 가득했고
찔리면 아플 듯 한 긴 손톱이 있는 손으로 그 향수를 포장한다.
"야아. 그렇게 막 골라도 돼? 아줌마 취향이 뭔데. 좀 살펴보고 고르지"
"괜찮아. 그 아줌만 아무거나 다 잘쓸꺼야."
손가락으로 향수들을 다각 거리며 매점 한바퀴를 돌아보는 승원이.
짜식 말은 그렇게 해도 뭐가 더 좋을까 살펴보는 거구나. 기특한 녀석
"아줌마한텐 이런 것도 잘 어울릴 것 같애. 그치 승원아"
"나 엄마꺼 고르는 거 아닌데."
"응?"
"우리꺼 고르는거야. 야 이거 어때."
"..어?"
당황한 내 표정을 못 본채 지나치면서 예쁘게 놓여 있는 향수두개를 집어드는
박승원. 값을 지불 하고는 그 매장을 나오며 연두색 향수를 내 손에 쥐어준다.
"박승원.."
"간수 잘해. 내꺼랑 커플용이래."
이러면 내가 많이 부담스러워 한단 걸 알면서도 해주고 싶은 지 승원인 항상 나에게
이렇게 과분한 걸 선물해줬고. 그럴 때 마다 내가 불편해 하면 내 어깨를 가만히
팔로 안아주는 것으로 자기 할말을 대신했다.
"좀 돌아다니다 약속 장소로 가면 딱 맞겠다. 가자"
날 향해 고개를 옆으로 숙이며 웃어보이는 승원일 차마 미워할 수 가 없어서
그 아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거리를 걸었다.
※ 배우수업 16일째. ※
최고라는 자리는
위험부담이 가장 큰 자리이다.
언제 어디서 너와 날 힘들게할
스캔들이 터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 ※ 위 험 한 연 출 、※
친구라는 존재를 꽤나 좋아하는 승원이는 그에 맞게 친구도 여럿있다.
저번에 사귈 때 본 친구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고 또 새로 보는 친구들도 그리 적지는
않았다. 그리고 좀 문제가 있다면 여자도 몇명 껴 있다는 점 일까?
살포시 노려보았지만 눈치를 챌리 없는 녀석은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의
자리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앉았고. 그 옆에 내 자리를 마련 한 채 툭툭 친다.
나도 만나서 반갑다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충분히 앉을 자격이 있다 생각하는
박승원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으. 재회의 모습을 보니 나까지 마음이 뭉클한걸 막 눈물이 나오려해."
"웃기시네."
능청스러운 성현이의 말에 나는 그냥 하하 웃었다. 승원이 친구중에 나와 가장 친한 성현이
는 꽤 좋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학교에 평이 나있었다. 물론 한번 화났을 때의 그 무서움이란
말로 다 할수 없겠지만 그래도 평소엔 잘 웃고 남 기분파악도 잘 할줄 아는 그런 아이이다.
그래서인지 승원이의 베스트 프렌드라고도 불리는 이녀석. 김성현. 박승원.
아아 우리학교에서 알아주는 두 콤비.
여자애들에게는 환상의 존재. 남학생들에게는 질투의 존재. 선생님들에게는 골칫거리
"야야야. 오늘은 빼기없다! 분위기 흐려놓는 사람 죽여 놀줄 알아!"
서로 장난을 쳐가며 꽤나 흥겨운 분위기 속에 모두가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단 한명 아까부터 무언가 불만인 표정으로 낮게 욕을 중얼대며 내 쪽을 계속 노려보는 한 여
자아이 김희진. 또 무슨 시비를 거시려고 그러나.
(김희진 아시죠^^; 승원이랑 유연이가 사귄 다고 했을 때 기분나빠한 그 여자아이. 유연이 싫어하는 애 말예요.)
그래도 승원이 앞에서 나한테 뭐라고 할만큼 머리 나쁜 아이는 아닌지 그 아인 애써 화를 삭
히는 듯 해보였고 그런 김희진의 엄청난 인내성에 박승원은 그만 불을 붙이고 말았다
"야 김희진."
"응? 승원아 왜?"
"유연이 때린애들 좀 니가 알아봐줘라."
박승원의 말에 김희진의 안면근육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한 순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영문도 모르는 승원이는 아프냐는 걱정스러운 말로 또 한번 김희진의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게 만들고. 오늘 김희진의 얼굴을 주인을 잘못만난 죄로 꽤나 많은 변화를 거
듭했다. 애써 진정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김희진.
"하하..저 승원아. 그걸 내가 어떻게.."
"너도 그런 과 잖아."
"아..아니야. 나 안그런데."
"애들이 그러던데."
김희진의 표정은 정말로 가관이였다.
그 모든 정보를 흘린 사람이 나라고 확신을 했는지 그 아인 날 표독스레도 노려보았다.
하여튼 지가 평소에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 지는 생각도 못하고 무조건 내 잘못이지.
이 모든 일에 근원을 마련해놓은 박승원은 금새 또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리곤 친구들이랑 장
난을 치느랴 정신이 팔려있다. 그런 승원일 나도 빤히 응시하다가 내 목에 꽂히는 따가운 시
선에 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날 무서운 눈길로 노려보고 있는 김희진.
'좋냐 이 씨팔년아.'라고 입으로 가만히 중얼거린 김희진은 몸을 길게 뺀 후 담배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도데체 저게 뭐하는 행윈가 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담배가 얼마나 유해한 물질인데 김희진 쟤는 여자의 몸으로 저걸 뻐끔뻐끔.
"유연아 나 니 옆에 앉아두돼지?"
"어?"
애들을 의식해서 인가 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넨 후 내 옆에 자리를 트고 앉는 김희진.
담배연기를 후우 내뿜고는 나의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인다.
'조만간 기대하고 있어라. 무슨 뜻인진 자세히 설명안하마.'
내 표정은 점점 딱딱히 경직되었다. 이 아이가 또 어떤 유치한 행각을 벌일까란 그런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려했지만 아직도 내 얼굴은 머리보다는 조금 솔직한가보다. 약간의 바보스러
운 겁 때문에 내 표정은 줄곧 딱딱함을 유지했고, 김희진은 자신의 말이 효력을 발휘했다 생
각하는지 만족한 미소와 함꼐 날 쳐다보았다.
나도 애써 괜찮은 척 여유있게 웃어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맘처럼 안된다.
"어? 유연이 담배피는거 싫어하는데."
"아 정말? 에이. 진작 말을 해주지. 미안해요."
"얘 앞에선 나만 펴."
"히히. 알았어 승원아."
아까 음식점에서의 내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김희진에게 조금 찌푸린 얼굴로 말을 하는 승원
이와 그런 승원이를 잘 받아내며 웃는 김희진.
사람이란 게 이렇게 끔찍할 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도 되는건가.
속으로는 날 어떻게 요리할까 생각하고 있을 이 아이의 태연한 겉모습을 보며 난 혀를 내둘
렀다. 그래 김희진. 넌 그래서 무서운 아이야.
"자꾸 그렇게 거슬리면 안좋아 정유연. 니가 어떤 수로 승원이랑 사귀게 됬는진 몰라도
아오..하여튼 넌 조만간 보자고."
위험부담이다. 이건 승원이라는 멋진 남자친구를 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이다.
행복이 따르는 만큼 뒤따라 오는 위험부담인 것이다.
.
.
.
"이런 씹새끼!! 손님들 기다리는 거 안보여? 이렇게 한가하게 노닥거려도돼!?"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 사이로 들려오는 중년남자의 커다란 고함이 내 시선을 낚아챘다.
험악하게 한 손을 들어올리는 그 남자의 덴박을 얻어먹으면서도 반항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남자애. 우리 또래쯤 되어보였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나보다.
잠시후 주인 아저씨의 엄청난 고함이 잦아들어가면서 나도 자연히 고개를 돌렸다.
불쌍하다. 집에서 따듯한 밥 먹으면서 공부해야 되는데 여기에 와서 저렇게
상스런 소리나 먹고.. 갑자기 내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나도 원랜 저렇게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데. 이렇게 한가하게 놀고 있다니.
"유연아. 집에 언제쯤 갈꺼야?"
"음. 한 9시엔 들어가야지."
"그래 그럼 8시에 나가자. 데려다줄꼐."
날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승원이의 모습에 아까 생각했던 것들을 금새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그 물에 뛰어들어 노는 승원일 보면서 나도 잠시 가라앉었던 기분을 버린 채
즐겁게 떠들었다.
※ 배우수업 17일째. ※
최고라는 자리는
위험부담이 가장 큰 자리이다.
언제 어디서 너와 날 힘들게할
스캔들이 터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 ※ 위 험 한 연 출 、※
조금은 마음을 졸였던 시간은 의외로 빨리 지나갔고 모두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면서 각기
다른 길로 향했다. 내 옆엔 당연히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승원이가 걷고 있었고.
그런 우리의 뒷모습을 악에 받친 눈으로 쳐다보는 김희진의 눈빛도 나는 놓치지 않았다.
후우. 걸음이 약간 무거워졌다.
왜 그런걸까. 왜 정유연 이렇게 약해져 버린걸까.
예전엔 저런 협박쯤은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 땐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망연함에 겁이 없었던 걸까. 그럼 지금은?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을 놓치게 될까봐 나답지 않게 겁이 나는 걸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야 그냥. 이것저것."
"아까부터 표정이 계속 안좋아. 무슨일 있어?"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진짜루"
"그럼 표정좀 피세요."
하얗고 얇은 손가락두개로 내 볼을 쫘악 - 늘려보이는 승원이.
그 아이의 그런 장난 덕에 나도 금새 마음이 풀리며 기분 좋은 웃음을 내 얼굴에 머물게
할 수 있었다. 1월의 추위 때문인지 하얀 승원의 얼굴이 약간은 붉어졌다.
서로 손을 잡고 주머니에 넣은 채 발을 빠르게 놀려 어느새 집앞까지 왔다.
"잘들어가 학교에서 봐."
"응. 내가 외우란거 꼭 외우고 나 갈께"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마침 울린 핸드폰을 받으며
한 손으로 내게 인사를 하곤 멀어지는 승원이.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빨리도 잘간다. 으으. 벌써 쪼끄마한 뒷모습 뿐이 안 보이네.
.
.
.
\.다음날(진행이좀빠른가요?ㅜㅜ)
누은채로 눈을 감은게 10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해가 환히 떠있다.
아침을 예쁘게 준비해 놓은 부지런한 유정이덕에 재빨리 밥을 먹고 학교로 향할 수 있었다.
골목길로 접어든 내 걸음이 점점 신이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신호등 옆에서 언제나 처럼 기다
리고 있을승원이 때문인 것 같다. 가벼운 걸음으로 신호등까지 걸어가자면 반갑게 손을 흔드
는 승원이가 보인다. 아직 잠이 덜깼는 지 약간 부어있는 눈이 정말 귀엽게 보였다.
"정유연 방금 일어났지. 얼굴 부었어."
"남말하시네. 그쪽은 눈이 부으신걸요."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툭툭 치며 밉지않은 놀림을 주고 받으면서 학교로 향했다.
교문앞에 언제나 서게시는 학주선생님에게 명찰을 안 찼다고 한소리 얻어 먹고는
둘이서 몰래 학주선생님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 후 킥킥대며 각자의 교실로
들어갔다.
"정유연 어제 행복했냐!!"
"정유연 어제 좋았었냐!!"
칠판에 낙서를 하고 있던 진영이와 소리가 분필을 칠판에 던져 부러트려가며
나에게 물었고 난 그냥 베시시 웃었다.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팔을
찰싹 때리는 소리. 저..저게. 어제 승원이 옆에선 엄청 착한척 하면서 말하더만
그나마 낳은 진영이는 말없이 분필지우개를 주먹으로 툭툭 댔고
(☜이게 과연 낳은 것일까.)
교실에 선생님이 조회하시러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들어오시자마자 선생님은 우리의 머리를 한대씩 가볍게 쥐어박고는
자리로 들여보내셨다.
"아침에 오면 책 좀 읽고. 선생님은 교무회의 땜에 다시 내려가 봐야겠다.
반장 떠드는 애들 이름 적어놔 알았지? 내가 다시 올라왔을 때
책상에 책 없는 사람은 오늘 혼날 줄 알아. 그럼 이상!"
언제나 처럼 짧은 조회로 우리에게 인기를 사는 선생님은 오늘도 역시
짧은 한마디만 남기곤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분명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 하셨지만 우리는 햇살이 내리쬐는
창문턱에 걸터 앉은 후 이번주에 있을 클럽 활동에대해서 열심히 이야길 나눴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짠 후 세부 사항을 정하려는데
' 콰앙 ㅡ - '
우리반 뒷문이 꽤나 큰 소리로 열리며. 어젯밤 속앓이를 좀 했을 김희진이
친구 두명과 함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걸어들어왔다.
이 아이의 볼 일은 눈감고도 맞출 수 있다. 역시나 곧장 내 쪽으로 걸어오는 그 아이.
겁많은 소리는 잔뜩 어깨를 움추렸고 운동을 좀 배운 진영인 당당한 표정으로
김희진을 내려 보았다. 잠깐 진영이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그 시선을 돌리는 김희진.
"아침부터 왜 이렇게 소란이야. 존나 시끄러워서 직접 여기까지 오셨다."
"그래 그럼 조용히 할테니까 다시 나갈래?"
어이없는 그 아이의 말에 내가 톡 쏘아 붙이자 기분 나쁘단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는
김희진. 그 옆에 친구들도 시각효과로 같이 출연을 해준건지. 다리를 꽤 기술있게 떨어대며
앞머리를 가끔 손으로 쓸었다.
"와.. 이년 말하는 것좀 봐라. 무서워서 살겠나. 엉? 야야. 좀 곱게 하고 댕겨라
니 땜에 내가 무서워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요."
"그런 말 들으니까 굉장히 기분이 색다르다."
"뭐!? 아오 진짜! 야 너 내가 뭘로 보이냐 어!?"
"희진아 나 배고프다. 그냥 그만하고 매점가자."
턱을 치켜든 채 한대 칠 기세로 말을 하는 김희진의 팔을 이끌며 제어 하는 친구.
눈썹을 참 멋지게도 밀었네. 눈썹이 솟아올라 하늘을 찌르겠다. 쯔쯔.
잘 좀 할것이지. 아주 실 눈썹을 만들어 놨구만 저게 언제적 유행인데.
"아우. 열받잖아."
"참어 저깟 것 땜에 뭘 그렇게 열받아 하냐. 우리 쫌 있다 언니들한테 가야되."
"저깟 년이 날 짜증나게 하니까 더 웃긴거지. 씨발. .. 넌 오늘 얘 땜에 산줄알어.
그리고 말 한개 하겠는데. 너 승원이 이용하는 거면 그냥 때려쳐 이것아.
니 존나 그러는거 내 눈에 다 보이거든. 알아 먹겠니? 그러니깐 제발 그냥 여기서 끝내라.
너 그렇게 승원이 믿고 돌아댕기다 승원이랑 깨지면 어쩌려구. 쯧쯧이다..미친."
머리에 여러개의 층을 낸 김희진이 머리를 홱 돌리며 친구들과 함꼐 향했고
그들의 꽉 쭐인 교복이 멀어질 때까지 난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또 마음이 꽉 막힌 것 처럼 답답했다. 안 이러기로 했는데 이런 거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는데
이런 말에 자꾸만 반응 하게되는 내가 나조차도 많이 원망스럽다.
"진영아.소리야."
"응 유연아 괜찮아? 저 작것들을 그냥. 함 우리도장으로 불러서 맛을 보여줘야지."
"후 오늘 왜 이렇게 아침부터 답답하냐…. 나이트나 한판 땡기러 갈까."
"정유연 이게 요즘 미쳤어. 너 공부는 완전 랄라라 한거야?"
"그냥 가끔 이럴 때 있잖아. 고3 올라가기 전에 실컷 놀고 싶을 때. 야 그르지 말구 같이가자"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소리와 진영이.
오늘 나이트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날꺼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나이트행을 선뜻 결정하고 말았다.
..
※ 배우수업 18일째. ※
최고라는 자리는
위험부담이 가장 큰 자리이다.
언제 어디서 너와 날 힘들게할
스캔들이 터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 ※ 위 험 한 연 출 、※
평소 티비에서도 자주 흘러나오던 노래가 약간 비트있는 곡으로 리믹스되어
신나게 흐르고 있었다. 벌써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는지 소리의 얼굴은
싱글 벙글이다. 평소 자주 앉던 테이블에 털썩 앉았고 익숙한 포즈로 우리 앞에
주문판을 내려 놓는 웨이터.
"500cc 3잔이랑요. 안주는. 음.. 돈까스 안주로 주세요."
진영이가 주문을 하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웨이터는
좋은 시간 보내라는 인사와 꾸벅 허리를 숙인 후 걸어갔다. 왠지 흥분되는 내 신경들 때문에
한바퀴를 쭉- 눈으로 훑었다.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하기사 이 사람들이 요일을 신경쓸까. 하지만 좋은 물은 찾기가 꽤 어려웠다.
"주문하신 것 나왔는데요."
보기에도 침이 넘어가는 노릇노릇한 돈까스 접시와 아직도 하얀 거품이 위에서
떠다니는 맥주 3잔을 놓고선 웨이터는 사라졌다. 한 잔씩 잔을 집은 후 '쨍그랑'소리와 함께
기분좋게 건배한 우리는 잔에 입을 댄 후 한 입 쭉 들이켰다.
아직도 술에 익숙해 지려면 약간 남았는지 목이 따끔거리고 속이 불편한게 영 좋지는 않다.
"으으.. 왜 이렇게 눈에 띄이는 애가 없냐. 체 재미없게."
"어이 난 임자있다구. 딴 생각할 생각은 하지마."
"뭐야 자기가 오자고 해놓곤. 야 이런데 와서 가끔 즐겨도 죄되는 거 없네요!"
기분좋게 웃으면서 오늘따라 흐린 물에 약간 섭섭한 마음을 감추며
(☜이 여자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까많게 잊고 있다.) 목을 축이는데
그때 였다.
내가 돈까스에 손을 가져가려 했을 때.
엄청난 사람들의 환호성이 내 손을 공중에서 정지하게 만들었다.
자연히 고개를 돌렸다. 환호소리의 근원지는 다름아닌 스테이지 였다.
누군가가 꽤나 멋진 춤을 선보였나보다. 물끄러미 그 곳을 응시했다.
내 시선을 가로막고 있던 덩치큰 사람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 남자가 내 눈에 띄였다.
"와아!! 야 저 사람 죽인다!! 그지!?"
비트 있는 노래에 맞추어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댄스가수 저리가라 한
춤을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는 사람.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
소리의 감탄 어린 환호성과 진영이 조차도 흥미 있는 듯 맥주잔에서 입을 때며
그 사람을 계속 응시했다.
"우와!!! 멋있다!! 야야!! 나이도 우리랑 비슷해보이지!?"
마침내 춤을 마친 건지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씩 웃는 사람. 소리는 거의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동작을 멈추고 있어서인지. 그 사람의 얼굴을 이제야 볼 수 있었다.
확실히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한번 본 사람이다. 그것도 최근에.
누구일까 생각하며 그 사람을 더 뚫어지게 응시했다. 내 시선을 느낀 걸까
그 사람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
"아!."
작은 탄성이 내 입을 통해 나왔다. 어제 그 아이였다. 호프집에서
머리를 맞고 있었던. 주인아저씨의 호통을 그냥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아이였다!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그럼 오늘은 왜 아르바이트를 가지 않는거지?
저 정도로 춤을 출 줄 안다면 거리 댄스팀에도 들어서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을 텐데.
여러가지 생각에 몰두하느랴 난 그 아이가 날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것 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유연아."
잔뜩 긴장한 소리의 음성이 내 귀에 들렸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난
내 앞에 서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몸을 움직여서 인지
얼굴 곳곳에 맺힌 땀방울. 샛노란 머리가 그다지 단정한 사람은 아니란걸 말해주는 듯 싶었
다. 검은색 스타일의 옷이 멋지게 소화되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어. 아가씨. 왜 이렇게 나한테 눈을 못떼."
"어? 내가 언제?"
"다 봤습니다."
씽긋 웃는 그 사람에게 완전히 케이오 된 느낌이였다. 정신이 없는지 두근대려는 심장.
애써 평소의 페이스를 찾은 후 그 사람을 무시했다. 그러자 내 옆에 풀썩 앉는 그.
"뭐..뭐야."
"내 얼굴 값은 받아야 겠는데."
"하..차. 웃긴다 너."
"내가 몇살인줄 알고 그렇게 말을 놓으시는 건데요."
"기껏해야 내 나이겠지. 너 몇인데?"
"올해 19되는데."
"것봐. 나랑 동갑이면서."
동갑이란 거에 좀 놀란 듯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어느새 다시 여유있는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그사람.
"그럼 학교는 어딘데?"
"만년."
"킥..우리는 백년이다."
푸..푸하. 잠시 뻥졌다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깐엔 웃기라고 한말인지
그 녀석도 날 따라 웃었고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소리와 진영이에게도
자신의 친구들과 합석하지 않겠냐는 말을 꺼내 들뜨게 만들었다.
"어? 야야. 나 합석 싫어. 안해. 나 남자친구 있어."
"에. 상관없어 뭐 한번 노는거 가지고 그러냐. 재미없게"
한번? 그래 한번 쯤은 괜찮겠지. 아아. 안돼. 승원이가 알면 많이 속상해 할텐데
내가 망설이는 사이 벌써 그 놈의 친구 둘은 우리 앞에 자리를 트고 앉았고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고 벌써 소리와 진영인 그 아이들과 엄청나게 친해져 있었다.
"넌 이름이 뭐냐."
"정유연인데."
"어? 어디서 들어봤는데. 쨌든 난 주민혁이야."
"응 그래. 근데 너 오늘은 아르바이트 안가?"
"무슨말?"
"아..나 어제 너 아르바이트 하는 거 봤거든..니가 아닌가? 하여튼 아저씨한테 혼나고
있었는데. 너랑 무지 닮았어."
"아. 나 맞어"
"오늘은 안가?"
"어젠 심심해서 간거야."
여유있는 웃음과 함께 맥주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민혁? 이라는 애.
죄책감에 조금 마음이 무거운 나도 훌훌 털어버리려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 배우수업 19일째. ※
최고라는 자리는
위험부담이 가장 큰 자리이다.
언제 어디서 너와 날 힘들게할
스캔들이 터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 ※ 위 험 한 연 출 、※
"만년이랬지? 그럼 지훈이 알겠네. 니네 학년."
"어? 어. 나 그런애 모르는데."
알 리가 없지. 아니 그런애가 만년에 다니고 있는 지 조차 모르는 나다.
내 학교는 만년 고등학교가 아닌. 전민 고등학교고 난 저 민혁이란 녀석에게
거짓말을 한꼴이니. 그녀석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건 당연했다.
"지훈이도 몰라? 그럴리가 없는데. 너 진짜 만년고맞어?"
"아으. 배고프다."
어색하게 말을 돌리며 앞에있던 돈까스 한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역시 최고의 맛이 내 입을 자극했고 나는 쉴새 없이 오물거리며 꽤나 컸던 그 조각을
꿀떡 넘겼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주민혁.
아무래도 내가 만년이 아닌 사실을 어느정도 눈치 깠나보다. 으 할 수 없다
학교 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말돌려야지.
말을 피하기 위해서 계속 들이마시던 맥주때문에 난 점점 술기운이 돌기시작했다.
얼굴은 점점 달아오르고 혀는꼬여가고, 몸에 열마저 슬슬 나는 이 상황.
"..후아. 소리야 나 술 받았다. 에씨 어지러워.."
"어지러우면 기대있어."
흐느적 대는 내 머리를 자기 어깨에 턱 받히는 이사람. 우.. 누구지?
주민혁이구나!!. 이런이런.. 이러면 안되는데. 승원이가 알면 난 죽는데.
에이씨.!
힘을 내서 고개를 들어올렸건만 한손으로 가볍게 다시 뉘여놓는 저 망할놈.
"씨! 죽을라고!..."
입담좋은 놈의 친구한명과 소리가 장황히 펼쳐놓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냥 쿡쿡 대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물론 머리는 아까 그곳에다 그대로 둔채.
누군가 날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는 계속 누운 채 눈만 돌려 그 시선을 찾았다.
"에씨. 나 못찾겠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몸을 일으켰다. 풀리는 다리를 고정시키고
밖으로 나온 후. 쌀쌀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어느정도 정신이 깨이는 느낌이였다.
"유연아 혼자 갈 수 있어?"
"그으럼. 나 갈꼐 빠이!"
혼자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아무래도 안심이 안되는 듯. 소리랑 진영인
내 양쪽에 붙어섰고 오늘 만난 애들에게 힘차게 인사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정유연."
"엉~~."
"너 오늘일 승원이가 알면 어쩌냐."
"에비..상관없어. 불안한 소리 하지마."
지끈대는 머리와 함꼐 집에 도착한 덕에 난 들어오자마자
내 방으로 가 털썩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졸립다.. 으으.
.
.
.
"언니!!"
"아..아.유정이"
"빨랑 일어나!! 학교 안갈꺼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날 일으키는 유정이. 짜증이 솟구친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한번 휘젓고는 무릎에 손을 대고 몸을 일으켜 교복으로 갈아입기시작했다.
아..아직도 몸에 술냄새가 다 가시질 않았네.
"언니 지금 늦은거 몰라??"
유정이의 째지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화장실에 들어와 샤워기를 틀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에 잠시 몸을 맡기고 있자니, 기분이 한결 업되는 것 같았다.
과일향 샤워 용구들로 몸에 베인 냄새를 어느정도 제거한 후.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왔다.
교복 와이셔츠를 갈아입으려는 찰나.
저번에 승원이가 선물해준 향수가 눈에 띄었다. 그래. 이것까지 뿌리면 확실할꺼야.
"후와.."
기분좋은 향이 금새 내 몸을 감쌋다. 그렇게 진하지도 않으면서 옅게 베이는 향이
내 기분을 금새 싱글벙글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후 가방을 들고 조금 늦은 등교길을 걸었다.
.
.
"왜 이렇게 늦었어 오늘."
"아. 샤워하느랴고. 으이구. 기다렸어? 그냥 먼저가지."
추운 날씨에 얼어버린 승원이 손을 감싸쥐고 걸음을 옮겼다.
"머리 물기 묻은 채로 나오면 어떡하냐 븅. 너 이제 감기 걸린다."
"머리까지 말리고 나오면 삐졌을꺼면서."
"남자는 안삐져!"
"넌 근데 왜 삐지냐!"
보통 커플들은 참 분위기 있는 등교길을 걸을테지만 우리는 언제나
가벼운 입씨름으로 서로를 괴롭히면서 등교를 한다. 아니 해야만한다.
※ 배우수업 20일째. ※
최고라는 자리는
위험부담이 가장 큰 자리이다.
언제 어디서 너와 날 힘들게할
스캔들이 터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 ※ 위 험 한 연 출 、※
"들키진 않았어? 암말두 안해?"
"응. 모르나봐. 히히 잘됬다."
"다행이다. 승원이 알면 난리 났을꺼야."
안심의 숨을 내어쉬며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는 소리. 나도 남몰래 졸였던 마음을
풀며 가슴을 안정시켰다. 흐우으..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즐겁게 놀고 있는 승원일 보자니 어제의 그 민혁이란 애가 자꾸만 생각나
날 곤란스레 만들었다. 놀다가도 표정이 딱딱히 굳고는 하니까.
도데체 그 아이가 뭐길래! 정유연 니가 왜!
"너 왜 그래?"
"어? 내가 뭘."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워. 안 좋은일 있었어?"
"아니. 후우. 별일 아니야."
그래도 자꾸만 내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 지 소리는 기분 풀 때는 매점 가는게
제일 좋다면서 내 손을 잡고는 이끌었다. 도데체 그 이론은 어디서 나온거니
좋아하는 과자 이름을 하나하나 외치며 밝은 얼굴로 걷는 아이에게 뭐라
하지는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그냥 나까지 이끌려갔다.
"바나나킥 하나랑 알새우칩 하나요."
커다란 과자 봉지를 두 팔에 껴앉은 채. 뒤뚱걸음으로 소리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과자봉지를 힘차게 뜯으며 과자 하나를 입에 덜썩 물었다.
나도 꽤나 달은 노란 바나나킥 한개를 입에 물고 소리랑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웃으며 놀고 있는데. 놀란 눈의 진영이가 내 어깨를 마구 흔든다.
"어? 어. 진영아 이거 먹어."
"야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응? 무슨?"
"박승원이랑 김희진이랑 둘이 친했나? 아까 같이 강당쪽으로 가던데."
뭐?
진영이의 마지막 말은 나의 머리를 멍하게 했고. 과자를 하나 들고 있던
내 손의 힘을 빼앗아 가버렸다. 힘 없이 다시 봉지 안으로 떨어진 과자.
"진영아 진짜였어? 승원이랑 김희진?"
"응. 김희진은 좀 기분 좋아보였고 승원이는 좀 어두워 보이더라. 왠진 나도
잘 모르겠고. 여튼 둘이 같이 걸어가고 있었어."
"아..응. 고마워."
김희진 기분이 좋아보였다고..
순간 불안한 생각이 내 머리를 엄습했다. 설마 아니겠지.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려 내 자신을 타일러봐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콩닥대는 내 심장.
"유연아."
"김희진이 승원이한테 말하는거 아닌가? 아으.. 어떡해."
저 말을 내 뱉어 놓고는 문득 떠오른 생각때문에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아까 느꼈던
불안함과는 조금 다르게 가슴이 아팠다.
또 한번 더. 다시 또.
그 아이에게 실망이란 걸 선물했다. 얼마나 내가 지금 원망스러울까.
급속도로 미워졌다. 생각 짧게 섣불리 행동한 내가 갑자기 미워졌다.
"유연아 정 그러면. 니가 있다가 쉬는 시간에 가서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못하겠어..겁나."
한심할 정도의 대답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고 난 정말로 그날 오후.
단 한번도 승원일 찾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바라고 있을텐데
내가 뭔저 와서 사과해주기를 승원인 바라고 있을텐데.
혹시 나에게 화를 내며 몰아붙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에. 너무 터무니 없는 생각이지만
그 생각이 자꾸 날 잡아두기 때문에. 난 그 자리에서 맴돌 뿐 그 아이에게 가지를 못했다.
.
.
.
.
꽤나 길게 느껴진 그날 하루의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고. 교탁 앞에선 선생님이
종례를 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또 한번 복잡해 졌다.
이따가 승원이랑 같이 집에 가는 건가?.
어제 처럼 승원이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난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럼 이상."
종례를 끝내신 선생님이 막대기로 한번 교탁을 치며 반장을 일으켰다.
평소 같으면 반가웠을 이 순간이 지금은 조금만 뒤로 물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아이들은 와아- 하며 기쁜 함성을 내 뱉었고
나도 무거운 마음으로 가방을 챙겼다.
"유연아.. 승원이 있어. 있어."
"와악.. 진영아 나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얼른 가서 옆에 붙어."
"팍 밀쳐내면? 응? 막 나한테 뭐라고 하면 어쩌지?"
"나 불러. 어쨋든 빨랑 가."
교문에 기대 있는 승원이 옆에 뻘쭘히 섰다. 정말 뻘쭘했다.
승원이가 바로 출발하지 않고 조금 시간을 둔채 가만히 있다가 출발했으니.
우리 사이엔 펭귄들이 구구구구. 돌아다니는 듯 한 침묵만 멤돌았고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터벅터벅 걷다가. 우리 집 골목을 돌아갈 때 쯔음
용기를 끌어모은 내가 승원이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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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귀여운오리♡ (nrz6-two@hanmail.net)
팬까페: http://cafe.daum.net/DUCKEGG
★ 사랑을 믿되 그 사랑에 의지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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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오리♡] ※ 위 험 한 연 출 、※ ※ (부제: 배우수업.) 11 - 20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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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2.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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