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펀드 붐이 일까?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반 토막 났던 펀드 수익률이 점차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펀드도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발을 빼면서 펀드시장이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은 아니다. 더구나 올해 내내 코스피지수가 1500~1800 선의 박스권에 갇혀 있는 통에 펀드 수익률이 지지부진해 주식펀드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남유럽 재정위기와 미국발 더블 딥,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시중의 뭉칫돈은 예금이나 채권, MMF(머니마켓펀드)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주식투자 상품 중에서도 주식펀드보다 종목을 압축해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랩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게 다 펀드 탓, 미래에셋 탓? = 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따르면 주식펀드에서 대량 환매가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 올 8월 말까지 1년간 국내외 주식펀드에서 무려 30조원 가까이 빠져나갔다. 이 중 14조4863억원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펀드에서 나왔다. 미래에셋이 우리나라 전체 주식펀드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수준이지만 대량 환매에서 차지한 비중은 절반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의 주식펀드가 전체 주식펀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40%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30%가량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국내 펀드투자 인구는 2007년 증시 초호황과 더불어 2차 펀드 붐이 일어나면서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다.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 등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간판 펀드가 고수익을 올리면서 줄을 서서 펀드에 가입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민은행과 손잡으면서 은행 창구에서도 펀드를 팔았다.
문제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코스피지수가 1700 선을 넘었을 때 투자를 시작했다는 것. 2007년 코스피지수 고점 이후 140조원까지 늘어났던 국내 주식펀드 자산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8조원으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반 토막 났다. 펀드 투자자의 절반 이상은 별다른 수익도 얻지 못한 채 투자 자산이 반 토막 나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굵고 짧은 한국 펀드의 역사 = 우리나라의 펀드 역사는 굵고 짧다. 한국 펀드의 역사는 40년 됐다. 지금까지 운용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펀드는 하나UBS자산운용의 안정성장 1호다. 이 펀드는 1960년대 후반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 후 한국투자개발공사가 설립되면서 1970년 5월 20일 탄생했다.
이 펀드를 시작으로 한국투자신탁, 국민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등 ‘바이코리아’로 대변되던 3대 투신의 시대가 막을 올리면서 펀드시장은 1차 펀드 붐을 맞이했다. 하지만 현재의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2004년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펀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한국 증시가 2007년 사상 최고점인 코스피지수 2000 선을 넘어서기까지 대대적인 2차 펀드 붐이 일어났다. 두 가구 가운데 한 가구가 펀드를 평균 3개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개인의 삶에 펀드가 급격히 스며들었다. 길게는 100년의 역사를 두고 서서히 성장한 구미의 펀드와 대조적이다.
◇제3의 펀드 붐 가능할까? = 미국발 더블 딥, 중국의 경기 둔화 등 우려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도 지수가 꾸준히 오르면서 투자자의 환매도 이어졌지만 차츰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식펀드 수익률이 신통치 않아 펀드에서 나간 돈은 예금이나 채권에 머물러 있다. 주식투자 상품 가운데서는 주식펀드보다 종목을 압축해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랩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구재상 사장이 부르는 제3의 펀드 붐 희망가
미래에셋 수익률 회복으로 기대감
글로벌 금융위기 때 반 토막 악몽 이겨낼 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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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랩어카운트 계약자산 규모는 8월에 사실상 30조원을 넘어 7개월 새 10조원이나 불어났다. 특히 자문사가 추천하는 몇몇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자문형 랩 상품 계약액은 지난해 3월 284억원에서 8월에 2조4289억원으로 무려 85배나 폭증했다. 자문형 랩은 투자 하한선이 기존 수억원에서 올 들어 5000만원으로 하향 조정된 가운데 박스권 장세에서 3개월 만에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뚜렷한 주도 종목이 없는 순환매 장세가 지속되면서 코스피지수 수익률을 밑돌고 있다. 더구나 랩의 편입종목 수는 주식형 펀드의 4분의 1 수준이고, 공시를 비롯한 투자자 보호제도 역시 정립돼 돼 있지 않은 고위험 상품이다.
자산 증식에서 금융상품은 필수적 도구다. 예전 같은 고금리는 기대하기 어려운 가운데 고령화 시대를 맞아 더 이상 예금 금리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불패 신화를 자랑하던 부동산도 재테크 수단으로 매력이 확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대다수 투자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국 펀드시장은 조정기를 겪고 있다. 조정기를 얼마나 잘 거치느냐, 조정 과정에서 얼마나 투자자 보호장치를 제대로 세우고 대비하느냐에 따라 제3의 펀드 붐을 맞을 수도, 아니면 옛 영화를 추억하는 그저 그런 상품으로 남을지도 모를 갈림길에 서 있다.
변화의 조짐은 있다. 국내 펀드 투자자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의 수익률이 조금씩 오르고 있어 제3의 펀드 붐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2월까지 꼴찌 수준이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국내 일반주식형 펀드의 평균수익률은 최근 3개월간 6.03%로 설정액 1000억원이 넘는 운용사 중 3위로 올라섰다. 6개월 수익률 기준으로는 12.24%로 5위를 차지했다.
우리투자증권 문수현 펀드애널리스트는 “펀드에 실망해 자문사 랩으로 이동했다 하더라도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는 다시 펀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펀드는 적어도 3년 이상 장기적으로 투자해 벤치 마크 대비 초과 성과를 추구하는 상품인 반면 랩은 단기적으로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펀드 전문가는 “펀드가 자문사 랩과 경쟁하려면 투자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벤치 마크 대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얼마나 차별화된 포트폴리오를 꾸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