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 층층 넘쳐나는 차향…하동 차마을과 섬진강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한잔의 차를 달일 수 있는 여자는 행복하다/첫 햇살이 들어와/마루 끝에서 아른대는 청명한 아침/무쇠 주전자 속에서/낮은 음성으로 끓고 있는 물소리와/반짝이는 다기 부딪는 소리를/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는/여자는 행복하다…’(김혜숙의 ‘차를 권하며’)





햇차의 계절이다. 옛날 찻잔을 꺼내 명주 수건으로 곱게 닦아 그리운 사람들과 햇차 한 잔 나눴으면 좋겠다. 전쟁이다 괴질이다 어수선한 세상. 멍석에다 막 덖어 온기가 남은 햇차를 우려내고, 섬진강과 지리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는 여유를 한 번 가져보자.


차의 고향은 지리산 자락이다. 섬진강이 지리산을 안고 도는 하동은 요즘 햇차 향기가 그윽하다. 빗방울 한 줄기에 보리이삭이 여무는 곡우절(4월20일)을 지나면서 다원마다 햇차 만들기가 한창이다.


찻집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화개골. 벚꽃 소식이 엊그제 같은데 나무마다 초록 잎새가 무성하다. 꽃 터널은 이제 숲 터널이 됐다. 승용차로 드나들기보다 걷는 것이 좋은 봄길. 한걸음에 산바람을 들이켜고, 다시 한걸음은 새소리로 귀를 씻는다.


산비탈이 날을 세우며 깊어지는 쌍계사길. 벼랑밭에 아낙네들이 촘촘히 들어앉아 찻잎을 따고 있다. 밤나무와 오리나무가 중간중간 박힌 비탈을 따라 차밭이 이리저리 물결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차밭의 곡선. 하동의 차밭은 참 수수하다. 보성의 다원처럼 광활하거나 잘 꾸며져 있지 않다. 여기 한줌 저기 한줌씩 뿌려진 차밭이 이채롭다. 어찌보면 키작은 사철나무를 잘 다듬어 놓은 것 같다.


군청의 자료에 따르면 하동의 차밭은 600ha. 1백80만평이나 되는 엄청난 넓이의 땅이다. 옛날엔 칠불사나 쌍계사 아래에만 야생차밭이 있었으나 요즘은 옛날 보리밭 고랑까지 차밭으로 변했다. 섬진강변 곳곳에서 쉽게 차밭을 볼 수 있다.


하동에는 차를 덖어 파는 찻집만도 20여곳이 있다. 등록된 제다업체는 30여곳. 수제로 차를 만드는 곳까지 합하면 50곳이 넘는다. 군에서는 올해 차 판매액을 2백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집집마다 밤새 불을 밝히고 멍석에다 햇차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남정네가 목장갑을 세겹 네겹 끼고 무쇠솥에 찻잎을 덖어놓으면 아낙네와 아이들은 졸린 눈으로 찻잎을 비벼댄다. 덖고 비비고, 덖고 비비고…. 그렇게 햇차가 나온다.


“지난해에 비해선 올해는 10일 이상 차 수확이 늦었지만 원래 이맘때쯤 차가 시작됩니다. 벌써 20년 넘게 차를 만들어 왔는데 해마다 조금씩 차맛이 다르고, 느낌도 달라요. 그만큼 오묘합니다”





한밤중 전등불을 켜놓고 차를 덖고 있던 ‘만수제다’ 홍만수씨(38) 역시 요즘 가마솥에서 눈도 떼지도 못한 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동네가 찻집 동네로 바뀐 것도 20여년. 그때까지는 쌍계사 스님들에게서나 햇차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었다. 다원이란 간판을 내건 찻집도 손에 꼽을 정도. 199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찻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34면


화개골은 찻집 어디를 가도 차 얘기로 밤을 새울 만큼 ‘차의 다인’들이 많다. 해마다 이맘때면 찻집을 순례하며 집집마다 다른 햇차 맛을 느끼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홍씨의 ‘만수제다’를 비롯해 대대로 차를 만들면서 차박물관을 연 강동오씨의 ‘매암제다’, 한자리에서 20년 넘게 차를 만들어온 이광섭씨의 ‘화개다원’, 산악인 출신으로 아버지와 함께 차를 끓이기 시작한 조성기씨의 ‘무향’, 조씨의 조카인 조윤석씨의 ‘조태연가’ 등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찻집들. 마지막 덖음을 숯불로 하는 사람, 한지를 깔고 비비는 사람, 가마솥으로 덖는 사람 등 다인들의 비법도 제각각이다.


요즘 지리산은 다향만 좋은 것이 아니다. 4월 중순쯤 하동포구 인근부터 재첩잡기가 시작됐다. 요즘은 섬진강 곳곳에서 아낙네들이 도수망을 들고 모래바닥을 훑는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도수망은 모래를 훌훌 털어내면 재첩만 남게 된다.


봄재첩은 여름재첩보다 값이 비싸다. 30㎏ 한가마니에 수협 수매가가 12만원 정도. 섬진강변 마을의 700여 가구가 재첩을 잡는다. 따라서 옛날에는 한사람이 150㎏까지도 올렸는데 요즘은 30㎏ 잡기도 어렵다고 한다. 지난해 수협 수매량은 616t, 하지만 곧바로 식당 등에 내다파는 것이 2.5~3배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재첩만으로 올리는 수익이 40억~50억원에 달한다.


꽃놀이객들이 떠난 지리산과 섬진강은 다시 아늑해졌다. 강변에는 봄비에 배꽃이 지고 있다. 밭고랑에는 자운영이 붉은 꽃을 피웠다. 맥주보리는 벌써 파랗게 자라 이삭이 팼다. 찻집 창밖으로 펼쳐지는 지리산의 신록. 은은하게 번져오는 차향이 꽃향기보다 맑고 좋다.


▲여행길잡이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하동 방면~국도 19호선~하동읍~평사리 악양 들판. 호남고속도로~전주IC~국도 17호선~전주·남원 산업화 국도~남원 춘향터널~오른쪽 고가도로~구례 방향~국도 19호선~섬진강~하동. 전주·남원간 산업도로는 교통사고가 많은 곳.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하동에 미래파크텔(055-883-1716), 월드파크(883-2022), 알프스(884-6427), 성운각(883-6302), 천마장(883-2506) 등이 있다. 구례읍과 지리산 온천 쪽에도


숙박할 곳이 많다. 하동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 쌍계사 앞


수석원 식당(883-1716)의 돌솥밥이 별미다. 돌솥밥에 나물을 넣어 비빈다.


하동 야생차 축제가 5월8일부터 11일까지 4일 동안 화개동 일대에서 열린다. 다도협회의 개막식 후 전말차시연, 기념제례, 중국 대흥포 다례 시연, 향토먹거리 음식잔치, 햇차 무료시음회, 차 사진 및 관광사진 전시회, 명차 선정과 햇차 만들기, 차잎 따기 대회, 막사발 빚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행사기간 동안 햇차를 할인 판매한다. 하동군청(055-880-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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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추천 0 조회 184 04.03.19 20: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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