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국인의 한글사랑 조선사랑
-호머 헐버트 박사의 『士民必知』를 읽고-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나는 한글공부 하기에 바쁘다. 월요일 저녁 7시 40분부터 8시 30분까지 KBS-1TV에서는 ‘우리말 겨루기’란 퀴즈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때문이다. 엄지인 아나운서의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넘치는 진행이 시청자인 나를 즐겁게 한다. 네 명 혹은 네 팀이 출전하여 정답을 맞히며 점수를 높여 가는 진행이 흥미를 끈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 국어 실력이 모자라고, 한글이 참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나는 r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누구보다도 한글을 사랑한다. 나름대로 한글 공부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우리말 겨루기’를 보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한글 공부도 끝이 없구나 싶다.
‘우리말 겨루기’에서 1등을 하면 ‘달인’에 올라 상금 3천만 원을 받는다. 3천만 원! 얼마나 큰돈인가? 그러나 매회 달인이 탄생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 ‘띄어쓰기’에서 틀려 달인의 경지에 오르는 영광을 놓친다. 한글에서는 ‘띄어쓰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훈민정음이 만들어질 때 띄어쓰기 규정도 제정되었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이란 글을 읽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띄어쓰기도없고쉼표도없고마침표도없는글을읽는것은매우불편한일입니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위의 글처럼 불편하고 답답한 문장을 쓰고 읽으면서 지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글을 보면 호머 헐버트 박사가 한글에 띄어쓰기를 도입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호머 헐버트 박사는 누구인가? 1886년(고종 23) 7월, 23세 청년 호머 헐버트는 조선 정부가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로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서양문화와 영어를 가르치려고 초청했던 분이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제물포로 들어온 호머 헐버트 박사는 조선에 머물면서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을 사랑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조선에 온 지 3년 만에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의『士民必知』란 책을 편찬했다. 이 책은 한글로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교과서였다. 이『士民必知』란 책이름을 나는 학창시절엔 들어보지 못했었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조선에 ‘한글’이란 글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자는 중국의 한자보다 더 훌륭한 글자인데 조선 사람들이 그걸 안 쓰고 한자로 쓴 책으로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스스로 조선의 말과 글을 배워서 3년만인 1889년에 ‘선비나 백성들 모두가 꼭 알아야 할 것이란 뜻의『士民必知』를 출간했던 것이다.
이 책의 초간본은 한글본이었고, 1895년에는 한문본도 출간했다. 한문본을 출간한 것은 당시 양반들에게 널리 읽히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제 말글로 배우고 가르치는 게 좋은데 조선 사람들은 쉬운 제 말글로 세상공부를 하지 않고 한문으로 쓴 책을 더 좋아하기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신식교육을 반대하는 조선 선비들과 조선 사람들을 깨우치는 걸 싫어한 일본인들의 방해로 1991년에 육영공원이 문을 닫게 되자 호머 헐버트 박사는 그해 12월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조선이 좋아서 감리교 선교사로서 1993년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는 배재학당 안에 있는 삼문출판사 책임자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士民必知』는 배재학당과 여러 학교에서 교과서로 이용했으며 일반인들도 널리 읽게 되었다.
호머 헐버트 박사가 지은 이『士民必知』는 세계지리 교과서였다. 이 책을 보면 당시 미국이 세계지리를 반드시 알아야할 것으로 여겼고, 미국이 세계지리정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말해준다.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떻게 세계 여러 지역의 특징을 가르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조선이 쇄국정책에 빠져 있는 게 답답하여 세상이 넓다는 걸 알려주고자 이 책을 썼던 것 같다.
이『士民必知』는 지구와 천문‧기상 등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과 지구총론‧인종총론 및 유럽총론 등의 개론을 붙였다. 본문에서는 유럽‧아시아‧아메리카‧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한 지역의 다양한 인문지리 내용을 서술했으며, 국가의 위치와 면적‧지형‧기후‧자원‧인구‧인종‧주요산업‧정치체제‧법률‧교육체제‧부세체제‧교통수단‧종교 등 다양한 내용을 간명하게 기술했다.
이 책은 당시 외국의 정세에 어두웠던 조선 선비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되었다. 이처럼 조선 선비들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띄워준『士民必知』를 늦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미국인 선교사일 뿐만 아니라 한글학자로서 미국에서 활용할 한글교본을 출간하는 등 많은 논문을 써서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또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었는데 이 신문은 처음으로 띄어쓰기를 실천한 한글신문이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한글의 우수성을 잘 알았던 호머 헐버트 박사는 중국인들이 어려운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채택해서 사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니, 얼마나 한글을 사랑했던 사람인가?
호머 헐버트 박사는 그의 회고록에서『士民必知』는 미국 휘태커(Whittaker) 연감, 혹은 정치가(Stateman) 연감의 축소판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세계지리교과서를 모범으로 삼아 세계 각국의 통계를 첨가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세상을 뜬 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고, 2014년 한글날에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까지 받았다.
한국을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잠들어 있다. 1999년 그의 50주기에 세워진 기념석(記念石)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더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최초로 악보로 정리했으며,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황제의 밀서를 전하려 시도했고, 헤이그 특사 파견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던 진실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었다.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칭찬했던 미국의 소설가 펄벅 여사보다 더 한글과 한국인을 사랑했던 미국인이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였다면 지나친 칭찬일까? 우리에게『士民必知』라는 귀중한 저서를 남겨준 이런 미국인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삼가 호머 헐버트 박사의 명복을 빈다.
첫댓글 어제는 외국인 여자분이 [판소리]
우리의 소리를 익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한참을 귀를 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