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옛 고향 주천리(배나드리)를 소개합니다.
연어가 자기가 태어난 어미의 강을 찾아 돌아온다는 뜻으로 '모천회귀(母川回歸)'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향이나 옛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일 것입니다.
저도 나이 50이 넘어 “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이 되어 고향사랑을 느끼며 많은 고향 선후배님들을 만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임사랑 카페에 나 태어난 자란 나의 옛 고향 “주천리(배나드리)”를 한 번 소개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고향을 떠난 11살 어린 저의 기억으로 고향 마을의 역사와 인물을 기술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주천리에서 더 오랜 세월 살았고, 저보다 더 많이 배우고 박식한 학식을 갖춘 선배님 중 어느 분이 우리 마을을 소개해 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렇질 못해 제가 한 번 소개해 보기로 하고 이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글을 올리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저에게 고향은 단순히 태어나고 자라난 곳을 뛰어넘어 저를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한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고,
또한, 전답 팔아 손주들로 하여금 도시에 나가 공부하게 뒷바라진 해주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제가 자랑스런 저의 옛 고향 주천리(배나드리)를 소개하는 게 어쩌면 저의 소임이 아닌가 싶어 이렇게 소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주천리(배나드리) 마을이름의 유래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주천리(舟川)의 옛 이름은 “배 나들이”였습니다. 지금은 토사가 매립되어 물길이 낮아지고 교량을 가설하여 통행에 불편이 없으나 그전에는 배로 강을 건너야 소재지를 왕래할 수 있어 “배 나들이”라 하였다 합니다.
둘째, 풍수학설로는
고덕 산영에서 금당재를 돌아 횡암에서 우선용 성(城)산을 이루고 다시 좌선용으로 내려오며 4선의 청학을 이룬 반월형 산을 등지고 서쪽으로 향한 마을입니다.
마을 뒤 주봉이 성산으로 옛 마한시절부터 산등성이에 성을 쌓고 군사기지로 이용해 왔으며 성뫼로 본다 하였고, 성미산이라고 하지만 " 성(城)의 산 " 성뫼가 맞다 하였으며 성뫼에는 천년묵은 지네가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 주천리의 마을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주천리는 모종을 중심으로 크게 웃뜸(윗마을)과 아랫뜸(아랫마을)으로 나뉘고, 아랫뜸은 다시 원당골, 뒷고샅, 앞고샅으로 나뉩니다.
주요 고개로는 원당골에서 횡산쪽으로 넘어가는 큰재와 원당골에서 농원쪽으로 넘어가는 작은재, 뒷고샅에서 농원방향으로 넘어가는 반재, 그리고 앞고샅에서 덕곡방향으로 넘어가는 무너미재(물넘이재)가 있습니다. 큰재, 작은재, 반재, 무너미재 등 고개이름도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마을 전체 가구 수는 옛날에는 마을에 약 60여 호가 넘는 가구가 살았으나 근대 산업화로 많은 분들이 이농하여 현재는 약 40여 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성씨는 주로 상주이씨, 전주이씨, 서씨, 박씨, 남양홍씨, 강릉유씨 등 각 성받이가 살고 있습니다.
마을 뒷산 골짜기에 “몽득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절 주인도 바뀌고 절 이름도 “수월사”로 바뀌었습니다.
마을 분들은 생업으로는 주로 논농사와 마을 앞에 천일원예 장미 화훼유리온실이 있어 첨단시설로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주천리는 임실군에서 제일 먼저 시설채소를 재배하였던 마을로 오수면 등 각 면에 기술보급에 선구적 역할을 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화훼 주산단지로 발전가능성이 높습니다.
넷째, 제일 궁금한 사항으로 주천리(배나드리) 마을이 언제 처음으로 형성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조선 현종(1660년) 때에 장수군 산서 오산리에 살던 상산이씨 이여옥 선생의 이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합니다.
상산이씨는 상주이씨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상산이씨 후대인 이종삼 선생의 부인 여산송씨의 정녀문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상산이씨 분들이 처음 이주 해온 것이 350여 년 전쯤으로 보인답니다.
상산이씨 중에는 사선대를 소개하면서 많이 인용되는 분으로 조선 정조 때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이라는 책을 펴낸 이달효 선생(아호는 호산)께서도 상산이씨 조상입니다.
상산이씨 다음으로 어느 집안이 주천리로 이주했는지는 제가 관련 자료를 구할 수가 없어 저희 집안인 전주이씨 회안대군 족보의 가계도를 기준으로 저희 집안이 언제쯤 주천리로 이주했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저희 전주이씨 선조들은 원래 익산에 거주하셨는데 그 당시 묘자리를 잘못써서 후손들이 잇달아 재앙을 입자 저로부터 6대조 할아버지께서 상산이씨 할머니 처가인 배나드리로 이주하였답니다.
저로부터 6대조 할아버지께서 정조 정미년(1787년) 생으로 약 20세를 전후하여 배나드리로 이주하였다고 가정하면 이주시기가 약 1807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족보에 보면 6대조 조부 할머니를 “配尙州李氏原孝女(배우자는 상주이씨 이원효의 딸)”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옛날 집안 어르신들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원효 선생은 위에서 제가 말씀드린 상산이씨 호산 이달효 선생과 같은 형제지간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이처럼 저희 집안은 6대조 할아버지께서 상산이씨 할머니와 혼인함으로써 처갓집 동네인 주천리로 이주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그런 인연 때문에 그런지 저희 집안은 상산이씨 분들의 많은 배려와 도움을 받으며 배나드리에 정착한 것 같습니다.
다섯째, 이번에는 주천리(배나드리) 분들의 사회 각층에 진출한 현황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공직에 진출한 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천리 최고의 명문가인 상산이씨 출신으로 군산시 건설과장을 지내신 이호근 님과 이분 동생으로 감사원에 근무하시면서 현대판 암행어사로 명성을 날린 이석근 님 서울시에서 동장을 하시다 최근 퇴직하신 이해근 님과 현재 임실군청 기획감사실에 근무하고 있는 이숙자 님 등이 상산이씨 출신입니다.
그리고 고위 공직자로 광주지방노동청 전주지청장을 지내신 박영순 님이 계시고 박청장님 집안은 주천리 수재집안으로 아들 중 셋이나 호남인재벌판의 명문 전주고를 졸업할 정도로 수재집안입니다. 박청장님 동생으로 최근까지 관촌면장을 지내신 박성순 님이 계십니다.
옛날 분으로 임실군청에 계시던 신평서 님(관촌면향우회 신화자 이사님 부친)과 최병준 님 서울시청에 근무하다 최근 정년퇴직하신 노진환 님
현재 임실군 덕치면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경 님, 최 면장은 임실군 향우회 최성수 이사님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희 전주이씨 집안으로 현재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이문구 형님의 아들 이희철 님이 진안군청에 근무하였습니다.
다음은 경찰에 투신한 분들로는 박득수 님, 박완수 님, 유익준 님, 윤태홍 님 등이 있습니다.
이상이 주천리 출신으로 공직으로 진출하신 분들입니다.
다음은 금융계에 진출한 은행원으로는
남양홍씨 집안 출신으로 농협지점장을 지내다 퇴직한 홍규식 님 그리고 집안 동생으로 국민은행 지점장을 지내다 퇴직한 홍귀식 님과 현재 기업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홍의식 님 등 홍씨 집안에 은행원이 많았습니다.
조흥은행과 농협에 근무하셨던 이희봉 님과 김학재 님 국민은행지점장 출신으로 퇴직한 이병호 님(상산이씨) 우리은행지점장 출신으로 최근 퇴직한 이정근 님(상산이씨)
위에서 말씀드린 분들은 모두 일선에서 퇴직하시고 기업은행 홍의식 선배와 저만 현직에 근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희봉 님은 지난번 국가고시에서 자녀가 행정고시에 최종(3차)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다음 교직에 진출하신 분들로는
현재 안양에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신 이형근 님과 올 여름 모교인 전주고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신 이병춘 님은 모두 주천리의 명문가인 상산이씨 출신입니다.
이병춘 형님은 전주북중, 전주고, 서울대로 이어지는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밟은 주천리 최고의 수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학계에 진출한 분으로
노영환 형님은 미국의 명문 공과대학인 Texas A&M University 출신 전기공학박사로 현재 대학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계시며 학자들에게는 노벨상 못지않은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의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될 정도 전기공학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선정된 분입니다. 주천리 출신으로 공부를 최고로 많이 하신 분입니다.
연구소에 근무하신 분으로는
웃뜸 수재집안인 박영순 청장과 박성순 면장의 동생인 박경순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이 계십니다,
박경순 형님은 관촌중, 전주고, 서울대 출신의 수재로 과거 민주화의 투쟁길에서 직접 투옥도 되었지만, 양심수로서 소수이익이 아니라 보다 많은 다수의 이익, 공동선, 사회정의를 위해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구속된 분입니다.
그리고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 및 강화방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윤근 박사입니다. 이윤근 박사는 이형근 님과 이숙자 님의 막내 동생입니다.
끝으로 공기업 및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분들로
한국농어촌공사 정읍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병학 님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근무하고 있는 박학순 님 박학순 님도 웃뜸 수재집안인 밀양박씨 가문의 막내 동생입니다.
그리고 미원에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신 김학수 님과 삼성물산 건설사업부에 근무하다 최근에 퇴직하신 이병일 님 KT에 근무하고 있는 홍성구 님, 임실 푸르밀에 근무하는 김학주 친구,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이병주 님, 현대건설에 근무하고 있는 서기용(서준섭 님 자녀) 군 등입니다.
개인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우리나라 금형업게의 최고의 자리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현대차/기아차 등에 납품하는 김학용 님이 계십니다.
이번에는 주천리(배나드리) 마을의 모습을 보시겠습니다. (사진은 제가 2010년 어느 가을날 고향에 들려 담은 사진입니다)
【아래 그림】주천리 항공사진
왼편 주천교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면 길 양옆으로 넓은 화훼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마을 중앙 모종을 중심으로 윗쪽은 웃뜸 아래쪽은 아랫뜸으로 구성된 모습입니다.
【아래 그림】사선대 운서정에서 바라본 주천리 방향
저에게 고향은 단순히 태어나고 자라난 곳을 뛰어넘어 저를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아래 그림】주천마을로 들어서는 주천교
주천교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지난세월을 깨우쳐 줍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에는 지난 세월 고단한 삶을 묵묵히 견디며 건너간 옛 고향 분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저 이럴 적에는 섶다리가 있었습니다. 즉, 나무 잔가지 등을 이용해 만든 다리입니다.
소나무를 사용하여 먼저 알파벳 Y자 형태의 굵은 나무로 냇가에 기둥형태로 세웁니다. 그리고 그 위에 통나무를 얹고 소나무의 잔가지를 얽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놓으면 다리가 됩니다.
문제는 여름에 장마가 지면 홍수에 다리가 무너져 물길에 떠내려갑니다. 그러면 학교에 가기위해서는 사선대길로 돌아서 가야합니다. 어린 나이에는 그 길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아래 그림】꿈엔들 잊으리오
저의 고향마을 주천리(배나드리) 섬진강 푸른 물결이 푸른 산을 적시는 곳, 섬진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만나는 마을 주천리입니다.
【아래 그림】마을입구부터 온통 화훼를 재배하기 위한 비닐하우스단지입니다.
【아래 그림】주천리는 크게 웃뜸(윗마을)과 아랫뜸(아랫마을)으로 나뉩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웃뜸(윗마을)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아래 그림】사진에 보이는 곳은 아랫뜸(아랫마을)입니다. 그리고 동내 뒤로 새로 난 전주-광양 간 고속도로가 보입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에 관촌읍내의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를 바라보면서 언젠가 우리 동네 주천리 뒷산 넘어로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4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 정말로 전주-광양 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네 뒷산을 파헤치고 난 고속도로를 바라보니 국가산업 물류수송을 위한 교통인프라로서 꼭 필요한 도로겠지만 동네에 사시는 분들한테는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훼손된 뒷산을 바라보면 많이 불편해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그림】저는 아랫뜸 원당골이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저 골목에서 할머님께서 우리 손주 왔냐며 버선발로 금방이라도 달려 나오실 것만 같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립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기를 손주가 두 손 모아 기원 드리옵니다.
【아래 그림】주천리 마을 모종 관덕정(觀德亭)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射者所以觀盛德也.(사자소이관성덕야)란 예기(禮記) 사의(射義)에 나오는 말로 활 쏘는 것으로써 그 사람의 덕을 살피고 활 쏘는데 있어서 과녁을 꿰뚫는 것보다는 그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내면이 바르고 겉도 바르게 되어야 훌륭한 궁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아래 그림】수월사 (예전 몽득사)
저희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몽득사로 기억하고 있는데 현재는 수월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저 어렸을 적에 저희 외숙 한분이 이곳에서 고시공부를 한 적이 있어 가끔 외삼촌을 따라 올라와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절 앞에 서 있는 저 느티나무는 600년된 당산령 나무로 보호수랍니다. 왼쪽이 할아버지 나무이고 오른쪽이 할머니 나무랍니다.
【아래 그림】 주천리에서 덕곡마을로 넘어가는 무너미재
귀신과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하여 어릴 적에는 무서움과 공포의 고갯마루였습니다.
【아래 그림】주천리 마을 앞에 세워진 상산이씨의 효열부(孝烈婦) 및 효자(孝子)문
【아래 그림】주천리의 명문가(名文家) 상산이씨
주천리에는 여러 성씨를 가진 분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지만 그중에서 상산 이씨 분들이 가장 많이 살았습니다.
비록 조그만 시골마을이지만 저 어릴 적 기억으로는 상산이씨 가문에서 고위 공직자도 많이 배출하였고, 대한민국 최고의 상아탑인 서울대학에 두 명이나 들어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래 그림】주천리 마을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
고향을 떠날 때 이곳에서 고향집을 뒤돌아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을 고향 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래 그림】농원마을 근처 저희 큰집 선산에 조성한 선영(추모당)입니다. 저는 전주이씨 회안대군파 남창부정공 16세손입니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승자는 역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 가져갑니다. 당대의 권력과 명예는 물론, 후세의 기록까지도 다 승자가 가져갑니다.
그렇다면 패자에는 무엇이 돌아갈까요? 패자에게도 돌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과 불명예, 그리고 후대까지 이어지는 온갖 오명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희 조상이신 전주이씨 회안대군(懷安大君) 방간(芳幹) 할아버지는 이성계 태조대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다섯째 방원과 함께 개경으로 유학와 신덕왕후 강씨 밑에서 공부를 했던 인물입니다.
1차 왕자의 난 때 사이좋게 손잡고 정권을 쟁취했던 방간과 방원. 그러나 용상의 자리는 하나였습니다.
결국 방간 할아버지는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아우 방원에게 패하게 되어 역적이 됩니다.
역적인 되면 왕자도 피해갈 수 없었던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선원록(璿源錄, 왕실족보)에서 빠지는 일입니다. 역적은 아무리 일가친척이라도 역적이었습니다. 왕실족보인 선원록(璿源錄)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은 사람들은 왕족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희 조상님들은 300여 년에 걸쳐 수십 차례 선언록에 끼워달라고 끈질기게 상소를 올립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질 것 같은 상소는 우리 조상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몇 번을 쓰러져도 우리 조상님들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습니다. 조상님들에게 있어 ‘족보로의 복귀’는 이미 삶 그 자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조상님들은 ‘왕실식구’의 지위를 얻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숙종 시절이 되어 다시없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임진왜란 통에 불타버린 왕실족보들(선원록, 유부록, 종친록)을 하나로 묶어 ‘선원계보기략’이라는 통합된 족보를 만들려는 숙종 임금에게 달라붙은 것이었습니다.
숙종 임금은 3백여 년 간 끈질기게 매달린 회안대군 후손들의 저력에 감동을 받았는지 회안대군 후손들의 ‘족보로의 복귀’를 허락하게 됩니다.
2차 왕자의 난 이후 3백여 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로서 저희 조상님들은 3백년 만에 당당하게 ‘왕실가족’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주천리(배나드리) 출신 분들의 최근 근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지난 관촌면향우회행사에서 바람님께서 담은 사진을 빌어다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좌로부터 신화자/김수자/이정순/김봉규
신화자 누님은 주천리 신평서 선생님의 외동 따님입니다. 김수자 누님은 주천리 김인철 선생님의 막내 동생입니다. 이정순 누님은 저희 집안 이원구 형님의 막내 동생입니다.
【아래 그림】김인영 관촌면 향우회 감사님
주천리 출신으로 관촌의 인물 김인영 감사님은 오랜 세월 동안 재경관촌면향우회에서 사무국장, 감사 등 주요 요직을 맡으시면서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향우회를 위해 솔선수범 앞장서서 고향사랑을 몸소 실천해오신 분으로 우리 주천리의 자랑입니다
【아래 그림】관촌면장을 지내신 박성순 님 면장님 가문은 형제분들 중 세 명이 호남의 명문 전주고 출신입니다.
【아래 그림】김은철 전임 향우회장님과 신화자 누님 두 분은 친척(외사촌?) 간입니다.
【아래 그림】 신화자 누님은 공직에 계시는 남편 만나 잘 살고 계십니다.
【아래 그림】 오른쪽 유석수 형님은 일산시 안과병원에서 안경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아래 그림】 김인영 감사님과 이정순 누님
【아래 그림】 김인영 감사님과 저(이화구)입니다.
【아래 그림】 좌로부터 웃뜸 유석수 형/원당골 이화구/뒷고샅 이희진 관촌면 체육회장님
【아래 그림】 이희봉 형님 사진은 찾다보니 뒷모습 사진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번 국가고시에서 자녀가 행정고시에 최종(3차)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형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형님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뛰어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일찍 고시를 하셨어야 할 분 인데 시골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조기 취업을 하기 위하여 상업학교에 진학하여 주천리에서 처음으로 은행원이 되신 형님으로 저희가 어렸을 때는 저희 후배들에게는 희망이셨던 분입니다
【아래 그림】 맨 오른쪽 이희진 관촌면 체육회장님
【아래 그림】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뒷고샅에 살던 이희진 관촌면 체육회장님
【아래 그림】 아래 그림은 몇 년 전 어느 가을 강천산에서 담은 제 친구들입니다.
언제나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따뜻한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하는 소꿉동무들입니다.
왼쪽으로부터 이숙자/이남순/박연숙/이미숙/김학주 모두 저와 같은 관촌초등학교 49회 동창들입니다.
♬ 보고 싶은 옛친구/ 김세환 ♬
하얀 모래위에 시냇물이 흐르고 ~ 파아란 하늘 높이 흰구름이 나리네 ~ 지난 날 시냇가에 같이 놀던 친구는 ~ 냇물처럼 구름처럼 멀리 가고 없는데 ~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옛~친구 ~ ♪♬
하얀 꽃잎 따라 벌나비가 날으고 ~ 파란 잔디위엔 꽃바람이 흐르네 ~ 어디론가 멀리 가서 소식 한번 없는데 ~ 그리워서 그리워서 잊지 못할 옛~친구 ~ ♪♬
【아래 그림】 언제나 그 모습 오염되지 않고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이 맑은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친구들 왼쪽으로부터 박연숙/이숙자/이미숙/이남순
긴 인생의 여정을 살다보면 우리의 삶이란 뜻하지 않게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갈 때도 있을 것이고, 피곤한 질곡의 삶이 버거워 긴 한숨을 토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아! 행여 그런 날들이 찾아오거든 흉금을 털어 놓고 서로 이야기하며,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친구가 되자.
【아래 그림】세월에 떠밀려서 저 마다 각자의 삶을 찾아 멀리 흩어져 살지만 세월은 흘러가는 대로 흐르게 하고 앞으로는 더 늦기 전에 자주 만나자
언제나 내 마음 속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친구들
우리에겐 잘나고 못나고, 잘살고 못사는 것 같은 세속의 잣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사 아무리 고달파도 만나면 즐거운 친구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파란 마음, 하얀 마음으로 함께 했던 순수한 고향의 정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래 그림】친구 딸아이 결혼식장에서 나의 소중한 인연 관촌초등학교 49회 친구들과 함께(2014년 10월) 좌로부터 박연숙/이남순/이미숙/엄재순/김옥순/이숙자/이희환/이병학/김학주
【아래 그림】모악산 아래 찻집에서 나의 소중한 인연 관촌초등학교 49회 친구들과 함께(2014년 10월)
【아래 그림】회문산에서 나의 소중한 인연 관촌초등학교 49회 친구들과 함께(2014년 10월) 좌로부터 이남순/김옥순/엄재순/김학주/박연숙/이미숙/이병학(아래 그림 맨 오른편은 이화구)
【아래 그림】나의 소중한 인연 관촌초등학교 49회 친구들과 전주에서(2014년 10월)
【아래 그림】주천리 동네 시골 친구들과 함께 전주모임에서 (2015년 07월) 좌로부터 박연숙/이남순/이숙자/이희환/홍성우/김학주/아래그림 이화구(모자 쓴 친구)
【아래 그림】주천리 동네 시골 친구들과 함께 사선대에서(2015년 07월) 좌로부터 박연숙/이숙자/이남순/이화구
【아래 그림】주천리 동네 시골 친구들과 함께 전주모임에서(2015년 07월) 좌로부터 김학주/이숙자/홍성우/이남순/박연숙/이화구
【아래 그림】배나드리(주천리) 마을잔치에서 고향 분들과 함께 배나드리!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 켠에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르는 우리 고향입니다. 배나드리는 우리가 태아일 때 어머님의 뱃속에서 탯줄에 연결되어 세상에 태어나오기 전까지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았던 것처럼, 지금도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의 뇌리에 떠오르는 어머님의 품속과 같은 곳입니다.
【아래 그림】 저는 현재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멀리 청와대 지붕에도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다음주 12월 19일 청와대의 새 주인이 결정됩니다. 우리국민들은 18대 대선에서 평가될 지도자의 으뜸 덕목으로 ‘소통과 화합의 능력’을 꼽습니다.
이 시대의 국민들은 온갖 이해관계 속에서 타협과 절충을 통해 공동체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정치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저는 스물이라는 젊은 날에 서울로 올라왔으니 30년 이상을 서울시민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아래 그림】제2의 고향 서울
처음에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낯설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적응하며 살다보니 서울은 부족한 저에게 많은 꿈과 희망을 주었고 제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어준 것 같아 저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그림】눈 내린 삼각산을 바라보며 새해의 희망을 빌어봅니다.
비록 날씨는 쌀쌀하지만 마음만은 훈훈하게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게 마지막 12월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神이 겨울을 만든 건 사랑의 온기를 서로 나누면서 따뜻하게 지내라는 의미랍니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따뜻한 고향 鄕友이길 빌어봅니다
【주천리 소개를 마치며】
우리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자라나 그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고향 언덕에 묻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나이와 함께 깊어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알 수 있을까 싶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면 저 태어난 언덕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 하지 않습니까.
이렇듯 고향을 떠나 세파에 부딪치며 살아 온 사람일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2012년 한 해도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이제 2013년 새해의 출발시각도 보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쪼록 남은 기간 2012년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한해의 끝에 서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동안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잠시 접고 비움의 마음으로 계사년(癸巳年)을 맞이하기 바랍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제는 그리워지는 2012년을 뒤로하고 설렘과 기대로 맞이할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만사형통(萬事亨通)의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천리(배나들이) 오천 양반 둘째 손주 이화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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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향은 어머니 품속같은 곳이지요. 덕분에 고향풍경 잘보고 갑니다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소개 글과 사진이 한 권의 책을 보는 듯 일목요연합니다.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물망초님,주천리 소개의 글 아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일목요연한 전개와 빼어난 문장력,마을의 역사.인물소개,문장매너
구사력 참 대단하시고 마을의 인물들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네요.
지난날 산님과 함께 북한산 등산길 함께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올해는 시간이 허락치 않았는데 내년에는 꼭 산행 한번 같이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년에는 산행에서 한 번 뵐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망초님~ 그간 간간히 들러서 이런저런 소식을 접하곤 했는데 오늘은 참으로 반가운 향우를 만난 것 같습니다.여러 이야기가 있고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 주천리 배나드리..나고 살고 떠나고 돌아오고..모천회귀,수구초심..간략이나마 농촌 amenity가 숨 쉬는 주천마을 소개글 잘 읽고 갑니다.
쎈강 선생님!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쎈강이시면 “La Seine”를 의미하는 것인가요? 왠지 멀리 이국에 계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고향 주천리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고향의 선 후배님들의 근황을 일목묘연하게 잘 정리하여 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천리 출신의 선후배님들의 상봉을 기원하면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제가 배나드리를 소개한답시고 올리긴 올렸는데 제대로 소개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11살 어린나이에 고향을 떠난 저희 흐린 기억으로 주천리의 모든 것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선배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배나들이에 대한 자상한 소식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7.gif)
계 박사마을 못지않게 훌륭한 마을임을 이제서야 알게 됐습니다. ![태극기](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16.gif)
![만세](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4.gif)
![태극기](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16.gif)
![파이팅](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6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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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배나들이(주천리)
장미꽃님! 정성스런 댓글 감사하고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이화구님의 가계도와 배나들이의 역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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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느낌받고 갑니다.![굽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0724/texticon_81.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아하
내년에도 상큼한 소식으로 가득 메우시길 바라며 건강하십시요..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Wishing You a Happy & Wonderful New Year!!!
이웃 마을 이라서 더욱 친근감이드네요~~~~~~~~~~~````
지구조각가님! 정성스런 댓글 감사하고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같은마을에서 한해에 같이 태어난 고향친구로써 어떤 댓글을 올릴까 많이 망설여 지는 군요...
학식 매너 모든면에 완벽하게 출충하여 넘넘 자랑스럽고 ....
주천리 내고향소개를위해 많은 수고에 감사감사...덕분에 작고 작은 내 어께까지 으쓱해지네여...
내~~친구 멋 쪄 여~~~~
친구! 다녀가셨는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금년 한해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게.
늦게나마 올려봅니다 우리친인척 이화구 님 아니동상님 너무쁘듯하고 이렇게 기분이 좋을수가없네요 한글 한글정성을넣어 정말감명깊게 보았어요 애많이썼어요 건갛하고 화구님 화이팅👌💖
누님! 반갑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시면 관촌선후회에 한번 나오세요 그러면 동네 분들 뵐 수 있어요 동생 올림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