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
(앙코르 유적 주요 사원 설명)
주요 사원 설명 관련 내용은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서규석 지음, 리북, 2003년)의 본문 일부와 부록 부분을 주로 참조한 것이다.
▣ 앙코르 왓(앙코르 와트, Angkor Wat)
앙코르 시대의 역사적 자료는 산스크리트어나 고대 크메르어, 소승불교의 경전을 기록하는데 사용된 팔리 (pali)어로 비문에 새겨저 있으나 발굴된 자료가 많지 않고 기록된 내용 또한 부분적이고 단편적이며 한정적 인 것들인 데다 지배층에 국한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자료적 한계 속에서도 숲속에 잠자던 앙코르왓 을 세계 속에 알린 것은 18세기 이후 동양문화를 탐험하려는 프랑스의 동양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프랑 스의 동양학자 1세대의 선구자인 아벨 레뮈사(Abel Remusat)는 왕립도서관에서 중국 관련 목록을 편찬하면 서 크메르의 고대사 연구에 중용한 단서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주달관의 견문록 <진랍풍토기>였다. 그 는 이 기록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는데 초창기 동양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가치를 제공했다. 이후 폴 펠리 오, 조르쥬 세데스가 후속 연구를 이어받아 캄보디아사 연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앙코르 왓(Angkor Wat, 맞춤법 표기상 왕코르 와트가 정확하나 이곳에서는 앙코르 왓이라고 표기함)은 수리 야바르만 2세(1113-1150)가 비슈누신에게 바치기 위해 지은 사원이며 그가 죽은 후에도 부분적으로 부조가 조각 되는 등 37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 건축되었다. 앙코르 왓은 남북의 길이가 1.3km, 동서 1.5km에 이를 만큼 광대한 피라미드형 사원이며 개방형으로 건축되어 좌우 대칭미와 뛰어난 시각성을 자랑한다. 출입구가 서쪽을 향해 있고 건축의 중심축이 서-동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앙코르 왓은 중앙에 있는 신전을 세 겹의 회랑(回廊)이 감싸고 있으며 바깥쪽에는 주벽(周壁)을 만들고 그 외부에 저수지(해자,垓字)를 배치했다. 또 사원 안에 40m의 작은 연못을 남쪽과 북쪽에 한 개씩 만들고, 주 벽을 4.5m의 높이로 쌓아올려 사원을 속세와 구분 짓는 공간 개념을 반영했다. 저수지는 대양을 뜻하고, 중 앙의 신전은 신왕(神王)의 권위를 상징한다.
앙코르 왓은 사면(四面)에 출입문이 있다. 출입문은 주벽의 동, 남, 북에 각각 하나씩 있으며 정문의 서쪽에 는 다섯 개나 된다. 서쪽 정문의 출입구 가운데 두 개는 코끼리 부대와 기마 부대인 주력군이 출입할 수 있 도록 군사용으로 활용되었으며, 나머지 세 개는 바라문을 비롯한 출입자들이 사용했다. 앙코르 왓은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사원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앙코르 왓이 신들을 위한 사원인지, 왕의 장제전인지 건축용도를 둘러싸고 학자들간에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캄보디아 의 전설에 의하면 앙코르 왓은 원래 왕궁이었으며, 왕의 사후에는 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르쥬 세데스는 앙코르 왓의 성격에 대해서 비뉴수신에게 바쳐진 신전이었으나 수리야바르만왕의 사후에는 왕의 묘가 되었 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설에 의하면 앙코르 유적 사원의 대부분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데 반해, 앙코르 왓 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 그 이유로 묘지라는 설도 있다.
앙코르 왓의 회랑은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중앙의 탑을 기준으로 장방형 형태에 세겹으로 둘러쌓여 있다. 중앙의 첨탑이 있는 회랑을 제1회랑, 가운데 제2층의 회랑을 제2회랑, 바깥에 있는 회랑을 제3회랑이라고 한다. 물론 세 개의 회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시각성과 회화성을 자랑하는 것은 제3회랑이다. 참고적으로 앙 코르 왓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바깥을 제1회랑, 안쪽을 제3회랑이라고 부르고 있다(서규석씨는 만다라의 원리상 이를 반대로 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3회랑의 부조 가운데 주요 장면은 대략 열 개 정도이다. 제3회랑을 田 형태로 분할하고 이를 서쪽 정면에 서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쿠루평원의 전투(서쪽벽 남측문), (2) 시바신(남서쪽 모 서리), (3) 수리야바르만왕의 행진(남쪽벽 서측면), (4) 천국과 지옥(남쪽벽 동측면), (5) 유유바다 젓기(乳海攪拌, 동쪽벽 남측면), (6) 비슈누신과 아수라(동쪽벽 북측면), (7) 크리슈나와 아수라인 바나의 전투(북쪽벽 동측면), (8) 21명의 신과 21명읭 아수라(북쪽벽 남측면), (9) 비슈누신(동서쪽 모서리), (10) 랑카의 전투(서 쪽벽 북측면) 순이 된다.
제3회랑에서 제2회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 십 개의 기둥이 서 있는 다주실(多柱室) 건물을 통과해야 한 다. 이 곳이 십자회랑이다. 제3회랑과 제2회랑 사이에 황금으로 덧칠한 기둥이 십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십자회랑이라 부르는 이 곳은 앙코르 왓에서 유일하게 넓은 공간이다. 여기서부터 지상계가 끝나고 신의 세 계가 시작된다. 역사적인 부조장면을 장식한 지상의 세계는 제3회랑에서 끝나며 십자회랑에서부터 비슈누신 의 만다라산으로 올라가는 신의 세계가 시작된다.
제2회랑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건축으로 표현한 곳이기 때문에 회랑 내부가 어둡다. 우선 서쪽에는 하나의 창문만 있고 남쪽 75m 길이에는 9개의 창문이 나있다. 반면 동쪽에는 26개(북측 14, 남측 12개), 북쪽은 32개의 창문이 나있다. 이들 창문은 달의 주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회랑에는 1500여 명이 넘는 압사라, 여신들이 조각되어 있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중앙신전이 있는 제1회랑은 어두컴컴한 제2회랑과는 대조적으로 장엄한 곳이다. 제1회랑으로 올라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70도로 경사진 중앙신전은 당시에 왕과 최고의 사제들만이 출입하도록 제한했을 만큼 성스 로운 곳이다. 따라서 중앙탑을 오르는 데는 계단을 손으로 잡고 한발자국씩 움직여야 한다. 즉 인간의 접근 을 쉽게 허용치 않는 곳이다. 제1회랑은 우주의 중심 메루산(수미산), 혹은 우유바다 젓기의 중심축을 상징 하며, 비슈누신이 거주하는 장소다. 이와 같은 상징은 12, 28, 108(54/54), 365 등과 같은 숫자를 통해서 풀이할 수 있다. 중앙신전에는 네 개의 탑과 중앙탑이 있는데, 이 중앙첨탑은 높이가 약 60m이다(프랑스 학 자 나필리앙의 조사에 의하면 정확한 높이는 58.08m라고 한다). 이 곳이 신들이 거주하는 우주의 중심 메루
산이며, 비슈누신이 강림하여 왕과 신이 일체화하는 장소이다. 중앙신전은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마다 엄숙 한 의식을 거행하여 국민들에게 신왕사상을 주입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만다라 세계를 이 루어 나가려 했다. 만다라는 중앙에서 시작하여 바깥으로 세계를 구성해 간다. 최고의 신이 사방과 주변의 신을 창조하여 만다라를 채워간다. 즉 앙코르왓은 바로 우주의 중심 메루산을 중심으로 우주적인 만다라를 이루고 바깥을 향해 시간과 공간을 채워가는 형식의 비슈누 사원이다.
* 메루산(Meru) : 대륙의 정 중앙에 있다고 하는 세계의 중심산. 힌두교에서 메루산은 8만4천 요자나(126만 km)의 정상에 인드라신을 비롯하여 주요 신들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산으로 만다라산과 카일라사산 등 네 개의 봉우리가 감싸고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수메루(Sumeru)로 불리며 흔히 수미산(須彌山)으로 번역된 다. 크메르의 사원은 메루산을 형상화하여 피라미드 형으로 짓거나 산 위에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 만다라(Mandala) : ‘에워싸다’는 mand에서 유래한 만다라는 동서남북으로 문이 있는 불탑(stupa)의 평면 도에서 그 개념이 출발했다. 만다라는 원, 구(球), 차륜 등 완전무결과 무수한 원심을 가진 원을 상징한다.
* 진랍(眞臘) : 점랍(占臘)이라고도 한다. 진랍(chenla, zenla)은 <수서(隨書)>에서, 점랍은 <송사(宋史)>의 진랍전(眞臘傳)에서 나온다.
▣ 앙코르 톰(Angkor Thom) 안에 있는 유적
앙코르 톰은 1177년 참파군의 침략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왕도를 요새화하기 위해 자야바르만 7세 (1181-1219)가 건축한 것이다. 앙코르 톰에 높은 성벽을 세우고 다섯 개의 성문을 만들어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도성밖에 환호(環濠, 해자)를 만들어 이중의 견고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 이후 앙코르 톰은 1431년 태국의 세력이 침입하여 도성을 함락시킬 대까지 2세기 동안 영광의 빛을 간직하였다. 앙코르 톰은 한 변이 3km, 높이 8m의 라테라이트로 성벽을 쌓은 성곽 도시로 한 가운데에 국가사원인 바욘 이 위치해 있고 바푸온 사원을 비롯하여 왕궁, 코끼리 테라스, 나왕의 테라스, 텝 프라남, 프레아 파릴라이, 프레아 피투, 크레앙과 같은 수많은 유적이 모여 있다.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로 왕궁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파생된 단어로 ‘도시국가’를 지칭 하는 말이며, 톰(thom)은 형용사 ‘커다란’ 뜻으로서 앙코르 톰은 곧 ‘대도시 국가’의 의미가 된다. 앙코르 톰의 성벽에는 다섯 개의 성문이 있다. 바욘 사원을 축으로 남문, 동문, 서문, 북문이 있으며 왕궁 앞 광장에서 동쪽을 향해 ‘승리의 문’이 하나 더 있다. 정문은 남문(남대문)이며, 동문은 ‘사자(死者)의 문’으 로 불리었고, 승리의 문은 700km 떨어진 참파로 향하는 출발점인데 자야바르만 7세의 영토확장과 과거 앙 코르의 함락에 대한 복수의 의미가 깔려 있는 곳이다.
성문은 높이가 20m로 사암으로 축조되었으며, 성문 꼭대기에는 약 3m에 달하는 사면불(四面佛)로 조각된 관음보살상이 있다. 또한 성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다리 난간에는 좌우로 54개의 석상(石像)이 일렬로 배열 되어 있다. 이 조각은 앙코르왓(Angkor Wat) 회랑에 부조된 것처럼 힌두신화에서 신과 악마들이 장생불사의 영약을 만들기 위해 바수키 뱀의 꼬리를 축으로 천년동안 우유바다를 휘젖는 장면을 상징한다.
* 라테라이트(Laterite) : 철분과 알루미늄을 함유하여 붉은색을 가진 홍토석. 햇볕에 건조하면 시멘트 이상 으로 재질이 단단하여 기둥이나 주춧돌로 많이 사용된다.
* 바수키(Vasuki) : 우유바다 젖기에서 신과 아수라가 바다를 회전시키는데 로프로 이용된 성스러운 뱀. 세 샤뱀(Sesa)으로도 불린다.
* 프레아(Preah) : ‘성스러운, 존경하는’ 뜻의 형용사. Pra, Prah도 같은 뜻이다. 프레아 산(Preah San)은 승 려, 프레아 코(Preah Ko)는 성스러운 소, 프레아 칸(Preah Khan)은 성스러운 칼을 뜻한다.
(a) 바욘(바이욘, Bayon)
바욘은 앙코르 톰의 동서남북 각 대문으로부터 1km 지점에 위치한 중심 사원으로 왕이 신봉하는 관음보살 상인 4면불(四面佛)을 총 196개나 조각해 놓았다. 이 사원은 동쪽이 정문이며, 제1회랑은 동서 160m, 남북 140m이며 회랑 중앙에 제2회랑으로 연결되는 통 로가 있다. 제1회랑 벽면에는 민중의 생활상, 자야바르만 7세가 톤레삽 호수에서 참파군을 물리치는 해전장 면이 부조되어 있다. 특히 톤레삽 호수에서 어망을 던져 고기를 잡는 장면, 시장에서 물건을 매매하는 장면, 장기를 두거나 닭싸움과 개싸움하는 장면,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장면 등 서민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표현되 어 있다. 물론 왕비를 비롯한 궁중여인과 귀족들의 생활상도 있다.
제2회랑은 동서 80m, 남북 70m에 달하는 데, 이 곳은 제1회랑과 달리 대부분 크리슈나, 시바신, 가루다를 탄 비슈누 신 등 힌두교 신화와 전설이 부조되어 있다.
한편, 상부 테라스에는 사면불인 관음보살상이 부조되어 있으며 회랑은 둥근 형태로 만들어졌다. 흔히 ‘크메 르의 미소’로 평가되는 관음보살상 조각은 휴먼 모티브를 특징으로 한다. 얼굴은 보통 2m 내외이며 머리에 는 연꽃 모양으로 장식을 둘렀다. 상층부의 중심탑 높이는 약 64m이며, 원형의 중심탑 주위에는 16기의 첨 탑이 순례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 첨탑은 소위 ‘바이욘의 미소’로 불리는 것첨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관음보살상이 4면으로 조각되어 있고, 첨탑 내부에는 전국 각지의 수호신이 모셔져 있어 기존 힌두교 세력을 개혁하기 위한 혁신적 사상이 반영된 승원이다.
* 크리슈나(Krishna) : 비슈누신의 여덟 번째 화신. 원 뜻은 비뉴수신의 검은 머리카락에서 파생되어 ‘검은 것’을 의미한다.
* 가루다(Garuda) : 비슈누신이 타고 다니는 새. 몸과 다리는 사람, 머리는 독수리 형상을 하고 있다.
* 크메르(Khmer) : 캄보디아 민족, 언어를 지칭한다.
(b) 코끼리 테라스(Elephant Terrace)
왕궁 광장 앞에 위치하며 자야바르만 7세 때 건축되었다. 바푸온 사원에서부터 나왕의 테라스까지 약 300m 길이에 실물 크기의 코끼리, 가루다, 말, 폴로게임과 유사한 추각 게임 장면 등이 부조되어 있다. 이 곳은 자야바르만 7세가 군사행진을 하던 곳이며, 각종 행사가 열렸던 광장이었다. 1911년, 1916년 앙리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다.
(c) 나왕(癩王)의 테라스(문둥이왕 테라스, Leper King Terrace) 자야바르만 7세 때 건축한 것으로 코끼리 테라스 옆에 위치하며 나가 상과 수많은 신들이 부조되어 있고 테 라스 위에는 약 1m 크기의 나왕의 좌상(座像)이 있었다(현재 이 조각은 프놈펜의 국립박물관에 옮겨져 있 다). 나왕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엇갈린다. 코마유는 시바신이라고 주장하며, 에이모니에는 야소 바르만 1세라고 하고 조르쥬 세데스는 야마신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견이 많다. 1911년, 1917년 앙리 마르 샬에 의해 복원되었다.
(d) 피메아나카스(피미아나카스, Phimieanakas)
황금의 탑에서 국왕의 머리가 아홉 달린 뱀왕의 딸(nagi)과 밤바다 잠을 잤다는 설화를 간직한 이 사원은 자 야바르만 4세(?) 때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라젠드라바르만 2세, 수리야바르만 1세에 의해 성문과 성벽이 완 성되는 등 후대의 왕들에 의해서 설계 변경이 이루어졌다. 사원의 이름은 ‘천상의 궁전, 공중누각’(산스크리트어로는 vimanaakasa)이란 뜻을 가졌지만 왕궁이 아니라 사원이다. 라테라이트로 지었으며 1층은 35x28m, 최상층은 30x25m에 이르나 회랑의 폭은 1m에 지나지 않 는다. 사원 북쪽에는 125x45m의 남자의 연목, 동쪽에 40x20m의 여자의 연못(srah srei)이 있다. 1944년까 지 네 차례나 복원되었다.
(e) 바푸온(Baphuon)
바푸온은 ‘아들을 숨긴 사원’이란 뜻이다. 두 형제가 태국과 캄보디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는데 태국 왕의 아들을 크메르 왕이 길렀다. 그러나 조카가 자라면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신하들의 충고를 듣고 왕이 그를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태국 왕이 쳐들어오자 크메르의 왕비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이 사원에 숨겼다는 일 화가 있다.
우아야디티야바르만 2세(1050-1066)때인 1060년에 지은 이 사원은 바욘 사원과 피미아나카스 사원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는 코끼리 테라스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변경이 있었다.
동쪽 탐문에서 사원 입구까지 200m에 달하는 참배길은 육교형식으로 설계되어 ‘공중 참배길’로 불리며, 1층 은 120x100m, 2층은 70x65m, 3층은 50x45m의 규모다. 2층은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부조가 있 고,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부조가 있다.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 바푸온 사원을 동탑(銅塔)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청동으로 만든 중앙탑이 있었 던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 중앙탑은 허물어져 있는데, 학자들은 인근 사원을 건축할 때 바푸온은 석재를 가져 다 활용한 때문으로 보고 있다.
건축사적으로 바푸온은 하나의 양식을 이루고 있는데 ‘바푸온 양식’은 첫째 코끼리나 나가 상(像)이 장식의 모티브로 등장하지 않으며, 둘재 회랑은 있으나 부조되어 있지 않고 탑문과 파풍(破風)에 부조를 해 넣은 방 식이 주로 이용되었다. 셋째 주벽에 처음으로 부조가 새겨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소재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 타였다. 넷째 인간을 소재로 한 조각은 가슴 윗부분이 누드로 표현되었으며 여신들의 스커트 길이는 발목까 지 내려온다. 스커트는 완전한 주름을 이루고 물고기 꼬리모양(fish-tail type)으로 드레이핑(draping)하여 우 아한 곡선미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1908년부터 1918년까지 코마유와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고, 2002년에도 복원작업을 거쳤다.
* 라마야나(Ramayana) : 인도의 시인 발미키(Valmiki)가 쓴 대 서사시로 전체 24,000송(1송은 16음절로 2
행으로 되어 있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자들에 의하면 기원전 4세기경부터 서기 200년 사이에 현재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요드야 왕국의 라마왕자와 그를 돕는 원숭이 왕국의 하누만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악마의 왕 라바나의 전쟁을 그린 서사시로 라마왕자를 통하여 제왕이 따라야 할 정의, 도 덕률, 규범을 제시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태국, 탐보디아 등 고전기 동남아시아의 궁정문학과 드라마, 연극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마하바라타(Mahabharata) : 인도의 비야사(Vyasa)라는 성인이 기원전 5세기 경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대 서사시다. 인도 델리 북방의 쿠루평원에서 카우라바군과 판다바군 18사단이 18일간 벌이는 전쟁을 주 제로 하여 전체 18편 10만송(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서사시 안에는 고대 인도의 종교, 신화, 도덕, 역 사, 철학, 법률 등 수많은 자료가 들어있다. “마라바라타 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으며, 이 안에 없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인두 힌두교의 종교철학, 사상이 깃든 경전이다. 비슈 누 신의 화신 크리슈나에게 아르쥬나가 정의와 도덕률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바가바드 기타>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f) 프레아 칸(Preah Khan)
자야바르만 7세 때인 1191년에 지은 불교사원으로 56.7ha에 이르는 광대한 사원이다. 이 사원은 앙코르 톰 을 짓기 전까지 자야바르만 7세가 잠시동안 왕궁으로 사용했다. 이 사원은 3중의 주벽(700x800m)을 환호가 감싸고 있으며 도로에서 서쪽 문까지 150m 거리에 링가를 모방 한 석주기둥 96기가 서 있으며, 석주가 끝나는 지점에 신과 아수라들이 바수키 뱀을 잡고 우유바다를 젓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사원 북쪽 끝에는 그리스식 둥근 기둥으로 지은 2층 건물이 있는데 고행승과 불상이 조각되어 있었으 나 자야바르만 7세가 죽은 후에 힌두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939년 이 사원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나가라 자야슈리(Nagarajayacri)라는 태국어가 등장하는 데 그 뜻은 성 스러운 칼을 뜻한다. 이 때문에 선조로부터 전해오는 성검(聖劍)은 태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이 승원에는 97,840명의 승려, 일꾼, 1000명이 넘는 압사라가 있었으며 700x800m의 주벽 바깥에는 0.9x3.7km의 환호와 6.5ha의 넓은 공간에 10만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 아수라(Asura) : 신들에게 적대적인 악마의 종족. 원래의 뜻은 ‘호흡하다(asu), 존재하다(as), 정령이 깃들 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g) 네악 페안(닉 펜, Neak Pean)
자야바르만 7세 때 지은 이 사원은 자야타타카(북 바라이) 한 가운데 섬처럼 서 있는 불교사원이다. 이 곳은 왕이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온천장으로 개방하였으며, 사람과 말 모양의 급수구를 통해 물이 흘러가도록 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곳은 ‘똬리를 튼 뱀’의 뜻으로 두 마리의 커다란 뱀이 중앙사당의 기단을 감싸고 있으며 나가와 신마(神馬)상이 조각의 주제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말(馬)이 난파한 어부를 구해줬다는 〈본생담(本生譚)〉을 간직한 곳인데, 물에 빠져죽지 않기 위해 말의 머리와 다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가 생생히 부조되어 있다.
조르쥬 세데스에 의하면 이곳의 중앙연못은 병을 치유하는 불가사의한 물이라는 전설이 있고, 사람과 동물의 머리 모양으로 장식된 급수구에서 물이 흘러가도록 한 것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하는 4대강을 상징하는 것이 라고 해석했다.
연못 중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작은 연못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곳은 남북 3.5km, 동서 0.9km의 저수지 로 약 10만㎥의 물을 저장했던 곳이며 기능이 정디죈 동 바라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네악 페안은 건기에 방문하느냐 아니면 우기에 방문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 즉 건기 때에는 물이 메말아 있어서 중앙까지 이동하여 상세히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우기 때에는 물이 차 있어서 바깥쪽에서 바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혹자는 이런 모습이 더 운치있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h) 타솜(Ta som)
자야타타카(북 바라이)를 지나면 나무뿌리가 탑문과 여신상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사원이 타솜이다. 원래 이 사원은 프레아칸, 자야타타카, Neak Pean과 더불어 유기적인 관계를 갖도록 일직선상으로 설계되었다.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위해 헌사한 보리사(菩提社)인 타솜은 세 겹으로 만든 라테라이트 회랑이 있고, 서쪽으로 출입한다. 중앙사당의 벽면에는 가짜창의 공법을 볼 수 있고 무너진 회랑의 벽공에는 나가 상이 조 각되어 있다. 1930년 앙리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다.
(i) 프레아 피투(Preah Pithu)
수리야바르만 2세 때 지은 힌두사원. 왕궁 앞 도로의 북단에 있는 텝 프라남(Tep Pranam) 사원 옆에 나란 히 서 있으며 두 개의 십자형 테라스와 다섯 개의 사당이 있다. 사당에는 가짜 문과 나가 상, 라마야나나 부 조되어 있다. 1908년, 1918년에 각각 코마유,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다.
(j) 크레앙(끌리앙, Kleangs)
크레앙은 ‘창고, 저장고’의 의미다. 승리의 문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하나씩 서 있는 이 건물은 일종의 창 고로 사용되었으며, 12개의 탑인 수오르 프랏 뒤에 위치해 있디. 북 크레앙(North Kleang)은 라젠드라바르만 2세 때 목조로 건축된 후, 자야바르만 5세와 수리야바르만 1세 때 사암을 이용하여 다시 지은 것이다. 1908 년부터 1920년까지 코마유와 앙리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다.
(k) 프라삿 수오르 프랏(Prasat Sour Prat)
크메르인들은 정월이 되면 탑과 탑 꼭대기에 밧줄을 연결하여 그 위에서 줄타기를 했는데, 국왕은 왕궁 앞의 테라스에 앉아 이 광경을 구경했다고 한다. 사원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하여 ‘밧줄 타는 탑’(Tower of Cord Dancer)이다.
13세기에 이 곳을 다녀갔던 주달관은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이 탑에 올라서 일종의 신판(神判)으로 죄를 가렸다고 기록했다. 앙코르 톰 왕궁 광장에서 시작되는 승리의 문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각각 6개 씩 12개의 탑이 나란히 서 있 는 곳이며, 라테라이트로 지은 탑과 탑 사이의 거리는 35m이다.
* 프라삿(Prasat) : 남인도 사원에서 테라스가 있는 피라미드형 사원을 지칭하며 원어는 프라사다(prasada).
▣ 앙코르 톰(Angkor Thom) 밖의 사원들
(a) 끄라반(프라삿 크라반, Prasat Kravan)
아름다운 연와(煉瓦)로 만든 작은 힌두교 사원으로 하르샤바르만 1세가 921년에 지었다. 중앙의 탑에는 비 슈누 신이, 북쪽의 탑에는 락슈미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는 5탑형 사원이다. 그러나 중앙탑만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나머지는 파괴가 심하다. 관광객들의 발길도 뜸한 편이다.
(b) 쓰라 쓰랑(왕의 목욕장, Sras Srang)
12세기말 자야바르만 7세 때 만든 700x300m의 목욕장. 나가 상(像)과 사자 상(像)이 테라스에 조각되어 있 으며, 학자들은 이 곳을 ‘앙코르의 정원’으로 칭한다. 연못 가운데는 라테라이트로 만든 계단이 설치되어 있 다.
(c) 반테아이 크데이(반테이 크데이, Banteay Kdei)
자야바르만 7세 때 지은 이 사원은 ‘승방(僧房)의 성채’란 뜻으로 기존의 힌두교 사원을 불교사원으로 개조한 것이며, 힌두교와 불교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사암을 주로 사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사원 여러 곳에서 탈구가 일어나 황폐한 상태에 있다. 고고학자에 의하 면 중앙
신전과 회랑, 회랑과 회랑을 연결하는 참배길, 네겹의 주벽, 700x500에 이르는 환호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중앙신전은 사암과 라테라이트로 쌓은 주벽이 감싸고 있으며 회랑은 십자회랑으로 구성되었다. 1920-22년 앙리 마르샬에 의해 복원되었다.
(d) 프놈 바켕(Phnom Bakheng)
900년에 야소바르만 1세가 5층으로 지은 피라미드형 국가사원으로 동서 4km, 남북 4km에 이르는 야소다라 푸라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야소다푸라는 후기에 가서 앙코르 왓과 앙코르 톰이 들어서게 되는 앙코르 시대 의 토대가 된 지역이다. 이 사원은 사암의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이 곳에 오르면 앙코르 왓을 비롯 하여 프놈 쿨렌, 바라이를 볼 수 있다. 5층의 기단을 오르면 중앙에 다섯기의 사당이 있었으나 네 개는 허물어지고 중앙본전만 남아 있다. 각 층마 다 12개의 소사당이 있으며 기단부에는 연와로 만든 44동의 사당이 늘어서 있어 중앙의 5탑을 합하면 모두 109개의 탑이 들어서 있다. 이 사원은 구조상 중부 자바섬의 보로부두르 사원과 유사하게 190x120m의 주벽이 있었으나 모두 허물어져 있다.
* 프놈(phnom) : 산(山)을 뜻하는 크메르어. 라오스어 푸(Phou, Phu)도 산을 의미한다. ‘프놈펜’은 펜 부인의 언덕이란 의미다.
(e) 프레 룹(Pre Rup)
라젠드라바르만 2세 때인 961년에 3층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국가사원. 중앙에는 5탑형으로 건축되었다. 귀 메미술관의 큐레이터 슈테른 박사는 이 사원을 ‘동쪽의 도시’로 불렀다. 대담한 건축 디자인, 규모와 각 부분 이 완전히 조화를 이룬 사원으로, 크메르인들은 이 곳에서 장례식, 다비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사원 외부는 환호로 둘러져 있으며, 신체를 변화시킨다는 뜻에서 Pre Rup으로 명명했었다고 전해진다.
(f) 동 메본 사원(East Mebon)
라젠드라바르만 2세 때인 952년에 건축된 힌두교 사원으로 5찹형이며, 왕이 조상에게 헌사한 사원이다. 동 메본과 Pre Rup 사원은 같은 왕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조각이나 구성이 유사하다. 동 메본 사원은 동바라이 한 가운데 위치하여 배를 타고 접근해야 한다(현재 바라이는 땅으로 메워져 있다). 라테라이트와 사암으로 지었으며 외벽을 칠하기 위해서 석회를 사용하였다. 1935-39년 앙리 마르샬과 그레 즈의 의해 복원되었다.
(g) 타 프롬(따 쁘롬, Ta Prom)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에게 헌사한 불교사원으로 1186년에 건축되었으나 왕이 죽은 후에는 힌두교 사원으 로 개조되었다. 사원은 거의 붕괴된 데다 거대한 스포안(Spoan) 나무가 사원전체를 휘감고 있어서 유적보존 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사원은 라테라이트를 재료로 한 주벽이 700x1000m에 이르며 전체 사원면적은 60ha에 이른다. 비문에 의하면 이 사원에 고승 18명, 승려 2,740명, 견습승 2,232명, 압사라 615인을 포함하여 12,640명이 거주했 다고 한다. 제2주벽에는 왕의 어머니를 반야바라밀다 보살(prajnaparamita)의 모습으로 조각하여 안치하고 왕의 조상을 260여 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 압사라(Apsara) : 대양(apu)을 휘저어 추출되었다(rasa)하여 압사라로 불러지게 된 신들의 무희, 흔히 신
들들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캄보디아의 전통무용이지만, 태국의 전통무용이기도 하다. 이는 아 유타야 왕국이 앙코르 왕조를 점령(1430-1431)한 후 태국의 민속무용으로도 거듭난 까닭이다.
(h) 타케우(타케오, Ta Keo)
기하학적 입체미를 살린 3층의 피라미드형 사원으로 자야바르만 5세와 수리야바르만 1세 때인 1000년경에 건축되었다. 이 사원은 메루산을 지상에 건설하려한 의도로 지었기 때문에 높이는 70m에 이르고 중앙에는 다섯 개의 탑이 있고, 제1층 테라스는 96x112m, 제2층 테라스는 80x84m, 제3층 테라스는 40x40m의 장방 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리의 문 오른 편에 위치한 이 사원은 회랑과 지붕을 실험적으로 도입하였고, 처음으로 녹색 사암을 사용했 기 때문에 기술자들이 조각을 해 넣지 못한 것이 특징이다. 1920년부터 2년에 걸쳐 앙리 마르샬 등이 복원하였다.
(i) 차우 사이 테우다(차우 싸이 테보다, Chau Say Tevoda)와 톰마논(Thommanon)
길 하나를 마주보고 대칭으로 서 있는 이 사원들은 수리야바르만 2세때 건축하였다. 차우사이 테우다는 장 방형으로 동쪽 탑문은 씨엠립 강을 향하도록 했고, 톰마논은 차우 사이 테우다와 마찬가지로 평면 사원이며, 비뉴수 신이 가루다에 올라 아수라와 전투하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1919-20, 1925-27, 1960년대 프랑스 극동학원에 의해 복원되었다.
(j) 박세이 참끄롱(Baksei Chamkrong) 앙코르 톰 남문을 벗어나면 서쪽 숲에 아름답게 솟아있는 사원. 하르샤바르만 1세 때에 공사가 시작되어 라 젠드라바르만 2세 때인 947년에 완성된
장제전이다. 이 사원은 앙코르가 공격당할 때 왕은 도망가서 이 사원에 숨었는데 ‘커다란 새가 날개로 가려서 목숨을 구 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박세이 참끄롱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라테라이트와 사암으로 장식되었고 기반부는 27m의 장방형으로, 상층부는 15m, 높이는 12m이다.
(k) 반테아이 스레이(반테이 스레이, Banteay Srei)
앙코르의 북쪽 30km 지점에 위치한 가장 격조 높은 사원이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967-968년에 이 지역에 호족이며 왕의 스승이었던 야나바라하가 지은 사원으로 라테라이트와 적색 사암을 사용하여 앙코르 건축의 진수, 또는 ‘크메르 건축의 보석’으로 평가된다. 참배길에는 링가모형의 석주(石柱)가 서 있고, 사원 내에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서 발췌한 부조가 있고 북쪽 도서관에는 카일라산을 뒤흔드는 라바나, 남쪽 도서관에는 시바신의 부조가 있고, 중앙신전에는 동양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여신 데바타 상이 있다.
예술사적 측면에서 ‘Banteay Srei 유형’은 앙코르 이전기의 도시였던 ‘삼보르 양식’을 이어받아 건축양식이 부드럽고 우아함을 갖고 있다. 여신상의 모양도 유연하고 우아한 곡선미가 강조되면서 풍만한 여신상의 이미 지에서 탈피하였다. 여신들은 배꼽을 두는 액세서리가 부착되고 치마의 주름에도 별도의 장식을 달아 화려한 모습을 주었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여신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밀반출하려다 체포된 것도 여신상의 아름다움 에 반했기 때문이다. 1931-36년 프랑스 극동학원의 앙리 마르샬에 의해 아나스틸로시스 방식으로 복원되었다.
* 라바나(Rabana) : 링카에 거주하는 아수라의 왕. 머리는 열 개, 팔은 스무 개나 되며 신 보다 뛰어난 능력 을 갖고 있으나 인간에게는 죽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는 비슈누신의 화신 라마왕자에게 살해당한다.
* 데바,데바타 : 데바(Deva)는 남성의 신. 여신은 데바타(devata)라 한다. ‘빛나다’는 뜻을 가진 div에서 파생
되었으며, 그리스어 deod, 라틴어 deus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힌두교에서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신을 3위일체의 신(trinity)이라 한다. 이들 신이 등장하면서 인드라, 바루나, 야마, 쿠베라 신은 인기가 하락하 여 각각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로카팔라)으로 재편성되었다. 이러한 방위신의 개념은 불교에서 사천왕 (四天王)으로 나탄난다.
* 아나스틸로시스(anastylosis) : 사원을 해체한 후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방식. 네덜란드 고고학자에 의해 자바섬의 유적복원에 처음 도입된 후 프랑스 학자들이 Banteay Srei 사원 복원에 광범위하게 도입하였다.
(l) 반테아이 삼레(반테이 삼레, Banteay Samre)
동바라이 남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수리야바르만 2세 때인 12세기에 지은 힌두사원이다. 삼레족은 프놈 쿨 렌 산 밑에 거주하는 부족인데 크메르 왕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레 사원은 80x80m의 주벽과 네 개의 고푸라(Gopura, 탑이 있는 출입문)가 있고, 환호로 둘러쳐져 있고 중앙신전은 아니스틸로시스 공법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나가 난간이 아름답다. 건축은 앙코르 왓과 유사한 스 타일이다.
▣ 롤루스 유적군(롤루오스 유적군, Roluos Group)
롤루스 유적군은 앙코르 초기 유적지로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다. 그러나 초기 유적지로서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의 [앙코르와트.월남가다]라는 책을 보면 아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단 롤 레이는 제외).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관광객들은 짧은 일정 때문에 제외하는 것이 다반사이며, 관람을 하 게되더라도 다른 웅대한 유적을 돌아본 후에 관람하기 때믄에 감흥을 그리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a) 프레아 코(쁘리아 코, Preah Ko)
인드라바르만 1세가 879년에 지은 6탑형 사원. 왕의 부모, 외부모, 자야바르만 2세 왕의 부부 등 6인을 기 리기 위해 헌사한 조상사원. 원래는 세겹의 주벽과 고푸라가 있는 장방형 사원으로 만들어졌고 중앙신전에는 사암으로 만든 가짜 문, 마카라와 칼라의 조각들이 있고 그 앞에 성스러운 소의 상이 배치되어 있다. 여섯 기의 사당은 연와로 건축된 것이지만 차양과 기둥, 기초는 사암이다. 사암은 재질이 좋지 않고 석회질 이 여기저기 유출되어 풍화작용을 일으켜서 훼손이 심한 편이다. 그리고 프레아 코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각 신전의 입구 위를 장식하고 있는 린텔(lintel)이라는 화려한 돌구조이다. 이는 크메르문명에서 가장 독창적인 양식으로, 프레아 코의 린텔이 최초의 정형이면서 완성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b) 바콩(Bakong)
인드라바르만 1세 때인 881년에 지어진 바콩 사원은 롤루스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였고, 시바신과 비슈누 신 을 위한 힌두 사원이다. 사원은 산을 활용하여 피라미드 사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3중의 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2주벽 중앙에는 5층의 피라미드형 기단 뒤에 규모가 작은 10개의 소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중앙사당은 기단에 비해 규모가 작아 왜소한 느낌을 준다. 주벽 내부는 연와로 만든 사상, 승방과 같 은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바깥으로는 환호가 배치되어 있다. 1936-43년에 복원이 이루어졌다.
(c) 롤레이(로레이, Lolei)
야소바르만 1세가 893년에 아버지에게 헌정한 힌두사원. 인드라타타카 호수 한 가운데에 위치하며 4탑형 사 원이다. 이 곳은 롤루스 도시와 평야에 물을 공급했던 수원지이기도 하다. 이 사원은 동,서 메본 사원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하나의 기단 위에 4기의 사당이 있는데 당초에는 6기로 계 획되었다. 4기의 사당 중앙에는 십자형으로 배치된 관수통과 링가가 있는데, 링가에 성수(聖水)를 부어 인드 라타타카로 흘러 들어가도록 의식을 행했다.
* 링가(Linga) : 시바신의 창조력을 상징하는 남근석. 흔히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Yoni) 위에 안치한다.
▣ 씨엠립(Siem Reap) 주변 지역
씨엠립 지역은 앙코르 유적(Angkor Ruins)과 톤레삽(Tonle Sap) 호수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외에도 씨엠립 동쪽 방향에는 벵 메알레아(Beng Mealea) 사원이 있으며, 이 사원 북쪽 6.5km 지점에는 프 놈 쿨렌(쿨렌 산, Phnom Kulen)이 있다.
(a) 벵 메알레아 Beng Mealea
벵 메알리아(Beng Mealea) 사원은 씨엠립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앙코르 시대의 유적(12세기)이다. 지금은 정 글 속에 방치되어 방문하기가 어렵지만, 한 때 앙코르에서 콤퐁 톰의 프레아 칸과 북으로 초크 가르갈에 이 르는 도로 위에 있었던 사원이다. 이 유적의 건설 연도와 앙코르와트의 연대적 상호관계는 아직도 논란의 여 지가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수랴바르만(수르야바르만) 2세(Suryavarman II. 1112-52 재위. 왕실 자료에 의하면 1113-1150)의 업적으로 보고 있으며, 앙코르와트보다 늦게 착수했으나 완공은 더 빨리 했다고 믿고 있다.
벵 메알레아 단지는 회랑이 있는 세 개의 담장이 있으며, 가장 바깥에 있는 담장은 크기가 594x499피트 (181x152미터)로 수도원을 형성하는 십자형의 유개(有蓋) 통로, 수많은 프라사트(11개가 분명함)와 함께 붙 어 있는 건물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벵 메알레아의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속이 빈 돌 안에 목조 들보를 끼우지 않고 전체를 사암으로 만든 천정
이 덮인 넓은 회랑이다. 속이 꽉 찬 벽과 창문이 있는 벽을 가진 이란 설계 특징을 그대로 따르고, 여기에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기둥을 늘어세우고 벽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기법을 도입했다. 이 사원은 비슈누 에게 봉헌되었지만 불교식 조각상도 함께 존재한다. 벵 메알레아(Beng Mealea) 사원은 씨엠립 주(州)의 씨엠립 시(市) 동쪽 방향 60km 지점에 있으며, 이동하 는 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사원의 입장료는 5$ 정도이다.
(b) 프놈 쿨렌(Phnom Kulen)
프놈 쿨렌은 캄보디아에서 신성한 장소 중의 하나로, 자바(Java)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앙코르 왕조를 세운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연고지인 삼보르를 기반으로 점차 군사행동을 넓혀가면서 통일국가의 틀을 확립 한 지역(인드라푸라, 아마렌드라푸라, 프놈쿨렌, 롤류오스) 중의 하나이다(프랑스 학자 에이모니는 자야바르 만 2세가 자바의 허락을 받아 귀국하여 대신회의에서 왕으로 선출되었다고 주장). 프놈(Phnom)은 크메르어 로 산(山)을 뜻하며(라오스의 Phou, Phu도 같은 의미), 높이는 487m이다. 주변에는 폭포도 있다. 현재 이 지역은 국립공원(Phnom Kulen National Park)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적으로 자야바르만 2세는 라젠드라바르만 1세의 아들이며, 그의 재위연대는 802년~834년까지이다. 조 르쥬 세데스는 1052년에 건립된 스톡 칵톰 비문에 802-850년까지 통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근거
로 802-850년까지 재위하다가 90세에 죽었다고 주장하였으나(당시 통설로 받아들여짐), 자야바르만 3세의 등위연대가 834년이라고 적힌 비문이 나타나면서 자야바르만 2세는 802-834년까지 재위한 것으로 보는 것 이 일반적이다.
프놈 쿨렌은 씨엠립 시(市)에서 북쪽 방향 60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벵 메알레아(Beng Mealea) 사원에 서는 북쪽 방향 6.5km 지점이다. 씨엠립 시내에서 프놈 쿨렌 까지 이동시간은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며, 모 또 비용은 15$ 정도 예상된다(론리플래닛 정보). 입장료는 20$이며, 볼거리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평이 많 다. 그러나 이 장소는 외국인에게보다는 캄보디아인 자신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 인드라푸라 : 꼼퐁참(Kompong Cham) 동부지역.
* 아마렌드라푸라(Amarendrapura) : 악윰(아크 윰) 지역(씨엠립 부근).
* 프놈 쿨렌 : 마헨드라파르바타(Mahendraparvata) = 위대한 인드라신의 산(山)이라는 의미.
* 롤류오스(Roluos, 롤루스) : 하리하랄라야(Hariharalaya), 초창기의 왕도.
(c) 크발 스페안(끄발 스피언 Kbal Spean)
크발 스페안은 하상(河上;강바닥)과 주위 벽에 새긴 유적지로 반테아이 스레이(Banteay Srei) 북쪽 방향에 위 치해 있다. 이 곳은 프랑스 극동학교 소속의 민속학자 장 볼베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장발(長髮)의 도사' 라 불리는 한 은자가 강 상류에 있는 흥미로운 곳으로 그를 안내했는데, 그 은자가 알려준 장소에 있는 강은 폭포로 흐름이 막혀 있었고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곳은 크발 스페안(교두보)이라고 불 리게 되었다고 한다.
강바닥에는 개구리, 황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링가(시바신을 상징하는 남근 형태의 조각. 시공사의 책에는 린감으로 표기), 뱀 위에 잠들어 있는 비슈누 석상 등이 있다. 조상 중에는 거대한 도마뱀을 들고 주랑 밑에 서 있는 신상(神像)도 있었다. 그리고 이 곳은 '1,000링가의 강(River of a Thousand Lingas)'으로도 언급되 기도 하는데, 본류에 편입되는 위쪽의 두 지류 중의 하나이다. 이 두 지류를 받아들이는 본류는 완벽한 치수 작업을 거쳐 앙코르의 관개수(灌漑水)로 쓰였다.
크발 스페안은 반테아이 스레이(Banteay Srei)에서 북쪽 방향 15km 정도에 위치해 있으며, 도착해서 30분 정도는 정글을 올라가야 한다. 이동시 모또 10$ 정도 예상되며(론리플래닛 정보), 방문시기는 7~12월이 적 당하다. 건기 때에는 물이 말라있다고 한다. 입장은 무료이며, 다만 15:30에 입장이 마감된다. 끝으로 크발 스페안에서 눈여겨 볼 것들은 다음과 같다.
* 강 바닥에 새긴 신이 물 밖으로 나타나 있는 조각 : 이 신은 모든 생명 형태를 화합시키는 물의 원시적 혼 돈을 상징하며, 이것은 신의 개입으로 실체를 가지게 된다.
* 비슈누 : 라크시미를 통해 세상을 감시하는 비슈누가 뱀 아난타에 기대어 있다.
* 주위 벽(바위)의 조각 : 여섯개의 링가요니. 아홉개의 링가요니(하나가 가운데 있고, 여덟개가 만다라 형태 로 둘러서 있다). 마키라(악어의 모습). 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세 명의 신.
첫댓글 톡톡이를 타고 구경 가든 추억이 떠 오릅니다. 시원하고 재미 있었죠.
무더위에 툭툭이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야자열매를 마시며...,시원했던 그 맛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