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나는 인문학 <부산의 해파랑 길과 갈맷길을 걷는다.>
2015년 1월 넷째 주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부산지역을 답사합니다. 우리 땅 걷기에서 처음 걷고, 문체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해파랑 길과 부산 갈맷길을 걸으며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부산에 달린 하나의 구인 동래구는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동래도호부였다. 이첨이 지은 <동래 읍성기>에 “동래 고을은 동남 지방에서 으뜸이다. 바다 자원이 넉넉하고 토산물이 풍부하여 나라의 수요에 기여함이 적지 않다. 또한 동쪽에는 해운포海雲浦가 있으니, 옛날에[ 신선이 놀고 즐기던 곳이며, 북쪽에는 온천이 있으니 역대 임금들이 목욕하던 곳이다.” 라고 묘사한 동래의 풍속이 <여지도서>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결혼과 상례喪禮를 집안 재산 정도에 알맞게 치른다. 좋은 일과 나쁜 일, 경사스러운 일과 불행한 일, 그리고 걱정 거리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와주는 의리가 있다.” 이러한 동래를 두고 신숙주申叔舟는 <정원루기靖遠樓記>에서 “땅이 바다에 닿아 있으며, 대마도對馬島와 가장 가까워서 연기와 불빛까지 서로 보이는 거리이니, 실로 왜인이 오가는 요충지이다.”라고 하였다.
동래는 옛날의 장산국(萇山國)이었고, 그 동래부 부산면이 부산면으로 개편된 것은 1914년이다. 부산이라는 이름이 기록상에 처음 나타나기는 조선초기였다. “동평현 남쪽 부산포富山浦에 있다.”라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려 있고, <해동제국기>에 부산포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 당시의 ‘부’ 자는 지금의 ‘부釜‘ 즉 가마 부 자가 아니고 넉넉할 ’부富‘의 부산富山이었다. 이렇게 이름이 바뀐 것은 대체로 15세 기 경으로 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솥 모양과 같아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 아래가 바로 부산포이니, 늘 살고 있는 왜호가 있으며 북쪽으로 현까지의 거리는 21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끝 난 뒤 일본과의 국교가 한 동안 단절되었다. 그 뒤 도요토미 정권의 뒤를 이은 도꾸가와 정권과 대마도주의 간청을 받아들여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 부산에서 기유약조己酉約條가 맺어졌다. 이때부터 부산은 조선후기까지 이 나라의 유일한 대외 항구가 되었다.
기유약조를 맺은 뒤부터 사신을 태운 배 곧 사송선이 아닌 교역선이 부산항에 들어왔다. 그 때 대마 도주의 세견선 곧 무역선 20채를 포함하여 50여 채 쯤의 드나들었고, 숙종 4년인 1678년에 부산포, 초량 오늘날의 용두산 일대에 왜관倭館이 들어섰다.
왜관에는 관아건물이 많았는데, 연대청, 동관, 서관으로 크게 나뉘었고, 또 객사도 있었다. 건너온 일본인들은 이곳에 모셔진 역대 조선 임금의 전패殿牌에 엄숙히 절을 하도록 했다.
“부산은 몰라도 자갈치 시장은 안다”고 하는 자갈치시장은 1930년대 말에 두 차례에 걸친 바다와 자갈밭 매립으로 마련된 터전이다. 매립하기 전에 워낙 자갈밭이 많았던 곳이어서 자갈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태종대와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부산항이 강화도조약으로 개방된 것은 1876이다. 일본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식민지 항구도시 부산이 개항되었을 때의 인구는 3,300여 명 남짓되었다고 한다. 현재 부산의 중심지구인 남포동․광복동․중앙동․대교동 일대가 그 당시에는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였다. 1875년의 부산을 지켜보았던 일본 거류민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오오이께 가다스께(大池紡助)는 1926년 11월에 쓴 부산 개항 50주년 회고록에서 그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1875년의 부산의 모습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대창동․남포동 일대는 그 뒤에 매축한 곳으로 그때는 모두 바다였다. 번화가로 알려진 광복동 같은 곳도 그때는 한복판에 도랑이 있고 풀만 무성하여 여우라도 나올 듯했다.”
또한 그 무렵 일본인 거류민단을 위해 은행을 설치했던 오오꾸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도 그와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1876년에 내가 첫발을 들여놓은 부산항은 흰 모래와 푸른 솔의 해안에 종일 파도가 밀려왔다 갔다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어촌이었다. 육지에는 한국인들이 쇠뼈와 쇠가죽을 햇볕에 말리고 있었을 뿐이다. 배를 매어둘 만한 부두조차 없었다.”
한편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으로 1894년과 1895년 중국․일본․한국을 답사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부산과 낙동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가사키항에서 한국의 부산항까지는 증기선으로 1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 부산에서 1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는 낙동강은 수심 1.5미터의 물을 거슬러 밀양에서 80킬로미터를 증기선으로 항해할 수 있고, 수심 1.2미터의 물을 거슬러 정크(junk)선으로 사문까지 160킬로미터를 더 갈 수 있으며, 거기서는 짐을 가벼운 견인 포트에 옮겨 싣고 연안으로부터 274킬로미터 떨어진 상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이용 가능한 수로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서울-부산간 철도가 곧 이루어지리라는 어렴풋한 전망과 더불어 부산은 상업의 중요한 중심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부산을 포함하고 있는 경상도 지방은 8개의 지방(현재는 13개)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또 경상도 지방은 전라도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번창하고 있는, 비옥한 지방임이 확실하다. … 나는 증기선 갑판의 먼 거리에서 한국인들을 처음 보았다. … 한국인들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에,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 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평균 신장은 163.4센티미터이지만, 부피가 큰 흰 옷 때문에 키는 더욱 커 보인다. 또 벗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는 높다란 관 모양의 모자 때문에도 키는 더 커 보인다.”
그러한 부산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면서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발달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부산은 서민들이 살기 좋은 고장이고, 부산 사람들은 억세고 거칠다.”라고 말하는 부산이 오늘날 나라의 제 2도시로 발전을 하기 시작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였고,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난민들의 몰려와 부산의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으며, 1963년 부산직할시로 승격되었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경상도’에서
1. 일시: 2015년 1월 23일(금요일)에서 25일(일요일)까지
2. 출발시간 및 장소: 서울 저녁 8시 30분. 양재역 12번 출구 국립외교원앞 출발
전주 저녁 11시 전주 종합경기장 앞 출발
3. 참가비: 13만원.
4. 어디로 가나요:
해운대 해파랑길.용호동 갈맷길.가덕도 갈매길
가덕도
선창 도착(갈맷길걷기)
미포철길(동해남부선)→청사포(1시간,버스),
오후엔 이기대→ 용호동SK뷰@ 전망대(오륙도앞)(2시간 정도)
5 안내 도반. 송달식(부산 지역 도반). 신정일(우리 땅 걷기 이사장 새로 쓰는 택리지>‘경상도’의 저자)
6. 신청방법: 댓글로 신청하고 참가비 입금해야 완료
7. 참가비 입금계좌: 국민은행 754801-01-479097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8. 참가비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 5일전 인지: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
(2) 행사일 4일전부터 3일전까지: 참가비 50%를 공제후 환불
(3) 행사일 2일전부터 당일까지(미참가 포함): 환불액 없음
위와 같이 행사 참여 취소 시 행사비 환불을 명심하시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회비를 입금하시고 대기자로 기다리셨다가 참여를 못하시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을 없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9. 문의전화: 010-8954-2554 또는 010-9144-2564
10. 주의사항: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첫댓글 참가합니다/우종금/010-8944-7666/안성/여
참가합니다/김순복/안성/여/01044390365
참가합니다/장재원/안성/여/01044390365
가입후 처음이라 궁금한 점 여쭤봅니다
1. 1/24 해운대 온천및 각자 식사; 각자 식사란 개인 비용으로 식사한다는 뜻인지요?
2. 1/25 오륙도가원 해산; 해산이라면 돌아오는 버스편은 없는 것인지요?
참가비에 2박3일 숙,식 버스 왕복 모두 포함한 금액 입니다
금요일 늦은밤에 부산 해운대레져 찜질방에서 하루밤보내고
토요일 저녁는 기장 문화예절학교에서 잡니다
25일 점심은 오륙도 가원에서 에서 점심식사하고
오후 4시경 기행 종료 버스운행 서울로 이동합니다
참가합니다.
가선숙 여 010 5686-3396 서울
임영혜 여 010 3364-4755 안성
참가합니다/김순희/010-8599-9252/서울
참가합니다/정유순/남/010-2798-3654/양재
참가합니다/오경희외 4명(이옥분,이경수,권영옥/심현민)/여/010-9574-7098/서울
부산 이기대 갈맷길 진기바위(농바위)
참가합니다 / 김석곤(남) / 010-3681-4017 / 전주 / 송금;김석곤 부산
장재원 사정이 생겨 기행 취소 합니다......
건강이 좋지않아 기행 취소 합니다......김순복
죄송합니다.
일행 중 일부가 참가 취소를 하여 부득이 기행을 취소합니다.
참가합니다/김효웅(남)/01055242600/서울
지선명(여)/01022130133/서울
회사일이 생겨 두명 취소합니다. 죄송합니다
참가합니다/양춘계/여/01051946803/양재
참가합니다 기대됩니다/임갑영/여/010-5471-2738/양재
우리가 얼마나 호강스럽게 걷는지 아십니까? 다른 카페는 각자 부산까지와서 토 일 걷고 각자 올라옵니다 잠도 각자자고요 비용도 만만치않고 얼마나 힘들게 걷는지 우리땅 식구들은 완전 호강 호강 하는것이네요 모든 짐을 지고 걷는데요 샘께서도 예전에는 그리 걸으셨겠네요 물두멍이 2014년 10대뉴스에 우리땅만난것을 넣었더라고요 저도 동감입니다
참가합니다/최미경/01039012927/양재
오예 참가 합니다../서신일/01056536111/전주
안녕하세요.
박지순 참가신청합니다.
동행이 추가로 발생 할 것 같습니다. 010-6643-2009 /전주출발
참가합니다/박인숙/010-8628-7004/전주출발
길위에서 만나는 인문학 <부산의 해파랑 길과 갈맷길을 걷는다>는
참가 인원이 적어서 기행을 진행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참가자님의 넓은 이해를 바랍니다
아울러 입금자 님들은 010-9144-2564총무 1폰으로 환불 계좌 문자로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