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용설명서Ⅱ-열다섯 번째 이야기] 사사로운 시선으로 바라 본 과학 이야기② / 이은화

[남정언]

[역사 사용설명서Ⅱ-열다섯 번째 이야기]

사사로운 시선으로 바라 본 과학 이야기② / 이은화

인류의 자존심을 꺾고 세운 세계사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가설로 세운 이론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과학기록

과학시간과 수학시간에 필자를 괴롭힌 것은 많은 법칙과 정리였고 이론이었다. 큰 맥락에서 이론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가정이 있다는 여지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흥미조차 잃은 과목이 싫으니 선생님도 싫었던 기억이다. 그런 과학자들은 법칙과 이론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궁금해지는 시간이 신기한 학문의 신비다.

과학자들이 법칙과 이론을 구별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론적인 증명이 아닌 실험적인 증명이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법칙은 우주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다시 실험을 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여기서 다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재관찰이 가능해야 하고, 예외가 없어야 한다. 이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면 법칙이 아니라 이론이 된다. 증명을 할 수 없는 빅뱅이론과 진화의 중간단계 존재와 소멸된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진화론이 이론인 이유다. 법칙은 재관찰이 가능하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증명해도 같은 결과를 도출하지만 이론의 시작은 가설을 인정하면서 시작한다는 중요한 맹점을 안고 있다.

빅뱅이론과 진화론이 안고 있는 단점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재관찰이나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설假說에서 출발하는 이론이라는 점이다. 우주가 어느 한 점에서 폭발을 했다는 이론인 빅뱅이론은 폭발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안고 출발한다. 그래서 빅뱅이론은 시작부터 증명이 불가능한 유추다. 그래서 법칙은 서술형 어미가 ‘~이다.’ 이지만 이론은 ‘~일 것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법칙에 근거로 이론을 평가하는 것은 맞지만 이론에 근거해서 법칙을 평가하는 것은 이미 출발부터 정해진 오류다. 확실한 것에 기준을 두고 평가 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더 합리적인 이유다. 우리가 규칙과 법칙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확실한 증명 때문이다.

19세기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과학 중에서 다윈(1809~1882)의 진화론을 빼 놓을 수 없다. 진화론은 특이하게 학문적 영역보다도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나아가 생물학을 일반법칙에 토대를 둔 과학적 학문으로 만들며 코페르니쿠스와 비견될 지식혁명을 일으킨 인물로 다윈을 꼽는데 그를 빼고 진화를 설명할 방법이 없는 학문의 세계를 이룬 과학의 대명사가 되었다.

생명의 시작은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성경에 의하면 만물은 창조물이므로 우주와 자연은 신이 창조한 만물로 질서잡고 만물은 자연 속에서 창조주를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은 신이 만물창조를 약 6천여 년 전에 끝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계몽주의를 풍미하던 시대의 절대적인 사유였고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다 1830년대 초,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이 《지질학 원칙》이라는 세 권의 책에서 별들이 오랜 시일에 걸쳐 진화했다고 설명하며 진화론이 등장하며 진화론을 반기는 이들에게 불 같이 번진 영감은 과학 뿐 아니라 문학에까지 번진다.

과학은 위대한 시적 영감을 낳았다. 《식물원》으로 다윈은 바이런과 맞먹는 영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았고 윌리엄 워즈워스를 비롯한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찰스다윈의 할아버지로도 유명한 시인이며 발명가이면서 자연과학자로 알려진 에라스무스 다윈 (1731~1802)은 《유기적 생명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지구는 인간이 나타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생성되어 존재하였고 동물들이 진화하였을 것이라며 진화설을 주장했다.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기도 한 에라스무스 다윈이 남긴 유쾌한 유머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도전 정신을 독려하는 명제다. ‘당신이 아는 바보는 평생 실험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확신과는 다르게 이 같은 견해들은 가설로는 자리 잡을 수 있었으나 실증적 증명이 없어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철회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출판하고 1871년 《인류의 혈통》을 저술해 내놓았을 때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다윈은 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동물들의 여러 변종이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라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았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들을 사용하여 주장을 펼쳤는데 식량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면 필연적인 생존경쟁 현상이 나타난다는 그의 개연성 있는 설명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진화설의 창시자인 다윈은 1831~36년에 비글호로 세계여행을 하며 표본들을 채집할 수 있었다. 1831년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 등을 항해하며 조사하는 임무를 받은 비글호에 박물학자로 탑승했다. 이 시기에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태계를 조사하면서 자연선택설에 대한 영감과 단서를 얻었고, 이후 이 이론을 체계화하여 1859년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를 출판하여 진화설의 정립 및 진화의 진로 결정에서 자연선택의 역할을 정리했다. 다윈은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받는 유동적인 물질계로서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생물계로 확장시켜 생물계를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과학계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탐험을 통해 완성했다.

찰스 다윈

신에 대한 도전의 닻- 비글호 항해로 굳어진 진화론의 실체 1

영국 폴리머츠항에서 중형범선 비글호가 닻을 올린 날은 1831년 12월 27일이었다. 승선할 당시 22세의 젊은이 다윈은 박물학과 지질학, 신학을 두루 공부한 박학다식한 생물학자이기도 했지만 그의 전공은 의학이었다. 남미와 태평양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거친 바다와 섬들을 오가며 5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질학과 생물학에 집중했던 다윈은 귀국 후 3년이 지나 모든 생물은 신이 창조했다는 창조론에 도전하는 저술을 세상에 내놓았다.

후폭풍은 대단했다. 《비글호 항해기》는 출간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신념을 꺾을 다윈은 아니었고 연구에 매진한 다윈이 50세에 발표한 《종의 기원》은 다윈을 뉴턴과 코페르니쿠스에 버금가는 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다윈의 발표이후 다룰 수 없는 성역이 없어진 학문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폭발적인 과학과 생물학의 영역은 걷잡을 수 없는 파급력을 여러 분야에 끼쳤다. 다윈의 성과는 시대와 나라가 도운 과학세계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설)을 낳은 비글호의 탐사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의 바다에 대한 끝없는 투자를의 결과였다. 전 세계 해양을 누비며 조사하고 다니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의 제국의 확장을 목적으로 1820년 건조되었지만 자연과학사의 확장에 기여한 이름을 남긴 아이러니를 갖고 있는 비글호는 1870년 고물상에 넘겨져 해체되며 실체는 사라졌어도 배의 이름은 다윈과 함께 기억되고 있다. '비글'이란 이름을 사용한 역대 영국 해군 함정도 여러 척이며 우주로 쏘아 올린 화성 탐사선의 이름도 '비글'호다. 이름이 가진 상징성을 톡톡히 누리는 과학세계다.

다윈은 영국의 A. 월리스가 똑같은 진화이론을 착상한 것을 알고 1858년에 공동으로 학회에 발표하고 이듬해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생물학에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영국의 찰스 다윈은 생물체의 등장은 진화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했으며,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했다. 그러한 설명의 기초를 이루는 개념인 ‘자연선택’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 뒤를 이어 20세기에 등장한 유전학은 자연선택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세밀하게 밝힘으로써 현대적 진화설의 발달을 유도했고, 특히 분자생물학은 1960년대 이후 생물의 진화에 관한 엄청난 지식을 발달시켰다. 그럼에도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 온 명암은 짙었다. 가설에서 출발한 이론의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윈의 진화설은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되었지만 그 이론 자체로 오류투성이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하지만 진화의 이론상 진화가 이루어지면 그 전 단계의 존재들은 멸종되어져야 한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크로마뇽인은 존재하지 않듯이 원숭이도 멸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원숭이는 여전히 종족을 보존하면서 존재하고 다윈이 주장한 진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이 존재한 후에도 원숭이가 존재할 수 있다 해도 오늘날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중간 단계의 생물이 존재해야 하지만 유전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아니더라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가설에서 채운 과학적 상상력의 한계다. 반박과 이의를 제기하는 일에 충실하다가 눈부신 학술적 성과까지 그의 오류에 묻어서는 안 된다.

진화는 모든 학문에서 연구해야 하고 밝혀가야 하는 중요한 갈래다. 출발에서 가설을 충족하기 위한 여러 가지 관찰과 실례들이 완벽하게 채울 수 없는 진화론은 이제 진화설이라고 한다. 이미 학문적 가치로서의 진화론은 다른 의미의 진화를 설명하는 기제로 사용하고 있다. 다윈이 안다면 섭섭할지는 모르나 그의 마지막에 했다는 유언과 같은 고백은 그의 실험적 성과가 만족 할 수 없었던 과학자의 미련일지 모른다. ‘나는 진화론자가 아니다’라는 그의 고백이 자존심을 접는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갈릴레이처럼 실패가 쌓이지 않는 과학의 길은 없음을 보여줄 뿐이다. 훗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진행 중인 길처럼.

인류의 정신을 분석하다–무의식을 통해 환자를 양산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년~1939년)

정신병을 기록한 백서에 따르면 편집증과 기피증을 비롯해서 정상작인 아니라고 판단되는 장애를 병에 추가하며 해마다 늘어나는 정신병명이 적지 않다고 한다. 환각이나 분열과 같은 중증 병명이 아니더라도 집착과 무기력도 장애로 보는 질명이라면 정신병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듯하다. 집요하게 사람이 겪는 정신이상적인 증상을 증가시키고 새로운 해석까지 보태며 백서에 다양한 정신분석이상증상의 기록에 일조를 한 학자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프로이드는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과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해 유명해졌다. 그는 분석의 대분분을 차지하는 인간 생활의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성욕을 정의했다. 또한 그는 치료 관계에서 감정 전이의 이론에 실체는 없으나 경험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꿈을 통해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며 치료 기법으로 활용하며 뇌성마비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하다.

서구식 사고방식 전체를 뒤집어엎은 인간 이해의 전환을 이루어낸 정신분석학은 당시에 의식 영역만을 학문의 탐구 대상으로 삼던 전통적 사고방식을 뒤흔들고 정신이 상당부분 욕망과 충동에 연관된 무의식에 의해 규정받는다는 점을 규명한 프로이트였다. 현대 철학은 이론적 설명을 넘어 꿈 해석과 신경증 임상 실험을 통해 실천적으로 정신을 증명하고자 했던 프로이트를 무시하고는 논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에게 의존해 왔다. 정신분석 이론과 심리학을 대표하는 사상가로는 프로이트를 비롯하여 아들러(Adler, 1870~1937), 융(Jung, 1875~196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들이 개척하고 다룬 영역은 개념도 생소한 무의식이었다.

무의식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대중화한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핵심과 주요 내용이다. 무의식적 갈등이 정서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그의 이론은 이후 자연스럽게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며 최면과 최면이 어떻게 신경증 치료에 도움을 주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현재도 유용한 ‘대화치료’로 발전하여 알려져 있는 자유연상(심리 역동이론)과 꿈의 해석에 대해서 이를 지지하며 최면술을 포기하기도 했다. 특히 프로이트가 발표한 이론으로 자기를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기제’는 무의식 차원에서 작용하기도 하면서 현실을 왜곡하게 지각하여 불안을 감소시키도록 돕는다는 개념으로 현대인들은 이러한 임상 결과에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고 있다. 프로이트의 자유 연상 기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신에 관한 연구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제한적인 임상실험에 매달린 오류로만 볼 수 없는 그의 연구 결과는 여전히 진행 중임에도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라 일컫는다.

프로이트의 분석은 처음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의 정신분석이 실험대상에 대한 임상적인 사례에 치중했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실험결과를 가지고 해석한 인간관이 편협해 진 이유도 알 듯하다. 양적으로나 실험적인 연구를 거의 무시한 연구 결과라고 주장한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임상실험은 계속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신프로이트주의는 프로이트의 많은 이론을 버리거나 수정하기도 했지만 그의 방법과 개념은 여전히 임상 정신역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생각이 인문과학과 일부 사회과학에 영향을 끼치는 철학으로 자리한 까닭이다. 그가 이룬 학설과 놀라운 이론이 보여준 과학적 성과에도 오류가 있음을 알게 해 준 학자로서 많은 논쟁의 중심에 선 프로이트다. 분명한 것은 누가 프로이트의 위대함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지는 안다. 비판과 논쟁 때문에 분명해진 그의 이론의 실체를 알고 있고 도움을 받은 자들이다. 프로이트의 자긍심은 다른 이들의 평가와 비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하지 않았던 어려운 일을 스스로 시도해 보았던 사실 자체에서 높은 가치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낮아진 자존심은 인류 몫이 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비판받는 드러난 욕망의 에너지 실체–상대를 유혹하거나 제어하는 성욕

프로이트의 이론들과 환자에게 행한 치료방범은 19세기에 비엔나에서 논쟁이 되었고 여전히 논란이 뜨거운 오늘이다. 프로이트의 아이디어는 그것들을 과학적 의학적 논문으로서 계속 논의되면서 문학, 철학, 여러 문화영역에서 다루며 논의되고 분석되어 왔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가 개척한 인간의 무의식 영역과 본능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물들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그것이 프로이트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검증과 반증이 필요한 이론임을 증명하는 차원일 뿐이다.

진행 중인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주요한 에너지인 리비도에서 여러 영역으로 확장되어 갔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정신 에너지인 리비도*를 인간의 성적 에너지라고 주장한데서 비판과 논쟁은 시작되었다, 인간을 무의식에 휘둘려지는 수동적이고 병리적인 존재로 보면서 리비도를 인간의 성적 에너지로 제한한 프로이트의 인간관은 인간의 이해를 연구하는 시작이 장애에서 출발한 것이다. 게다가 주요한 개념인 무의식을 인간 정신의 자각 수준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비판과 논쟁거리가 되었다. 정신분석이론과 함께 분석심리이론으로 단짝처럼 붙어 있지만 프로이트의 영역과 개념의 확대에 이바지한 학자가 칼 융이다.

리비도와 무의식이 성적인 부분만 아니라 다른 삶의 에너지를 포함한 생활에너지로 본 칼 융은 인간관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인간은 수동적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강조했으며 집단무의식이란 개념을 도입하여 무의식의 개념 확장을 꾀한 학자다. 보다 긍정적인 인간관에 접근하며 분석심리이론을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도 다른 학자들에게 비판의 빌미를 주고 도전을 받는 학자임은 프로이트와 다르지 않다. 그가 받는 비판의 영역이 확장되었지 완전한 이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학에 완성은 없는 법이다. 프로이트와 다른 방법으로 연구하고 확장했다는 의미이지 프로이트에게 이겼다는 의미가 아닌 융의 연구 결과다.

프로이트는 신체 부위에서 리비도의 이동에 따라 쾌감을 추구하는 신체부분 또는 방법이 달라지는데 따라 발달 단계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성욕기로 나누는데 이를 심리성적 발달 단계(psychosexual developmental stage)라고 한다. 단계별로 자신의 신체부위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전성욕기〉(pregenital stage)와 이성관계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성욕기〉(genital stage)라고 나눈다. 성욕에 발달 욕구에 따라 인간의 본능 욕구도 달라진다고 보았던 프로이트의 판단이 오류를 보였음은 그의 임상실험에 참여한 대상들에게 적용된 경우에 해당한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성에너지에 집중하고 근거한 연구를 중심으로 프로이트가 주창하고 진행시켰던 정신분석학은 현재의 광범위한 정신분석학 영역의 근간이 됨을 부인할 수 없고 그의 실험대상에 대한 다양한 창의적인 접근 방법이 현재에도 무시할 수 없는 실험적 방법론에 우선하기에 여전히 정신분석학의 중요한 영역으로 남아있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렇게 과학의 역사도 시대를 통과했던 다른 이론들을 수용하는 아량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론이나 가설의 주장으로 인해서 패자는 아닌 까닭은 옳고 힘이 있는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틀린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분석방법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과학의 역사는 기록하고 끝나지 않는다. 한번은 접어야하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과학만큼 앞선 학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서 발전하는 학문이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론에 반증의 칼과 무의식의 영역과 본능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물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논쟁의 칼을 들이댄 일에 잠간 프로이트의 자존심은 상했을지 모르나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신분석학과 칼 융에 의해 분석심리이론에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자신도 과학자들과 연구하는 이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그 자리에 이른 것을 프로이트는 알고 있을까.

융

에필로그-가설과 이론이 증명하는 들여다보고 싶은 사사로운 시선을 위한 자세

우리가 아는 역사를 끄집어내려면 무엇을 먼저 떠올리는가, 인물이나 사건일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때를 알리는 숫자에서 시작한다. 로마를 알고 그리스를 안다고 하는 이들이 만든 역사가들과 시인이 밝히는 숫자 뒤에 따라 나오는 이야기가 전부다. 한 순간에 무너진 아스텍문명과 잉카문명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 정복자들과 그들에게 선교하려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얻을 수 있었다. 역사도 검증과 논쟁이 필요하다.

패자들의 진실이 증명된 경우도 있다. 정확한 의미로 패자는 아니나 그들의 견해나 연구 결과가 오류로 밝혀지는 순간에 과거의 명성과 지녔던 가치는 곤두박질 친 이야기는 심각한 오류로 인한 학설이나 증명이 필요 없는 이론이 되어버린 과학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 솔직한 사실이다. 당시 70세 노인이었던 갈릴레이는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을 추구하던 사람들에 의해 진일보한 과학적 성과는 묻히고 억울하게 희생양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빚어지는 정치 상황에서 갈릴레이 사건처럼 훗날 학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타협과 조율처럼 보이는 과학자의 무너진 자존심에 웃을 수만은 없겠지만 자신의 부족을 채우고 보완하고 새로운 이론과 법칙을 세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미소에 담긴 것은 흐뭇함이지 않을까. 과학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밝혀 낸 학문의 서술과 앎의 확장이 목적인 까닭이다.

진공 상태를 증명한 것은 기원 전 이론이 나오고 2000년이 지난 1641년 갈릴레이의 제자인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에 의해 의외로 간단한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진공을 가장 먼저 언급한 학자들 가운데 하나인 데모크리토스가 기원전 5세기에 물질이라고 여기는 것은 텅 빈 공간에 떠 있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파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맞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명제를 내세웠고 나아가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반박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2천년을 유지되 온 학설이 깨지는데 2000년이 걸린 것이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에 많은 짐을 안긴 인물이 된다.

토리첼리는 유리관을 수은으로 채운 후 수은으로 채운 그릇에 거꾸로 세웠다. 그러자 유리관 속의 수운이 내려가면서 위쪽에 빈 공간이 생겨났는데 수운 때문에 공기가 유리관 속으로 들어 갈 수 없는 빈 공간은 진공일 수밖에 없음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실험으로 토리첼리는 최초로 진공상태를 지속시키는 과학자가 되었고 실험을 되풀이 하면서 수은 기둥의 높이가 매일 변하게 하는 원인이 대기압의 변화에 의한 것임도 밝혀 수은 기압계 발명으로 이어진다. 의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실험이었고 의문은 곧 확신이 되어 뛰어난 학자들이 뒤를 이어 이론을 뒷받침할 법칙을 완성해갔다.

비어있는 공空의 공간은 동양 사상의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지만 불교와 힌두교에서 모든 중생이 미혹한 생각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노자는 바퀴살 서른 개가 한데 모여 바퀴통을 이루는데 그 가운데는 비어 있음으로서 수레가 쓸모를 지니게 된다고 공의 효능을 역설하기도 했다. 철학은 과학의 시작이고 통로다. 모든 갈망이 같은 방향이 아님을 알지만 그것을 이끈 힘은 무지를 깨뜨리려는 욕망이었다.

연금술의 시작도 욕망이었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영원한 것(금)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고 그것의 결국은 영생이 아니라 화학이 되었고 인간을 위한 과학의 여정을 함께 해왔다. 그것을 이루려는 여러 기술은 배소(焙燒-광석 처리의 방법으로 산화를 촉진시키거나 증발하기 쉬운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광석을 가열하는 것.), 부패와 용해, 증류와 융합 그리고 승화가 필요하다. 마지막 단계인 승화에서 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금은 어떤 물질의 합성과 제련으로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하여 인간이 획득한 것은 어마어마한 과학 영역인 화학이었고 연어의 연금술인 철학이다.

낯선 실험적 정신으로 질서를 깨뜨리는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번영과 안녕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되었다. 다윈의 자연 선택이 우성과 열성을 가르고 다른 종들과의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음은 지금 현존하는 생물들의 증명으로도 넘친다.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전복하려는 무기가 날카로워질수록 방패도 두꺼워지고 파괴력이 클수록 인류는 위험해지는 이치를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이유다. 공멸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로 성숙해져야 하는 것을 깨닫는 역사의 장이다.

이제까지 역사의 흐름은 안전한 방향으로의 전진이 아니라 실패와 도전, 적응과 응전을 거듭하며 쌓아 온 바벨탑의 기록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방향이다. 실패와 오류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채워가며 쌓아 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언어의 생성과 확장에서도 반증이 가능하다. 필요에 의한 언어는 그 시대를 대변한다. 불편하거나 부족을 느끼지 않으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집중은 일어나지 않는다. 언어의 분화와 심화도 시대를 따라 쇠퇴하고 발달해왔고 신조어와 사어를 만들어 간다. 문화와 역사는 언어의 발명이 만든 결과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물며 증명과 반증이 생명인 과학에서 일군 결과물임에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앎을 위한 과정이 전개되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우면서도 도전과 응대를 해 온 인류가 가진 기록이 과학이다. 또 과정을 통과하며 실패를 거듭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인류에게 최고의 자산이 뇌에 대한 연구를 스스로 밝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대응과 적응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미지의 존재와 미완의 상태는 인류의 새로운 도전의식을 부여하고 학문을 확장시키는 동기를 제공한다. 여전히 과학은 팽창해야 하는 미지의 학문이다. 불가사의란 신기한 영역이 아니라 아직 이해되지 않은 현상과 법칙이 남아있는 미지의 영역에게 붙인 도전이 생명인 미답의 영역이란 의미다.

이전 것이 틀렸으니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리를 내주며 존재의 의미를 더해가는 것이 과학이고 문화라면 이전 것이 있었기에 오늘의 과학이 존재하고 어제의 영감이 있었기에 오늘의 철학이 빛을 발한다. 오히려 의문과 오류에서 무엇인가 읽고 찾으려했던 그들의 노력이 빚어낸 혁혁한 성과에 빚진 우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후대 철학자에게, 다윈이 과학자에게,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한 신선한 발상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유추는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사유의 한계를 제한하지만 않는다면 언제고 쌓이고 그 길에 들어 선 누군가 넘을 고비이기에 한번 쯤 무너지는 자존심에 무릎 꿇는 과학자들에게 보낼 찬사는 존경이면 충분하다. 그들이 꿇은 자존심은 인류 몫이기 때문이다.

*리비도 : 정신 분석학에서 말하는 성적 본능이나 충동.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발달해 가지만 도중에 중지되기도 하고 거꾸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융은 이 말을 성적 본능만이 아닌 모든 본능의 에너지라는 뜻으로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