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내시경] 서래마을-프랑스 분위기 물씬, 서울 속 몽마르뜨
주간경향 2021.05.10
서울 서초구 반포동 뒤쪽 긴 언덕을 끼고 서래마을이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이름은 몽마르뜨길, 언덕 위엔 몽마르뜨공원이 있다. 서울에 낯선 이름의 길과 공원이 있는 까닭은 이곳에 프랑스 사람들의 거주지와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기가 휘날리고 담벼락엔 프랑스 출신 시인의 낯선 이름이 명패로 붙어 있다.
색다른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화제가 된다. 서래마을은 서릿마을 또는 서애마을로 불렸다는데 마을 앞 개울이 굽이진 모습이 서리서리 흘러내려 붙은 이름이다. 서양인들이 많이 와 사니 차라리 서래(西來)마을이라 해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서래마을은 재벌가와 유명인들이 거주하는 대형 빌라들이 골목을 메우고 있다.
강남 개발 막바지에 서래마을 일대는 강을 건너온 부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모여 부촌을 이루었다. 넓은 대지를 가진 양옥이 들어서 강남의 평창동이란 별명을 가졌다. 1981년 프랑스 학교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 고속철 공사를 위해 한국에 온 프랑스 기술자들이 모여 살면서 지금과 같이 프랑스 마을 분위기가 생겼다. 마을 곳곳에 프랑스풍 카페와 과자 집, 와인 가게는 골목의 명물이 됐다.
언덕 위아래가 확연히 다른 분위기
서래마을의 분위기는 언덕 위아래가 확연히 다르다. 몽마르뜨길 위편은 대부분 고급 빌라들이 진을 치고 있고, 아래쪽엔 식당과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아랫마을엔 오래된 집들도 몇채 남아 있지만, 위쪽에는 근래 새로 지은 건물 일색이다. 골목은 직각과 직각이 만나 곧은 직선으로 이루어져 길 어귀에서 길 끝이 막힘없이 보인다.
잘 정비된 골목에 고급빌라들이 줄을 잇는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화분이나 방치된 자전거며 쓰레기봉투 따위는 골목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봄볕이 쏟아지는 골목 안엔 인적도 찾기 힘들고, 빈틈없는 담벼락과 옹벽이 지키고 섰다. 사방에 널린 보안카메라가 행인의 몸짓과 눈짓까지 지켜보고 있다. 간혹 일없이 어슬렁거리며 두리번거리면 곧바로 빌라촌을 지키는 경비원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봄날이지만 골목 안 표정은 냉랭하다.
대개 부촌일수록 담벼락은 높고 경계는 삼엄하다. 이곳도 마찬가지라 세상과는 단절을 선언한 분위기다. 골목 안에 흔한 가게 하나 볼 수 없고, 주택가에 있을 법한 식당이나 학원 따위는 흔적조차 없다. 서울의 골목마다 흔한 부동산 업소도 보기 힘든 마을이다. 장은 어찌 보고 무얼 먹고사는지 흙 파먹고 살아가는 백성으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다.
골목 안에 프랑스 음식점과 맛집들이 숨어 있다.
골목을 싹둑 잘라 어디선가부터는 오직 대형 빌라들만 존재한다. 이곳 사람들은 고독을 좋아하고 한밤중 소주 한병을 사러 슬리퍼를 끌고 골목을 나설 필요가 없는 듯하다. 사람의 훈기가 사라지고 사치와 허영의 과시가 가득한 골목이지만, 성북동이나 평창동 등지와 다른 점은 비교적 접근이 쉽다는 점이다. 가끔 동네 구경을 나온 듯 양산 쓴 유람객들도 보인다. 점심시간쯤이면 조달청 직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씩 든 채 골목을 산책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반포대교에서 서초동으로 곧장 난 길은 반포대로다. 그 길을 사이로 서울성모병원과 조달청, 국립도서관과 서초경찰서 등이 있고 서초역 주변으로 법원단지가 있다. 자칫 번잡할 수 있으나 서래마을의 동쪽엔 완만한 경사가 녹지 또는 관공서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반포대로의 소란을 차단하고 있다. 봄이면 온갖 꽃들이 밭을 이루고, 사계절 내내 숲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전해 그에 기댄 서래마을 골목길에 생기를 준다.
반포동 일대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몽마르뜨길에서 내려다보면 도도한 한강의 물길과 멀리 북악이며 북한산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배산임수에 풍치 좋은 전망을 두루 갖췄다. 부촌이 생길 만한 입지다.
서래마을의 빌라들은 대개 2000년대 이후 지은 것이다.
골목의 적막을 벗어나고 싶으면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된다.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호텔을 중심으로 아랫마을 골목 곳곳엔 빵집도 있고 술집도 있고 국숫집이며 초밥집까지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판이 깔려 있다. 주변엔 관공서도 있고 그만그만한 직장들도 있어 식당 골목은 늘 붐빈다.
꽤 이름난 한정식집 주차장엔 고급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대기 중인 기사들이 봄날 한낮의 졸음에 하품하고 있다. 일찍 핀 라일락과 늦게 터진 자목련이 식당 주변의 인간사를 굽어본다. 시름이야 사람이 가진 것이고 꽃이야 무산자의 비굴함이나 굴종 따위와는 상관없는 존재이다.
근린시설은 서래마을 입구에 몰려 있다.
동네 정체성 중심에는 프랑스 학교
세탁소 벽엔 명품 수선 간판이 커다랗게 붙었다. 백화점 명품관을 통째로 옮긴 듯 온갖 명품 상표는 다 적어두었다. ‘장롱 속에 잠자는 옷 깨우는 집’이란 간판이 주인장의 솜씨를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장롱 속에 잠든 옷들도 다 명품이구나 싶다. 골목을 오가는 차량이나 얼핏 보이는 주차장의 차들도 비싸다는 차종은 모두 망라된 곳이니 세탁소의 자부심도 수긍이 간다.
몽마르뜨길을 한참 올라 숨이 막힐 때쯤이면 소란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한다는 파랑·하양·빨강의 프랑스 국기가 태극기와 함께 걸려 있다. 프랑스 학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프랑스 어린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한다. 이태원에 있다가 1981년 서래마을로 이사 온 후 이 동네 정체성의 중심엔 프랑스 학교가 있다. 학교 주변으로 금발의 모자가 개를 끌고 산책하고, 학교 옆 식당은 프랑스 요리가 전문이다.
골목 안에서 프랑스의 삼색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볼 수 있다.
우리가 다행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니라서 오직 그들을 예술과 낭만으로 기억하고, 파리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동경한다. 파리 길바닥의 분뇨와 쥐 떼와 이방인의 분노를 볼 수 없는 것이 다행이다. 그래서 서래마을의 프랑스풍은 아무래도 낯설다.
서래마을에는 우리 땅에 사는 프랑스인의 상당수가 살고 있다. 그래 봐야 500명 남짓이라 머릿수로 보면 크지 않고 학교를 빼고는 프랑스 색깔이 별로 없는데도 음악회며 축제 등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이 많다. 프랑스인과 외국인의 한국 적응을 위해 ‘서래 글로벌 빌리지 센터’도 있다. 우리말도 가르치고 프랑스어도 배울 수 있다. 센터장은 당연히 프랑스 사람이고, 직원도 프랑스 출신이 여럿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인 중심인 ‘한불친선연합회’도 있고, ‘한불부인회’ 등의 모임도 있다. 서울엔 몽골, 중국, 베트남, 필리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가 곳곳에 있지만, 그 어느 곳도 서래마을처럼 문화 축제가 열리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꼴은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와인과 샹송이 없기 때문일까.
이곳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기업체의 임원이란다. 한국 체류 기간은 길어야 3년을 넘지 않고 수백만원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회사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 분위기답게 체류하는 이방인들도 부유한 셈이다.
프랑스 학교가 서래마을의 상징적인 시설이다.
프랑스 마을이라는 별명과 프랑스풍 카페와 와인바 덕에 이곳은 유람객들의 명소가 됐다. 주택가의 적막과 달리 프랑스 학교 아래 골목은 젊은이뿐 아니라 중년의 유람객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스마트 폰으로 위치를 찾고 손짓과 함께 소곤거리며 사진을 찍는 모습도 흔하다. 카페 앞에선 집시풍으로 멋을 부린 악사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는 “여긴 말로만 프랑스가 붙었지, 치즈 몇조각 빼고 다 메이드인 서초구”라고 했다. 그런 탓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바라던 소풍객들은 다소 실망한 모습들이다.
400년 은행나무 있는 ‘파리15구 공원’
서래마을 어귀에는 400년 남짓 된 은행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과거엔 마을 당제가 열리던 신성한 목신으로 추앙받았다는데, 지금 이곳엔 ‘파리15구 공원’이라는 낯선 이름이 붙었다. 나무 한 그루에 얽힌 사연은 복잡했다. 큰길 가에 넓은 터를 깔고 앉은 터라 나무를 베어내고 상업지구로 개발하려 했는데, 주민들이 땅을 사들여 헌납했다고 한다. 무려 120억원을 모았다니 부촌 주민의 힘을 과시한 셈이다.
은행나무공원이 됐다가 다시 한국 프랑스 수교 기념으로 파리15구와 서초구가 결연을 한 덕에 이곳은 ‘파리15구 공원’이 됐다. 가끔 프랑스 바자회도 열리고, 음악회도 열리고 프랑스 미술가의 벽화도 그려졌다. 파리의 15구에서도 한국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은행나무 한그루가 나라와 나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실마리가 됐다.
편의점 주인 말로는 “이 동네 주민들이 겉으론 무심한 듯해도 의외로 결속력도 있고 추진력도 강하다. 자기들끼리 가족 모임도 많아 끼리끼리 똘똘 뭉친다. 자부심도 크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은 골목 안 연대는 강한 것이니, 다만 겉에서 엿볼 수 없을 뿐이다.
서래마을 일대는 당분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것 같다. 집 보러온 이들을 안내하던 부동산 업자는 “오래된 연립 몇채 말고는 더 개발할 곳이 없다. 주민들도 돈 아쉬운 사람들이 없고 비교적 새집들이라 지금 상태가 한 20년은 가리라 본다”고 했다. 집을 보러온 이에게 자금에 맞춰 서래마을 밖 사이길 주변의 구옥을 소개하러 간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여기는 전세도 10억이 훌쩍 넘는다”고 했다. 조금 넓고 깨끗하다 싶으면 30억을 넘는 것이 시세인데, 그마저도 내놓는 물건이 별로 없단다.
서민들에게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곳이지만, 주거환경을 살펴보면 서래마을은 살기 좋은 곳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형 병원이 있고, 경찰서며 법원단지가 지척이다. 국립도서관이 옆에 있고 학교가 곳곳에 있다. 아주 가까이 지하철과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어 서울 전역과 전국 곳곳으로 길이 뻗어 있다. 강북을 바라보고 앉은 마을은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있어 풍치도 좋고 골목은 잘 정비돼 있다. 그러니 부자와 유명인들이 드러나지 않고 깃들어 살기에 적합한 곳이 됐다.
다만 서울의 다른 동네,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골목길도 이곳처럼 잘 정비되기를 희망한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의 꿈일 것이다. 모든 골목이 서래마을의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다. 서울의 골목을 걷는 모두가 걱정 없고 내일의 생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 서래마을 골목길은 이방인도 자기 앞의 현실을 잊고 부자가 된 기분을 그리며 느긋하게 걸어볼 수 있는 곳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