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HEADLINE]게임 끝. 네티즌, 제2 소리바다 둥지 확보(1)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외양간 불을 끄려다 초가삼간 다태울 음협의 우매함
자, 어쩔 것인가. 바로 이것이 바라는 상황이었나? 음반협회는 네티즌을 얕봐도 한참을 얕봤다. 결국 앞절에서 서술한 WinMX의 확산을 통해, 현상황은 외양간 불을 끄려고 물이 아닌 기름을 부어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 돼버릴 것이다.
앞서 인용한 헤드라인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그들이 마주하는 대상이, 단지 소리바다문제를 주제로한 협상 테이블 너머의 소리바다 운영진이 아니라 네티즌이고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말도 안되는 수단을 채택해선 될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음반협회의 우매함이 빚어낼 결과가 될 수 있다. 아니, 그 책임을 음협에게만 묻기는 곤란하다. 순식간에 복제가 이루어지고 이를 가능케 하는 각종의 툴이 산재한 인터넷의 능력과 속성을, 오프라인 중심의 비즈니스 관행만을 접해본 그들에게 미리 알아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터이다.
업계를 들끓게 하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건 간에 다 좋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앞선 일지에서의 7월 14일 이후 뜨겁게 타올랐던 논쟁에서 사후의 대비책이 논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로지 (법, 도덕)논리만이 오갔다. 네티즌들은 그들의 손에 쥐어진 보검을 휘두르는 데 능하다. 그런 네티즌들과 급변하는 경제 패러다임에 합당한 대책이 논해졌어야 옳았다.
이제는 네티즌의 행보를 뒤쫓기란 아예 요원해졌다
장님 문고리 잡는 모양새로 현재의 문제를 논단한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 또 그럴 능력도 없다. 혹여 지금의 WinMX 확산 운동도 법논리로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란 것을 지적하고 싶다. 오프라인 사고방식으로 법논리를 들이대어보았자 먹힐 상황이 아닌 것이다.
미국에서도 물론 냅스터 이후 떠오르는 p2p 프로그램에 대해 제재의 칼을 세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미국 음협과 공조해 WinMX도 제재를 가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온갖 절차와 세월을 뒤로한채 네티즌들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대체 프로그램을 찾아나서고 이를 확산시킬 것이다.
네티즌들이 고부기나 매니악 등 소리바다 유사의 국산 p2p 프로그램을 뒤로하고 외산 WinMX을 선정해 확산시키는 이유를 주목하라. 한발 앞서 뒤쫓지 못할 프로그램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외산 프로그램을 선정한 이유다.
행여 1-2년 후 WinMX마저 무너뜨린다 해도 그 다음 행보는, 아예 본국에서 합법화 인정을 받은 네덜란드 프로그램 KaZaA나 아예 서버도 필요없는 GNUtella 방식의 p2p 프로그램인 Bearshare, Morpheus 등이 될 것이다.
당장 소리바다 서비스를 복원하라
상황이 이만치 진행은 되었지만 여전히 길은 있다. 어차피 소리바다를 폐쇄하려던 목적이 갈취당한다고 느끼던 저작자들의 정당한 수익을 되돌려받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현재처럼 소리바다를 서비스 중지시킨다고 하여 네티즌들이 현구도 속에서 제대로 시디를 팔아줄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이미 음반 불매운동에 덧붙여 제2의 소리바다까지 밀고 있는 판국에 게임은 끝났다. 그렇다면 잠재 소비자들을 영향권 내로 불러들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 상황이 신토불이를 외칠 상황은 아니지만, 한국 네티즌들에게 국산 프로그램이 더 친숙하고 더 좋은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네티즌들은 돌아온다.
지금 당장 소리바다 서비스를 복원하여 돌아온 네티즌들과 제대로 교통하라. 중언컨대 음반협회가 마주해야 할 상대는 소리바다의 양씨 형제가 아니라 네티즌임을 명심하라. 음반을 팔아줄 것도, 현상황을 음협의 손에서 떠나게 할 위협(?)적 존재도 네티즌이다.
그리고나서 음협이 마주한 저작권의 현실이든 질곡이든 타개할 방책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호도하지 말라. 문제는 현 가요계의 기형적 구조이다
영화 파일들이 그토록 인터넷을 떠돌지만 여전히 영화산업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극장과 모니터의 생동감 차이도 한 몫 하리라고 본다. 어느 누구도 극장에서 본 ‘스파이더맨’의 실감과 모니터로 접하는 ‘스파이더맨’의 스토리텔링 위주의 감상이 같다고 보는 이는 없다.
이미 월드컵 응원을 통해 동호인과 함께 현장의 벅차오르는 감동을 우리 국민은 접했고 그 가치를 체험했다. 흔히 빠순이로 지칭되는 오빠부대들이 접하는 미칠 듯한 감동은 가수에 대한 애정 더하기 공연장에서의 감동이다. 이것을 어찌 CD나 mp3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TV나 가수 기획사에 의해 휘둘려지는 현 국내 음악의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낸 폐해는 익히 알만치 안다. 또 서태지 이후로 서태지의 혁명성이 전한 긍정적 영향만큼이나 그를 기점으로 파행적으로 가요계를 강타한 댄스뮤직의 10년 독주는 오로지 10대 위주의 주류 댄스 음악만을 양산했다. 10대에게도 어필하는 태진아 등의 트롯 이외에는 비주류 가수들은 모두 밤무대와 미사리로 밀려갔다.
요컨대, 전국민이 자기의 취향에 따라 찾아들을 수 있는 가요계가 아닌 것이다. 현재의 소리바다 사태는 바로 이 지점을 냉혹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 가요계의 본원적 문제를 풀어내는 것에서 소리바다 사태의 해결 고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소리바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점을 바꿔라
다시말해 소리바다 사태에 대한 논쟁의 논점을 바꿔서 현상황을 대국적으로 접근하라.
영화가 현장에서 주는 감동을 우리 음악은 전 국민에게 고루 전해주고 있는가. 영화가 한 인간의 인생을 바꿔줄 만한 큰 경험을 제공한다면, 서태지 이후 그런 강렬한 경험을 제공하는 음악은 우리의 주변(흔히 접하는 TV를 말함이다)에 얼마나 있는가.
mp3보다 더 음질좋은 CD, 현장감을 생생히 전해주는 실황음반을 황홀해하며 구매하게 하는 공연장에서의 경험은 얼마나 폭넓게 제공되고 있는가. 이름 석자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2-30대 여성팬을 양산한 이승환의 콘서트 퍼포먼스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말이다.
또 오히려 10대보다 음반 잠재 구매력이 더 뛰어날 3-40대로부터 음반구매를 유도하지 못하는 현상황은 무엇때문인가. 왜 그들이 차를 몰고 미사리까지 가서 옛추억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거며, 혹은 아예 음악에는 담쌓고 지내야만 하는가. 그러다 나이들어 자식들이 마련한 효도 콘서트에 떠밀려가서 옛 가수들을 만나야 하는가.
나이든 컴초보 음악팬들이 자신의 미진한 컴퓨터 실력으로 인해 자식들의 질책과 도움을 받아가며 옛가수들의 노래들을 검색하고 다운받아 즐길 수 있게 하는 공로가 소리바다에겐 있다.
무엇이 선후인지를 파악한다면 이런 우리 음악계 전반의 현실이 옳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며 우리 음악계를 올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기울여진다면 다른 문제들의 해결은 당연히 뒤따르게 돼있다.
디지털 혁명은 당혹스럽거나 즐거운 경험을 예상치 않은 곳에서 제공하지만 그것의 기본은 우리 삶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격변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또한 우리의 삶에서 문제해결의 고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