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에는 세계 제 3대 축제(브라질의 리오 축제, 독일 뮌헨의
옥토버 축제와 더불어) 중 하나인 눈축제가 2월 5일부터 11일 까지
일주일간 열린다고 한다. 전후의 침체된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기획했다는 그 축제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200만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니 부러운 일이다.
삿뽀로 시내 동서로 155미터나 쭉 벋어 있는 오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직접 눈 조각을 전시하기도 하고 국제 눈 조각
콩클 대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축제 기간 중 밤이면 눈 조각상을
비추는 조명이 참으로 환상적이라던데, 눈 축제가 지나도 한참
지난 4월말이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폭이 좁고 길게 느껴지는
오오도리 공원은 우리 집 옆의 놀이터, 목련공원보다 더 썰렁하고
볼품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는 박물관과 전시실이 되어 있는 삿뽀로 구 도청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빨간 벽돌 건물 위에는 삿뽀로의 상징이라는
북두칠성이 걸려있었다. 일본의 식민시대를 가졌던 우리로서는 그
건물이 너무 낯익어 새로울 게 없었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게 우리보다는 약 삼백년 앞섰다는 일본,
미일 화친조약으로 1854년 하코다테가 개항하면서(이번 여행에 포함
되지 않은 곳) 많은 서양 사람들이 환대를 받으며 초대되었던가 부다.
"Boys, be ambitious!" 라는 명언으로 우리에게도 꿈을 심어줬던
미국의 교육학자 클라크 박사는 홋카이도 개척으로 아버지로 칭송
받고 있었다.
일본의 본토는(도쿄가 포함되어있는 혼슈 지역) 유럽의 영국을
모델삼아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홋카이도는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한참 역동적으로 기존의 원주민 아이누 족을
정벌하면서 개척이 이루어지던 당시, 키가 180 센티나 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포악했던 관료 쿠로다 키요타카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는 중앙 정부로부터 타온,
20년의 계획아래 들어가야 할 돈을 단 3년 만에 다 써버릴 만큼
(물론 공적인 일에) 역동적이었다는데... 그는 또한 우리나라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는 1876년 강화도 조약 때 일본측의 전권대사로
건너와 우리나라 관리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단다. 그런 그가 언젠가는
병약하고 젊은 자신의 마누라를 하찮은 이유로 (집에 돌아왔을 때
꾸물대며 빨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던가) 단칼에 베어 버렸다 한다.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 사람의 친절과 상냥함 그리고
철저히 속마음과 겉마음을 따로 챙기는 문제... 를 우리는 참 많이
들어왔다. 사람의 기질과 개성은 각자가 태어난 지리적 사회적
환경이 크다는 생각을 나는 늘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문을 숭상하는
문화였고 일본은 무를 숭상하여 사무라이가 지배계급이 될 수 있었던
점이 두 나라 또 하나의 차이점인 것 같다. 서민들로서는 우리나라처럼
권력을 쥐고 있는 양반도 무서웠겠지만, 사사로운 감정으로도 기분이
나쁘면 목을 뎅강 쳐 버릴 수 있는 사무라이가 더욱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속으로 기분 나쁘고 끓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은 이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외부적으로 화합과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일념이 일본 사람의 국민성 일부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비루전의 마누라가 이곳까지 왕림하게 된다는 정보가 어찌
사전에 누출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기왕에 멀리 이곳까지 왔는데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심정으로 바쁜 와중이라도, 이제는 박물관이
되어있는 이 유서 깊은 삿뽀로 맥주 공장이나 견학하면서 시음까지
하심이 어떤가... 주최측에서 간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상하면서 그곳에 들어섰다.
맥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이곳 삿뽀로 지역처럼 좋은 물, 보리,
그리고 홉이라는 재료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1876년도에 생산이
시작되었다는 그곳의 맥주는 맥주 자체도 그렇지만 용기 또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 모양이다.
대낮에 운치있고 클래식한 실내에서 공짜로 맥주 한잔을 시음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나는 혀가 좀 둔한지
확실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명닥이 있었으면 명쾌한
결론을 내주지 않았을까 아쉬워했다.
시내의 오가는 길에서는 북한산 정상에나 올라가야 들을 수 있는 까마귀 소리가
까욱까욱 계속 들려와서 아참 이곳이 한국이 아니었지... 라는 점을
일깨워주곤 했다.
첫댓글 일본의 친절과 상냥함이 사무라이가 무서워 속은 감추고 겉으로는 좋은척하다보니....오늘의 일본국민성이 되었지싶다, 그럴듯함네다. 잘읽고 갑니다.또 마이마이 부탁해유.
오장육부중에 "양심"이란 놈이 어디 붙어있는것일까? 그 쪽이 쬐끔 찔린다. 같은 장소에 서서 설명을 들어도 어떤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어떤놈은 실실 놀러만다니며 가이드 설명도 귓전으로 듣고.... "그러니께 누가 공부를 잘하라고 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