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50년 2월10일(음력)생이다.
한국나이로 62살 진갑이다.
내가 태어났을때가 우리 누나 생일이어서 나는 누나의 귀여움을 받고 살았다.
위로 형 둘이 있었지만 바로위의 형은 홍역을 앓다가 저세상으로 가자마자
내가 생겼다니 처음맞은 나의 업보던가?
나의 인생살이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나의 형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질환을 얻어 새로 태어난 나에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셨고 젖도 메말랐단다.
백일 되던날에 6.25전쟁이 일어났고 일주일후 우리는 피난을 갔단다.
낙동강 줄기인 '대바위강'을 바가지로 물저으며 건너는데 우리 엄마는 해산조리를 잘못하여
계속하혈을 하고 기진맥진 쓰러졌었고 인민군은 따발총을 쏘며 달려오고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과감히 명령하셨단다.
"아이는 전쟁후 또 낳으면 되는것이니 버리고 가라!"
서른살 아버지는 나를 안고 산골짜기에 올라가 한참을 울고계셨단다.
마침 인민군에게 빼앗긴 암소를 찾으러 산을 해메던 이웃 아저씨(덕국어른)가,
"이사람아 산 목숨을 어이 버리려 하는가? 우리집 딸이 젖먹고 있으니 함께 먹이면 되잖는가?"
가까스로 이웃아주머니의 젖을 10개월가량 얻어먹고 나는 살아났단다.
모두가 아버지로 부터 들은 이야기 이지만 소설같은 이야기이다.
전쟁후 빠진코와 당구장을 '대구'에서 경영하시던 아버지는 5.16혁명과 동시에
파산하여 고향으로 돌아오셨으나 농군아닌 농군으로 살다보니
골패(마작의 일종)놀이로 하룻밤에 일등호답 아홉마지기를 잃고 내가 '중학교'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고향으로 내려와 지금껏 학력얘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집 나이 18세에 '해군'에 자원 입대하여 '강의록'으로 공부하여 '검정고시'패스를 두번하니
억지춘향으로 '고등학교 졸업인정'은 되었다.
제대하여 '서울'에 올라와 무조건 숙식해결되는 곳에 안착하니 '제3한강 주유소'였다.
외국인이 자주 찾으니 '영어회화'공부하기에 안성맞춤 지금껏 누구에게도 '영어회화'하나는 뒤지질 않는다.
캐나다 출신 기술자의 눈에띄어 '한국카이사 알미늄'회사에 취직하여 2년을 근무후 과감히 사표내고
귀향하니 아버지께서 대노하여 가라사되;
"난 너에게 쌀 두말유산 주었으니 당장 서울로가라! 이곳엔 네가지을 농토도 없고 희망도 없다!"
다음날 다시 무작정 200리 길을 걸어가다가(죽어도 서울은 안간다 생각하고) 발견한곳이 의성 '에덴농원' 경북에서
가장 큰 사과 과수원이었다.
'해군에서 근무하여 디젤기계는 왠만큼 알고있으니 일할수 없겠습니까?"
"과수원은 1년내내 힘든곳인데 할수 있겠느냐?"라는 대답과 함께 OK 싸인받고 정착....
사과꽃피는 4월에는 이웃처녀 5-60명이 매일 꽃송이 솎아내는데(적화) 그중에서 가장 내눈에 띈
사람이 오늘의 내 아내 '신**' 그야말로 '에덴의 동산'에서 우리는 만났다.
아내의 나이 21세 나의 나이24세에 만나 다음해 결혼했으니 철부지이긴 둘다 마찬가지.........
임신한줄 모르고 아내의 변덕스러움(밥냄새 맡기도 싫다,김치 저리치워요!)에 실망하고
장모님께 하소연 하니,
"이사람아! 그게 입덧 아닌가? 임신한줄도 모르나?아이구....불쌍한년..."
"입덧은 입술이 부푸는것 아닌가요? 피곤하면 부풀듯이....?"
첫딸을 아무도 없는 외딴집에서 혼자 낳게하고 (들여다 보기는 했지만 언제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고 봉급받는 입장에서 아이 낳기만 기다릴수도 없으니 일하러 갈수밖에)
점심먹으러 갔다가, 생전처음 아이놓는 모습을 직접목격(머리만 나온 상태)하고
기겁하여 장모님 모시러 (처가집은 10리길)자전거로 달리다가 페달이 부러지고.....
꼬마처남에게 연락하고 구멍가게에서 하드 다섯개(아내가 메달리니 무섭기도했고)를 단번에 먹어치우고
아내에게 가보니 이불을안고 아이 목은 그대로 달린채로 가쁜숨을 몰아쉬고 나를 보드니
내목을 끌어안고 죽는다고 소리치다가 차거운 방바닥에 노란 아이가 스르르 구르는데
아들인지 딸인지 구분 못하고 둘이서 한참 바라보고만 있을때, 장모님이 도착하시어
"아이구 이 철부지들아 아이 놓고 쳐다보고만 있으면 우엘라 카나? 빨리 물끓여라!
이르다가 다 죽는데이..."
이렇게 첫째딸은 2kg남짓으로 바깥구경을 했다. 지금도 그생각을 하면 참으로
우리는 철부지 부부였다는 생각이 들고 첫딸에게 미안하다.
(3년전 외손녀 첫돌때 나의 첫딸)
"고향 가까운 곳에서 남의집 머슴아내(?)로 살기는 싫으니 서울로 갑시다! 당신이 리어카를 끌면 나는 뒤에서 밀테니까요! 제발..."
울면서 사정하다시피 애원하는 아내를 달래며, 욱박지르며 살기를 2년 때마침 **공무원 시험이
있어서 갑자기 책을사서 밥먹는 시간을 쪼개어 공부한후 헛일삼아 시험치고 아내는 우는아이와 정한수 떠놓고 빌었으니
부처님이 감복했는지 '경북'에서 39명이 최종합격 했는데 세번째로 내이름이 올랐으니
과거시험 합격한거나 기분은 마찬가지 였다고 아내는 지금도 말한다.
"그거 모두 내가 열심히 기도하여 당신도, 우리 아들도 그 어려운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어요!"
굳이 부정하긴 싫지만 그래도 나와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합격한거지 기도 때문인가?
둘째딸은 '청와대'근무할때 배부른 아내를 3등열차에 첫딸을 딸려 친정에 혼자가서 낳게하니
야간 열차에서 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친정에 도착하자마자 양수가 터졌다니
또한번 장모님께서 얼마나 나를 욕(?)하셨을까?
"어이구 철없는 김서방놈이 우리딸 죽이네..."라고
둘째딸에게도 미안하다.
(외국여행만 좋아하는 역마살낀 둘째:현재 방콕에서 체류중)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힘이 빠져 그런지 또 낳으면 또 딸일것 같아 한참을 띄워 득남(?)을 시도하니 임신은 되었는데
생활고에 지레 겁을 먹고 쏘파수술하러 가는길에
"이번에는 아이 노는것이 틀려요! 한번만 속아 봅시다!"하는 아내와
"여보게 나는 딸을 여덟 이나 놓아서 할말은 없지만 산목숨을 우째 끊을라 카나? 이사람아!"
라고 하시는 장모님 말씀에 병원 문전에서 발길 돌렸었다.
출근은 해야겠고 아내는 배아프다고 하니 형수님께 부탁하고 출근하여 근무중에 긴급전화(본부사무실)가
와서 받아보니
"형님 축하합니다. 이번에는 3.5kg짜리 불알입니다!"라는 동생의 전화 얼마나 반갑던지
아내의 소식재차 물으니
" 택시에서 양수가 터져 요금을 곱배기를 줬는데도 투덜거리드랍니다."
이런 ! 내가 천벌을 받겠구나! 내가 아이들 셋을 이렇게 낳았으니....
아들아! 미안하다.
(서울시장 표창받을때 오세훈 시장과 아들)
남보다 못배웠기에 남보다 없게 살았기에 열심히 노력했고 기도(아내)했었다.
나는 동기생중에 가장먼저 간부가 되었었고 '방통대'도 현직에 있을때 이수했다.
운이 좋아 아파트 당첨도 (노원구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되었고
'서울' 일곱군데 동네에서 '소장님'소리도 들었다.
하필이면 1950년생이라 만57세에 '정년퇴직'이란 이름으로 은퇴하였으니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다니 1954년생부터는 정년이 60세인데 얼마나 손해를 봤는가?
그러나 나는 먼저 나와 사회경험을 3년이나 했기에 이젠 자신이 생겼다.
허지만 이제 몸이 늙어간다. 어제는 아침밥 먹다가 이빨(14년전 치료후 덮어씌운)이 빠졌고
어깨와 팔이 몹씨 아프다. 건망증은 늘어가고 가운데 다리는 늘어져만(?)있다.
자존심은 있어서 친구의 권유(?)대로 약(?)은 먹기싫다.
허지만 나는 행복하다. 남에게 꾸어줄 돈도 빌릴 이유도 없지만 내아내가 늘 내곁에 있어서
즐겁고 알뜰해서 고맙다. 다만 너무 절(도선사)에만 다니기에 약간은 불만이다.
그래도 건강한게 얼마나 다행인가?
여러분 낮술한잔 마시고 너무 주절주절 했네요!
이해하시고 모두 행복하세요!
(회갑여행때 홍콩에서 아내와함께)
첫댓글 와소설같은 이야기에요 넘 소중한 이야기 읽고 많이 생각하고
배웠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주책없이 쓴 글을 읽어 주셔서....
사람이 살면서 우여곡절도 희노애락도 있겠지만 실타레님의 삶도 파란만장 하시네요~ 그 가운데도 현모양처 아내분을 만난것이 실타레님의 생의 최고의 행운이라 여겨 집니다... 그 아내분과 서로 아껴주며 남은 인생도 아름답고 보람있게 행복하게 사세요~~^*^
늘 감사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ㅎㅎㅎ
단편소설을 쓰세요.
소재도 충분하고 모든면에서 잘 하고 계시니까 아마도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래요? 8불출인데요...?
타레님 일대기를 올리셨군요 젊어서 고생한 모든 것이 이제 행복의 기반이 되셨으니 ㅎㅎ치아 하나 빠졌다고 이빨빠진 호랑이라고 ㅎㅎ엄살을 떨지 마십시요 그 연세 되셔서 치아 하나도 안 빠진 사람 있음 손들어 보라고요 구구 절절하여 눈물글썽하기에 웃음의 댓글 드려 봅니다 사무실을 차리셨다니,,,축하드립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만 어째 부끄럽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