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지사기대회에 풍성한 화제 | ||||||||||||||||||
태권도 가족 금메달 풍년, 실명 극복한 쌍둥이 형제애 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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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부터 사흘간 문경 실내체욱관에서 열린 제22회 경상북도지사기 태권도대회는 풍성한 화제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겨루기와 품새 경기로 나뉘어 실시된 이번 대회에서 구미시가 각부에서 고른 성적을 올려 종합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영천시청팀이 주축을 이룬 영천시는 종합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겨루기 개인전 남자초등부 3-4학년 핀급 결승전에서는 진현우(청도초)가 주특기인 왼발 상단돌려차기로 최상현(압량초)를 2회전 30초만에 제압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품새 부문 초등 저학년부에서는 남구미도장2관, 초등 중학년부에서는 남구미도장, 초등 고학년부에서는 남구미도장, 중등부에서는 안강충효도장, 고등부에서는 계명대선인태권도장, 청년부에서는 힘찬청운도장이 각각 우승했으며, 태권체조부문에서는 드림태권도가 우승의 기쁨을 안았다 한편 국군체육부대 이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문경시는 지난 8월 정부로부터 국제대회 유치 승인을 받아 오는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 유치 노력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1.성공 대회 이끈 신흥수 회장의 친화력
대회 기간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매일 임원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매일 아침 6시 친구가 운영하는 오미자 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차를 운송, 선수와 임원 등 참가자들이 마음껏 맛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문경시태권도협회는 1995년 점촌시와 통합되어 조용구 전임 회장이 6년 동안 기초를 다졌고 이후 신 회장이 바톤을 넘겨받아 협회 살림을 10년 동안 이끌어왔다. 부모의 권유로 중1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는 신 회장은 “벌써 4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태권도는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1975년 인천체육전문대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인 문경에 내려왔다. 1981년 점촌에서 화랑도장을 처음 열었고 1991년 신흥도장을 개관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한 후 수 수년 전 제자에게 물려주었다 신 회장은 “문경이 인구 8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현재 13개의 태권도장에서 1천여명의 수련생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또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교통이 사통팔달, 편리해 살기 좋은 곳이라며 자랑했다. 문경은 2011년 10월 국군체육부대 이전을 계기로 상주인구나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부대와 관계된 인구의 유입은 물론 전지훈련단, 면회객, 각종 행사 참가인원 등으로 연간 30만 명이 이곳을 방문할 것으로 보여 시민들은 지역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2.우리는 태권 가족
○… 이번 대회에 출전한 문경상무체육관의 이연호(37, 6단) 관장과 이은경(38, 5단) 사범 부부는 장남 홍주(2품) 군을 비롯해 제자들이 무려 5개의 금메달을 따내는 큰 성과를 올려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이은경 사범은 출산 예정일을 열흘 앞두고 만삭의 몸으로 경기장에 나와 선수들을 지도해 감탄을 자아냈다. 부부의 인연도 특별하다. 중학 시절 각종 운동에 남다른 관심과 소질을 보인 이 사범이 먼저 육상을 시작했고 1년 후배인 이 관장이 한 발 늦게 운동을 시작해 같은 운동부에서 함께 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육상부 주장이던 이 사범은 이 관장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이 관장은 중 3때 상주 충무체육관(관장 안창용)에 입관,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가 다른 태권도장에서 수련하던 이 사범을 충무체육관으로 옮기도록 권유해 함께 운동하는 인연을 이어갔다. 수년의 세월이 흘러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이 관장은 구미에서 사범생활을 하다가 1999년 문경에서 처음 상무체육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태권도장 운영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그해 1년 동안 달랑 5명의 관원으로 겨우 도장의 명맥만 유지했습니다. 월세는 부모님께서 보내 주셨지만 돈이 없어 하루 세끼 중 한 끼 밥만을 직접 해 먹었습니다.” 당시 상주 카톨릭 정형외과 간호사로 일하던 이 사범은 어려움에 처한 이 관장에게 자신의 봉급을 털어 쌀과 부식을 가져다주곤 했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자주 체육관을 찾아가 밥을 지어 주기도 했다. 그러던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쳤다. 효령대군의 23대 종가로 자칭 왕족의 자부심만을 내세운 장인어른이 경주 이씨 집안에는 딸을 보내지 않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살겠다며 1년 동안이나 처가 어른들을 설득해 겨우 결혼 승낙을 받아냈지만 신혼살림을 차릴 집 한 칸 마련할 길 없어 체육관 탈의실 5평을 개조하여 새 살림을 시작했다. 어렵고 힘든 신혼생활이었지만 둘은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태권도의 철학을 실천하며 체육관을 꾸려 나갔다. 이 관장이 스승 안창용 관장의 권유로 경북 상임심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아내 이 사범이 수련생들을 지도하게 되었고 이제는 10년 세월이 흘러 이 관장-이 사범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렵게 얻은 첫 아들 홍주에게 건강하게 자라도록 태권도 수련을 권유했고 아빠, 엄마의 바람대로 홍주는 올해 신인대회 은메달, 태권도한마당, 교육감기, 협회장기 금메달을 잇달아 따내 부부를 기쁘게 해 주었다.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지만 정통 태권도 수련을 고집하는 이들 부부의 열성으로 지금은 130명의 많은 관원들이 이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체육관 건물을 3층으로 증축하며 체육관 운영도 본궤도에 올랐다.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염려도 없지 않았지만 직접 대회장에 나선 이 사범은 자신이 지도한 아들 홍주의 금메달 선물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설명: 이연호 관장, 이은경 사범이 장남 홍주와 함께 대회장에서 찰칵.
3.실명 극복한 태권도 형제애
그렇게 이를 악물고 태권도를 배워 초등학교 시절 각종 대회에 출전했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출전하는 경기마다 쓰라린 패배만 연거푸 맛보았다. 문경서중 1학년 때에는 오랜 기간 계속되는 슬럼프를 못 참아 합숙소를 뛰쳐나오고 말았다. 형제는 한동안 지역의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또래 친구들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술과 담배까지 배우게 되었다. 특히 한쪽 시력을 잃은 종의 방황이 심해 부모의 속을 태웠다. 형 강 역시 종의 자포자기에 마음이 아팠다. 중3이 된 어느 여름날 우연히 형제는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위 속에 송이를 채취하며 비지땀을 흘리는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방탕하게 지내던 종의 마음이 흔들렸다. ‘자식에 대한 희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부모님을 위해 다시 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한 둘은 마음을 가다듬고 조 관장의 허락을 얻어 다시 태권도복을 입게 되었다. “관장님은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잘 못 했을 때에는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그렇게 조 관장의 열성적인 지도를 받아 두 형제는 태권도 실력은 하루 다르게 향상됐다. 올해 형 강은 라이트급, 동생 종은 웰터급으로 나란히 태권한마당(3월), 교육감기(7월), 협회장기대회(8월)에 출전해 금메달, 은메달의 값진 결실을 얻었다. 덕분에 지난 8월 경산1대학 경호무도학부 태권도학과 수시모집에 합격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형제는 앞으로 대학에서 태권도 이론과 실기를 연마해 태권도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 사진설명: 쌍둥이 형제 황보강(왼쪽)과 황보종 <경북=장태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