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본제국주의에 희생을 당하고 김구, 윤봉길, 안중근 등 수많은 의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투신을 하죠. 특히 김구 선생같은 경우는 레지스탕트적인 성격이 강해서 윤봉길, 안중근 의사들의 구심점으로 쉽게 말하면 테러같은 무력으로 나라를 되찾으려 노력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대신 그런 만큼 정치적인 면에선 약하신 분이었죠. 지금 우리가 대략 생각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모습과 조금 틀립니다. 물론 누구보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셨던 분이셨구요.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국제사회에 이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도 많이 했답니다. 헤이그 특사 같은.. 별 효력은 없었지만.. 이승만 초대 대통령께서 외교로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대표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0년 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대전과 제국주의의 희생량이었을 뿐입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먹고 그를 발판으로 자국의 번영을 꽤한다는 제국주의 혹은 전체주의 말이지요..
그러나 1945년 이 쯔음 국제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독,이,일 을 주축으로 한 제국주의 세력과 미,영,소를 중심으로 한 반제국주의 세력간의 싸움이 종료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하던 핵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죠.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 두곳에 원폭을 투하하게 되죠. 그리고 난 다음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바로 광복을 하게 된 것이구요.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의 독립군들은 뭐하고 있었느냐! 바로 이 즈음 해서 우리나라 독립군들이 대거 항쟁을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먼저 선수를 친것이지요.. 이 때 우리나라 독립군들은 강성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별로 피를 흘리지 않고 광복을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광복을 할 기회는 미국에게 뺏긴것이지요..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는 커다란 딜레이가 생긴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광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구 선생을 주축으로 한 민족주의 진영과 이승만 선생을 주축으로 한 민주진영, 그리고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간의 알력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의 바램대로 였다면 김구 선생을 주축으로 한 민족주의 진영에서 패권을 잡아 하나로 통일 된 단일국가를 만들 수 있었겠죠.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김구선생은 레지스탕트 적인 성격의 민족운동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김구선생은 정치적 정략이나 기타 등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는 것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환경에서 생활 하셨기 때문에 다른 진영에 의해 제일 먼저 제거당하시지요. 한반도의 역사로서는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민족주의 진영은 몰락하고 이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사회주의 진영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민주 진영간의 알력만이 남게 됩니다.
여기서 왜 사회주의 진영은 소련의 지원을 받고 민주 진영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또다시 국제적인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가장 공을 많이 세운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알다싶이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이고 소련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였습니다. 바로! 국가간의 알력이 비교적 비등했던 다극체제에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소련과 미국의 냉전(무력적인 전쟁은 아니지만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기 위한 조용하지만 치열한 싸움)시대인 양극체제로 돌입하게 됩니다. 바로 이 냉전이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이때 미국과 소련은 서로 핵을 두려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무력적인 공경을 취할 수 없었죠. 이것이 바로 '핵 억지력' 입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큰 두게의 이데올로기가 있으니 한 쪽은 사회주의가 나라를 재건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한쪽은 민주주의가(혹자는 자본주의라 하기도 합니다) 나라를 재건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를 놓고 싸운 것이 바로 지금의 분단의 원인이 됐던겁니다. 그러니까 조선과 대한제국은 1차세계대전의 희생량인 셈이고 지금의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희생량인 셈이죠. 그래서 민주 진영은 남한에 단독 정부를 건설하고 단독 선거를 치르게 되죠. 이에 질세라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게 되죠. 그리고 38도 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분단을 하게 되죠. 그러나 남과 북 사이에는 공통된 생각이 있었으니 어떻게 독립을 했는데 단일 국가를 만들어야 되!! 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남 과 북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터진 것이 6.25입니다. 제가 볼 땐 누가 먼저 침공을 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서로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니.. 그러나 사회적으로 미묘한 문제이고 북이 먼저 침공을 했다고 배웠으니 맞겠죠. 상황적으로 봐도 북이 침공했을 확률이 월등했으니 말이지요. 북이 남한에 침공을 가하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남한은(분단 직후에는 북한이 우리나라 보다 GNP라는지 경제, 군사 전반적인 힘이 강했습니다. 이 것이 뒤바뀐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이후지요) 북한군에 밀려서 결국은 서울을 내주고 쭉~ 밀린 결과 부산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유엔군이 남한을 돕기 위해 유엔군을 파견하게 되죠.(유엔이 출범하게 된 이유는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들이 이상과 도덕만으로는 국제 사회를 유지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력이 동반된 강한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유엔이 출범하게 되었죠. 그리고 1차대전의 승전국인 미국, 중국, 소련, 프랑스, 영국은 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어 유엔의 중요한 안건에 대해 만장일치로 해결하는 제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남한에 유엔군을 파견하게 되려면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되는데 사회주의 진영인 소련과 중국이 어째서 찬성을 했느냐? 하는 것이죠. 결국은 두 나라가 참석을 못한 채로 만장일치가 되었습니다. 왜 두 나라가 참석을 못했는가는 여러가지 설이 나돌지만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 그리하여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사기가 오른 남한군은 압록강 유역까지 쭉 밀고 가 통일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중공군이 가세를 하죠. 그래서 인해전술(무한 개떼 러쉬.. 농담이구요 인해 즉, 인간 바다.. 한마디로 머릿수로 밀어 붙이는 전술이죠)로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에 의해 다시 휴전선 근처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안되겠다고 판단한 유엔은 휴전선 근처에서 휴전을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서로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였던 남과 북은 판문점에서 협상을 한 끝에 현재의 휴전선을 기점으로 비무장지대를 만들고 휴전에 합의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반도의 허리는 완벽하게 짤리게 된 것이지요.
대략 두서없이 써나가서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년도나 자세한 내용은 백과사전이나 기타 자료를 참고 하시면 될겁니다. 대강 이정도만 알고 있으시면 레포트나 그런 것 쓰기도 훨씬 수월하실테구요..
목차
1. 일제강점과 항일투쟁의 역사
2. 민족의 해방과 해방이후 각 진영간의 갈등
3.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분단의 역경
4. 민족의 위기 6.25전쟁
5. 전쟁의 종식과 분단의 고통
6. 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가?
정도로 만들 수 있겠군요. 여기서 팁을 하나 가르쳐 드리자면 레포트 쓸 때는 항상 6번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결론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교수님들이나 선생님들이 좋아하죠.
뭐든지 현실에 적용하길 좋아하는 부류가 바로 교수님들이기 때문이죠 ㅎㅎ
서론은 현상의 규명과 목표설정
본론은 구체적 내용과 결과 도출을 위한 유도, 그리고 반전
결론은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결과 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