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편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
요절: 12절
내용 관찰
41편은 9절 말씀을 중심점으로 해석되어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9절은 신약성경에 의해서 두드러진 말씀으로 증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자기를 배반할 가롯 유다를 가리킬 때에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의 배반은 바로 이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다"(요13:18)하셨습니다. 시편이 이를 예언하심은 이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 인줄(메시야)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다”(요13:19)에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였을 때에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반한 사건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삼하15:31). 결국 아히도벨은 가롯 유다의 종말처럼 "스스로 목매어”(삼하17:23) 자살하고 맙니다.
아히도벨과는 대조적으로 다윗의 친구 후새는 모든 인심이 압살롬에게 돌아간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삼하15:32). 41편에는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9)한 배신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1) 하고 어려운 시기에 그를 도와준 신실한 자도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예표의 인물로 세우셔서 그리스도에게 성취될 일을 예언적으로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향유를 붓던 마리아요(12:7) 예수의 시체를 장례한 아리마대 요셉(요19:38) 등은 빈약한 자를 권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3은 그들이 받을 복을 말씀하고 있는데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1)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2-3). 이 복은 마치 사도 요한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있는 가난한 전도자들을 접대한 사하는 가이오에게 한 축복과 상통합니다”(요한3서). 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도 ⓵재앙의 날에 건져 주시고(영혼잘됨) ②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범사잘됨) ③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 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강건함)합니다. 얼마나 자상하시고도 넘치는 복을 주십니까?
이와는 대조적으로 5-9은 재적자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41편에는 "원수”(2,5,11절)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원수 사탄과의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5)하며 악의와 저주함을 봅니다. 심지어 재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배신하고 대적합니다(9). “그러하오나……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10)하고 결론 부분에서 악이 승리하지 못할 것을 말씀합니다. 만일 이 보복이 사적인 것이라면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이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보복인 것입니다.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11)고 말씀합니다.
"주께서 나를 나의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12)는 말씀은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승리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실(빌2:9)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13) 할 것밖에 없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41편의 1차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41편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성취될 말씀입니까?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적용: 우리들도 빈약한 자들을 권고하십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이렇게 하였나이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31-40)
암송: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1)
제 42 편
상한 마음의 치유
요절: 11절
내용 관찰
42편은 내용으로 보아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 헤르몬산(6)이 있는 곳을 유리하면서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2)하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면서 지은 시로 여겨집니다.
42편의 핵심적인 단어는 "영혼"이라는 말입니다. 1,2,5,6,11절 등 다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1)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2)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5)하고 스스로 격려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6) 하고 또 낙심에 빠집니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앉지 아니하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11)고 분연히 일어납니다.
42편은 성도들이 천국갈 때까지 나그네 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단히 겪게 되는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갈등이 파상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2절은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며 갈망합니다. 그러나 3-4절은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함과 같이 울면서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그에게 5절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하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6--7절에서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하고 또 낙심하며 빠져들어 갑니다. 그에게 8절은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9-10절에서는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하고 또 좌절합니다. 그에게 11절은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 격려합니다. 이런 갈등은 시편 기자만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성도들이 겪게 되는 갈등이기도 합니다, 이를 어떻게 치료하며 극복할 수가 있는가를 42편은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설교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5절과 11절을 유의해 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하고 자기가 자신에게 책망하며 격려하며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설교하는데(롬2:21) 실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그 검으로 자아 속에 도사리고 있는 대적부터 몰아내십시오. 낙망과 불안을 몰아내는 비결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5)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그 얼굴"을 바라보아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 위로 걸을 수가 있었으나 파도를 바라보자 빠져 들어감과 같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사40:31) 하십니다.
스펄죤 목사님은 어느 조그마한 교회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20년 전 나는 이 교회에 예배드리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설교자가 이사야 45:22의 말씀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는 본문으로 설교하였는데 나를 가리키면서 "젊은이 가엾어 보이는군 하나님을 바라보시오 그리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소" 그 말씀에 스펄죤은 큰 회심을 하게 되었노라고 하면서 나는 그때 저기쯤 앉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형제여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5하,11하,43:5하).
묵상해 봅시다.
42편의 역사적인 배경이 무엇입니까?
성도가 겪게 되는 갈등이 어떻게 반복되고 있습니까?
그 치료책은 무엇입니까?
적용: 이후로 자기가 자신에게 설교하는 법을 활용하십시오. 명심할 것은 설교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속에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암송: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