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문학(實存主義文學)
1940∼50년대 프랑스에서 전개된 문학 경향의 하나. 존재의 부조리성에 대한 의식(존재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하여 자기의 본질을 완성시키기 위해 인생을 선택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며, ‘상황(situation)’ 속에서 역사나 사회에 ‘참가(engagement)’하면서 그 상황을 인식, 극복하여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려는 인간을 묘사하려고 하는 문학이다. 실존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은 이전부터 있었으나(C.P. 보들레르·G. 모파상·F.M. 도스토예프스키·F. 카프카 등의 작품), 인간의 한 새로운 생활방식으로서 실존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뒤의 J.P. 사르트르·A. 카뮈·S. 보부아르 등의 문학이었다. 이와 같은 문학의 발생 계기가 된 것은 20세기 전반에 거듭되었던 전쟁과 동란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인간은 자기의 개성과 본질 및 그것들이 형성하는 자유가 역사·사회 및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신이 본질을 만든다고 하는 종래의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본질에 선행하는 ‘존재(存在)’, 즉 ‘즉자(卽自, en soi;단순히 존재함)’에서 ‘대자(對自, pour soi;존재함에 대한 의식)’로 이행하는 ‘존재’를 중심명제로 한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문학
사르트르는 처음에 예술로 존재를 완벽하게 하려고 생각했으나, 전쟁체험을 통하여 진정한 자유의 획득과 함께 진정한 존재의 완성은 역사·사회 및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획득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장편소설 『구토(1938)』에는 실존의식을 자각한 인간이 소설을 쓰는 일(예술)로 생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단편소설 『벽(1937)』에서는 인생을 선택할 수 없고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서의 존재하는 인간을 그렸다. 희곡 『파리떼(1943)』에서는 자기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행동에 의해 자기를 판정하는 인간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실존주의문학이 사회참여의 문학인 이상, 작가는 서재에서의 고독한 창작활동에만 머무르는 일을 중지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정치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르트르는 사회·정치·시사 문제(헝가리사건·알제리문제 등)에 정면으로 부닥쳤다. 그러한 참여를 통하여 정치에서의 목적과 수단을 묘사한 희곡 『악마와 신(1951)』 등의 작품을 썼다. 이런 이유로 사르트르의 문학 및 실존주의문학은 새로운 의미에서의 휴머니즘문학이라 일컬어진다.
카뮈의 실존주의문학
카뮈의 경우 사르트르의 『구토』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 『이방인(1942)』이다. 주인공은 ‘부조리’ 의식을 가진 까닭에 일상성과 양식을 대표하는 사회에 의해 살인죄로 재판받지만, 사실은 재판하는 측도 자기기만죄로 고발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카뮈는 인간에게 허위와 기만을 강요하며 인간의 진정한 존재를 부정하는 부조리와의 싸움이야말로 인간의 의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의무는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항의·반항의 형태를 취하여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1942)』에서는 계속해서 벼랑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절망적인 인간의 반항행위 속에서 존재해야 할 인간의 모습을 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카뮈에게서는 반항이 부조리의식을 가지는 인간의 참여행위가 된다. 이것을 구현한 것이 장편소설 『페스트(1947)』의 주인공으로서, 그는 페스트 때문에 공황이 일어난 도시에서 신이나 악마의 무력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고독이라는 지옥에 빠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습이나 안이한 타협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연대에 의지하여 자기의 직무를 수행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조리에 반항하여 계속 인간성을 추구하는 길은 역시 휴머니즘과 통한다. 그리고 부조리적 인간의 성실한 인간성 탐구의 길이 이와 같은 반항과 행동을 취하는 까닭에 카뮈의 부조리문학도 필연적으로 사회 참여가 된다.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문학
보부아르는 학생시절에 사르트르를 만났는데 두 사람의 결합은 격렬한 반순응주의와 출생환경(부르주아지)에 대한 반항에 의해 확고해졌으며, 이 2가지 명제가 그녀의 문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보부아르의 문학활동은 여성의 ‘본질’과 여성이 되는 ‘실존’ 사이의 모순상극의 고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1943)』는 질투라는 영원한 테마를 새롭게 다룬 것인데, 주인공 프랑수아즈는 자기와 남편 사이에 개입된 ‘타인’이란 존재, 즉 초대받은 여자 구사비에르를 살해한다. 타인의 행복에 대한 지향과 타인의 존재는 항상 자아의 파괴라는 인식이 묘사되어 있다. 장편소설 『타인의 피(1944)』에서는 레지스탕스의 연대와 책임문제를 다루었고, 방대한 사회학적·심리학적·문학적 여성론인 『제2의 性(1949)』은 ‘여성은 암컷과 거세자의 중간적 존재로서 사회적·심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여성이 타인에 의해 자기를 규정시키는 것은 인간의 타락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여성의 복권을 추구하였다.
그 밖의 작가들과 영향
J. 주네는 사르트르로부터 ‘성(聖) 주네’라고 불린 ‘참여문학자’로서 알려졌다. 『도둑일기(1949)』 『꽃의 노트르담(1944)』 등은 초현실주의 형식의 수법으로 쓴 장편소설인데, 동성연애자, 직업적 범죄자로서의 자기의 굴욕과 반항의 반생을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고 묘사하였다. 사르트르의 친구로 제 2 차세계대전 중 전사한 P. 니장은 자기계급에 대한 반항, 사회의 위선을 문학 형태로 고발하였다. 보부아르에게 인정받았던 작가 V. 르뒥의 자전적 소설 『사생아(1964)』는 동성연애자인 자기를 모든 관점에서 더럽고 추한 존재로 규정하며 그 속박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고독의 고리를 스스로 깨려고 하는 이야기이다.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문학은 문학적 의식, 문학의 방법, 작가 및 문학작품의 사회참여 등의 측면에서 이후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의식을 ‘사물’ 쪽으로 소외시키면서 인간의 조건과 형성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누보로망 문학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실존주의문학
언제 들어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제2차 세계대전 뒤 특히 1950년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1940년대에는 사르트르의 『프랑스인이 본 미국 작가(1946)』, 전창식(田昌植) 번역의 『벽(1948)』, 양주동(梁柱東)의 평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1949)』, 김명원(金明遠) 번역의 『흑사병(1950)』 등이 발표되었다. 50년대에는 정명환(鄭明煥) 번역의 『자유의 길(1958)』 『벽(1958)』, 방곤(方坤) 번역의 『구토(1959)』 등의 사르트르의 작품과 김붕구(金鵬九) 번역의 『카뮈의 문학과 사상(1958)』, 정명환 번역의 『현대의 증인』 등의 카뮈의 해설 및 작품번역이 나와 실존주의가 한국의 문단을 주도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손창섭(孫昌涉)·오상원(吳尙源) 등 한국작가들에게도 인간조건의 추구라는 점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이론은 50년대 말 이후 참여문학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