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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책소개 스크랩 리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51 15.03.30 11:3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겐 여자친구가 생겼었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사귀게 된 그 친구는 솔직히 말해 ‘예쁘지 않았다’.  통통한 체구에 약간은 고집스러움이 얼굴에 배어있던 여자친구를 내 주변의 친구들은 은근하게 무시했었다.  그녀의 호탕한 성격과 자주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던 나에 반해, 친구들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잘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말하기도 전에 비호감의 시선부터 느껴야 했던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곳에서 여자가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살아야 했던 게 아닌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아닌 매우 이상한 그 어떤 것..  상처받고 일그러질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374p.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아름다움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시대마다 다른 상대적인 기준으로 우리는 아름다움을 열망한다.  고대 이집트의 코가 높은 클레오파트라나 당의 양귀비나, 르네상스 시대의 통통한 미인들이 현 시대로 오면 그저 평범한 얼굴이거나 비만인 여자들로 치부될 지 모를 일이다.  아름다움은 권력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권력의 옆자리에 위치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였다.  나는 아름다움이 가진 자체의 힘과 매력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기준이 극단으로 치닫고, 그것이 가진 힘이 왜곡되며, 그로 인해 아름다움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이 불합리한 차별을 겪어야 한다면, 그런 사회에서 아름다움은 그래도 존중받아야 할 만한 가치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성형과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대량으로 찍어낸 듯한 조각같은 얼굴과 쓰러질 듯 호리호리한 몸매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고, 사람들은 그러한 기준을 각인하면서 그렇게 되길 열망한다.  그런 열망을 품지 않거나 노력해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세상의 가차없는 멸시가 뒤따른다.  관대함이란 세상의 다양성을 보고 다양성이 품은 여러 가치를 수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현재의 세상은 관대함을 거의 상실한 듯 하다.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나 역시 무작정 그들에게 관대했던 인간이었고,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갖추어야 할 인간이었다.  불쾌했다기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쓸쓸한 마음이었다.’ 315-6p.

  사실 작가는 극단으로 치닫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멸종상태가 되어가는 세상의 관대함에 대해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한 듯 하다.  설령 소설의 마무리가 그럴 의무는 없다 할지라도, 소설이 제기하는 문제와 그 안에 내재된 갈등이 해소되는 장소는 한국이라는 주인공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아닌, 국경밖의 다른 장소라는 점에서 그렇다.  writer’s cut 역시 결말은 다른 나라에서 맴돈다.  이해되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본능과 사회역학이 뒤엉킨 복잡함 속에 내재되어 다함께 뒤섞여버린 추출불가의 잉크 한 방울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 시대의 한국은 그러한 복잡함을 조금이라도 수습해보이기엔 너무 극단적이고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마무리되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독후감을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중심으로 써보고 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예뻐지기 위해 칼도 목숨도 감내해내는 이 사회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찍어낸 듯한 인공미를 추구하는 것이 자본추구의 산업이 되고, 스러질듯한 갸냘픈 몸을 위해 혹사를 감내해야 하는 사회가 미쳤다는 사실이다.  모습은 예뻐지지만 튀어나오는 말과 생각이 가벼워지는 반전과, 풍요로운 세상에서 깡마른 몸매를 만들기 위해 풍요를 활용하는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세상이 슬프다.  ‘아름다움’이라는 주제 하나만으로도 이 사회에서는 세상 모든 부정의 감흥들이 어렵지 않게 솟구쳐 오르는 것이 지금 시대의 분명한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약간은 신파같고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다른 사회에서의 해피엔딩’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 이 사회에서는 잔인한 결론밖에는 좀처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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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3.30 19:24

    첫댓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빨리 읽어야 겠어요 소개 감사합니다 제 방으로 데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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