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정 태 갑
언제부터인가 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밝은 달을 한번 봐야지 하고 마음먹은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흐리거나 비가 왔고, 어떤 때는 무슨 일을 하느라 방안에만 있었다.
달을 본 지 참 오래됐다. 초등학생일 때 본 달, 스물 즈음에 본 달은 크고 둥글고 환했다.
어릴 적엔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다. 화장실에 가려면 방문을 나와 툇마루를 내려서서 열 걸음 남짓 걸어가야 했다. 밤에는 화장실 가는 것이 귀찮고 무서웠다. 보름 무렵에는 달이 떠서 화장실 가기가 한결 나았다. 창호지 문을 열면 밖이 대낮처럼 환했다. 보름달이 뜨는 밤은 마치 연못에 봄물이 가득 찬 것처럼 툇마루와 마당에 달빛이 가득 찼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장실을 나와 여유 있게 하늘을 쳐다보며 달이 참 밝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달을 보고 있노라니 어떤 때는 마당 한 편에 서 있는 감나무에서 ‘툭’ 하고 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릴 때 본 달은 고요하고 그지없이 밝은 달이었다.
스무 살 때 남해 섬에서 온 친구를 알게 됐다. 역사를 전공하는 친구는 눈매가 선했고 목소리가 구수했다. 말에 조리가 있었고 얘기를 독점하지 않았다. 나와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맞아 만날 때마다 많은 생각을 주고받았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친구가 2박 3일로 시골 고향 집에 가자고 했다. 친구 집은 자그마한 어촌마을에 있었다. 친구 어머니가 해주시는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간식거리를 챙겨 바닷가로 갔다. 태어난 후 처음 보는 달밤 바다! 둘은 바위에 앉아 달을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바다와 만월과 친구와 함께했던 그 밤은 한없이 낭만적인 밤이었다.
20대 중반엔 강원도에서 3년 가까이 군 생활을 했다. 마지막 1년은 비무장지대(DMZ)에서 경계근무를 했는데, 보름 무렵의 맑은 밤엔 온 산과 들판이 환했다. 포대경砲臺鏡을 들판으로 돌리면 지표에서 약간 위로 사각형의 검은 물체가 눈에 띄는데, 선임병의 말로는 휴전선을 표시하는 팻말이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활동을 멈춘 시간, 달빛을 통해 휴전선을 보는 마음은 특별했다. 민족 분단, 국방 의무란 말이 되새겨졌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군 생활에서 만난 달은 그립고 비장했다.
달은 지난날을 추억하게 하는 것 같다. 달을 바라보면 마음속 깊숙이 새겨진 달이 떠오르고,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로 시작되는 <달>,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로 시작되는 <반달>이란 노래, 참 많이도 불렀다. 노랫말이 아름답고 정겹다. 지금도 나직이 소리 내어 불러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달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달을 보면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것 같다. 밝은 달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거나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달은 시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소재인 것 같다. 조선 시대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에 광명이 너만 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라 달을 노래했다. 마지막 구절,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고등학교 때 배운 시조인데, 그때는 시의 깊은 뜻을 모르다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다 보면서도 말을 옮기지 않은 성품이 참으로 믿음직스럽다는 뜻이 아닐까?
돌아보니, 세상일에 얽매여 달을 무심히 대한 것 같다. 이제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두고 그리운 달을 기다려야겠다. 다가오는 보름 즈음엔 집에서 가까운 둘레길 벤치에 앉아 밝은 달을 마음껏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