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여울
어린 숭환이는 툇마루에 앉아 개여울을 부른다. 듣는이는 없다.
타지에서 교편 잡고 있는 언니가 토요일 집에 왔다. 독서광이다. 책만 들고 앉아있어도 눈여겨보는 이 없다. 노래하고 책 읽고 깔깔 웃어대고, 토닥거리는 일이 생겨도 우리 집에선 그러려니 한다.
밥상머리에 가족이 모였다. 언니가 숭환이를 가수나 성악공부를 시켜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데, 노랫소리에 살그머니 나와보니 동생이었다며 감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숭환이는 가족 중에 없어서는 안 될 자식이고 동생이지만, 있는 듯 없는, 없는 듯 있는 그런 존재였다. 말수가 적다. 때론 종일 말을 시키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얼 하며 지내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숭환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려면 조용해야만 한다. 왁자지껄하면 부르다 말고 숨어버린다. 꼭꼭 숨어서 밖으로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내성적이며 수줍음이 많았다. 위로는 오빠가 둘 있다. 언니도 있지만, 옷은 오빠한테 물려받아 입어도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다. 사실 숭환이는 남자항렬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언니 친구가 놀러 왔다. 성은 남 궁이고 이름이 주인데 그를 부를 땐 남, 자만 빼고 궁주라고 불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버지가 숭환이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관심한 것 같아도 자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계신 듯했다.
저녁 밥상에 모여앉았다. 숭환이가 자기 이름을 공주라고 바꿔 달라는 말을 한다. 언니 친구 궁주라는 이름이 제 딴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었나 보다. 오빠가 입던 남자 옷도 싫다고 했다. 본인의 의사를 또박또박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다. 아버지는 궁주라는 이름에 관한 설명은 말해주지 않고, 숭환이의 말을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그래서 내 동생 숭환이는 공주가 되었다.
모두 공주라고 불러 주었다. 좋아도 크게 웃지 않고 빙그레 웃으면 그만인 공주가 큰소리로 웃었다. 아버지는 엄마한테 내일 당장 옷집에 데리고 가서 공주마마가 입는 예쁜 드레스를 한 벌 사 입히라고 했다. 급격히 상승한 자신이 쑥스러웠던지 고개가 밥상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개여울은 누구한테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라디오를 가리킨다. 우리 집에 주파수도 단 한 곳 KBS 제1 방송뿐만 나오는 낡은 라디오가 있었다. 찌지직거릴 때마다 버린다 해도, 날씨를 알려줄 때면 찌직 거리지 않아서 온종일 켜 놓았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를 귀담아듣고 따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공주는 개여울에 담긴 의미가 무언지 알고도 남는 나이가 되었다. 깊은 음색으로 한 구절 한 구절 감정에 실어 부를 땐 멋있고 아름답다. 손재주가 있어 공예를 하면서도 흥얼거리는 노래. 개여울이 고요하게 흐른다.
첫댓글 공주는 지금 무슨 일을 하시고 어떻게 지내시나요?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ㅎㅎ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