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아 목사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다 누리면서 한가지 중한 것 공통적인 관심사인 폐단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기대가 싹 허물어지는 그러한 때가 있단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이 사람은 살만하니까 죽을병에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재난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 일만 없다면 이제 행복은 보장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오히려 재난이 와서 좋은 것이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자리를 강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죽음일 수도 있지요.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뭐든지 다 해 보겠는데, 나를 오라고 부르실 때가 있고요, 그래서 재물과 명예를 놓고 가야만 하는 폐단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금전적 손실일 수도 있습니다. 이 돈만 손해 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한밑천 잡아 떵떵거리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다 날려 버릴 돈 무엇 때문에 벌게 해 주었습니까? 그런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하나님 이건 내가 꿈꾸고 바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내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그 절규가 있겠지요. 동시에 솔로몬은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 명예 자녀 건강 지혜 모든 것을 누리는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를 소유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주신 복을 누리느냐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청지기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1.주신 물질과 명예를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02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 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재물과 부귀영화를 하나님께서 주셔서 아쉬움 없이 받았음에도 그것을 마음껏 누려보지도 못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그것을 물려주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재물과 부요와 존 귀를 그 마음에 부족함이 없이 다 받았으나 가진 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것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된다면 이것도 바람을 잡는 헛수고요, 너무 억울하여 번민하다가 마음에 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제물의 넉넉함이 사람에게 낙이 되지 못합니다.
재물을 모으느라 애쓰고, 또 모은 재물을 지키느라고 자신을 상하기까지 하고, 끊임없이 근심하고 걱정하며 불안한 삶을 사는 것이라면, 그 소유가 인생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배우들이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기를 유지하고 더 얻어 보려고 초긴장을 합니다.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所出)이 풍성하매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穀食)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穀間)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富饒)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16-21)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다 받았습니다. 돈도 명예도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 가진 것 같았는데 보니까 누리지를 못하더라는 말입니다. 돈은 벌었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쌓아 놓았다가 그대로 인생을 마치고 맙니다. 명예도 많이 얻었으나 누리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부친이었던 다윗 왕 때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임금에게 쫓겨다닐 때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광야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때마침 그 근처에 살고 있는 나발이라는 부자의 집에서 양털을 깎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털을 깎을 때는 으레 주인이 일꾼들을 위해서 큰 잔치를 열기 마련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수하의 부하 열 사람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먹을 것과 쓸 것을 나누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의 부하들 앞에서 이런 말로, 저런 말로 다윗을 심하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윗이 전해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부하 400명을 이끌고 나발을 죽이기 위해서 올라왔습니다. 그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이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대단히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부랴부랴 떡과 포도주와 고기를 충분히 준비해서 다윗을 맞이하러 왔습니다. 그것을 주면서 아비가일은 남편 나발 대신 다윗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제야 다윗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나발은 아비가일을 통해서 다윗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400명을 이끌고 왔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겁에 질려서 나발이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고 했습니다(삼상 25:28). 하나님이 그를 치셨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
내가 너에게 재물과 부요와 존 귀를 주었지만 너는 그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어. 이리와."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불러가 버리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발이 가지고 있던 그 많은 재물과 부요와 존 귀가 다 다윗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다윗이 대신 누리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이 재물과 명예를 그로 누리지 못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 물질과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기에 주님이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관리능력이 없으니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그래도 안되면 부도처리하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가진 자는 더 많이 얻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 웨슬레는 '돈을 많이 버십시오,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많이 쓰십시오"
이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도적이 오고 좀이 쓸고
충이 먹어 없어집니다. 주신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에 청지기로 살아가야 합니다.
2. 주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즐겁게 사는 삶입니다.
명예도 재물도 건강도 아무것도 없는 장애자들도 자기 인생을 즐기면서 자아를 성취해 가는데 말입니다.
잠실구장에서 개막전 시구를 던 진 애덤 킹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지 못한 뼈 때문에 그의 무릎아래는 티타늄 막대가 전부입니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말하여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오토다케는 신체는 불만스럽게 태아 났지만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팔다리가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방벽 없애기"운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전6:3) “사람이 비록 일 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부귀와 영화를 가진 사람이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또 자녀를 일 백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그 장수함이나 다산으로 자녀를 많이 둔 것 자체로는 복되지 못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사람이 비록 일 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 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자녀를 백 명이나 낳고 오순도순 살며, 오래 살면서 행복해 보려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는 말이죠. 자식을 한 둘 낳은 것이 아니라 백 명. 첫아들은 고위관리를 만들고 둘째는 사업가 만들고 셋째는 군인 만들고 넷째는... 아무튼 요소 요소에 다 박아놓고 멋진 인생을 오래 살며 한번 누려보자고 그렇게 결심을 했는데 그 인생 참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만큼 허무하게 끝났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장사도 못 지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자녀를 많이 낳지만 마음 둘 곳 없어서 방황하다가 객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자살을 해서 파묻지 않은 것인지 아마도 본문이 암시한 바는 자녀를 많이 낳고 효도를 받고 만수무강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장례도 안 치른 것입니다.
일백 자녀를 두었습니다.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건강했을 것입니다. 또 장수의 복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 다음에 나옵니다.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아무리 오래 산들 마음속에 평안히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서 공경을 받고 효도를 받아야지요. 죽었는데 그 몸 하나 제대로 거두어서 장사지내 줄 자녀가 없다면 일백 자녀를 두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왜냐하면 해 아래서 인생들이 겪어야 하는 폐단, 당해야 하는 불행을 낙태된 자는 겪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낙태된 자가 더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솔로몬은 6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천 년의 갑절은 얼마입니까? 2천 년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였습니다. 그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2천 년은 므두셀라가 산 것의 두 배가 넘는 기간입니다. 그처럼 오래 산다고 한들 낙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2천 년이 아니라 3천 년을 살아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무덤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 오래 산다는 것이 고생만 실컷 더 하다가 가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죄만 더 많이 짓다가 가는 셈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서 받을 형벌만 더 쌓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건강의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장수의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자녀의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에 더해서 평강의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면서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3.자족하는 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6:7)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
사람들의 수고하는 것은 그 입을 위한 것이지만, 그 욕심이 차지 아니하는 것 때문에 수고는 더하고 근심하고 죄를 짓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심령에 무엇인가를 채우지 못하여 마구 욕심을 내지만, 성경은 욕심을 내는 것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약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약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그러므로 살인하며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는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욕심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죽고 망하는 것이 인생에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현재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삶에 만족하며 평안과 낙을 누리는 것이 헛된 욕심을 좇아 방황하며 근심하여 평안과 안식을 잃어버린 것 보다 낫지만 그러나 여기서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낙을 누리는 이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인생이 이것뿐이라면 이것도 헛되다고 한 것은 현재의 삶에서 만족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임을 전도자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만족과 안식은 모든 복의 근원이시고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먹어야 삽니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먹어야 합니다. 지혜 자도 먹어야 하고, 우매자도 먹어야 합니다. 부자도 먹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먹어야 하고, 누구나 다 먹어야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식욕은 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잔뜩 먹었다고 내일부터 안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내일이면 또 먹어야 합니다. 인간의 욕구는 식욕뿐이 아닙니다. 다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수로 그 욕구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지혜 자도 먹어야 살고, 우매자도 먹어야 삽니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혜 자나 우매자나 아무리 수고해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지혜자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8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이 사람은 비록 가난하지만 인생 앞에서 행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혜자가 아무리 자기의 지혜를 다 짜내고 아무리 고생하고 수고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쥔들 그것이 무엇이 그리 유익하냐는 것입니다. 또다시 다른 욕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좀더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소유해서 손에 쥐고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낫기는 낫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입니다. 또 다른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봅니다. 삭월세방에 사는 사람은 마음에 소원이 있습니다. "전세방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전세방을 가지기 전에는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마음에 전세방을 그리면서 공상을 합니다. 수고하고, 고생합니다. 그렇게 해서 전세방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행복합니까? 만족도 잠시입니다. 또 다시 마음에 새로운 공상이 생깁니다.
"열세 평 짜리 아파트라도 좋다, 내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또 고생합니다. 또 수고합니다. 그것을 얻기까지는 행복이 없습니다. 드디어 열세 평 짜리 아파트가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까? "좀더 큰 평수, 화장실 두 개 짜리 아파트!" 그렇지 않습니까?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낫지만 이것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바람은 아무리 쥐려고 해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구도 아무리 애쓰고 충족하려고 해도 차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요 4:34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속에 비로소 참된 만족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길이 바로 내 삶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에 두는 것입니다.
4. 강한자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전6:10)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무엇이든지 그 이름이 오래 전부터 칭한바가 되었다는 것은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나 그 특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물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그 존재의 특성까지도 다 규정하셨는데, 인생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규정하시고 주권 적으로 섭리해 나가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계획과 섭리가 다 하나님께 예정되어 있고, 그대로 주권 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기보다 강한 자와 다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다 주장하시는 하나님과 다툴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행하는 것 자체가 망할 수밖에 없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 때에 비로소 겸손히 나오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 강한 자의 편이 되어, 순종하는 삶이 지혜자의 삶입니다. 이분만이 인간의 한계를 다 아시고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전6:12)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 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씀합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모든 인생을 지으시고 지금도 계획 가운데 섭리하시므로 다 아시는 하나님 외에 누가 알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공자는 그의 제자가 내세에 대하여 물었을 때에 내가 이 세상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거늘 죽은 이후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했습니다.
세상 눈으로 보이는 것, 욕심을 추구하는 삶,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 말고, 오늘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능히 즐겁게 누리게도 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찾고, 이 하나님으로만 만족해야합니다.
땅의 것들로 만족하려고 하면 결국은 허무와 근심과 슬픔을 당할 뿐입니다.
전능자시고 전지 자이신 하나님 한 분만이 그림자 같은 허무한 생명의 모든 날 가운데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고 능히 누리게도 하셔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낙을 누리도록 하실 뿐 아니라, 영원한 우리의 신 후사까지 다 아시고 책임지실 분입니다.
강한 자와 누가 다투겠습니까?
이 분을 알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이 분 편이 되어 사는 것이 지혜 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두 단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Ambition, 또 하나는 Vision. 두 말은 다릅니다. Ambition이란 내 욕심에서 기초한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내가 꼭 이루고 싶어하는 것이고 내 꿈과 계획과 야망입니다. 이것은 때로 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Vision은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시기를 원하시는 당신의 소원입니다. 이 Vision은 깨지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Ambition 이 깨져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뜻, Vision 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계획이 깨졌다고 해서 내 엠비션이 무너졌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엠비션은 항상 깨지고 하나님의 비전만 세워주세요 이 엠비션과 비전이 합쳐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건 최고의 인생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 때는 우리의 야망이 깨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더 차원 높은 날 향한 비전은 오늘도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인정할 때에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18세기 초의 영국의 유명한 문필가였던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The grand essentials to happiness in this life are something to do, someone to love, and something to hope for."
무슨 말입니까?
인생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something to do," 뭔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두 번째로, "someone to love," 누군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고,
세 번째로, "something to hope for," 뭔가 바라는, 기대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해 아래 이 세계에 집착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해 위의 세계, 영원한 세계를 소망 가운데서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바로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기쁨 이 만족 이 자유 안에서 사는 것이 주신 분 복을 누리면서 사는 인생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