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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하나님의 창조역사
1. 하나님의 실존
1)하나님의 실존 이해의 필요성
오늘날 선생님이 세계적으로 제창하는 사상적 내용을 보면, 첫째는 뭐냐? 세계 종교를 통일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그럼 종교를 어떻게 통일하느냐?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확실히 가르쳐 주는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체험적 종교로써 실현화시킬 수 있다. 이론적 체계에 의한, 과학적인 데이터에 의한 체험을 시킬 수 있다. 그러지 않고는 종교를 하나 만들 수 없다' 이러한 원리가 종교에 대한 원리입니다.
둘째는 뭐냐? 사상에 대한 원리입니다. 세계가 혼란되어 우왕좌왕하면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돈 가운데 있는 세계인들 앞에 확실한 사상을 중심삼고 찾아 나갈 길, 그 길이 두 갈래라고 선생님은 보고 있어요.
사상은 무엇이냐? 인생문제, 개인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됐느냐? 인간 자체를 논하게 될 때,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이지 근원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가 제1원인적 존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인은 모르지만 결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과적인 존재로 태어났어요. 사람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생각할 때, 결과적으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사람 될 수 있게 된 그 동기가 있음에 틀림없으니 제1원인적인 존재로 제시할 그 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신에 대한 문제를 놓고 나에 대한 확실한 답, 신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터전 위에서만이 내 개인의 인생관이라는 것이 설정되고, 가정이 어떻게 살아 나가고, 사회가 어떻게 살아 나가고, 국가가 어떻게 살아 나가고, 세계가 어떻게 살아 나가고, 앞으로 이 세계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나만의 방향이 아닙니다. 나만의 방향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문제와 원인적인 존재인 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철학을 추구하는 길이 무엇이예요? 철학은 이론을 통해 가지고 신을 규명하기 위하여 모든 지성인들을 투입했지만 실패의 낙인이 찍혔습니다. 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중세의 로마 교황청이 참된 신을 가르쳐 주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가 하나 못 됐습니다. 거기서부터 세계가 인본주의로 떨어진 것입니다. 신이 없다 이거예요. 망상이다 이거예요. 허구다 이거예요. 그건 왜? 신을 확실히 가르쳐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을 확실히 알려면 체험을 통해야 합니다. 체험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론만 가지고 안 됩니다. 직관을 통한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종교는 뭐냐? 철학은 신을 찾아 나가다가 실패했어요. 오늘날 세계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져 싸우고 있지만 이것은 실패로 끝난다는 거예요. 왜? 신을 발견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뭐냐 이거예요. 종교는 신의 규명이 필요 없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신을 발견하고 신과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사는 데는 이상적으로 살자고 하는 생활이념이 되어 있습니다. 생애의 행복을 신과 더불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신과 더불어 사는 종교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사상을 해결하는 데도 하나님을 몰라서는 못 하는 것입니다. 또, 공산주의를-공산주의는 유물론을 주장하는데, 물질주의인데-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을 몰라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신이 없다' 하는 그 주의를 확실히 멸망시키고, '신이 있다' 하는 것을 확실하게, 120퍼센트 강하게 해야 됩니다. 신을 몰라 가지고는 만사가 안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사상도 신을 철두철미하게 확고히 알고 신과 더불어 상대적 자리라든가 대등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올바른 사상이념을 세계에 제시하더라도 그 변하는 환경에 휩쓸려 버립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사상이 못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141- 234)
2)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본심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선의 부모로서 이 우주 가운데 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이 번식되어 이 세계 인류가 되었다면 오늘날 인류가 하나님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공론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핏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번에 몸으로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나무와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설명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지으셨다면 하나님은 창조를 잘못한 것입니다.
본래 인간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설명의 과정을 넘어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여야 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격리된 입장에서 출발되어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으로 벌어져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논의하는 이런 세계가 된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변론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나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할 입장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20-306)
3)하나님의 편재성
우리 인간시조가,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된 이상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분립된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내적 아버지가 되고 아담 해와는 외적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상의 세계가 지상만으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영계가 지상을 대표한 우리 인류시조와 완전히 하나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한 영계는 내적인 면을 표시하고,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이 지상은 외적인 면을 표시해 가지고 일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영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마음 중심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 중심에 계신 그 하나님과 마음 중심의 명령을 받는 아담 해와는 한몸과 마찬가지예요. (145-310)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편재성을 어떻게 느끼느냐? 공기를 하나님의 입김과 같이 느껴라, 태풍이 불어오거든 그것을 하나님의 콧김과 같이 느끼라는 거예요. 흐르는 물이 있거든 그것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시면서 흘리신 땀과 같이 느끼라는 거예요. 태양을 바라보거든 그 태양이 이 우주 전체의 생명의 요인을 상징하였음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태양에서 배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교본이요 교재로 전개시킨 것, 사랑하는 아들딸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재로 세워 놓은 것이 자연이 아니예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나뭇잎을 보고 자기 아들딸같이 여기고 혼자 중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는 성인에 가까운 거예요. 알겠어요? 미친 사람이 아니라구요. (59- 102)
4)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죽어 있나요, 살아 있나요? 「살아 있습니다」 악마도 죽어 있나요, 살아 있나요? 하나님 봤어요? 어떻게 알아요? 악마를 봤어요? 어떻게 알아요? 그래 공산주의로 말하면 관념과 실재문제가 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거지요. 보이지 않는 것은 전부 다 관념이예요. 추상명사. 양심도 관념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나 사랑을 봤어요? 말하자면 사랑도 관념, 추상명사예요. 그런데 사랑은 관념이 아니예요. 실생활의 모든 면에서 접촉하고 있는 거예요. (186-67)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이예요. 하나님은 스스로 '보이지 않는 주인이 되자' 그런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편리한 길 택하려니까 그들이 가만히 있으면 나 혼자 슬슬슬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그들이 암만 따라잡으려고 해도 못 따라잡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게끔 되어지는 것이 제일 편리한 방법일 겁니다. 그러면서 주인 노릇 하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서 주인 노릇 할 수 있으면 그게 바람직한 것이지, 210억 광년이나 되는 우주를 '내 품에 품겨 오라. 넌 내 안에 있어라' 해 가지고 이런 몸뚱이를 가진 하나님이라면 하나님 노릇 해먹겠나요? 하나님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럼, 몸뚱이하고 마음하고 찾아가려면 얼마나 걸리겠나요? 하나님이 볼 때도 한심할 거예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지혜로운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중앙에서 마음대로 거동할 수 있는 무형적인 존재로서 이것을 지배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겠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누가 불평해요? 하나님이 무형이니만큼 존재세계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누가 조금도 지장을 안 느껴요. 여러분들이 몸뚱이가 있지만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여러분들은 모른다구요. 하나님이 꾸벅꾸벅 자는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다구요. 그러니 얼마나 편리해요. 제일 편리하겠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이다 해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 하는 논리는 가당한 논리라구요.
여러분들 공기가 통하는 것을 알아요?「예」 통하고 있지만 그걸 느껴요? 「못 느낍니다」못 느끼지요. 공기가 통하는 것도 못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하는 것을 알겠느냐 이거예요. 그래 할 수 없이 하나님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 편리한 방법이다고 하면서 이 큰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우주를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무형의 하나님의 마음은 이 우주도 작다고 보고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138-167)
5) 하나님은 체휼을 통해 알아야
자, 하나님이 있다, 막연히 하나님이 있다 한다면 우리하고 관계가 먼감이 들어요. 하나님이 있으면 있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거예요. 관계, 릴레이션십(RELATIONSHIP)이란 게 문제인데, 어떻게 관계를 갖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130-209)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 하는 것은 말뿐만이 아니라구요. 원리를 통해서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불가피적으로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던 것이 아니냐.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하늘이 아니냐 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이 아니예요?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알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우면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아는 것이 아니냐.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 경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문제,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58-291)
오늘날 우리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느냐? 또는 '지금 받고 있느냐?' 하고 물어 보게 될 때, 어떻게 생각해요? 오늘날 세계 신학자들 중에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니들은 어때요? 통일교회 패들은 어때요?「압니다」
하나님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심정으로 체휼해야 됩니다. 느껴야 된다 이겁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몫이 있습니다. 그 몫을 우리는 받아야 되겠습니다. (128-130)
여러분,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다가도 '아버지' 할 수 있고, 혼잣말로도 '아버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기 상대를 그리워하는 그 이상의 그리움이 복받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자고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 생활 이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져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가 없는데도 아버지 손이 잡혀진다구요. 그런 일이 있다구요. 꿈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면 아버지 품에 안긴다구요. 이러한 표현적 권에 있어서 체휼적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체휼의 감도, 느끼는 그 도수, 그 양의 여하가 그 사람의 신앙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심정을 가졌다면 어디에 옮겨 가서 '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하게 될 때는,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 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될 때는 '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58-299)
2. 하나님의 창조
1) 왜 천지만물을 지었나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지었느냐? 이게 문제예요. 이 땅이, 만물이 왜 생겨났느냐? 자연발생이 아닙니다. 우연 발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을 할 때,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지 않고는 공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인 논리를 거쳐 가지고 문명도 발전하는 것입니다. 공식을 적용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있어요. 이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164-83)
하나님이 이 천지를 왜 지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가 철학에서도 문제고, 지금 수많은 종교들에게도 문제입니다. 이 하늘땅이 왜 생겨났느냐? 그게 문제라구요. 우주도 물론 그것을 왜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고,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이거예요. (136-136)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느냐? 장난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놀이의 대상으로? 아닙니다. 수확할 수 있는 하나의 결실을 바라보고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27-227)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그것은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혼자로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설령 기쁘다 하더라도 기쁨의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가 아무리 '나는 절대자다. 나는 사랑의 주인공이다. 생명의 주인공이다'라고 한다 해도 절대자 혼자서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천지가 내 몸 속에 있다는 생명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38-152)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왜 했느냐? 생명적 접착을 목적으로 해 가지고 한 것이냐? 아닙니다. 사랑 이상(理想)을 동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188-196)
2)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하나님이 인간을 무엇 때문에 창조했느냐? 아들딸의 생명을 보기 위해서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딸과 더불어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바탕에서 생명이 창조된 것이지 생명을 만들어 가지고 사랑을 유발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래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해서 생명이 시작하고, 그 생명이 사랑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도 사랑으로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시작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끝도 사랑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빼면 우리 인간은 불행한 것입니다. (57- 22)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왜 창조했느냐? 하나님이 우릴 창조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예술작품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가 존재하는 것보다 사랑이 앞섰다구요. 사랑의 모델을 표준해 가지고 전부 다 지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사랑의 모델을 놓고, 하나님이 그 이상적인 모델을 중심삼고 남자를 지었고, 여자를 지었고, 이 피조세계를 지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61-327)
하나님이 사람을 왜 지었느냐 이거예요. 전지전능한 하나님,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을 지었어요? 기독교식으로 그저 지었다고 하면 쉽지요.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통해요. 하나님이 무엇이 필요해요?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고, 금덩이가 필요하고, 다이아몬드가 필요해요?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은 얼마든지 없다?「있습니다」 알기는 아는구만. 또 하나님이 지식이 필요해요, 필요 없어요?「필요 없습니다」 지식의 왕인데 말이예요. 그 지식은 얼마든지 없다?「있습니다」 그래요. 그다음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에게 권력이 필요 있다, 없다? 어떤 거예요?「필요 없습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예요. 그런 것은 '있다'고 해도 되고, '없다'고 해도 돼요. 그 말이 그 말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생명도 필요 없어요. 생명의 주체이신데 그런 것이 왜 필요해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냐? 뭐예요?「사랑」 사랑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에게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이론적 타진에 의해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 안 되어 가지고는 이 창조세계와 인간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고는 존재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표준으로 정하고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121-99)
하나님 자신이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다는 거예요.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는 거지요? 대상권이 없으면 사랑이 성립될 수 없어요. 하나님도 사랑이 절대 필요하니만큼 피조만물을 짓고 피조만물을 대표한 만물의 영장으로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사람이 절대 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적 사랑 대상권의 가치를 준 것입니다. 사랑을 공유하기 위해서 그 대상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자체가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몸이 된 아담 해와 둘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부가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러면 천상세계에 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아담 해와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이 되어 가지고 영계와 지상세계를 치리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된 거라구요.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창조했느냐? 첫째는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 둘째는 형상을 쓰기 위해서, 세째는 실체를 가진 존재들을 주관하는데 무형으로는 안 되겠으니, 자극이 없으니 실체적 주체로 있어 가지고 자극적인 인연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지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첫째는 뭐라구요?「사랑을 위해서」 둘째는 뭐예요?「형상을 쓰기 위해서」 셋째는 뭐예요?「자극적인 인연을 맺기 위해서」 자극적인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예요. (138-212)
하나님이 사람을 왜 만들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좋아서 만든 것이냐? 아니예요. 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예요. 무엇 때문에 만들었느냐 하면, 사랑을 찾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81-16)
3)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지으셨나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시조를 에덴동산에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어떠한 희롱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지어 만물을 대표하는 중심으로 세우게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고 또한 심혈과 당신의 생명의 핵심을 다 기울여 지으셨으며, 사랑과 애정을 몽땅 퍼부어서 지으셨습니다. 어떠한 힘 가지고도 뗄래야 뗄 수 없고,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에게는 비로소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정과 행복은 그 인간을 통하여서만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퍼부어 지은 인간이기에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안 끌려 오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끌으시면 안 끌려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연 가운데서 내용과 목적이 일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지어 놓은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찬양할 수 있는 어떠한 말씀이나 시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어떤 시인이나 문인도 표현하지 못하는 최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도 아니요, 만물도 아니요, 오직 만물을 대표한 인간인 것입니다. (20-207)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말씀을 구상하셨습니다. 그 말씀이라는 것은 이러이러한 실체를 빚어 낼 수 있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그런 실체를 빚어 가지고 그냥 그대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리에 두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실체와 영원히 하나되려고 하신 것입니다.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하나님도 가를 수 없고 인간도 가를 수 없는 불가분의 일체이상을 성사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최고의 자리가 어떤 자리냐?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최고의 자리에 계시고 우리 인간은 무가치한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신 하나님 앞에 최고의 대상으로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발 당시부터 하나님과 인간이 따로 따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같이 출발했다, 하나님이 계심과 동시에 내가 출발을 했다하는 자리를 추구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68-127)
4) 만물을 지으신 목적
본래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어떤 놀이거리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적도 방향도 없이, 어떤 이념적인 내용도 없이 그저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크나큰 목적과 대우주의 이념을 두고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미물(微物)에서부터 어마어마하게 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물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이념이 깃들어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념을 두고 지으신 목적은 무엇일 것이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념의 세계, 즉 사랑과 더불어 통하고, 사랑과 더불어 즐기고, 사랑과 더불어 살고, 사랑과 더불어 죽는 세계를 목적하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눈앞에 펼쳐진 만상(萬象)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보여지는 그 만상을 통하여 무엇인지 모를 간접적인 인상을 받고 그 반응되는 감각으로 생활에서의 감각을 높여 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지극히 작은 미물이라도 반드시 우리와 인연되어 있고 관계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시해도 그 미물은 그날 그날 천륜의 이념에 따라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며 인간과 더불어 인연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뇨? 지극히 작은 존재물에서부터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목적을 중심삼고 보면, 다 하나님의 대우주의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의 이념권내에 들어 있는 연고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은 대우주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큰 분야를 맡고 있는 것에 흡수되어 움직이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에 흡수되어 그것의 재료가 되고, 한 요소가 되어 대이념을 중심하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게 됩니다. 역사는 이렇게 진전되어 나오는 것이고, 존재세계는 천륜이란 원칙의 궤도에 따라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여 나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9-164)
하나님이 왜 만물을 지었느냐? 자기가 사랑할 대상을, 대상자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먹고 살다가 자기의 본연의 세계로 돌아와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본국에 들어와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142-76)
5)창조의 과정
보라구요. 여러분이 성경을 보게 되면 천지창조한 것을 간단히 말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는 거예요. '야,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나왔다는 거예요. '별이 생겨라' 하면 별이 생겨났고, '지구성아, 생겨나라' 하면 지구성이 생겨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무한한 질서와 법도를 따라 가지고, 전진적인 원칙을 계승시켜 가지고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발전시켜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 모든 만물을 지어 놓고 만물의 정수로서 갖다 집약시켜 놓은 것이 소위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과 해와, 인류의 조상입니다. (65-21)
창조할 때에 무엇으로 했느냐? 처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더불어 계획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창조해 가지고 이러이러한 인간세계를 만들겠다는 본래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6-92)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을 때는 환경을 먼저 창조 했다는 거예요. 환경 창조를 먼저 했다 이거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거기는 반드시 주체 대상을 중심삼고 작용하는 세계예요. 결과가 그렇게 된 거예요. 주체 대상이 합해 가지고 작용하는 현상세계로 자연계는 전개되어 있습니다. 딱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131-217)
보라구요, 우리가 천지창조의 이치를 가만 보게 될 때, 핵심을 먼저 만들어 놓고 상대를 만든 것이 아니예요. 핵심을 만들어 놓기 전에 상대적인 여건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흙을 먼저 만들어 놓고….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여 내적인 것을 세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천지창조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구요. 천지창조의 이치가 그렇다 이거예요. 오늘날 인간창조를 보게 될 때에도, 인간을 짓게 될 때에는 몸뚱이를 먼저 만들어 놓고 영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152-319)
3. 우주(宇宙)
1) 우주가 뭐냐
우주는 뭐냐 하면,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전부 다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합니다. 원자만 해도 그렇잖아요? 양자하고 전자하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을 하는 거라구요.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137-59)
우주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하나의 몸뚱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뭄뚱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논리가 여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분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성립된다구요. 우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실감난다는 거예요. 여러분 머리도 이렇게 쓰다듬어 주고 그러지요? 옷도 뭐가 묻으면 그저 털지요? 그거 왜? 내 것이니까, 나와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념이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되고, 몸이 하나되고, 만물이 하나되고, 이런 통일의 세계를 이루어야 됩니다. (86-174)
2) 우주의 규모와 구조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말이예요, 몇억 광년이예요. 빛은 1초 동안에 3O만 킬로미터를 가는데, 그 30만 킬로미터가 얼마냐 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예요. 그 거리를 1초 동안에 달리는 빛이1년 걸려서 가는 거리를 천문학에서는 1광년이라 합니다. 그런 광년을 단위로 삼아 가지고 출발한 빛이 몇억 광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그렇게 큰 우주예요. 알겠어요? (127-216)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지금까지 100억 광년 저 세계의 별까지 전부다 발견했는데, 이제는 뭐 150억 광년 저 세계 별도 볼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 이상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말이예요, 금방 뭐라고 했나요? 백억, 대개 잡기를, 그것도 원리적 수예요. 210억 광년, 그렇게 크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말이예요, 빛이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출발해서 그것이 하루 걸리는 것을 뭐라고 할까요, 하루 걸리는 것을? 응?「일년 걸리는 것을 1광년이라고 합니다」 아, 글쎄 하루 걸리면 뭐라고 그래요? 광년이 아니라 1일 뭐라고 그래요? 1뭐예요, 1광일. 한달이면 1뭐예요?「1광월」 나 모르겠다구 복잡해서. 여러분 알아서 해요.
자, 이게 출발해서 1초 동안에 3억 미터, 빛과 전기의 속도가 마찬가지예요. 3억 미터 간다구요. 거리로 말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거리입니다. 일곱 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입니다. 딱 하면 벌써 일곱 바퀴 반을 돌아요. 그렇게 빠른 빛이 하루 걸려도 허리가 구부러지고, 생각이 다 둔해 가지고 '나 모르겠다' 할 텐데 백년이 아니고 백의 몇 만 배예요? 백의 몇만 배인가? 백의 천만 배가 억이예요. 그렇지요? 백의 천만 배인가? 백의 백만 배, 그게 1억인데 1억 광년. 출발해 가지고 1억 광년, 아직 가고 있는데 사람이 백 살 산다면 백만 사람이 죽어가요. 1억광년에 말이예요. 1억 광년이니까 백 사람이 나서 계속해서 백 년을 살다 죽어가기를 백만 사람이 죽을 그때에 가 가지고도 또 가는 거예요.
그럼 210억 광년 하면 얼마예요? 백 사람이면 몇 배예요? 응, 응? 2천, 2억? 그렇지요? 2억 백만 명? 2억 백만 명인가, 그거 몇 명인가? 응, 응? 아, 나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이 계산하라구요. 그 사람들이 닐니리 서 가지고 이어서 살고 죽고 또 살고, 백살까지 살고, 백살까지 살고 이렇게 2억 백만 명이 살아서 그만큼 가는데 또 계속간다구요.
그 먼 거리가 직선으로 가지 않아요. 이게 둥글둥글둥글 돌고 있다 이거예요. 이러한 우주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돈 필요하지요? 다이아몬드 필요한 사람 손들어 봐요. 응?
자,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내 앞에 이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갈 때까지, 아직까지 끝나지 않고 달려가는 그 거리가 얼마나 멀까요? 얼마나 멀어요? 그건 뭐 몇천 년 몇만 년 죽다 살다 또 부활해도 못 따라갈이만큼 먼 거리입니다. 그런 세계가 있어요. 그게 맹목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다 주고받는 대응관계를 중심삼고 전부…. 우리 세포에까지 작용한다구요. 공산주의에서는 그렇게 생긴 것이 그냥 생겨났다는 거예요. (181-195)
3) 우주의 완성
우주의 완성, 우주의 완성이라는 말은 쉽지만 도대체 우주의 완성이 뭐냐? 우주를 완성하려면 내가 완성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우주가 완성 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완성 못 하면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좋더라도, 아무리 외적 세계가 다 좋아하고 춤을 춘다 하더라도 자기가 지금 고통에 사무쳐 있다면 그 모든 외적 세계의 기뻐하는 환경도 나와 관계가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우주의 완성이라는 것은 외적인 세계도 좋지마는 내적인 내 자신, 나도 좋아야 합니다. 좋은데는 마음도 좋고 몸도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세포로 보면 세포가 전부 다 좋아야 됩니다. 눈의 세포하고 발바닥에 있는 세포하고는 다르지요? 다르다구요. 다르지만 그 세포들이 다 좋아하고 손의 세포도 좋아하고 모든 세포들이 좋아하고, 몸과 마음 어디 하나 남기지 않고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 가지고 연체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공명적인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라야 우주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166-210)
4. 자연과 인간
1) 자연은 제 1의 성경
옛날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연은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 온 성경을 보면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거든요. 그 내용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알아요? 그것은 점장이들이 점하는 것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사실의 내용을 판단하고 전후사정을 가려 내려면 힘이 들기에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거예요. (20-271)
2) 하나님의 심정적 인연이 깃들어 있는 만물
인연이란 것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도 4백조 개나 되는 세포로 인연되어 있는 생명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창조이념세계, 즉 대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심정 밖에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느끼는 시인은 위대한 시인일 것입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주적인 심정을 느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우주적인 시인일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 너무나 무시하고 무관심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우리도 모르게 벌어져 있는 천하만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이란 사실을 몰랐습니다.
신령한 경지에 들어가 보면 조그만 모래 한 알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고, 하나의 원자에도 무궁무진한 우주의 조화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떤 복합적인 힘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자를 지나 원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과 목적을 갖추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과 심정적인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겠습니다.
도인은 어떤 사람이뇨?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나님!' 할 수 있는 심정으로 자기의 가치와 동등하게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도인일 것입니다. 그렇게 그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예술가일 것입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각양각색의 사랑과 심정의 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과 친구가 되어서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감정으로 세포 하나하 나가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만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물의 영장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지으실 때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어 놓고는 보기에 선한지라 하셨습니다.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지으신 만물에 하나님의 목적의식이 내재되어 있기에 창조된 만물을 놓고 하나님은 기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이뇨? 한마디로 말한다면 삼라만상의 개체개체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입체적으로 갖춘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하늘이 보시는 인격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양반이 동물을 보고, 혹은 새를 보고 설교했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꿈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9-168)
3) 우주는 하나님이 지은 자연 박물관
어린애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예요…. 오모짜(おもちゃ;장난감) 같은 것을 볼 때에 그게 뭐냐 이거예요. 움직이는 물건이다 이거예요. 오모짜들을 전부 다 좋아하는데, 움직이는 물건 가운데서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은 동물이예요, 강아지 새끼니 무슨 뭐 벌레니 하는. 아이들은 전부 다 날짐승, 들짐승, 이런 움직이는 것들을 중심삼고 좋아합니다.
거 왜 그러냐? 본래 사람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인간이 자연세계나 이 지구의 움직임을 보고 취미를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전부 다 그걸 취미로서 말이예요, 또 다른 상대와 같은…. 물론 상대기준이 다르지만, 거기에서, 그걸 감상하는 데서 인간은 참 재미를 느끼고 흥미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체의 사랑의 속성을 다 배우는 거예요, 이게. 벌레들이 살고 곤충들이 살고 혹은 동물들이 사는 것 보면 전부 다 쌍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렇게 볼 때에 자연은 뭐냐 하면, 인간 하나를 사랑의 대상으로서 상대 이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전개시켜 놓은 교재, 박물관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새들의 노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첫째는 배가 고플 때 신호하는 노래하고, 그다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노래하고, 그다음에는 위험할 때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는 뭐, 보통 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들 세계에서는 다 안다는 거예요. 배가 고파서 울면 벌써 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매일의 생활이 무엇을 중심삼고 돼 있느냐? 배고픈 거야 한번 먹으면 끝나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매일같이 뭐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예요. 대부분의 노래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하면, 상대와 주고받는 관계에서 노래가 오고 간다는 거예요. (137-211)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있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자라나는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135-12)
맨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남을 입은 아담 해와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커 가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피조세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서 교육해 나오는 겁니다. 피조세계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우리 인간시조, 본래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교재였습니다. 하나의 완성된 아담 해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표본이요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137-128)
4) 자연을 대하는 자세
아침에 눈을 뜨고 자연을 바라보면 그 자연이 은은하게 내 본성과 인연되어 새로운 이상의 감정을 싹트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바라보면 볼수록 절망과 슬픔의 감정을 돋구어 준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 하면, 인간의 가치는 그렇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풀 한 포기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와 같은 정도의 가치로 지어진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피조만물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이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의 모습으로서 천상을 대신하여 나서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9-97)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자연을 바라보고 '세상의 왕, 혹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 갖고 있는 훌륭하다는 물건에 비할소냐. 골동품에 비할소냐. 어떤 유명한 부인이 입고 있는 호화로운 옷에 비할소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자연세계 앞에 자신도 모르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를 볼 때, '인간이 만든 어떤 물건에 비할소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훌륭하겠는가' 하며, 하나님이 심정을 기울여 지으신 만물을 붙들고 무엇보다도 귀하게 느끼는 자가 있다 할진대, 이는 틀림없이 하늘의 아들딸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은 인간을 그러한 자리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보십시오.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귀여워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면서도 제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귀여워할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딸이 돼요?
탄식하는 만물의 한을 해원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진 여러분은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6천년 전 그것들을 지으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의 손길을 체휼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길을 가다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도 울 수 있어야 됩니다. '주인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외로웠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한번 그래 보세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많이 울어 보았습니다. 바위를 붙들고도 울어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도 울어 보았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이해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가치있는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인연을 맺은 귀한 만물이, 오늘날 어떠한 왕궁에서 뭐 국보니 보물이니 하며 귀하게 여기는 물건만큼의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서글픔을 나는 알아줘야지, 나만은 알아주어야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이 땅에 사는 세계 인류가 전부 몰라주어도 나는 알아줘야지' 하는 마음을 여러분들이 가진다면, 이민족은 앞으로 세계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어느누가 만물을 놓고,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가문의 보물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석이라 하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게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합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주고 그것을 붙들고 눈물짓는 사람을 보고 '오냐'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겠는가 안 하시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9-175)
자연은 뭐냐? 하나님이 나를 위해, 위하는 사랑을 가진 아들딸이 태어날 때 위할 수 있는 만물로, 선물로 준 전시품입니다. 새 소리 하나,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라도 사랑의 아들딸들의 생활의 미화를 위해서 만들 어진 장식품이라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굴러가는 바위도 아들딸이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이 될 것을 알고 그 나라의 장식품으로 지었다는 거예요. 흐르는 물도 마찬가지예요.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우면 안 되겠으니 조화무쌍한 화합의 동산, 사랑을 위하는 그러한 세계를 보고 그것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꿈의 왕자, 희망의 왕자를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통해서 배우는 거예요. 수놈 암놈이 짹짹 할 때는, 이것을 주인 되는 아주머니도 배우라는 겁니다. 서로 위하는 세계를 향해서 자기 일생을 생명을 걸고 사는 본연의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 울타리에 새 새끼도 와서 살려고 한다는 거예요. 새끼를 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박물관에 있는 무슨 작품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해도 살아 있는 작품에 당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작품인 이 지구성 만물 박물관을 누가 하나님 이상 사랑했느냐 이거예요. 자기 나라의 박물관 이상 사랑했느냐 이겁니다. 길가에서 밟히는 민들레 짜박지 한 포기가 박물관에 있는 신라시대의 금관에 비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건데? 조국강토를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너를 본연의 하나님이 위할 수 있는 왕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던 그 자리에서 사랑을 못 하는 내 자신이 미안하다. 부끄럽다' 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버젓이 위하는 그런 왕이 있다고 할 때는 풀포기도 그 왕을 따라가서 영원불변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인간인 것입니다. (175-187)
5)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만물은 하나님의 상징적 존재요, 인간은 실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과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만 있는 교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다 갖춘 교회를 만들어야 되겠어요. 헌신만이 제일이 아닙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고아로 자랐으면 고아밖에 안 되는 거예요. (70-182)
언제나 자연을 사랑해야 돼요. 자연을 사랑해야 된다구요. 또,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 가운데에서도 말이예요. 오색인종을 다 사랑해야 합니다. '어, 나는 백인들만 좋아' 하나님이 그럴까요? 그러면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돼요. 백인들은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돼요. 색깔있는 옷은 전부 다 버려야 된다구요. 검정옷은 왜 입어요? 색깔이 있는 옷은 왜 입어요? 모순이라구요. (133-30)
제2절 인간의 가치와 인체의 신비
1. 인간의 위치와 특성
1) 인간의 격위
① 하나님의 형상을 쓴 분성적 실체
우리 통일교회 원리에서는 하나님은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 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장성하게 되면 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되고, 그러면 종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담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의 마음속에 임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아담의 자리에 계시고, 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자리에 있어 가지고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아담은 인류 앞에 있어서 누구냐 하면 보이지 않는 내적인 아버지를 모신 실체 아버지의 자리에 서는 것이고, 또 해와는 누구냐 하면 내적인 어머니의 신을 모신 실체의 인류세계의 어머니로 서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종적인 기준에서 횡적 기반으로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138-247)
하나님은 왜 아담 해와를 필요로 했느냐? 두 가지의 목적이 있어요.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뭐냐?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는 그 기초, 그 핵심이 아담 해와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아담 해와가 완성해서 영계에 갔더라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과 같고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마음과 같은 자리에서 보좌하는 거예요. 하나의 사람, 하나의 결과로 이루어 놓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이예요. (92-147)
②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얼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그 주체자, 즉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한 것, 보는 것, 느낀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53-51)
하나님이 피조만물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인들이 믿듯이 말씀으로 도깨비 방망이같이, 요즘 미국의 아이들이 보는 동화 영화에서처럼 뭐 속닥속닥해서 '되라' 하면 착 되는 그러한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구요. 사랑의 대상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전체를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하자는 것이냐? 우주에 사랑의 핵을 설정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이었습니다. (166-147)
③ 하나님의 아들딸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신성한 자체로서 지고(至高)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피조 인간, 즉 피조물과 창조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피조물은 속된 것이고 창조주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아무리 지고지선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저속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내용이 닮아야 됩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즉, 인격을 갖춘 사람과 성품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통해 닮았느냐? 핏줄을 통해서, 혈통을 통해서 닮았다는 거예요. 그 혈통을 통해서 인연되었다는 것은 사랑으로 인연 되었다는 뜻입니다. (138-246)
본래 인간의 특권은 무엇이냐면 누구를 막론하고 천상왕국세계에 있어서 황태자로 태어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공주로 태어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의 권위였습니다. (68-326)
그러면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인간의 이상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이 무엇이냐? 어디에 귀결되느냐? 그것이 무엇이겠어요? 그 첫째가 뭐라구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인간의 최대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다음은 뭐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뭐라구요? 하나님의 모든 존재를 내가 상속받는다, 그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의 소망이 무엇이냐?「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는 것, 하나님의 모든 존재를 상속받는 아들딸이 되는 것」 그러면 다 되었다구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이 연결되어야 됩니다. 혈통적 연결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만약에 인간조상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이 태어나기를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났겠어요? 자연히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91-242)
④ 만물의 영장
㉠ 만물의 영장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반드시 중심에 서서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세계적인 중심이 되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 중에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또한 절대적인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과 하나되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보다 나은 가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것은 본래 우리 인간이 역사시대의 전체 가치를 대표하는 중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2-212)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울 때는 하늘땅의 모든 환경을 대표한 그 가운데의 센터로 세웠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한 부분으로 세웠겠느냐? 이게 문제예요. 「센터요」 그게 사실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우주의 중심이 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주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건 뭐 원숭이세계라든가 사자세계, 호랑이세계에는 없다구요. 사람세계에만 있다구요. (117-35)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오늘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영(靈)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겐 그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영(靈) 중의 장(長)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 가지고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점령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 하게 되면 장(長)은 영(靈)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암암리에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2-137)
㉡ 동물과 인간이 다른점
동물과 인간이 다른 게 뭐예요? 먹는 것도 마찬가지요, 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옷 입고 이런 것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눈, 코의 생김새, 구조로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사람 가운데 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몸뚱이 가지고, 눈코 가지고 생활하는 것을 중심삼고 귀하다고 보는 거예요? 무엇을 가지고 귀하다고 보는 거예요. 인간을 보면 인간은 영적인 인간과 육적인 인간으로 되어 있어요. 영육이 합해 가지고 하나의 사람이 되어 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 둘이 컴바인(COMBINE;결합하다), 하나되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육적인 생활, 육을 가지고 사는 생활은 동물적인 생활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먹고 자고, 그다음엔 또 먹이를 위해서 활동하고, 딱 마찬가지예요. 동물과 뭣이 다르냐 이거예요. 동물과 뭣이 다르냐구요.
자, 인간이 동물과 무엇이 다르냐? 그것이 이 우주세계에서 다른 가치를 갖게 하는, 귀한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추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귀하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 편이 귀하다 하는 것은 육적 편과 다르다 이거예요. 달라야 된다 이거예요. 영적인 것이 높다면 육적인 것이 낫다 이거예요. 또는, 영적인 것이 낮다면 육적인 것이 높다 이것입니다. 둘이 다른 것이다 이겁니다. (129-307)
그러면 사람과 원숭이를 비교해 봅시다. 원숭이와 사람은 근본이 다릅니다. 원숭이는 그저 낑낑대고 먹고 자고 새끼 낳는 것이 제일입니다. 원숭이가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우나요? 원숭이가 형님을 염려해서, 혹은 부모를 위해서 죽으려고 합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때요? 그런 것을 해요, 안 해요?「합니다」 종자가 다른 거라구요. 그리고 원숭이들이 모여 앉아서 조상이 뭘 어떻게 했고, 신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의논을 할 줄 압니까?「못 합니다」 영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요? 이 우주가 평화의 세계가 되고 하나의 세계가 되고 사랑의 꽃동산이 된다는 것을 꿈이나 꿉니까? 그런 원숭이가 진화되어서 인간이 되었다는 사람들은 개나 돼지와 같은 패들입니다. 사람과는 종자가 달라요.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중심삼고, 보다 큰 것을 중심삼고 소망하면 서 살게 되어 있지, 자기보다 낮은 것을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즉 인간이 생겨날 때부터 신을 숭상해 왔습니다. 신을 숭상하지 않은 종족이 없습니다. 신을 생각하고 우리 인간이 보다 나을 수 있는 우주를 생각하면서 나왔다는 겁니다. 원숭이가 그 골통으로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어요? 몇천 몇만 단계가 지나도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 그럴 수 있는 내용의 힘이 어떻게 가중해 들어가겠습니까?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39-333)
㉢ 인간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상대
그러면 천지만물 가운데 절대자 되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물은 어떤 것이냐? 생각해 보세요. 곤충일 것이냐? 아니면 우리집 뒷뜰에서 콜콜 자는 예쁘장한 강아지일 것이냐? 이러한 것들이 절대적인 상대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강아지보다 더 지혜로운 원숭이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그러면 원숭이일 것이냐? 오늘날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요? 앞으로 내가 대학생들을 설득해서 교수들한테 전부 다 '원숭이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인사하라고 시켜 보면 어떨까요? '교수님은 원숭이의 머리하고 원숭이의 뼈다귀를 갖고 계시죠?' 그랬다가는 '예끼놈!' 할 것입니다.
사람이 원숭이와 같은 뼈다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영적 존재가 아닌 원숭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숭이의 손과 발의 모양은 사람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이 사람과 닮았기 때문에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숭이는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원숭이 띠입니다. 그거 생각하면 내가 원숭이 띠로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내가 원숭이를 싫어한다구요.
인간과 원숭이를 해부학적으로 보면 수십 가지가 틀립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이 원숭이가 비약적인 발전, 즉 돌연변이에 의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논법은 그럴 듯하지만 여기에는 전부 다 무신론자들의 마술적인 요인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승공이념을 들고 나와서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원숭이를 절대적인 창조주 앞에 절대적인 상대로 세웠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상대가 저게 뭐야! 대변도 가리지 못하는구만. 다니는 것이 저게 뭐야. 네 발로 다니는구만' 하면서 참소할 것입니다. 네 발로 다니는 것은 아직까지 미완성한 것입니다.
인간도 아기 때에는 네 발로 다닙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형(形)으로 보아서도 미완성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네 발로 다니지 않습니다. 사람은 두 발로 다닙니다. 그것은 벌써 원숭이보다는 입체적인 안전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하늘과 땅의 연락기관입니다.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왔다갔다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와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38-159)
㉣ 사람이 서서다니는 이유
모든 만물 가운데, 동물들은 전부 다 네 발로 다니는데, 사람은 왜 서서 다니느냐? 거 왜 그래요? 종적인 대표자이기 때문이예요. 이 모든 피조만물 가운데 사람만이 설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고, 무형세계니 뭣이니 이러한 무한히 높은 수직 세계의 곳과 무한히 낮은 수직 이하의 세계를 생각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서 다니는 동물의 권위를 상실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나무가 서 있기 때문에, 나무의 순이 태양빛을 향하기 때문에 그 나무가 선 가치가 벌어지는 거예요. 사람이 서서 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흠모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 여러분들은 낮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 높은 사람 되려고 해요. 높은 사람 되려고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욕심 있지요?「예」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96-217)
온 피조세계에서 움직이는 것 가운데 서서 다니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거 왜 인간은 서서 다니느냐? 그것은 벌써 모든 표준이 종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횡적 90도를 중심삼고 얼마의 각도를 가졌느냐 하는 데 따라서 그 가치의 기준이 달라지는 거예요. (36-204)
2) 피조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
① 두 세계의 주관자
인간은 두 세계를 주관해야 합니다. 천상세계의 하나님과 지상에 있는 나, 하나님과 나는 양손으로 톱을 붙들고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하여 박통 같은 세상을 쪼개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톱날이 다 닳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에는 통일교회 남자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통일교회 여자가 있다고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서 이 세상을 쪼갤 수 있겠어요? (34-347)
② 화동의 중심체
인간은 화동의 중심체입니다. 그런데 화동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중심기준이 결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박자를 맞추려면 지휘자를 중심으로 상하관계가 잘 연결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우주의 화동의 중심체가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이러한 인간은 절대적 기준과 일치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인간이 머무는 곳에 우주가 머무는 것이요, 존재세계가 그를 중심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용으로 말미암아 존재세계에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29 -128)
자, 이 우주에서 하나님이 웃고 싶어서 땅하고 연락하려면 사람을 통해야 되고, 땅이 웃고 싶어서 하나님께 연락하려면 사람을 통해야 된다 이거예요. 사람을 통해야 된다구요. 왜 우주도 사람이 필요하고 하나님도 사람이 필요한지를 알겠어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사람이 돌아가면 하나님도 돌아가고, 사람이 돌아가면 우주도 돌아간다는 거예요. 사람이 안 돌면 하나님도 안 돌고, 우주도 안 왔다갔다한다는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96-232)
우주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중심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즉 절대적인 실체가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중심의 요소와 일치된 내용을 지닌 존재가 그 중심에 가까이 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내용에 일치되는 요소를 갖추어서, 심정적인 일치냐, 사정적인 일치냐, 소망적인 일치냐 하는 문제를 중심 삼고 거기에 전부 백 퍼센트 일치되면 그 중심에 가까운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24-220)
③ 대우주의 축소체
사람은 뭐냐? 대우주의 축소체입니다. 여러분이 소우주입니다, 소우주. 대우주는 뭐냐? 대우주는 피조세계인 것입니다. 대우주의 원천은 힘의 원천입니다. 작용의, 힘의 원천이 뭐냐? 하나님입니다. 나는 대우주 앞에 선 하나의 소우주로서, 대우주의 끊임없는 힘의 원천이 되는 그 힘이 내 마음에 들어옴으로써 이 대우주와 상응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뭐냐 하면 우주의 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의 나무로 비유하게 되면, 대우주라는 큰 묘목이 있는데, 그 묘목 가운데 인간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하나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수꽃, 암꽃이 있는데 원칙적 조화의 작용이 벌어져 씨앗을 만드는 거와 마찬가지로, 남자 여자가 우주의 꽃으로 피어 가지고 향기를 풍기는 때가 사춘기 시절입니다. (121-190)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예요. 사람이란 어떤 존재냐? 사람이라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구요. 우주의 공동적인 인연을 종합해 가지고 결실체로 나타난 것이 인간이 아니예요? 이런 인간에게는 만물의 종합상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요, 우리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수많은 선조들의 모든 소성들이 전부 다 투입된 거라구요.
김 아무개 하면 그 아무개 하나가 아니라고요. 얼굴은 지금 자기 얼굴같이 느끼고 있지만 그 얼굴이 있기까지는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 왔다구요. 수만년에 걸쳐서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아 가지고 그렇게 생겨난 거라구요. 그것은 기적적인 실체라구요.
그뿐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하늘의 인연이 따라왔기 때문에 그가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인연을 두고 볼 때 무한한 곡절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의 자기를 이루어 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58-304)
3) 인간의 형(型)
① 사람의 구분
육적 인간은 동물적 인간이고, 영적 인간은 정신적 인간입니다.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면 동물적 인간, 정신적 인간이예요. 동물적 인간은 무가치한 것이고 정신적 인간은 유가치한 겁니다. 질(質)로 보면 무엇이 다른 것이냐 이거예요. 동물적 인간은 자기 위주해서 사는 사람이요, 정신적 인간은 전체를 위하는 사람입니다. (129-303)
이 땅 위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사는 사람, 마음이 하자는 대로 사는 사람-마음도 변하는 거예요- 그다음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몸이 하나돼 있는 그 부분에 몸 마음이 일치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이 이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70-6L)
신념이 강한 사람, 이지적인 사람, 정적인 사람 등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인물이 생깁니다. 이것이 12형으로 갈라지고 다시 이것이 3단계가 되면 36형이 됩니다. 또 이것이 양성(兩性)으로 벌어 지면 72형이 됩니다. (18-94)
② 사람의 여러 가지 형(型)
통일교인을 보면, 다 같은 통일교인이지만 천태만상입니다. 백이면 백사람 다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쪽에 선형, 서쪽에 선 형, 남쪽에 선 형, 북쪽에 선 형 등 그 타입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동쪽 형의 사람, 서쪽 형의 사람, 남쪽 형의 사람, 북쪽 형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혹은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 절기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얼음처럼 냉정하게 꽁꽁 얼어붙은 형이 있는가 하면,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형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늠름하고 언제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형은 여름절기의 형입니다. 후딱 올라갔다가 후딱 내려오는 형은 가을절기 형입니다. (33-40)
여러분 각자는 지금 어느 절기에 해당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기질을 생각해 보면 자기가 봄절기에 해당되는지, 여름절기에 해당되는지, 가을절기에 해당되는지, 겨울절기에 해당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참 아름답고 정적인 면에서 아주 포근하여 무엇이든 잘 흡수하는 사람은 봄절기에 해당합니다. 또 아주 정이 많고 눈물이 많은 사람은 여름절기에 해당하고, 쌀쌀하고 깨끗이 생기고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은 가을절기에 해당합니다. 그다음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꽝꽝 달라붙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어느 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상대적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즉, 봄절기의 사람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름절기의 사람은 겨울절기의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너무 뜨거워 걱정이 되는 사람은 차가운 사람을 만나서 식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눈을 보면 알 수 있고 또 그 생김새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1-215)
기도생활을 하게 되면, 사람을 대할 때 척 보면 벌써 설명하기 전에 그사람이 A, B, C형 중 어느 형인가를 분석한다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이 빠르다는 거예요. 그런 체휼이 벌어져야…. 영들도 무수해요. 사람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별의별 영이 다 있다구요. 사람 가운데도 별의별 녀석이 다 있지요? 마찬가지로 영들도 그래요. 그러니 영을 감정하기 위해서는 그런 내 스스로의 척도, 마음의 영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이 왼쪽으로 가느냐 바른쪽으로 가느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것을 가릴 수 없다는 거예요. 선한 신이냐 악한 신이냐 하는 것도 그런 느낌을 통해서 대번에 분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체휼적인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76-146)
③ 개성진리체로서의 인간의 특성
여러분, 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냄새가 다르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냄새를 맡으면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개들은 전부 벌써 냄새를 맡고 찾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한 2백 명이 모였다고 할 때, 2백 명의 냄새를 전부 맡는다면 전부 다 다르다는 거예요. (98-266)
우리 교회에서 말하는 개성진리체라는 말은 특수한 용어입니다. 개성 진리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영어로 인디비쥬얼 트루스 바디(INDIVIDAUL TRUTH BODY;개성진리체)라고 하는 거예요. 이상한 말이지만 할수없다 이거예요. (133-14)
개개인이 가진 특성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개개인의 됨됨이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41-136)
우리 원리 가운데서 인간이라는 것은 개성진리체입니다, 개성진리체.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머니 아버지와 다르다는 거예요. 만약에 그 본성이 다르지 않으면, 특성을 갖지 않으면 그건 뭐 필요 없을 거라구요. 하나님이 다양한 개성진리체를 이 땅 위에 두고 싶었는데 그러한 분립체로서 태어난 것이 우리 개체 개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 개체 개체를 상대함으로 말미암아 큰 하나님의 전체 기쁨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작지만 평등적 자유, 평등적 가치를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이 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얼굴이 똑같으면 얼마나 재미 없겠어요? 거 질색할 거라구요. 얼굴이 길고 넓적하고 코가 다르고 전부다 다양하기 때문에 보면 볼수록 관심을 갖게 되는 거예요. 이것도 재미 있고 이것도 재미있고 전부 재미있는 거라구요.
자, 여러분이 옷을 입는 데도 남자 여자 다 같이 춘하추동 같은 절기에 살지만, 옷 입는 것을 보면 전부 다 달라요. 또 그다음에 걷는 것도 그래요. 걷는 것도 다 다르다구요. 전부가 다 달라요. 이거 손 놀리는 것도 간단한데 전부 다르다구요. 또 웃는 것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모두가 달라요. 그래 가지고 개성진리체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게 귀한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 얼굴을 가만히 보면 눈하고 코하고 귀하고 입하고 이 네 가지가 있는데 세계 40억 인류를 갖다 맞춰도 하나도 같지 않아요. 이게 신비로운 거예요. 그 자체가 신비로운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렇게 볼 때, 개성진리체가 즐거워할 수 있는 천국이라 하면, 천국 가운데는 남자 여자를 중심삼고 개성적인 인간들이 들어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인간들이 조화된 그 자체가 전부 다 이상형으로 나타나는 곳입니다. (124-279)
4) 인간의 특성
① 사람은 귀하다
우리가 모든 만물의 세계를 보더라도 반드시 기원이 있습니다. 기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원에 있어서 사람이 중심이었느냐 하는 문제,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광물세계와 식물세계와 동물세계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냐 하는 문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고 하였는데, 그런 사람이 가장 귀하다면 그 귀한 것을 누가 귀하다고 했느냐? 만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는 결정을 누가 했느냐? 그러면 식물계를 두고 볼 때 식물 자체들은 귀하지 않다는 말이냐? 물론 귀하지만 그 가운데 최고의 가치의 내용을 가진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귀하다는 것이 인간의 일평생을 두고 한 말이냐? 그렇지 않으면 내가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혈족을 통해 가지고 이어 나오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인데, 우리 조상 들도 다 그런 것이 아니냐. 또 앞으로 태어날 후손도 그럴 것이 아니냐. 그것을 누가 정했느냐 이겁니다. 누가 정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정한 자체를 진정 믿을 수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귀하다'라고, '저 사람은 귀한 사람이다'라고 할 때, 그걸 누가 결정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자신이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보다도 동기가 될 수 있고 근원이 될 수 있는 그런 중심자, 어떤 주인이 있어 가지고 그 주인이 결정했다면 그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결정했다고, 우리들이 결정했다고 생각 한다면 우리들이라는 자체가 오늘의 내 생활을 중심삼고 가야 할 방향도 모르는 사람이고, 지금 세상에 사는 사람도 그렇잖아요? 단지 동물과 같이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다, 이런 입장의 인간으로서 자기 스스로가 만물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라고 결정했다면 그 자체를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이런 입장에 서있는 자신을 중심삼고 그 자신이 자기가 귀한 자리에 있다고 하는 결정을 했댔자 그것이 만우주에 공인된 사실로써 보편화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면 누가 정해야 되느냐? 이 모든 것을 있게 한 어떤 원인적인 존재가…. 광물세계면 광물세계를 보면 무한한 원소들이 서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그 광물세계의 신비스러운 모든 구조와 형태라는 것이 맹목적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어떤 방향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목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이렇게 있게 한 주인이 계시다면, 그 주인으로부터 '너는 내가 지은 만물 가운데서 제일 귀하다'라고 하면 그것은 전체가 공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이 귀하다고 공인할 수 있는 어떠한 근원적인 존재와 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귀하다고 할 때 현재의 입장을 가지고 귀하다고 하느냐, 내가 태어나 가지고 살아가면서 인생이 목적을 완성시켜 나가는 내용 전체를 중심삼고 귀하다고 하느냐? 이렇게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입장, 생활권 자체를 중심삼고 귀하다고 볼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이 지닌 바의 책임과 목적 완성의 내용을 중심삼은 여기에 귀한 가치를 부여했다 하는 것을 은연 중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무엇이냐? 내가 무엇이냐 이거예요. 인간들이 귀하기를 바라는 내가 무엇이냐? 그 귀하기를 바라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중심삼고 그것이 어떠한 근원이 되어 가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목적지까지 가는 그 비준을 맞추고 난 후에야 그것이 귀하다고 하는 가치의 결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과정에서 내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 그 자리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 완성해야 된다'라고 하지요? (138-71)
사람이 뭐가 귀한 거예요? 서서 다녀서? 곰새끼도 서서 걸을 수 있다구요. 나은 게 뭐예요? 사람이 나은 게 뭐예요? 사람이 나은 것은 하나님과 사랑을 하자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127-23)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뭐냐 하면, 인간이 가장 절대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근원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자기 부모를 확실히 알고, 자기 남편을 확실히 알고, 자기 자식을 확실히 알고, 자기 형제를 확실히 알면 돼요. 그 다음에 형제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국가를 확실히 알면 다 끝나는 거예요. 제일이 그거예요.
요즈음에 뭐 전문학과 대학을 나와 가지고 석사, 박사 하는데 석사, 박사가 뭐예요? 어머니 주고 바꿀 수 있고, 아내 주고 바꿀 수 있고, 형제 주고 바꿀 수 있어요? 부모 주고 바꿀 수 있어요? 가장 귀한 것을 갖고 있으면서 귀한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을 뭐라고 하나요? 무식한 사람이요 패망할 사람이라고 합니다. 망할 사람이예요. (147-231)
②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성은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귀한 것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귀한 것은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변하는 데서는 귀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귀한 것과 상관이 없어요. 그러므로 귀한 것은 변하지 않는 곳에 있는 것, 변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우리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변하지 않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소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소성이 바라는 대로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오늘보다도 내일 더 가치있는 것, 더 좋은 것, 모레는 더 좋은 것이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삽니다. '젊었을 때는 고생했지만 중년에 가 가지고는 틀림없이 행복할 거야'라는 희망을 지녀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야 살맛을 억지라도 만들 수 있지, 그거나마 없다면 그것이 뭐예요? 그거 안 되게 돼 있습니다. (141-132)
하나님은 작가로, 인간은 작품으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자기가 무엇을 정성을 다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한 대로 안 되었을 때는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들고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을 보고 '야, 이녀석아 생각한 대로 안 되고 왜 더 잘되었어?라고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잘 만들어진 것은 잠을 잘 때도, 혹은 전쟁이 나 가지고 피난을 갈 때도 품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어디 가든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53-226)
③ 인간의 정신력
사람의 정신력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아이 고, 피곤해. 뭐 여덜 시간 안 자면 피곤해…' 하는 그런 생각 누가 집어 넣었어요? 빼 버라는 거예요. 사람이 스물 네 시간 일해도 피곤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밥을 누가 하루 세 끼 먹는다고 정했어요? 그것을 누가 정했어요? 내가 안 정했다는 거라구요. 하루 한 끼 먹어도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 끼씩 먹여 가지고 한 4백 일을 수련시키 면, 한 끼 먹고도 넉넉히 보통 사람의 배를 일하고도 끄떡없는 사람, 도리어 더 건강한 사람을 만들 수 있다구요. 그것이 그럴 것 같은가, 안 그럴 것 같은가?
사람이 결심을 해야 강한 행동이 나오는 게 아니예요? 올바른 사상적 골자만 집어 넣으면 몸뚱이는 달려가는 거라구요. (65-308)
④ 인간의 추구와 원(願)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 그 무엇인가 더 높은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고,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넘고 넘어서 더 큰 범위의 환경 가운데서 가치있는 존재로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8-73)
현시점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인간이나 하나님이 바라고 고대하는 그 자체는 무엇인가?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면, 현실보다 더 낫기를 바란 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까지 보다도 차후에 찾아 오는 그 시간이 더 낫기를 바라고, 지금의 입장보다도 앞으로의 입장이 더 낫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이라는 문제가 등장되는 겁니다. (27-93)
사람이 갓태어났을 때는 젖만 알다가 성장하면서 부모를 알게 되고, 그 다음엔 자기를 알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최고의 기준까지 올라 가려고 합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 이상은 필요 없다'라고 할 것인가? (13-86)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더 좋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요, 더 좋은 것을 찾는 것도 결국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기쁨입니다. (13-95)
인간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중심, 즉 절대자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절대와 상대라는 명사를 추구해 가는 데 있어서 인간은 상대적 기준을 넘어 절대자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하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상하관계의 자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29-127)
인간들은 어디에 가고 싶어하느냐 하면 좋은 데 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학생들이라면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요? 왜 학교에 가려고 하느냐? 높아지려고 그러는 거예요. 높아져서 뭘하려고 하느냐? 좋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좋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즉, 자꾸 넓어지고 자꾸 높아지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인간세계를 넘어 가지고 저 하늘 꼭대기 하나님 계신 곳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꾸 올라가면 좋지요? 사람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 목적지가 어디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갖고 싶고, 자꾸자꾸 올라가고 싶고, 좋은 것은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계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41-268)
인간은 누구나 존경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의 결과가 되고 싶어하고, 혹은 자신이 동기가 되어 상대적 세계에 결과를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심적인 입장에서 지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24-290)
⑤ 사람이 좋아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느냐, 보고도 모를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느냐? 사람은 신비로운 것을 좋아해요. 여러분, 그런 거 원치 않아요? 신비로운 것은 드러나지 않아요. 꽁꽁 감추어지고 감추어진 그 맨 본궁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들어앉은 그 방까지도 자물쇠로 찰까닥 채운 그 안에 있는 보물, 그런 것이 있으면 더 신비로운 거예요. 사람은 더 신비로운 것을 원합니다. 외적으로는 더 큰 것을 원하는 반면 내적으로는 더 신비로운 것을 원해요. (138-158)
그러면 여기에서 높은 것이 중심이냐, 낮은 것이 중심이냐? 사람은 높은 걸 좋아하지요? 깊은 곳이 있어 가지고 높은 곳이 시작이 됐나요, 높은 곳이 있어 가지고 깊은 곳, 낮은 곳이 시작됐나요? 사람들이 깊은 골짜기를 좋아해요, 높은 산꼭대기를 좋아해요? 어느 것을 더 좋아합니까? 「높은 것이요」
왜 깊은 곳은 싫어해요? 어째서? 높은 곳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다양한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모든 것이 눈에다 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상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 가면 많던 것이 점점점점 없어진다 이거예요. 여러분, 알겠어요? 상대했던게 점점점 잘려 버려지게 된다 이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높은 곳을 왜 좋아하느냐? 높은 곳에서는 다양한 세계와 나와 관계를 맺어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전체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곳에서는 그 반대다 이거예요.
사람은 왜 높은 걸 좋아하느냐? 다양한 것과 인연맺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왜 낮은 걸 싫어하느냐? 단순해진다 이거예요.
다양한 관계에서 멀어진다 이거예요. 사람에 있어서 가장 귀한 사람은 높은 이상, 높은 관, 높은 것과 관계를 맺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하는 개념을 여기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정신적 자세가 높은 자리에 가 있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몸뚱이는 마찬가지지만 정신적 자세가 낮은 사람이 천한 사람입니다. 영적인 기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고 육적인 기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낮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다구요. (129-308)
여러분들 저 나무를 볼 때, '우리는 푸른 게 좋지만 그 나무 자체가 푸른 빛을 매일같이 가지니 얼마나 지루할까!' 그거 생각해 봤어요? 노란 빛을, 빨간 빛을 한번 갖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살아가는 자체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자연을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러면 푸른 빛은 왜 푸른 빛을 가져야 되느냐? 자, 여러분 이렇게 더울 때 말이예요, 푸른 빛이 아니고 빨간 빛이 돼 보라구요. 얼마나…. 또, 그것이 제멋대로 알록달록하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자극을 주고, 얼마나 귀찮겠어요.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풀도 푸르고 다 푸르면 어떻게 되겠어 요? 이거 질식할 게 아니냐. 그럼 내가 좋아하는 옐로우(YELLEW;노랑)라고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또 딴 색을 갖다 놔도 그건 얼마 안 가서 싫증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린(GREEN;푸른색) 이라는 것은 위로의 색이라는 거예요, 위로의 색. 이건 언제나 푸른 거예요.
그럼 사람은 왜 그린을 좋아하느냐? 왜 사람은 그린을 좋아하느냐? 이존재세계는 그린과 더불어 하모나이즈(HARMONIZE;조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흙에는 그린 칼라가 많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흙은 주로 그린 칼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흙으로 지은 내 자신은 그린 칼라를 좋아한다, 그게 이론적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구요. 하나님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공중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전부 다 사람을 중심삼고 이 그린 칼라와 하모나이즈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119-169)
⑥ 사람의 특성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생각해 봐서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가만히 비교해 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되면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아요? (19-34)
여러분,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럼 못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벼락을 맞을 거예요. 아무리 얌전한 아가씨들에게도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되는 길을 몰라서 그렇지 잘되는 길이 있다면 손뿐만 아니라 발까지도 들고 싶을 거예요. 어느 누구도 망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전부 다 잘난 남자 되고 싶지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잘되고 싶으냐? 내 친구들 사이에서부터 잘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32-258)
사람은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미래에 대한 꿈을 지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꿈이란 높고 또 높고 또 높은 것이고, 좋고 또 좋고 또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꿈이라는 거예요. 꿈을 가졌다고 할 때, 내일에 대해서 혹은 미래에 대해서 나쁘고 또 나쁜 꿈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건 꿈이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할 때 꿈이라는 것은 좋고 또 좋고, 기쁘고 또 기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발전을 말하고 흥하는 것을 말합니다. (171-41)
사람을 가만히 보면 참으로 이상한 존재입니다. 한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나빠지고, 한번 좋아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극에서 극으로 연락할 수 있고, 극에서 극으로 뒤넘이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8-317)
2. 인간의 목적과 가치관
1)인간의 목적
①본연의 목적
선생님은 온 생애를 바쳐 수도의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의 근본과 하나님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놓고 누구보다도 고민한 사람입니다. 피눈물나는 수도의 과정을 통하여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존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그 살아 계신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체험까지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근본이신 하나님과의 평화를 얻지 아니하고 이 지구상에서 참평화를 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제일원인이시며 삼라만상의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 목적은 바로 사랑의 구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근원이시지만, 아무리 전능한 하나님이실지라도 혼자서는 결코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며 그 대상으로부터 자발적인 사랑을 돌려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대상으로서 최고의 피조물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숙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참사랑의 관계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근본원리인 것입니다. (166-131)
우리 개인은 물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 선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방향도 선을 지향하여 나왔으며, 교육자들이나 신앙자들도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며 싸워 나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도 선을 위하여 태어나야 되겠고, 사는 것도 선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고, 죽은 것도 선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엮어 온 역사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4-13)
자기들이 잘사는 것도 중요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는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효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충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성인 이상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태어난 본래의 목적입니다. 또, 그러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58-231)
인생이 참되게 갈 길이 어디냐? 인간이 어디서 태어났느냐? 사랑에서 태어났고, 인생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사랑의 길을 가야 되고, 어떻게 죽어야 되느냐?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소우주가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공인하고, 모든 사람이 공인하고,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 가운데서 태어나고,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그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거예요. (83-164)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즉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나는 아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12-104)
②인생 최고의 목적
인생의 최고 목적은 무엇이냐?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소원은 무엇이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 : 13)"는 이 말씀은 참으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16-132)
인간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되느냐? 개인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가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국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늘땅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합한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목적이 최후에 남을 것인가? 개인을 위주하는 것은 흘러 가는 것이요, 가정을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자기 단체를 위주 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나라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세계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맨 나중까지 남을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신(神)과 인(人) 이 합동해서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그런 목적만이 인간 역사의 최후에까지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41-323)
여러분의 마음이 최후에 안착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을 찾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해도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은 안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의 최후의 종착점은 어디냐?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만사가 허사입니다.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여기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중심이 되는 그분과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분과 만나는데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사는데 어떤 자리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과는 중심의 자리에서 만나고 중심의 자리에서 살자는 것인데 그 중심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천운을 따라가서 하나님과 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24-17)
인간이 최후에 도달하고 싶은 것은 뭐냐? 최고 되시는 분의 사랑의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인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65-46)
③ 이중목적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이 두 세계의 매개체로서의 공명체로 생겨난, 그런 입장에 선 자아의 자체입니다. (127-154)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종적으로 되어 있고, 몸은 횡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종횡의 기원을 통하지 않고는 좌정할 수 없고 위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틀렸다, 찌그러졌다, 바르다, 옳다 할 수 있는 기준은 종횡의 기준이 없이는 설정될 수 없습니다. 위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동쪽이라든가 서쪽이라는 위치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172-264)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개체목적과 전체목적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타당한 논리적 기반에서 주장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캐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개체목적은 뭐냐 하면 개체완성을 위한 것이요, 전체목적은 뭐냐 하면 전체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체목적을 완성하지 않고는 전체목적에 접할 수 없다, 출발할 수 없다 하는 것은 맞는 말이라구요. (108-162)
사람은 몸의 목적과마음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큰 목적이요, 어느 것을 더 빨리 이루어야 하겠습니까? 마음의 목적을 먼저 이루어야 됩니다. 개인의 작은 목적과 큰 목적이 있을 때 작은 것을 버리고 보다 큰 목적을 추구하면, 여기에는 플러스 요인이 발생하여 작은 목적에도 이익이 되고 보다 큰 목적 또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목적세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목적세계에서 목적세계로 바뀌는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파괴적인 투쟁의 역사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론은 언젠가는 뒤집어지게 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전체를 위한 목적과 개체를 위한 목적, 즉 이중목적의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19-299)
2) 인간의 가치결정
①몰락된 세상 가치관과 그 대안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최후에 바라는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잘사는 것입니다. 다 같이 잘사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잘사는 것이 어떤 것이냐? 뿌리도 확실하지 않고 순의 목적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중심삼은 평화, 자기 중심삼은 행복, 자기 중심삼은 만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향락의 구렁에 추락하기 마련이다 이겁니다.
인간은 죽으면 그만이고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들이 세워 놓은 이상적 환경에서 죽기 전에 누구보다도 잘살아 보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세계적인 환경에서 행동을 해보고, 한번 관계를 맺어 보고 싶다 이거예요. 그러다 보니 향락에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윤리, 도덕 같은 모든 것이 다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상실이라는 것도 유만부동이지, 뭐 역사적 전통까지도 거부 하고, 가정의 부모와 형제 부부라는 가정제도까지 전부 다 파탄시켜 놓았습니다. 전부 다 개인적 향락을 위해 모든 상대적 여건을 제거시키고 있어요. (172-15)
그래서 가치관의 몰락이라느니, 그다음에 탈이데올로기시대라느니 하면서 지금 야단들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주체적인 사상을 가지고 나와 가지고 세계를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요구하는 시대에 놓여 있다구요. 경제적 문제가 문제가 아니요, 정치적 문제가 문제가 아니요, 과학적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참된 하나의 보물적인 인간이 나와 가지고 새로운 혁명을 제시해, 인생의 이상경(理想境)을 그릴 수 있는 참다운 가치의 개인으로부터 가치적 가정을 거쳐 가지고 가치적인 세계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러한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생각하는 사람들의 고민입니다. (85-100)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는 확실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 가치관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세계로 돌아가자, 이상세계로 돌아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세계도 없는 것이요, 행복의 세계도 없는 것이요, 영원한 세계도 없는 것이요, 사랑의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 모든 행복의 요인,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요건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워하고, 이것을 찾아 나온 것이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종교라는 기관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타락한 인간은 어떠한 관을 가져야 되느냐? 무한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투쟁을 하고 있지만 맨 마지막엔 다 지칩니다. 우리 인간끼리 할 수 없다고 지칠 때가 점점 가까워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세계를 요리하게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고맙게도,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제시하고 있느냐?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함과 더불어 참부모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그 기준이 어디냐? 어디가 종착점이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영원한 사랑을 지닐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 하나님이 허락한 자리에서 상대이상을 묶은 것이 아니거든요. 자기들 멋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서 관계를 갖고 출발할 수 있는 것은 부자의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졌으니, 몰락되었으니 그것을 표준하여 다시 꿰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불가피한 것입니다. (68-138)
② 인간의 가치결정
심정을 통하게 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문화의 배경이나 역사적인 환경, 혹은 시대의 위치 여하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떠한 것들로도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는 겁니다. 인간이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하늘의 목적과 땅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을 아는 데에 있어서만이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겁니다. (15-83)
가치는 목적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또 왜 죽느냐? 그것은 어떠한 남편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요, 어떠한 아내의 남편이 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보다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냐?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이 원칙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주체적인 자아를 확립해서 그 길을 개척 하고 상대적인 권한을 흡수해서 나가는 데서만이 보다 가치있는 길이 성립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걸 추려서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제1이요, 하나님의 뜻은 제2이요, 제3은 나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제4인 상대적 권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 길에서만이 보다 가치있는 길이 생긴다는 관념을 딱 정리 해야 되겠다구요. 이 길을 통하는 데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거 하나돼 가지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것을 언제나 제2목적, 제2출발의 동기로 삼아 가지고 반복하는 데서만이 그 가치는 귀결되는 거예요. (66-272)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해서 그것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이념에 대한 새로운 가치 혹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 가치관이 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출발하게 될 때, 그 가치관은 인간을 중심삼은 가치관과는 모체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을 중심삼고 세워져 있는 가치관과 다른 것입니다.
거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현실과 분립된 자리에 있을 것이 아니라 악한 현실권내에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악한 세계의 어떠한 행복보다도 우월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이념을 발견하지 않고는 거기에서 인내와 극복, 곧 참고 견딜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관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선상에서 지금 세계는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존철학도 그런 관점에서 생긴 것입니다. 현실을 극복하려면 현실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 내적인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내적인 가치 관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현대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가치관은 인간으로 말미암아서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했댔자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이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초월적인 가치,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입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막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과거에 이렇게 된 것같이 미래에도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는 것 가지고는 안되겠다는 겁니다. 현실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생활 감정을 중심삼고 환경의 여건을 극복하고 타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춘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44-228)
③ 인간의 가치기준
여러분들이 사람을 대해서 '이 사람은 좋아. 저 사람은 나빠' 하고 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좋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해서 평한 말이냐? 어떠한 위치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 한 말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기준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그와 같이 막연한 기준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꽉차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아침에도 헤헤, 저녁에도 헤헤 하면서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그 좋다는 것이 일관된 목적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면 잠깐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쁨을 그려 간들 그 인생의 끝에 남을 것이 무엇일 것이냐? 허황된 결과밖에 가져올 수 없는 처량한 인생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41-137)
우리가 사람의 가치를 논하게 될 때에 그 외적인 모양이 잘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가치를 평하게 될 때에는 무엇을 중심삼고 평하느냐? 그가 갖고 있는 사상과 양심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사상과 양심기준에 심정문제가 어느 정도까지 개재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을 논하는 것입니다. (6-306)
우리 인간의 가치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가치기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가치기준도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51-166)
④ 가치의 형성
사람이란 자기 혼자 잘났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세계와 관계를 맺어서 상대적 환경을 갖추어야만 거기서 자기 인격적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 그만큼의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27-129)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혼자서 찾을 수 없어요. 레버런 문이 여기 서 있지만 레버런 문에게도 사랑이 있지요. 사랑이 많이 있어요. 사랑하는 데 있어서 혼자서 아무리 '내 사랑아!' 해 보라 구요. 미친 녀석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조그만 뭐라 할까요? 일전짜리를 보고 입을 맞추더라도 그건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치의 무한성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136-111)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대상 가치의 존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피조만물,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란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말이예요.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삼고 그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줘 봐야 하나님 혼자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으로 남아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짓는 데 있어서 막연하게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막연 하지 않아요. 거기에는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하나님 자신의 신념이 개재돼 있는 것입니다. (68-134)
⑤ 인간의 가치는 위대하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집고 천년 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만히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안팎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의 깊은 골짜기의 자리에 하나로써 단단히 묶어 줄 수 있는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넣겠다는 것이 불경죄예요, 정당한 거예요?「정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겠으면 얼마만큼 집어넣겠어요? 모셔 놓겠다는 것보다 요즈음처럼 싸우는 세상에 집어넣아야지 모셔 놓게 되어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48-224)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이냐? 하나님도 꼼짝못하게 할 수 있는 위대한 무기를 내가 갖고 있다 이거예요. 세상에 말이예요, 인간을 갖다가 저장하는 박물관이 있다면, 그 박물관에 표본을 만드는데 미인 표본이 많겠어요, 박색 표본이 많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어떤 게 더 뮤지엄(MUSEUM;박물관)에 많으냐 이거예요. 좋은 여자가 있다면, 거기에 상대 되는 못난 여자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맞는 거예요. 하나님이 볼 때 그렇다구요. (161-139)
3. 인체의 신비
1) 몸은 신비의 왕궁
사람의 몸은 신비의 왕궁입니다, 신비의 왕궁. 무슨 과학자니 무슨 학자니 하는 사람들이 뭐라 해도 그것은 다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손가락 하나를 연구해서 책을 쓴다면 몇천만 권의 책을 써도 다 못 쓴다는 것입니다. 인체가 신비의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4백조 이상 되는 세포가 전부 다른 작용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확대시키면 이 우주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 충돌없이 조화를 이루어 하루의 생활, 일년의 생활, 일생의 생애를 영위할 수 있는 신비로운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들은 그것이 그냥 그대로 자연히 적응하고, 자연히 발전한다고 말합니다. (37-16)
몸은 신비의 왕궁입니다. 요 손톱 하나 가지고도 의학적으로 몇천 년, 몇만 년 연구해도 끝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박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건달꾼들도 있습니다. 박사들이 연구하는 것과 전우주를 비교해 보면 몇억천만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소위 박사라는 사람들이 신이 없고 뭐 어떻다고 결론짓는 것을 믿을 수 있어요? 기분 나쁘다는 겁니다.
무슨 공식이니 법칙이니 하지만 그런 것을 초월한 것들이 많다는 겁니다. 공식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무슨 고등수학의 공식들은 우주의 공식세계에 있어서 몇 단계에 속할 것이냐 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환경에 대비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35-53)
여러분들이 이제 매일 아침 얼굴을 들여다볼 때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신비로운지. 이 전체의 이런 생김새를 생각하게 되면 이 세계는 전부 다 신비의 왕궁이 되지요, 신비의 왕궁! 아무리 의술이 발달하더라도 이 인체 내에 있어서의 무궁무진한 그 세계의 내면을 파헤치지 못해요. 손가락 하나를, 책을 천 권 써도 여기에 손가락 하나를 다 파헤칠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맹목적으로 그저, 어린애들이 그저 찰흙 뚝 떼어 다가 이겨 가지고 인형을 만들듯이 그렇게 된 줄 알아요? 그것은 전부 다 전후좌우를 보나 모순 단점이 없게 질서정연한 배열 가운데서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159-274)
우리 인간의 몸의 구조를 보면 이것은 신비의 왕궁입니다. 어떠한 존재보다도 '신비'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 모든 신비의 요소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지으신 절대자가 있다면 그는 무한한 능력의 주인공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27-219)
2) 인체의 3단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라는 3단계를 배웠습니다. 3수가 중요합니다. 자연계도 보면 광물세계, 식물세계, 동물세계, 이렇게 나눠집니다. 사람도 보게 되면 3수로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전부 다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얼굴도 보게 되면 눈코 입, 3단계입니다. 손을 잡았다 하는 것도 3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 둘, 셋, 손을 잡는 것도 3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눈도 세 점을 연결시키는 거예요. 초점이 세 점을 연결하고 있다 이거예요. 코도 들어 가서 하나되는 거예요. 입도 보면 하나 둘 셋, 3수라 이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에 3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우주를 볼 때에는 서양사상에는 없지만 동양사상에서는 우주를 천지인(天地人) 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또 세상도 그렇잖아요? 상중하가 있습니다. 원형을 그리더라도 반드시 세 점을 연결시켜야 돼요, 세 점을. 하나 둘 셋, 세 점이 연결되어야 돼요. 직선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3점 과정을 거쳐야 된다 이거예요. 이 직선이 전부 다 쓰리 포인트(THREE POINT;세 점)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거예요. 전부 다 같은 입장으로 연결해야 된다구요. (125-158)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아담 해와는 그때에 한 남자요 한 여자에 불과했지만 우주적인 중심이었다 이거예요, 우주적인 중심. 아담 해와는 무엇이라구요? 하나님의 뭐라구요? 하나님의 몸이라는 거예요, 몸.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고, 마음 자리에 하나님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공기와 같은 것이 마음이라는 거예요. 이 우주를 보게 된다면 공기가 있는 공간세계가 있는데 그게 마음과 같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땅과 같은 것이 몸뚱이라는 거예요. 3중구조로 돼 있다구요, 3중구조로. 모든 것이 3단계로 돼 있다는 거라구요. 이거 보게 되면 땅에도 우리의 몸뚱이가 사는 데 필요한 생명의 요소가 있고, 공기에도 생명요소가 있고, 또 영계에도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호흡할 수 있는 생명요소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밥을 먹어야 되고, 숨을 쉬어 공기도 마셔야 되겠지만 이 둘만 흡수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것(영계의 생명요소)을 먹어야 돼요. 자, 먹는 것이 소생이예요. 입이 소생이예요. 그리고 이게(코) 장성이라구요. 그다음에는 영원한 생명을 호흡할 수 있는 생명의 요소를 여러분이 받아야 된다구요. 그리고 전부가 3단계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3단계로. 여기도 보게 되면 하나, 둘, 셋…. 요 손을 척 보게 되면 손가락이 있고, 손톱이 있고 또 하얀 게 있다구요. 전부 3단계로 되어 있다구요. 전부 그렇게 돼 있다구요. (92-161)
눈이 몇 층으로 되어 있습니까? 흰자위, 검은자위, 눈동자로 되어 있습니다. 소생 장성 완성으로 딱 들어맞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코도 보면 구멍이 하나, 둘 있고 안쪽에서 하나로 합해집니다.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귀도 보면 하나 둘 셋, 그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종합되어 가지고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손가락도 접어 보면 이렇게 하나 둘 셋입니다. 전부 살펴보면 이렇게 셋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단계 법칙이라는 것은 우주의 법입니다. 내장에도 폐장, 위장, 간장이 있습니다. 전부 다 질서정연하게 되어 있으며 이처럼 천지의 이치가 인간 하나를 중심삼고 전부 들어 있는 것입니다. (37-17, 96-230, 38-253)
초부득삼(初不得三)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번에 안 되면 세번째에는 반드시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말 잘 씁니다. 삼합(三合)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삼합이 맞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어른들께는 무엇을 드릴 때 받들어 드리지요? 천지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를 할 때에도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지요. 왜 이렇게 하는지 알아요? 하나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셋이 되면 다 하나를 이루게 된다는 거예요. (38-253)
3) 인체에 절대 필요한 요소
모든 존재물(생명체)은 4분의 3이 물로 되어 있다구요, 물로. 물이 잘조화되어 있는 데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물이 많아지면 설사하지요? 물이 적어지면 물을 보급하지요? 여러분, 몸의 온도를 36, 7도니 몇 도니, 이렇게 체온을 조절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거 다 물이라는 거예요. 생명을 전부 다 컨트롤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걸 보게 된다면 그 물이라는 것은 절대 필요하다 그 말이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지금 떠돌이 뭐라구요?「수증기」 수증기예요, 수증기. 수증기는 전부 떠돌이예요. (102-13)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태양빛을 받고 살지만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릅니다. 그게 고맙다고 해서 '태양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합니까? 우리는 큰 것은 모르고 삽니다. 큰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공기를 얼마에 살 것 같아요? 하나님이 짓궂은 분이시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없을 것입니다. 아마 6분 이내에 통일이 될 거예요.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가 가지고 '너희들 통일할래, 안 할래? 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를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이 고맙다는 거예요.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기에 대해서 고맙다고 생각합니까? 도둑놈들같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먹어 치운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몸은 4분의 3이 물입니다. 사람의 몸은 물주머니라는 거예요. 그런 우리들이 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요? 오뉴월 복더위에 순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건거를 타고 어느 산등성이를 올라가면 그 얼마나 갈증이 납니까? 산등성이에는 대개 과수원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냉수 한 그릇 얻어먹는 맛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물을 먹고 나서도 물을 떠다 준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하지만 물한테는 고마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물님 고맙습니다'라고 합니까? 안 합니다.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태양빛이 얼마나 귀합니까? 만일 태양이 없으면 모든 것은 대번에 얼어 죽어 버릴 것입니다. 햇빛이 생명을 지탱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요소인데도 불구하고 고맙게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제일 귀한 것을 공짜로 받고 있습니다. 물과 공기와 태양빛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38-245)
4) 신체(身體)의 해설
① 눈(目)은 하나님 상징
남들이 덮어놓고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 우리는 덮어놓고 하나님은 있다고 자신있게 믿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창조원리를 중심으로 인체구조에 대하여 세밀히 얘기해 주고 싶은데….그러니 여러분은 흥미와 관심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39-166)
여러분이 거울을 보면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얼굴은 우주를 상징하며 이것은 천지조화통입니다. 또한 눈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물이 생겨날 때는 눈부터 생겨납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지요?「예」사람의 눈은 우주의 눈과 같은 중심존재입니다. 목이 눈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우주도 하나님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이 눈이 정보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삼단계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눈도 삼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흰자위, 다음에 검은자위, 중앙에 눈동자가 있습니다. 까만 눈동자가 중요하기에 중앙에 있습니다. 그다음엔 그게 왜 둥그냐 이거예요. 왜 둥그냐 이거예요. 남자 여자는 둥글둥글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모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자동차 바퀴가 다 같이 둥글기 때문에 가지, 조금만 틀리면 야단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눈과 같은 남자가 되고 눈과 같은 여자가 되면 된다 이거예요. 이게 얼마나 신기합니까? 귀한 것이 중앙에 있다는 것입니다. (39-167, 94-64)
눈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눈은 무엇을 좋아하느냐? 색깔을 좋아합니다. 색깔을 감정합니다. 칼라(COLOR ;색) 라는 것은 본질상을 드러냅니다. 모든 칼라는 그 본질이 어떻다는 걸 드러내는 것입니다. 눈이 왔다갔다하는 건 하나님을 상징하고, 우주를 상징한다 이거예요. 몸뚱이 가운데 동그란 것이 눈밖에 없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눈이 위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같이. 눈이 여기 붙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질서가 없습니다. 또 눈알이 옆으로 왔다갔다하고 있어요. 이게 왔다갔다 안 하면 모가지가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정신적인 피로가 얼마나 크겠어요? 생각할수록 위대한 거예요. 이게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었다고 할 때, 여러분, 하루만 살아 봐요. (118-112, 159-270, 107-294)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한 겹 두 겹 세 겹을 벗겨야 보입니다. 이것은 밤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시가 있는 껍질, 밤껍질, 떫은 껍질을 벗겨야 밤 알맹이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눈은 인간의 성품을 뜻합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개구리 알에서 올챙이가 생길 때 눈알이 먼저 생깁니다. 그렇지요? 왜 그런 줄 알아요?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계셨기 때문입니다. (38-253)
여러분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내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눈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어떻게 해서 여기 와 박혔느냐? 이게 참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밖에 있을 데가 없다구요. 또 눈이 여기 올라와 있다면 어떨까요?(웃음) 자, 이렇게 되면 눈이 어디로 보겠느냐? 이렇게 각도를 맞출 수 있겠어요? 이렇게 볼 때 눈은 언제나 중앙에 있어야 돼요, 중앙에. 대체로 보면 중앙에 있다구요, 가운데에. (37-17)
얼굴을 가만 보게 되면 말이예요, 눈이 얼굴에 어울리느냐 할 때, 어떻게 생각해요? 눈이 왜 위에 있어요? 눈이 올려다보는 시간이 많아요, 내려다보는 시간이 많아요? 내려다보는 시간이 많은데, 저 위에서 내려다보니 얼마나 힘들어요? 바로 보면 좋을 텐데 말이예요. 저 발 끝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눈이 발 끝에 있어서 되겠어요? 눈이 올라갔다내려갔다하면 되겠어요, 눈이? 눈이 모든 것을 전부 다 측정할 수 있는 기준, 보는 데 있어서의 위치, 상하의 모든 고저를 중심삼은 환경여건을 측정해 나가는 데 있어서 눈이 반드시 어느 정도까지 볼 수 있는, 내가 측정해 낼 수 있는 그 자리에 있어야 되겠기 때문에 쓱 보게 된다면…. 적이 있게 되면 공격할 수 있는 것도 다 봐야 되고, 사방으로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머리가 왔다갔다하는데, 왜 왔다갔다해요? '이놈의 머리야, 너 얼마나 못났으면 그렇게…. 무엇 때문에 왔다갔다해? 이렇게 물어보게 될 때, '어, 나는 모르지만 눈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거야' 이러는 거예요. 머리에게 '너, 왔다갔다하는 걸 좋아해? 하고 묻게 된다면 '나는 좋아 안 하지만 할수없어' 이러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돼 있는 겁니다. 머리가 옆으로 왔다갔다하고 위로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는 건 무엇 때문에 그래요? 머리 때문에 그래요?「눈이요」 눈! 그러니까 머리운동 하는데 눈이 꼭대기에 있으면 얼마나 어지럽겠어요? 이게 밸런스가 안 맞는 다는 거예요. 꼭대기에 있어 가지고 이것이 왔다갔다한다면, 머리가 왔다갔다한다면 이게 어떻게 되겠어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야 ! 눈도 참 적당히 딱 있었구만' 하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참 조화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눈을 횡적으로 일직선으로 만들지 않고 종적으로 떡 만들었으면 어땠을까요?(웃음)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얼굴에 눈이 없으면 얼굴이 넓을 필요도 없습니다. 좁아도 된다는 거예요. 눈이 이렇게 벌려져 있기 때문에, 새까만 요것이 싹 벌려져 있기 때문에, 얼굴이 이만한 둥그런 호박 같더라도 얼굴을 볼 때에 그 넓은 얼굴을 먼저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눈을 먼저 본다는 거예요. (145-278)
여러분, 눈이 왜 둘로 되어 있어요? 하나만 있으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왜 눈을 둘로 만들었어요? 요 콧등에다 눈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왜 둘로 만들었어요? 이 하나만 있으면 여기만 있으면 말이예요, 사방 감각의 균형을 잡을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만 있으면 몸뚱이가 기울어진다 이겁니다.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건 왜? 이것은 언제나 수평선을 중심삼고 수직을 맞출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만 있을 때 내가 균형을 잡으려면, 어떤 위치인가 알려면 이렇게 보고 이렇게 보아야 돼요. 이래 가지고야 '야! 여기로구나' 한다구요. 그런데 이게 떡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사방감각을 잘 알 수 있다구요. 위치 결정을 하고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편리하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일자로 벌어졌다구요. (웃음) 여기 있으면 어때요?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또 이놈의 눈이 혼자 있으면 얼마나 외로워요?(웃음) 바른눈이 생각할 때 '야! 너 거기 있구나, 왼눈이 있구나' 이럴 거 아녜요? 좋지요? (110-87, 187-64)
이 눈이 생겨난 것이 왜 생겨났어요? 왜 생겨났느냐 말이예요. 「보기 위해서」 보기 위해서 생겨났어요? 그거 봐서 뭘해요? 좋은 것 보기 위해서, 사랑을 찾기 위해서 생겨났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83-169)
서양 사람들은 눈이 크고, 동양 사람들은 눈이 작다 이거예요. 그러니 서양 사람들은 가까이밖에 못 본다구요. 그래서 서양 사람은 현실주의라는 거예요. 눈이 크니까 전부 못 본다구요, 가까이는 보지만. 그렇지만 동양 사람은 미래를 본다구요. 눈이 작으니까 미래를 본다구요. (94-67)
② 눈썹
눈썹이 왜 생겼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하늘과 인류세계, 즉 지상세계와는 하나인데 이런 간격이 있다는 걸 상징하는 거예요. (94-63)
얼굴에 눈썹은 뭣 하려고 잔뜩 생겨났어요? 재수없이 시꺼멓게 났느냐는 거예요. 눈썹을 한번 보세요. 얼굴에 시커먼 눈썹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적마다 '왜 이렇게 시커먼 게 있지' 하면서 기분 나빠할지 모릅니다. 송충이같이 시커멓게 생겨 가지고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씩이나 이마에 떡 달라붙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야, 잘 붙었구만' 하고 기분 좋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얼굴이 얼마나 희멀끔하고 좋겠어요?
공산당들은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걸 여기에다 붙여 놨느냐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네 발로 다닌다면 눈썹이 필요하겠어요? 「필요 없습니다」 사람은 두 발로 서서 다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눈썹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털이 나 있다면눈썹이 필요하겠어요?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안 필요합니다」 짐승들은 엎드려 기어다니니까 눈썹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그 형태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서서 다니니까 눈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눈썹이 없다면 땀을 흘릴 때 곤란합니다. 땀이 이마에서 흐르면눈썹을 통해 눈을 피해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썹이 있는곳이 조금 두드러졌습니다. 눈썹이 나 있는 자리는 대개 살짝 높습니다. 남자는 눈썹 부위가 조금 높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약간 낮은 것이 좋다는 거예요.
눈썹 부위가 슬쩍 높아져 가지고 산맥을 잘 이루었습니다. 그야말로 명당 중에도 왕 명당자리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졌겠어요? 사람이 서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꾸로 다닌다면 눈썹이 필요하겠어요? 거꾸로 다닌다면 눈 밑에 있어야 될 게 아닙니까? 정말 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상적인 눈썹은 조금 두드러져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눈썹이 두드러지지 않고 움푹 들어갔다면 땀이 그곳에 모이기 때문에 쓰레기통이 될 거예요. 그렇게 되었다면 눈도 영락없이 쓰레기통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지어진 눈썹을 백만불 준다면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안 바꿉니다」 눈썹이 없어 봐요, 병신이 되는 겁니다.
또 눈이 왜 이렇게 깜박깜박하겠어요? 만약에 눈이 깜박깜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예요. 그야말로 쓰레기통이 되는 것입니다. 눈이 깜박이는 것은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수분이 증발되어 마르는 것을 물수건으로 축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끄트머리에는 창살같이 속눈썹이 왜 있느냐 하면 먼지가 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눈에게 신호도 하고 방어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레이다와 같은 장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눈이 움푹 들어가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또 허물어지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눈썹이 한쪽 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또 눈이 살짝 두드러지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살짝 드러나게 만들어졌느냐 하면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물이 흐를 때 한곳으로 흘려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눈썹이 한쪽 방향을 향해서 나 있고 살짝 옆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흘러내릴 때 영락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땀이 흘러내리면 틀림없이 눈으로 들어갈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눈썹은 눈 위에 이렇게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눈에 불순물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땀이나 빗물 같은 것들을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눈이 쓰려서 어떻게 살겠어요? 못 산다는 것입니다. 빗물이나 땀이 눈의 두드러진 곳에 오게 되면 미끄러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눈을 가만 보면 그것도 미덥지가 못해서 눈꺼풀로 둘러 놓았습니다. 눈꺼풀로 둘러 놨어요, 안 놨어요? 눈꺼풀로 둘러 가지고 눈을 보호하게끔 해 놨습니다. 눈물은 음푹한 곳을 통하여 옆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안전보장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모르지만 몇천 년 몇만 년 연구해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눈이 잘 만들어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9-163, 38-248, 38-155, 37-17)
보라구요. 내가 언제나 얘기하는 것이, 눈이라는 것이, 눈이란 존재가 나오게 된 데는 말이예요, 눈은 벌써 천문학적 지식을 가졌어요. 이 땅에 공기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알았나요, 몰랐나요? 그렇기 때문에 눈썹이나왔지요.
눈썹 없는 사람 어디 있어요? 다 알았다는 겁니다. 여기 땅은 복사열에 의해 가지고 수분이 증발되는 걸 알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눈썹이 있는 거지요, 눈썹. 안 그래요? 눈이 깜박깜박 안 하면 눈썹이 뭐 필요해요? 왜 이렇게 깜박깜박해요? 먼지를…. 이걸 전부 다 높여 가지고 여기(눈) 들어가는 걸 보호하기 위해서예요.
눈 깜박깜박 안 하면 큰일나는 겁니다. 이건 먼지 쓰레기통이 됩니다. 이 넓은 판대기가 바람 불게 되면 여기 다 들어가게 되지 딴 데 들어갈데 있어요? 얼마나 멋져요! 전부 다 알았다구요. 그냥 제대로 자연히 그렇게 있는 게 아닙니다. (187-58)
옛날에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공산당 패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그들을 모아 '이 녀석아 ! 너희들 눈은 어떻게 생겼어? 또 눈이 왜 깜박거려? 안 깜박거리면 너희들의 눈은 쓰레기통이 되고 말 거다. 이것은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또 속눈썹은 왜 눈꺼풀에 꼭 달라붙어 있어? 속눈썹으로 창살을 만들어 방어를 얼마나 잘 하게 돼 있어. 이런 것들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단 말이야? 하면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학생시절에는 공산당 패들이 선생님을 싫어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세계를 걸고 싸울 훈련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을 잘 보세요. 눈을 보면 눈꺼풀이 하루에 수천 번씩 깜박거립니다. 이것이 하루만 깜박이는 걸 그만둔다면 눈이 어떻게 되겠어요? 눈꺼풀이 깜박거림으로 말미암아 눈을 말끔히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으로 기기묘묘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물샐틈없는 대비를 해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38-215)
③ 코
질서 가운데 무슨 질서가 있겠느냐? 이게 문제예요. 주종관계요, 상관 관계입니다. 그러면 대체로 다 들어간다 이거예요, 대체로. 이것을 하나의 원칙, 하나의 공식으로 보자 이거예요. 자, 우리 얼굴을 봐도 말이예요. 코는 어때요?「수직입니다」 이 코가 눈보다 귀한 거예요? 왜 가운데에 떡 들어와 있어요, 이게? 중요 부분이예요, 중요한 부분. 그게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매시간 먹고 있다 이거예요. 언제나 뭘 먹고 있는 것이 코다 이거예요. 자면서도, 잘 때에는 눈도 감고, 입도 감고, 귀도 다 자지만 코는 먹고 있다 이거예요. 밤에는 '크르릉 크르릉' 더 잘 먹어야 됩니다. 더 많이 먹어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웃음) 왜 이렇게 24시간 먹어야 돼요? 이거 안 먹어 가지고는 생명이 문제가 된다 이거예요. 큰일난다구요.
그러니까 코라는 것은 얼굴 가운데에 갖다 놓을 만해요, 안 해요?「합니다」 그래서 왕같이 잘 대접하기 위해서 '가운데 와 앉소!' 한 거예요. 거 맞다는 거예요. 그만큼 중요한 자리에다 앉힌다 이거예요. 눈을 감고서 한 5분 있어도 끄떡없지만 코를 막으면? 그러니까 중요하니 종적으로 떡 있는 거지요. 그다음에는 입이 있다구요, 입이. 입이 옆으로 떡 되어 있거든요, 이게? 그러면서 움직이는 것은 종적으로 움직인다구요. (웃음)
전부 다 왜 이래요? 전부 서로 닮았다구요. 닮아 있다구요. 횡적인 것은 종적으로 닮았고 종적인 것은 횡적으로 닮았다 이거예요. 여기 코는 무엇을 상징했다고 그랬나요, 요전 날 내가 얘기할 때?「아담과 해와입니다」 아담과 이브,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코는 안 통하는 데가 없다구요. 눈으로 통하기도 하고, 귀로 통하기도 하고, 다 통합니다. 그러니 코를 꽉 쥐고 후욱 하면 바람이 다…. 바른쪽 콧구멍은 남자고, 왼쪽 콧구멍은 여자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숨쉬는 구멍이다 이거예요. 무엇을? 사랑의 공기를 마신다 이거예요. 영계에 가면 그렇게 돼 있습니다. 공기가 뭐냐 하면 사랑이예요, 사랑.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호흡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남자 여자 상대를 두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서 코도 비록 종적으로 있지만 구멍은 둘입니다. 들어와 가지고 하나되지요. 그거 들어와 가지고 하나될 거 아예 하나됐으면 좋을 텐데, 왜 둘이 되었어요? 모든 이치가 그렇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들 한쪽 코가 막히면 기분이 좋아요? 그것은 고장난 거예요, 고장. 그렇기 때문에 이 코 하나가 막혀 버림으로 말미암아 전신이 고장나는 거예요. 이게 아담 해와라면 남자 여자가 고장나니 전우주가 고장나는 거예요.
이 코로써 무엇을 연결시키느냐? 생명을 언제나 연결시킨다 이거예요. 아담 해와는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을 연결 시키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리고 귀도 공장이고, 눈도 공장이고, 입도 맛을 보는 공장입니다. 여기는 전부 다 정보처예요.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다 합니다. 눈은 하늘을 상징하는데, 코는 위와 연결되어 있어요. 또 입까지도 포함해요. 코가 그렇다구요. 코가 뭐냐 하면 말이 예요, 코 자체를 보면 여기서부터 우주예요. 이게 하늘로 통하는 거예요. 전부 다 코로 연결되어 있다구요. 그러니 이게 센터예요. 모든 것이 센터가 됐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코에서부터 이렇게 금이 있지요? 그러니까 만물까지도 주관한다 이거예요. (118-112, 123-127)
우주의 중심은 아담 해와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 우주를 관찰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이 하나님이예요. 그래서 생겨날 때 눈이 먼저 생겨난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확실히 눈을 중심삼고 지켜보라는 거예요. 눈이 먼저 생긴다 이거예요. 그다음 제일 나중에는 코라구요. 코가 제일 나중에 달린다구요.
코는 왜 이렇게 끝이 오똑하게 생겼을까요? 여러분 코는 사람에게 있어서 선두입니다. 코가 앞서 있나요? 매가 앞서 있나요? 코는 길잡이입니다. 길잡이는 천도를 따라 예법을 갖추어야 됩니다.
서양 사람들은 본래부터 코가 크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동양에서는 확실히 안다 이거예요. 코가 납작하던 것이 키가 커야, 20대가 되어야 나온다구요. 그건 뭐냐 하면 코는 아담 해와, 즉 인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인간이 맨 나중에 완성된다 그 말이예요. (94-65, 39-331)
사람의 얼굴 중에서 이 코가 제일 보기 싫은 것입니다. 세수할 때도 이코 때문에 언제나 엎드려서 해야 됩니다. 이 코가 왜 이렇게 생겼느냐 하면 얼굴을 씻을 적마다 고맙다고 인사하라는 것입니다. (웃음) 코가 이렇게 생긴 것은 이 땅 위에 풍상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소낙비도 내리고 이슬비도 내릴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만일 이 코가 거꾸로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웃음) 그런 위험물을 피할 수 있도록 미리 방지를 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코가 왜 이렇게 생겼어요? 여기선 넓다가 여기에서는 이렇게 좁아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 난다는 거예요. 코가 밑으로 넓어진 것은 입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래서 아래가 넓어진 거라구요.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 도랑을 쳐 놨습니다. 도랑없는 사람 있어요? 땀이 흐르면 이렇게 가라고 만들어 놨다는 거예요. 자, 이 도랑이 땀이 흘러내릴 것을 미리 알고 이렇게 됐어요?(38-154, 38-250, 54-99)
선생님 코를 보면 특색이 있다구요. 코가 높고 뾰족하다구요. 유대인 계통이 이렇다구요. 종교 민족은 뾰족한 거라구요. 유대인을 보라구요. 요게 뾰족한 거라구요. 종교적 소질을 가진 민족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보는 거예요.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이게 높다는 것은 뭐냐 하면, 예리하다는 거예요.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예리하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예술가라든가 종교가들은 전부 다 그런 소질을 타고 납니다. (96-229)
코는 아담 해와를 상징했다고 했는데, 아담 해와는 어떻게 해야 행복 하냐 이거예요. 서양 사람들의 코를 보게 될 때는 요게 좁고 요게 높아요. 동양 사람은 말이예요, 요게 낮은 동시에 요게 넓다구요. 또, 흑인 들을 보면 여기가 퍼지고 이게 짧다구요. 그 비율을 보면 대개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가.
그러면 흑인들은 왜 이게 이렇게 넓어야 되느냐? 더우니까 공기가 많이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된다 이거예요. 또 백인들은 북극에서, 추운데서 살기 때문에 찬 공기가 많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조금씩 길게 들어가야 됩니다. (웃음) 백인은 북극에서 온 사람들이예요, 북극에서. 동양은 뭐냐 하면, 온대권내예요, 온대권. 황인종은 뭐냐 하면, 온대권내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둥글하고…. (웃음) 사실이라구요.
이렇게 볼 때, 이것이 아담 해와를 상징한다면 앞으로 세계 인류의 조화를 누가 이루느냐? 흑인도 아니요, 백인도 아니요, 황인이라는 거예요. 골상학적으로 그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그리고 백인하고 흑인하고 싸우는 대표적인 나라가 어디냐 하면, 미국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생각하다가 레버런 문을 보냈다, 이런 말도 할 수 있다구요. (박수) 둘을 붙들고 싸움을 그치게 하려면 끈기가 있어야 됩니다. 끈기가 있어야 된다 구요. 흑인들은 대개 어떠냐 하면 게으릅니다. 게으르다구요. 왜 게으르냐? 그거야 더우니까 게으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 그래요? 「예」(웃음) 그리고 백인들은 부지런합니다. 북극에 사는 저 곰은 가만있다가는 얼어 죽는다구요, 가만 앉아 있다가는. 그러니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온대권내는 말이예요, 여름이 되어서 덥고 그러면 게을러지고, 겨울이 되어서 추워지면 부지런해진다구요. 이게 조화가 된다 이거예요. 더욱이나 봄과 가을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기후적으로 볼 때,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백인종도 아니요, 흑인종도 아니요, 황인종권내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황인종이라고 해서 이런 얘기 하는게 아니라구요. 알겠어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지도자들은, 사상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동양에서 났다 이거예요. 서양문명의 사상은 투쟁 역사의 촉진제 노릇을 했습니다. 역사에 피를 많이 흘리게 한 사람들이 백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북극에서는 짐승을 잡아먹어야 된다 이거예요. 흑인들은 초식을 많이 한다구요. 열매를 따먹고 말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제일 피를 흘리게 하지 않은 인종이 흑인입니다. 그리고 황인종은 그 중간에 있는 것입니다. 고기도 먹고 초식도 합니다.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웃음)
그리고 이 코를 보게 될 때, 이 코 자체는 원형을 닮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럴 게 아니예요? 원만해야 된다 이거예요. 이 서양 사람들 구조를 보라구요. 요렇게 요런 사람이 아니라 두둑하고 얼굴이 둥글한 사람들이 모든 물질을 차지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구문명은 일방적으로 깊다는 겁니다. 과학이라든가 세부적인 면에 깊다는 것입니다. 또, 흑인들은 오래 계속되는 한 가지 문제를 중심삼고 10년, 20년, 일생을 두고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짧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양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제일 많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도덕문제에 대해서 높은 차원의 관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107-297)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콧구멍 속에 이렇게 창살같이 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코를 보면, 코 속에 코털이 나 있습니다. 파이프에 뭐 막힌 것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겠지요? 파이프가 막혀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원래 파이프는 미끈하게 생겨 가지고 그저 훅 불면 공기가 휙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콧구멍도 그렇게 무사통과하게 되어 있으면 좋은데, 왜 복잡하게 털이 막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멍이 보이는가 한번 들여다보세요. 거꾸로 해서 들여다보아도 안 보입니다. 안 본 사람은 이따가 밥먹기 전에 친구의 콧구멍을 들여다봐요, 선생님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털로써 잘 막아 놓았거든요. 털이 전부 다 가운데를 향하여 나 있어 가지고 잘 막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공기 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공기가 주로 가운데로 들어가는데 먼지는 들어가면 안 되니까 털이 가운데로 향해 나 있다는 것입니다. 콧구멍을 보더라도 콧털은 왜 이렇게 재수없게 나 있느냐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 털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털끝이 한곳으로 모여 있어서 코에 들어오는 먼지나 찌꺼기를 멈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콧구멍에 먼지가 들어오면 이 털에 걸리게 되어 흘러나오는 콧물과 섞여 코딱지로 굳어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연구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예요, 자연적으로 이렇게 됐어요? 자연적으로 이렇게 되었겠어요? 이렇게 된 자연이 있어요? 인간이 설계를 해서 하더라도 이렇게는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코가 공기 속에는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몰랐습니다」 몰랐으면 어떻게 이처럼 완전무결한 원칙의 기반 위에 생겼겠습니까? 그러면 이것을 안 장본인이 있어야 될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공산당이라도 이 말에는 나한테 꼼짝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게 되면 하나님을 보여 주는 제일 간단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이것을 볼 때 우리 인체가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도 참 뭐라고 할까요? 평안도 말 중에는 '쌈바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도 짓궂다면 짓궂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참 짓궂다는 겁니다, 오늘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를 실감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38-155, 54-99, 37-20, 24-20, 39-164, 38-250)
④ 입과 혀와 입술
사람의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코는 인간을 상징하고,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입은 뭘 먹으니까 만물을 상징하는 겁니다,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입은 많은 음식물들을 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입을 통해서 마음과 몸의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입은 무엇을 제일 좋아하느냐? 무엇을 좋아하느냐 이거예요. 만물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존재의 형태와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말은 이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39-167, 38-253, 107-293)
그리고 이빨은 먹어야 할 것을 알고 만들어졌지요? 또한 혀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혀가 말을 하려면 입술과 조화를 잘 이루어야 되지요? 입술이 나무 판자같이 생겼다면 어떻게 말을 하겠어요? 내가 말하는 것 보세요. 내가 이렇게 말을 해도 언제 그렇게 생각을 해서 입술과 박자를 착착 맞추어 가지고 살랑살랑 말을 해 버리는 지…. 얼마나 기가 막혀요? 이렇게 보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는 거예요. (39-332)
입에 있는 혀도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혀는 70년, 80년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해도 아무 사고도 없습니다, 참 잘 만들어져 있다는 겁니다. 밥을 먹는 것을 보아도 신비하고 말하는 것을 보아도 참 신비합니다. 입속에서 끌어당기고 밀고 하면서 작두 같은 이빨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도 충돌없이 얼마나 박자를 잘 맞춥니까? 조화통이라는 거예요. 지금 내가 말을 참 빨리 합니다. 이렇게 빨리 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처음 만난 여러분들과 정들 수 있게끔 말하게 하는지 정말 기기묘묘한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혀가 손가락과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나는 거예요.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작용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슬쩍슬쩍 박자를 맞추어서 거침없이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참 신비한 거예요. 여러분은 혀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혀가 없으면 어떻게 밥을 먹고 말을 하겠어요? 이렇게 모든 것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누군가가 이것들이 무엇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전부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8-155,38-250)
입술을 보게 되면 그 얼마나 기기묘묘합니까? 입술하고 이빨하고 잘 어울려요, 안 어울려요? 「어울립니다」 그런데 입술하고 이빨하고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불과 몇 밀리미터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이 혓바닥은 이빨 사이에서 얼마나 위험합니까? 또 혓바닥 이거 얼마나 3합(三合)이 잘 들어맞는냐 이거예요. 이빨 사이를 들락날락하다가 잘못하여 이빨에 씹히는 날에는 왕창 씹힐 텐데…. 그리고 이빨은 얼마나 무디냐! 앙 깨물면 여지 없어요. 용서없이 와싹 깨지는 거예요. 이것이 위험하다면 이 이상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아차 잘못하게 되면 큰일나는 거예요. 그렇지만 불안을 느낍니까? 「안 느낍니다」먹을 때는 그저 먹는 것에 바쁘지 불안을 안 느낀다는 것입니다.
입술도 보면, 고무 중에 최고의 고무입니다. 벌릴 때는 한껏 벌릴 수 있고, 오므릴 때는 아주 작게 오므릴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자유자재입니다. 가죽보다 낫고 생고무보다 낫다는 거예요. 말을 할 때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 얼마나 기묘합니까? 전자 오르간이나 전자로 된 무슨 두뇌를 가진 기계라 하더라도 이렇게 정확하게 박자를 맞추어 줄 것 같애요? 이렇게 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혓바닥은 생각과 더불어 착착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먹을 때나 말할 때 한 울에서 입술과 이빨과 혀의 박자가 어쩌면 그렇게도 잘 맞는지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신비하다는 거예요. (38-250, 39-164, 159-271)
입술 가운데서도 윗입술이 작고 아랫입술이더 크면 좋잖아요? 어때요? 아랫입술이 두꺼워요, 윗입술이 두꺼워요? 「아랫입술이요」 그래 맞긴 맞는데 그러면 길이는 어때요? 윗입술이 길어요, 아랫입술이 길어요? 「윗입술이요」 윗입술이 길어요. 왜 그게 길어요? 여기선 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길게 보이는 거예요. 다 조화를 이루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입술을 보고 생각할 때 윗입술이 길다고 생각 하지요? 사실은 짧은데. 그거 왜 그러냐? 이거 두꺼운데 비중을 맞추려니 좀 길게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비중이 맞지, 그렇지 않으면 이게 올라 가서 더 긴 것 같다구요. 그거 왜? 상대를 생각 해서 다 그렇게 저렇게 생겼다 그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110-88)
이빨이 몇 개예요? 「32개입니다」 왜 32개냐 이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이것은 사팔은 삼십이 (4 X 8=32)라구요. 요것 (4)은 4위기대를 말하고, 이것(8)은 세상을 말하고, 팔 하면 재출발을 말하는 거예요. 이것은 모든 만물을 증거할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새로운 출발을 말하는 거예요. 사위기대의 배가 조화된 거예요. 입체적이다 이거예요. 4수의 입체성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삼라만상의 모든 만물을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구요. 그래서 이빨이 잘생긴 사람은 절대 거지가 되는 법이 없고, 못사는 법이 없다구요. 두고 보라구요. 왜 그러냐? 자연이 이왕에 사람한테 깨뜨려진다면 아름다운 이빨한테 깨뜨려져 먹히고 싶지, 보기 싫은 이빨한테 먹히고 싶겠어요? 그건 이론에 맞다 이거예요. 자연의 이치에 맞다 이거예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자연도 아름다운 미인을 좋아한다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사람이 전부 다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조화를 이루어 생겨났다 이거예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사위기대라구요. 코도 하나에서부터 사위기대를 이루는 거예요. 둘을 대해서 이래 가지고 동굴로 여기서 나누어져 가지고 둘로 이렇게 갈라지는 거예요. 이게 코예요, 코. (웃음) 요건 눈이라구요. 반드시 눈에는 초점이 있다구요. 시신경의 초점이 맞아야 된다구요. 이게 사위기대라구요. 그리고 귀는 사방, 전체와 통한다구요. 우리 귀는 전체와 사방에 통한다구요.
우리 사람도 그렇잖아요. 생긴 것을 전부 척 보면 사위기대를 늘어 놓은 거예요. 입도 그렇다구요. 입도 사위기대라구요. 전부 그렇다는 거예요. 이거 생긴 것도 사위기대예요. 사위기대의 한편을 나눈 거예요. 원형도 사위기대의 변형이라구요. 전부 그 변형이예요. (94-65, 118-112)
⑤ 귀와 귓바퀴
이 귀는 어떻게 해서 이처럼 멋지게 생겨났느냐? 귀가 생겨나기 전에 누군가 공기가 있는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코를 보세요. 무엇 때문에 코가 이렇게 생겨났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눈, 코, 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녀석은 눈알을 빼 보고, 귀를 막아 보고, 코를 잘라 보라는 거예요. (38-154)
귀가 거꾸로 달렸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벌써 앞으로 말하고 앞으로 들을 것을 다 알았다구요. 뒤로 들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들을 것을 다 알았다구요. 그리고 큰 산맥 작은 산맥이 화음이 되고 또 사고날 것을 다 알고 방지하게끔 돼 있다구요. 자, 이 모두가 모르고 이렇게 생겨났어요? (54-99)
이 귀를 한번 보세요. 귀를 보면, 모든 음파가 귀신경으로 들어가서 연결된다는 거예요. 대표 소리는 하나인 거예요. 여러분 음차가 있지요?음차 하나를 때리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땡' 하게 되면 옆의 것도 '땡' 하는 거예요. (웃음)
귓바퀴가 이렇게 생겼는데, 그렇지 않고 반대로 생겼다면 어떻겠어요? 이 귓바퀴가 없다고 하면 어떻겠어요? 앞에서 오는 소리가 그냥 휙 지나가 버린다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말하는 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또 귀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나는 말소리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상대와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뒤통수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귓바퀴가 이렇게 생긴 것은 앞에서 오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귀가 공기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그리고 이 귓바퀴를 뭐하려고 이렇게 만들어 놨겠습니까? 그것은 공기가 가다 거기에 걸려 가지고 화음이 되라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귀를 한번 잘 보세요. 큰 바퀴가 있고 작은 바퀴가 있어 가지고 소리를 잘 거릅니다. 큰소리가 들려 오면 이 큰 바퀴에서 그 소리를 슬쩍 죽여 놓는다는 거예요. 큰소리가 그냥 그대로 귀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게 되니 큰 바퀴에서 소리를 한번 죽였다가 작은 바퀴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자, 소리가 공기를 타고 정면으로 전파된다는 사실을 귀가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귀는 몰랐지만 본래부터 알 수 있는 내용의 동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귀가 그런 것을 전부 알고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가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장본인이 누구예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38- 248, 96-26)
귀의 특징이 좋은 것을 들으려고 합니다. 나쁜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들으려면 음악감상은 왜 합니까? 차라리 변소에 가서 나팔 부는 소리나 듣지. (웃음) 그래 음악감상은 무슨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까?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리 중에서도 최고의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보고, 듣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듣고, 냄새 맡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맡고, 만지는 것도 최고의 좋은 것을 만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좋은 것의 최고는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주인, 사랑의 대왕님은 누구시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7-22)
⑥ 머리카락
머리카락은 나무와 마찬가지입니다. 머리카락을 잡고 비벼 보면 어디가 뿌리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뭇잎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하나가 긴요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백과사전을 통해 가지고 연구하고 결정해 가지고 설계하여 백 퍼센트의 가치를 가진 걸작품으로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연 발생하여 그냥 생겨났어요? (37-20)
하나님은 우리의 체(體)를 만점에 또 만점을 줄 수 있는 자연적인 체로 만드셨습니다. 머리카락을 자세히 보면 나무같이 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삭삭 비벼 보면 어느 쪽이 뿌리쪽이고 어느 쪽이 그 반대쪽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손으로 비벼 보면 반대쪽에서 뿌리쪽으로 손이 움직일 때 까끌까끌한 감촉이 있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까끌까끌하기 때문에 무엇에 걸리면 영락없이 달라붙게 되어 있습니다. (38-155)
요즈음에 머리카락 하나를 분석하게 되면 그 사람의 성질부터 직업까지 모든 것을 분석해 낼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배후의 관계를 전부 분석할 수 있고, 처해 있는 환경도 분석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시대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한 부분, 지체라는 것은 자기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쭉 연결되어 있다구요. (59-175)
⑦ 이마와 얼굴
왜 이마가 넓적한가 생각해 보자구요. 그건 하늘이 넓다는 것을 상징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넓다는 거예요. 우주의 중심은 뭐냐? 하나님입니다. (96-63, 39-167)
⑧ 수염
남자들에게는 왜 수염이 났을까요? 여자는 수염이 안 났는데 남자는 왜 수염이 났느냐는 것입니다. 이 수염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남자는 일을 하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립니다. 그래서 그 땀이 번지지 않도록 방어체로서 수염이 난다는 거예요. (38-250)
⑨ 목
인간세계는 영계다 이거예요. 영계가 같이 한다구요. 목 위는 영계에 해당되는 거예요. 왜 목이 가늘어졌느냐? 목이 뚜껍지 왜 가늘어져 있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여기는 전부 다 정보처예요, 정보처.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서 인간세계를 다 냄새 맡고 듣고 보고 맛보고 다 그런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여기서 명령을 내리면 우우우우-하며 살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걸로 봐서 사람이 질서내에 있다, 질서의 조직권내에 있다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구요.
그러니 이것이 종적, 횡적으로 되어 있고, 그다음에 입체가 벌어지기 때문에 또 하나가 필요하다구요. 이것을 하나의 구형으로 상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뭐가 되느냐면 종, 횡, 전, 후가 다 됩니다.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전후 좌우 상하 관계라고 합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우주에는 본래 그런 질서가 절대 필요합니다. (123-129)
머리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왜 그러냐? 귀 때문이 아니고 눈 때문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우주가 하나님 때문에 돌아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54-18)
⑩ 손과 손가락과 손톱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을 표현하기를 이성성상의 주체라고 합니다. 여러분, '넘버 원' 할 때에 엄지 손가락을 이렇게 세우지요? 그렇지 않고 집게 손가락을 세우는 사람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엄지 손가락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뜻합니다. 엄지 손가락을 보면 두 마디입니다. 그것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의 두 성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애기들이 태어나게 될 때 손을 꼭 쥐고 태어나는데 그것은 왜 그럽니까? 천지의 이치를 따른 것입니다. 손을 보면 엄지는 두 마디로 되어 있어서 이성성상의 하나님을 상징하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4계절을 뜻하며 열두 달을 상징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주 가운데 하나님이 숨어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39-167, 39-252)
눈을 말하면, 눈이라는 존재를 말하게 되면, 그 눈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전부가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손 하게 되면, 그 손 자체도 연결된 한 부분의 손으로서 존재하는 거예요. 손이 말하기를 '나 손은 내 마음대로 한다' 할 때,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손 하나를 중심삼고 단독적인 것이 아니예요. 연관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활동을 목표로 한 내용에서 손이 움직이는 거예요.
손이 이렇게 간다면 손만 가는 것이 아니예요. 이것은 뭐냐 하면, 손 하나만 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가는 거예요. 모든 세포가 가고, 정신이 가고, 모든 것이 거기에 같은 보조를 취해 가지고 손이라는 것이 그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자, 손은 이렇게 가는데, 정신과 눈이 다른 데 가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눈이 본다 하더라도 정신이 없이 본다 하게 되면 그것은 뭐예요? 정신이 먼저 가야 된다구요. 그다음에 몸이 가야 된다구요. (229-44)
여러분, 손톱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요? 손톱이 없으면 어떻게 물건을 잡겠어요? 손톱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려면 손톱을 한번 빼 보세요. 얼마나 귀한지 알 거예요. 그리고 손바닥과 손등을 보세요. 가죽이 다르게 생겼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가만히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적합하게 잘 배치 배열되어 가지고 잘 만들어져 있는지 보면 볼수록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상상할 수 없을이만큼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37-21)
⑪ 오관과 육관
무엇에 의해 지어진 물건과 소유주가 관계를 맺게 되느냐? 그것은 본연의 참사랑에 의해 리시프로컬 릴레이션쉽(RECIPROCAL REALATIONSHIP;상호관계)을 맺는 것입니다. 오리지날 주인이 사랑의 주인이 될 때, 그 주인은 억천만 년이 가도 모든 피조물이 반대할 수 없다는 거예요. 따라가게 돼 있지요.
모든 피조물들은 이 사랑을 중심삼고 전부 다 인연을 지어 나갑니다. 그 피조물들을 두고 보면 식물세계라든가 동물세계, 광물세계가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좋아할 수 있는 감각, 좋아할 수 있는 소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은전부 다 본연의 참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본질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라는 거예요.
피조세계의 제일 주인 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사람에게는 오관이 있다구요. 오관이 있다 이거예요. 그래 오관이 뭐예요? 눈, 코, 입, 귀, 피부 이렇게 오관이 있는데 오관만이 아니예요. 육관이 있어야 되고 칠관이 있어야 된다 하는 걸 모른다구요. 그런 말은 처음이지요? 육감이 있다는 말은 있지요, 육감. 세븐 센시즈(SEVEN SENSES;칠관)를 가져야 하나님을 안다구요. 타락으로 말미암아 파이브 센시즈(FIVE SENSES;오감) 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식스 센시즈(SIX SENSES;육감)와 세븐 센시즈를 넣어야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이 안 되니 문제라는 거예요. (163-40)
인간의 제일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느냐 하면, 머리에 있고 그다음에는 몸뚱이에 있습니다, 심장. 그거 무슨 말이냐? 머리는 하늘을 상징한다는 거라구요, 하늘. 생각은 하늘을 상징하고, 몸뚱이의 이 심장은 땅의 중심을 상징한다 이거예요. 그렇게 돼 가지고 이것이 몸의 사람, 마음의 사람과 더블(DOUBLE)로 돼 있다 이거예요. 이게 양면의 거울과 같이 돼 있습니다. 여기 이쪽(몸뚱이)은 자연계의 반영이고, 이쪽(영계)은 영계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관뿐만이 아니고 육관, 칠관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107-294)
우리는 오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오관은 우리만이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서 보다 차원 높은 하나님의 사랑이 깃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오관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사랑과 횡적인 면에서, 혹은 종적인 면에서 반드시 관계를 맺게끔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오관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우리의 일체는 그 오관을 통해서 자기만 관계맺게끔 지어진 것이 아니라, 주체 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맺게 지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일체가 느끼는 모든 직감, 혹은 직관까지도 나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그 이념을 이어받고 관계를 맺어 가지고, 서로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지니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59-295)
⑫ 세포
우리 인간 자체를 생리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고등동물이라 합니다. 우리 인체를 보더라도 4백조에 가까운 세포의 구성으로 되어진 모든 것은 어떤 구조보다도 복잡하면서 치밀하고, 치밀한 동시에 전체가 융합해 가지고 통일적 기능 밑에 하나의 목적, 하나의 방향성을 갖추어 가지고 화합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188-250)
세포는 생명체를 위해서, 인체면 인체의 목적을 위해서 협조하는 요소를 남겨야만 세포로서의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포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세포들이 구성되어 제 3세포를 형성할 수 있게 무엇을 남겨 줘야만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날아가 버립니다. (34-245)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 안 되어 있는데, 행복해질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육신은 수많은 세포로 되어 있는데, 오관의 모든 세포가 한 골수로 전부 집결되어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사랑의 힘은 그 어느 힘 보다 자극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다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래 영과 육이,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백 퍼센트 화합해서 하나된다면 얼마나 강하겠어요?
마음의 세포와 몸의 세포가 사랑에 의해서 완전히 하나되게 되면 공명하게 됩니다. 공명, 공명체 알지요? 음차? 주파수가 같아서 이렇게 때리면 같은 소리를 내는 거예요. 공명체가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것이 고장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살릴 길이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는 길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142-117)
⑬ 기타
인간의 몸도 심장을 중심으로 모든 지체가 움직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놓고 볼 때 마음에도 중심이 있습니다. 그 중심은 인간 상호관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29-124)
여러분 누구에게나 뱃속에는 내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장에는 비료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장 가운데 들어 있는 비료는 내게 필요 없으니 빼 버리고, 내장의 어느 부분은 잘라 버리고 내가 필요한 것만 갖고 있겠다고 할 수 있어요? 모두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똥까지 들어 있는 것입니다. (44-340)
여러분은 호흡을 하고 있지만 그 회수를 세어요? 여기 가슴에서 망치로 두들기듯 두들기고 있는데 그 북소리를 들어요? 파리가 머리카락을 살짝 지나간다 해도 아는데, 여기에서 망치로 두들기는 것같이 두들기고 있는데 자극이 없어요. 그거 이상하지요? 파리가 슬쩍 지나가는 것도 알면서도 망치로 심장을 두들기는 것은 모르는 거 보라구요. 여러분이 청진기로 들어 보면 쿵딱쿵딱 한다구요. 그렇게 뛰는 힘의 자극으로 보면 그것은 파리가 살짝 지나가는 것보다 몇십 배 몇백 배 강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알지 못하고 파리가 스쳐가는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게 조화통이라구요.
여러분이 그 뚝딱뚝딱하는 맥박 소리를 세었다가는 모두 신경병에 걸릴 것입니다.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세어 보라구. 셀 수 있어요? 하루, 어떤 때는 일주일, 열흘, 한 달 동안 심장이 움직이는 것을 생각이나 해봤어요? 만일 그것을 상대적으로 보았다간 큰일날 거라구요.
'아! 이것이 오늘은 이렇게 가다가 내일은 살짝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날에는 죽는다구요. 그러니 모르기를 잘한 거예요. 그것을 상대적으로 봤다간 큰일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에 있는 신경기관 같은 것이 안 보이기를 잘했지, 거미줄 같은 신경이 있어 가지고 그것이 작용하는 것을 보고 산다고 생각해 봐요. 이렇게 복잡다단한 것이 아이쿠…. 이것은 기계로 말하면 최고의 정밀기계라구요. 수억 개가 되는 부속품이 있는데, 이것이 고장 안 난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볼 때, 그거 다 안 보이길 잘했지, 그것이 보였으면 큰일날 거라구요. 심장이 뛰는 것을 모르길 잘했지, 알면 큰일난다구요.
그것을 왜 모르느냐? 너무나 가깝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이 있는 그 이상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것이 내가 존속하는 생명 감각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벽이 되어 있어서 영화 스크린과 같이 반사되어야만 비쳐지는데, 그것을 타고 넘어가 있기 때문에, 그 벽을 돌아가서야 느끼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안 보이는 거예요. 눈도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가까워도 안보이고 멀어도 안 보이지요? 세상만사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을 느낀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있고 없고 하는 것이 문제 안 된다구요. 안 그렇겠어요? 그런 세계가 있다구요. (59-316)
우리는 물론, 신경기관을 중심삼고는 머리가 중심이 돼 있다구요. 그렇게 돼 있지요? 우리가 신경기관을 볼 수 있나요? 또 우리의 혈관기관을 중심삼고는 여기 (심장)가 중심이 되어 있다구요. 그래, 무엇이 중심이냐 이거예요. 「마인드(MIND(마음)」몸을 중심삼고 말이예요, 마음은 나중에 하자구요. (웃음) 신경기관과 혈관기관이 조화가 되어야 됩니다. 혈관기관이 가는 데는 신경기관이 안 가면 안 되고 신경기관이 가는 데는 혈관기관이 안 가면 안 된다 이거예요. 자연히 그것은 공동 운명이예요. 만약에 피가, 혈관기관이 통하지 않는다면 신경기관도 물러가고, 신경기관이 통하지 않는다면 혈관기관도 물러갑니다. 그렇지요?
자 이렇게 볼 때, 우리 몸도 두 가지예요. 이성성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구요. 이렇게 볼 때, 이 두 기관은 어디를 중심삼고 연결되느냐? 무얼 중심삼고? 그건 나의 생명을 중심삼고 연결된 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 세포를 통하던 피가 발바닥 세포를 통하던 피에게 '아이고, 머리로 오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경계선이 있나요? 머리에 오지 말라는 경계선이 있어요?「아니요」 그런 의미에서 흑인, 백인, 황인 구별이 없다구요. 이거 보라구요. 살이 요건 하얗고 말이예요, 요것은 노랗고 말이예요, 색깔이 전부 다 다르지요. (91-280)
여기, 우리 그렇잖아요? 본래의 우리 체내에서는 백혈구가 있어 가지고 균이 들어오는 것과 싸우고 있잖아요? 한편에서는 싸우고 있는 거예요. 공격의 싸움에 대해서 보호의 싸움을 한다 이거예요. 공격전과 방어전에 있어서 균형된 선상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싸우고 있는 거예요. (145-199)
5) 웃음과 조화
사람들의 웃음은 말이예요, 웃음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구요. 살짝 웃는 것도 웃는 것입니다. 웃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모든 것이 둥글어져 나갑니다. 영감이 크게 웃게 될 때, '허허허' 하고 계속 올라가지 않고 꼬부라지면서 '걸걸걸' 합니다. 왜 꼬부라져요? 이상하잖아요? 올라가면서 웃지, 왜 꼬부라지느냐 이거예요. 둥글어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해쭉 웃게 될 때는 입이 살짝 웃지만 말이예요, '하하하' 웃게 될 때는 입이 이래 가지고 둥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둥글게 웃는 사람 중에는 악한 사람이 없어요. 지금 관상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지요?「예」 (173-242)
자, 여러분들은 웃을 때 말이예요, 눈 따로 코 따로 웃나요, 다 같이 웃나요?「같이 웃습니다」 눈이 웃고 코가 웃는데, 입이 이런 사람은 먹는 것이 궁하다구요. (흉내내심. 웃음) 또, 코가 안 웃고 뻣뻣이 있으면 아들딸, 손이 귀하다구요. 또, 웃기는 웃는데 이렇게 눈이 안 웃는 사람은 정이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전부 다 이렇게 활짝 웃고 말이예요, 크게 웃어야 돼요. (96-232)
그러면 웃을 때 한 눈은 웃는데, 다른 한 눈은 '안 웃는다'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은 이성성상이지요? 그런데 그 가운데 플러스 성상은 웃는데 마이너스 성상이 버티고 있을 수 있어요?(웃음) 안 된다구요. 플러스 성상이 웃으면 마이너스 성상은 자동적이예요. '야, 플러스 성상 웃기 시작한다. 야, 요이 땅! 마이너스 성상 웃기 시작' 그러한 무슨 기계 장치가 되어 있지도 않아도…. 하나가 '히' 하면 같이 '죽' 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지요?「예」 (75-26)
제3절 청소년기와 성화
1. 청소년기 (期)
1)청소년기는 봄절기
봄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겨울과 봄은 현격하게 다른 계절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은 그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지만, 겨울과 봄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크게 가져다 주는 때가 곧 겨울과 봄이 교차되는 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봄이 되면 여러 가지 초목이 새싹을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곧 만물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가 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계절이 바뀜에 따라서 이동하는 철새의 무리도 새로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들은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봄에는 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철은 모든 만물이 자기의 제일 좋은 것을 자랑하는 계절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사람들도 그 환경에 따라서 이 봄이라는 계절을 마음 깊이 느껴 보고 싶어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봄절기를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그냥 봄이 왔다. 봄은 좋은 계절이다' 하는 생각보다는 이 좋은 계절을 맞기 위해서 그 배후에는 보통 계절과 다른 수난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년을 중심삼고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에만 그런 계절의 변화가 있는 것이냐 할 때 그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계절과 같은 것을 우리는 하루 가운데서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을 상징하고, 저녁은 가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밤은 겨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침이 좋으냐 저녁이 좋으냐 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침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흑암을 상징하는 밤이 모든 것을 덮쳤다가 새로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아침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더 귀하게 느껴지고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갖가지 새라든가 사람들 역시 아침에 희망적이요, 아침에 기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 아침의 기분이 그 한 사람의 하루 생활 전체를 좌우하게 되는 것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기분이 좋아야 그날의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아침은 쉬고 일어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기분이 좋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루, 한 날에도 봄철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봄절기와 같은 때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다시피 사춘기 시절, 청소년 시절은 그야말로 인생에 있어서의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춘하추동과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66-181)
2)청소년들의 성향
여러분처럼 소년 시절은 참 좋은 때입니다. 왜 좋으냐? 여러분들 때는 무엇이든지 자랑하고 싶어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중학생들 손들어 봐요. 내려요. 이때가 한참 자랑하고 싶을 때입니다. 자기 집에 조금만 좋은 것이 있어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어른들은 좋은 것이 있어도 자랑하면 소문이 날까봐 걱정하는데, 소년소녀 시절에는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면 전차에서나 버스에서나 어디서건간에 자랑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년소녀 시절에는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때이고, 자기에게 자랑할 수 있는 두둑한 것이 있기를 바라는 때입니다.
이러한 소년소녀 시절이 왜 좋으냐 하면, 자기 마음에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그냥 그대로 드러내어 천하의 것으로 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을 자랑하겠다는 그 마음은 좋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흡수력이 강하 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33-274)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진짜 좋은 것은 영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좋은 것은 절대적이 아닙니다. (33-289)
보세요. 나이 어린 소년소녀들도 가만히 보게 되면, 그들의 생각은 누구나 으뜸이 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으뜸이 되고 싶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누구든지 '내가 세계에서 제일이 되고 싶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갖고 있어요, 안 갖고 있어요?「갖고 있습니다」 갖고 있어요? 우리 아가씨들도 갖고 있지?「예」
국민학교밖에 못 나온 여자들도, 혹은 유치원에도 가지 않은 그런 그 조그마한 소녀의 가슴에도 '여자 중에서는 내가 세계에서 일등이 되고 싶다' 하는 마음이 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학교도 못 다녔고 병신 중의 왕병신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에 세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면 그 최고 꼭대기를 찾아 올라가면 참된 사람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최고의 꼭대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올라갑니다. 그 꼭대기를 바라보면서 찾아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간에 인류는 그 최고 꼭대기를 참된 하나의 소망으로 삼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39-292)
여러분, 본래 인간의 욕심이 그렇지요? 인간은 세계를 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어린아이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다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세계는 내 것이다'라고 하면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으뜸이 되고 싶은 마음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럴 수 있는 어느 한때도 갖지 못하고, 소원을 한 번도 이루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게 만든 하나님이라면 그것이 무슨 하나님이예요? 악한 부모도 그만큼 참았으면 한 번은 소원을 이루어 줄 텐데…. 안 그래요?
그러면 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간단합니다. 세계를 만드신 그분의 아들딸이 되면 됩니다. 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세계를 붙잡고 싸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면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므로 자기의 것이 되는 겁니다. 여기 학생들, 아버지 집이 자기 집이지? 아버지 집이 자기 집이라구.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의 집이야' 그러는 아들딸이 있어요? 코가 찌그러지고, 다리는 절룩절룩거리고 배밀이하는 병신 사촌 같은 녀석이라고 해서 이게 누구의 집이냐고 묻게 되면 우리 아버지 집이라고 그래요? 형편없는 아들이라 해도 누구의 집이냐고 물으면 우리 집이라고 대답합니다. 이걸 볼 때 세계에서 제일 되는 길이 있기는 있습니다. 다들 욕심을 채우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아 보라구요. 얼마나 자랑하겠어요, 얼마나? (48-76)
젊은 녀석들의 마음은 욕망이 등등합니다. 백두산도 자기 주머니를 거쳐갔다고 자신하고, 태평양권도 한 잔의 물과 같이 마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 청소년시대에 품어야 할 기백입니다. (151-68)
3)청소년들이 가져야 할 자세
①큰 꿈을 가져라
청소년이라면 청소년의 꿈이 있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은 하나님을 오른손에 붙들고 왼손에 세상을 붙들고 가는 것입니다. 그게 멋져요. (87-21)
젊은 사람들이 꿈을 갖는 데는 인간만의 꿈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변천하게 마련입니다. 사상을 통해서 변천하게 마련이다 이겁니다. (87-11)
여러분은 큰 꿈을 가져야 되겠다구요.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의 꿈을 가지고 현실을 미래의 것으로 알고 살고 있는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말을 하니까 좋기는 좋지요?「예」 이것은 지금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것은 미래를 통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미래를 위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모르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편안하게 일을 하면서 장래를 꿈꿀 거예요, 힘들고 복잡하게 일을 하면서 장래를 꿈꿀 거예요?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어요? 「힘들고 복잡하게…」 그거 왜 그런 거예요? 결과가 더 좋고 더 행복한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땡땡이 부리겠어요? 꾸준히 계속적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가겠어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변덕을 부리면서 가겠어요? 어떻게 가겠어요?「꾸준히…」 알기는 아는구만. (98-291)
②자신의 적성을 조기발견하라
제일 무서운 게 뭐라구요?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서 하면, 하나님도 여기에 점령당하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는 말이 있는데, 다 그걸 두고 한 말이라구요. 그래 하나님을 점령하고 싶지요?「예 !」그러면 하나님을 점령하는 법을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 내가 세계적인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고 금을 그어 놓고, 욕심부리는 사람은 절대 못 된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만일 그런 사람이 그렇게 됐다 하게 되면 죽는다구요. 복을 받지 못한다구요. 하나의 책임을 지면 어렸을 적부터 좋아서 하는 거예요. 밤에도 낮에도…. 10대, 20대, 30대, 50대, 일생 동안 그저 좋아서 계속해서 한 사람은 시간을 많이 투입했으니까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다 이루어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좋아하는 것을 빨리 어렸을 적부터 택해 가지고 그것을 일생 동안 좋아하면서 노력을 하게 된다면 그는 세계적인 인물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 문선생이 지금까지 통일교회 책임자가 되고, 창시자가 된 것은 뭐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심정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좋아 가지고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풍파가 있건 죽을 고비에 있건 변함없이 좋아하면서 나오다 보니까 오늘의 문선생이 됐다구요. 딴것 없다구요. 쓰러지고, 힘들고, 어렵고, 이런 것을 꿈에도 생각 못 했다구요. 죽으면 죽었지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구요. 할 수가 없었다구요. 그러니까 움직이게 되면 자꾸 발전하지요.
아무리 열대지방에 가더라도 내가 좋아하는데…. 땀을 흘려도 좋고, 옷이 다 젖어도 좋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뭐 철근 같은 사나이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구요. 이건 다 거짓말이라구요. 내가 손을 대는 일은 참 기뻐서 하는 거예요. 누구보다도 좋아서 한다구요. 그것이 앞설 뿐이지 딴 것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뭘하는 것 보면 그것 때문에 태어난 사람같이 뭐 딴 것 다…. 통일교회 선생이고 뭐고 없다구요. 그것 때문에 태어난, 농촌에서 뭘하게 된다면 그것 때문에 태어난 사람처럼 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도 나를 못 당하는 거라구요. 그 정신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못 당하는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앞선다구요. 일을 할 때 '어서 끝내고 가자' 그게 아니라구요. '아이구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뻐하면서 그러면 그게 피곤하겠나요? 생각해 보라구요.
이제 여러분들이 성공의 비결을 알았다구요. 새로운 분야를 알았다구요. 여러분 얼굴들 보게 되면 전부 다 좋아하는 얼굴인지 할 수 없어 하는 얼굴인지 대번에 안다구요. 기뻐서 한 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들, 선생님 말이 맞나 안 맞나, 누구 해보라구요. 해보라는 거예요. (76-273)
③계획을 세우라
자기 일생은 한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냥 길 가다가 마주쳐서 이럭저럭 살게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24-86)
청소년기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시대입니다. 목적을 세울 결심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이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청소년기는 생애의 분기점입니다. 그래서 18세를 전후해서 인생의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이 시대는 인생에 있어서 교차로와 같은 시대입니다. 이 교차로에서 확실히 깨닫고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일관해서 무난히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1-82)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 일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라 이거예요. 선생님의 일생을 보게 되면, 15세에서 30세가 소생기이고, 30세에서 45세가 장성기이고, 45세에서 60세가 완성기라구요. 3단계 계획을 해 나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30세까지는 모든 준비를 다 했다구요. 모든 준비를 다 한 거예요. 그래 준비가 됐으면 부딪쳐라, 전체에 영향이 있게 부딪쳐라, 나라에 부딪치고, 모든 영향을 받게 전체에게 부딪쳐라 한 거예요. 그래서 30세 이후에는 부딪친 거예요. 싸운거예요. (103-59)
4)청소년에게 필요한 것
성공을 하는 데도 각각 사람의 소질에 따라 다릅니다. 일년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3년만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질이 있어 일년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질이 없어 다른 사람의 2배, 3배를 더 노력해야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은 10년 동안에 해내는 일을 30년이 걸리더라도 해 내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에게도 신념을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위해 18세부터 모험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신념이 제일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 높은 산에도 가고 산골짜기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하러 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 전도하러 가고 싶어요, 안가고 싶어요? 가고 싶으면 가고 싫으면 말아요.
그다음에 젊은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하냐? 의욕입니다. 의욕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해보고 싶다는 그 마음에도 4백여 계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보고 싶다는 그 마음을 분석해 보면 4백여 계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하고 싶다 할 때는 몇 계단이냐 하면 한 계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고 싶어요?「예」 얼마만큼 하고 싶습니까? 팔 하나가 잘려도, 다리가 뚝 끊어져도 할 수 있습니까? 그 다음에 왼쪽 다리 왼팔이 잘려도, 오른쪽 다리 오른팔이 다 잘려 버려도 문제없다 하면서 그것을 잃어버리고 좋아할 수 있습니까? 목을 잘라서라도 찾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것입니까, 안 할 것입니까?「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간담이 서늘하면서도 하겠다고 하고 있지요?(웃음)
말은 쉽게 합니다, 말은 '하겠습니다' 하고 금새 나오지만, 행동은 천만사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의 손과 발을 투입시키고, 나중에는 생명까지 투입시킬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옛날에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갈 때도 아침 일찍 밥먹기가 바쁘게 '야! 오늘 산에 올라가자' 했습니다. 그리고 가더라도 꼴찌가 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습니다. 옛날 학생 때부터 산에 간다 했을때 배가 아프고 몸에 지장이 있더라도 완전무장해 가지고 갑니다. 가 가지고 못 올라가겠으면 기도를 하고 올라갑니다. '하나님! 올라가겠습니다' 이런 조건을 세우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냥 따라 올라가는 것은 질색입니다. 자기 있는 노력을 다해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결의를 하고 이런 의욕을 가진 누구입니다'라고. 선두에 서지 못할 때는 이런 조건이라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의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백운대에 올라간다면 정상까지 멧돼지라도 달고 올라갈 수 있는 의욕이 있어야 합니다.
의욕 가운데는 모든 탐구력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한강에는 어떤 새가 살까? 아이구 이거 여름이 되어 더운데 저 산꼭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얼마나 시원한지 올라가서 한번 바람을 쐬어 보자, 야! 거기서 서울 장안을 보면 어떨 것이냐? 이런 의욕, 이런 마음에 사무친 의욕이 많으면 많을수록 처해진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어렸을 적부터 산을 보고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일까? 저 산에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으며, 그렇게 생각되면 반드시 가 보았습니다. 또한 동네방네 한 이십 리 안팎에 있는 것을 환히 알았습니다. 못이 있으면 그 못에 구멍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까지도 다 알았습니다. 큰 가물치, 그놈을 잡으려다 못 잡으면 힘은 들지만 못의 물을 전부 퍼내서라도 잡고야 말았습니다.
또 어떤 못에는 큰 붕어가 한 마리뿐이었는데, 그놈을 잡는다고 낚싯대를 드리워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놈은 잡히치 않고 새끼고기가 하도 많아 그런 것들만 자주 물리는데, 조그마한 놈이 잡히면 '너는 가 이 자식아' 그러고는 다시 그 놈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붕어를 잡았을 때 그 기분 그것은 실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사실 그놈을 잡기까지 고생은 했지만 잡았을 때의 기분으로 그런 것은 다 잊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쾌감을 느끼려면 그럴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 사람들을 보면 그저 눈치는 빨라서 누가 '같이 갈래? 하면 사실은 싫으면서 '그래 가자' 하는 것입니다. 사나이가 그러면 언제나 졸장부 노릇밖에 못 하는 것입니다. 그저 남의 뒤나 쫓아다니면서 신세나 진다는 것입니다.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욕은 젊은 사람들의 생명입니다.
의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성공하려면 그만큼 큰 모험을 무릅써야 됩니다. 그것은 평면적이고 일방적인 모험이 아니라 입체적인 모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을 극복해 낼 수 있는 끈기 있는 성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배우기 위해서는 신경질이 둔경질이 되어야 합니다. 두꺼비처럼 둔해야 합니다. 두꺼비한테 배울 것이 많습니다. 두꺼비가 아침에 일어나 햇볕을 받으며 눈을 껌벅껌벅하고 버티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배워야 합니다. 또 황소가 새김질하면서 서서 얼마나 명상을 잘하고 있습니까? 그 명상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끈기가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이념이 좋다 하더라도 끈기가 없으면 안 됩니다. 끈기가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10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만, 안 할 때는 한 달쯤 안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몇 달 동안 얘기 안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을 하면 무슨 얘기든 잘하지만 안 하게 되면 한마디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욕을 갖고 배가(倍加) 되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게 없어서는 아무리 꿈이 크다 하더라도 그 꿈을 성취하는 데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밖에는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꼴찌가 되는 것입니다.
의욕을 갖고 모험을 하는 데 있어서는 단호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대했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가야 합니다. 나라가 반대하겠으면 하고, 세계가 반대하겠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때가 온 것을 감정해 가지고 판별한 후에는 용기를 갖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감옥에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용기가 있더라도 그것이 무모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사리를 잘 판단해 가지고 옳으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준비한 것이 여기에서 파탄된다면 너무나 애석하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준비해 가지고 여기에서 후퇴해야 하는 패자의 서러운 입장에 선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입장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백배하며 생명도 개의치 않으며 나아가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승리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승리의 터전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승리한 것은 남의 신세를 진 것이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어느누구의 신세도 안 졌습니다. 선생님이 도의적인 일에 신념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힘을 기울이며 용기백배해서 걸어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는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 천운으로 말미암아 승리한 것이기 때문에 천륜에 따라 주체적인 존재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독자적인 입장에서는 승리를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가 흐르고 시대가 지나서 승리의 터전이 벌어지게 될 때 세계는 새로운 영광의 세계로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뭐가 필요하다구요?「의욕입니다」 또, 뭐가 필요하다구요?「용기입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 나왔지만 아직까지 세계무대를 향해 가야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계를 향해서 간다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누구한테도 굽히지 않고 지지 않습니다.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맹도 누구한테 지지 않으며, 싸우는 데 있어서도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지 않고는 세계적인 승리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민족적인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승리의 길은 먼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발전해 나온 단계를 생각하면서 여러분 자신들이 어떠한 처지에서 젊은 시절을 보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통일의 이념권내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선생님이 지향하고 하나님이 지향하는 승리의 세계로 가기 위해 스스로의 입장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판하는 것으로 인해 스스로 슬픔을 느끼는 졸장부가 되지 말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천상세계가 허락하는 하늘의 왕자가 되고 왕비가 되고, 영광의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젊은 시절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24-84, 33-278)
여러분들은 지금 청소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여러분과 같은 연령 시대에 있어서 어차피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번 뒤넘이쳐 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모든 고통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비애의 곡절을 피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환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환난이 기필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가 선의 세계가 아니고 악으로 시작하여 악의 목적 세계를 영위해 나가는 역사 발전 도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 가슴 한 가운데 소망과 포부를 지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내 것으로 삼고자 하는 욕망은 다 갖고 있습니다. 새롭고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는 남이 하지 못하는 더 좋은 면의 것에 반대되는 여건들을 타파해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새로운 것과 좋은 것이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혹은 현실적인 생활 시점으로 보아 우리가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출발의 길에 서 있는 여러분 자신을 세워 놓고 다시 한번 다짐하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나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갈 것이냐? 이런 문제를 걸어 놓고 생각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254-12)
인간의 모든 운명은 18-24세 사이에 있어서의 태도(신념과 방향) 여하에 따라 좌우됩니다.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의 결과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나타나지요.
신념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그의 현실이 화려할지라도 도중에 꺾일 우려가 많고 신념이 서 있는 사람은 가는 노정이 미미하고 어려울지라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지식을 가진 사람도 신념을 가진 사람에겐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라고 했지 지식을 다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신념이 서 있는 사람은 곡절과 어려움이 많아도 꺾이지 않고, 극복하고 넘어갑니다. 그리하여 그 결과는 더욱 빛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신념에는, 인간의 신념뿐만 아니라 천주적인 신념도 있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신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념과 인간의 신념이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역사를 섭리하여 내려온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데, 그 방편으로 종교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념은 곧 창조목적을 달성하려는 신념이며, 그 내용은 하늘을 먼저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만우주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천지인(天他人)이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자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10-15)
5)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①중요한 인물이 되려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어느누구나 자기 스스로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인물' 하게 되면, 이것은 보통 수준을 넘어서 전체 앞에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환경에서 승리적 기준이 되어 비교의 기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비교의 기준이 되려면, 완전한 것과 완전하지 못한 것을 갈라내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어떠한 면이 남보다 특출해야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오관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데 있어서 보통 사람들보다 특출해야 될 것입니다. 또, 듣는 데 있어서도 역시 그래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만지고, 느끼는 등의 모든 면에 있어서 특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우리 마음입니다. 그 마음 자체도 그 씀씀이에 있어서 보통 사람보다 특출해야 됩니다. 그다음 행동하는 데 있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드러나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인데, 그럴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고 행동하는 이 모든 것이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그냥 행동해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전부문에 있어서 모두를 능가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냥 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보는 연습을 하고, 훈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예요.
우리가 듣는 데도 그래요. 음악을 듣는 데도 그냥 한 번 들어 가지고는 안 돼요. 여기에 대해 세밀하게 내용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적 과정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하는 것도 그렇다구요. 말하는 것이 남보다 드러나고 특출하기 위해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훈련 과정이 있어야 돼요. 그 내용을 따라 연단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 쓰는 것,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다 훈련 과정을 거쳐야 돼요. 그러기에 명상이니 혹은 기도니 하는 것도 그러기 위한한 수양 방법이예요. 마음의 수양 방법을 말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중요한 사람이 됐다 하는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 능숙하도록 훈련 과정을 거쳐서 그것이 적중한 자리에 섰다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보통 사람이 못 하는 것을 해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문제를 앞에 놓고 훈련과 시련의 과정을 거치고, 뿐만 아니라 일을 대해서 모든 문제에 자신을 가지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 인간들이 사는 생활에 있어서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느냐? 일생 동안 보는 훈련, 듣는 훈련, 말하는 훈련, 행동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거예요. 결국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의 훈련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내용을 갖추어 어떤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결과의 자리에 도달한 생활을 하느냐 못 하느냐, 훈련 과정에 있어서 그 훈련을 해내느냐 못 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전체 환경 앞에 비교의 기준으로 드러나느냐 못 드러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거예요.
그러니 결국 우리는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말을 하고, 보통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보통 사람이 행하지 못하는 행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틀림없이 중요한 사람이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러한 사람들을 어느 단체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 단체가 전체 앞에 중심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한 나라에 있어서도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문제에 따라서 그 나라가 세계적인 중심 국가가 되느냐 하는 것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단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을 놓고 말한다면, 여러분을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느냐?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여러분은 중요한 사랑이 되려고 하고, 교회 자체에서는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무리 잘 보고, 잘 듣고, 말을 잘하고, 생각을 잘한다 하더라도 행동에 있어 패자가 되면 다 깨져 나가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어느 분야에 부딪쳐 가지고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분야든지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후퇴하는 날에는 아무리 훈련을 하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는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극복해 가지고 넘어가야 됩니다. 전진해 가지고 자기 힘으로써, 능력으로써 그것을 소화하고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책임질 수 있고, 그 환경에서 그 문제를 능가한 승리적 기준으로 말미암아 공인받는 중심적 존재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듣고,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훈련받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배우는 내용도 복잡하다 이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도 복잡하다 이거예요. 그러면 복잡한 것이 나쁜 것이냐? 내용이 갖추어지고 통일성을 가진 복잡한 것은 귀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만물을 보더라도 만물 가운데서 구조상으로 복잡한 물건일수록 그것은 가치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중심, 중요한 인물이 되게 되면, 그 중요한 인물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복잡한 기관들을 연결해 움직일 수 있는 자제력을 그는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복잡한 환경을 소화할 수 있는 자체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환경, 여러 분야에서의 훈련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 사람들도 보게 되면 오관으로 느끼는 것하고, 그다음에는 행동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이 행동이 어디에 미쳐지느냐 하는 데 있어서 그 미쳐지는 범위가 크냐 작으냐, 혹은 다방면이냐 일방면이냐, 입체적이냐 평면적이냐 하는 문제에 따라 중요한 인물, 중요한 책임자가 결정되는 거예요.
아까 중요한 사람이 되려면 모든 면의 훈련을 받아야 된다고 했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남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을 것입니다. (67-177)
②전체를 위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여러분은 어떠한 사고방식과 사상을 가져야 되느냐? '나는 전체를 위해서 산다, 전체보다 나는 더 해야 된다'는, 전체를 위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열 사람이 수고하면 나는 그 이상을 해야 한다. 거기에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감당한다. 거기에 내 손이 가야 되고 내 피땀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노력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참고 견뎌야 됩니다. 참고 견디고 나면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기쁨을 갖는 터전이 됩니다. 그 기쁨은 나 자신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 뜻 때문인 것입니다. (44-38)
③자책할 수 있어야
우리가 아침에 사탄세계로 나갈 때는 눈, 코, 귀, 모든 세포, 마음까지도 무장을 해 가지고 '오늘도 무사고로 돌아올 수 있게끔 해주소! '해야 합니다. 얼마나 험한 세상이예요? 저녁에 돌아와 가지고 얼굴을 씻게 될 때에 거울을 보고 '요놈 눈, 코, 귀, 손, 발, 이놈이 언제나 문제야' 하면서 '너 오늘 죄된 놀음 안 했어? ' 하고 물어 보는 거예요. 자 그런 것을, 눈으로 보고, 말로 하고, 행동으로 하고, 뭐 권력으로 하고 다 그런 것을 전부 다 싹싹싹싹 따돌려 권고해 가지고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그래, 통일교회에서 교육을 하는 것이 이 세계 사탄들을 때려잡는 제일의 검을 주고, 무기를 주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122-266)
④앞서야 된다
통일교회가 이제 사상적인 면에서 누가 당하지 못할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손대는 날에는 일등 해야 돼요. 내가 손대는 날에는 일등 해야 되겠다구요.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다구요.
안경을 끼는 데도 넘버 원이예요?「예!」그래 너희들, 안경 끼는 것 좋아해? 「예」(웃음) 그때는 안경 낄 수 있는 입장에서 안경을 집어던지고 안 끼고 다닐 수 있는 것이 넘버 원입니다. (웃음) 여러분 서양 사람들, 그래 세 개도 끼어 보라구요. 네 개도 끼려면 끼어 보라구요. 네 개 다섯 개 끼고도 하나도 안 낀 것처럼 할 수 있으면, 안 낀 것보다 더 할 수 있으면 끼라구요. 그래서 안 긴 것보다 일을 더 잘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는 것은 어때요? '남이 여덟 시간 자면, 나는 24시간에 한시간 플러스해서 25시간 자지' 이거 얼마나 멋져요? 여덟 시간 잘 게 뭐예요? 24시간에다 한 시간 더 플러스해서 25시간 자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마이너스 25시간 자야지요. (웃음) 그러면 그거 문제가 달라진다구요.
사탄세계보다도 하나라도 나아야 된다구요. 어느 동네에 가든지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해야 돼요. 무엇이든지 다르다 이거예요. 여기에 플러스 원(ONE)만 더하라는 게 아니예요. 그것은 마음대로 하라구요. 뭐 천을 해도 좋고…. 많을수록 더 좋아요, 많을수록, 더 좋아요, 더 좋아. 얼마든지 더 좋아요. (81-134)
통일교회 무리들, 하늘의 식구들은 누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뭉쳐야 합니다. 공산당 이상 강력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첫째는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세째는 행동하는 데 있어서 그들보다 앞서야 됩니다. 그들에게 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남한에 간첩을 내려 보내는 것처럼 우리 통일교인들도 앞으로 이북으로 가라 하면 못 가는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누구든지 그러한 곳에 가고도 남을 수 있는 결의를 가지지 않고서는 통일교회 식구가 못 됩니다. 행동적인 분야에 있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23-295)
⑤질기고 강하고 변치 않아야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사탄세계에 투입시켜 놓으면 말이예요, 나무로 말하면 무슨 나무가 되어야 돼요?「박달나무요」 박달나무는 강하지 않다구요. 「대추나무요」 대추나무?「참나무요」 그래 참나무예요, 참나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참나무예요. 대추나무라면 여자들은 잘 모르지요, 무슨 나무인지, 응? 꼬부라지지 않아야 돼요. 꼬부라지더라도 부러지지 않아야 된다구요. 안 부러져야 된다 이거예요. 질겨야 돼요. 질기고 강해야 된다구요. 그런데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질겨요?「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질겨야 된다구요. 자, 그러고 보면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질긴 사람이예요, 만만한 사람이예요?「질긴 사람입니다」 얼마나 질겨요? 「참나무」 참나무. (웃으심) 생고무같이 질기고, 참나무 같이 단단하고, 그다음엔 강철같이 탄력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뭐 강철 같이 굳은가요?「강한 사람」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든, 여름이 되든, 혹은 봄이 되든, 비가 오든, 어떻든간에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여러분 쇠가 변해요, 안 변해요? 스테인레스가 변해요, 안 변해요? 어때요? 쇠를 좋아해요, 스테인레스를 좋아해요?「스테인레스」 왜 그래요? 어째서요? 변하지 않기 때문에.(100-194)
대한민국이 주님이 오실 국가라면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전부 다 감아 쥔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부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시멘트와 자갈, 모래 그리고 철근이 필요합니다. 부두를 만드는 데 있어서 콘크리트를 강하게 하려면 먼저 철근을 엮어야 합니다. 철근은 곧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 중에서도 강한 사람입니다. 누가 꺾을래야 꺾을 수 없고 찌를래야 찌를 수 없는 강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지조와 절개를 내포하고 있는 신앙자들을 중심 삼고 줄을 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스위치만 누르면 한꺼번에 구원할 수 있는 장치를 해 놓아야 합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란다면 콘크리트를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은 무엇이 될 것이냐? 철근이 될 것이냐, 모래가 될 것이냐, 자갈이 될 것이냐? 여러분은 어느 것이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자구요. 철근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철근이 되었어요? 철근이 못 되었거든 자갈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자갈도 못 되겠거든 모래알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또 모래알도 못 되겠으면 다른 것을 위해 주는 물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어디든지 흡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32-146)
2. 사춘기의 특징과 현상
1) 사춘기는 어떠한 때냐
사춘기는 어떠한 때냐? 마음이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때입니다. 마음이 다 컸으니 그냥 그대로, 갈대 모양 참대 모양으로 길게 펼 수 없다 이겁니다. 그것보다도 마음이 몸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또 몸은 마음으로 찾아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마음과 몸이 병행해 가지고 오는데, 이것이 언제 하나되느냐 하면 사춘기에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외적인 세계의 모든것을 점령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자꾸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 반면 몸은 마음의 세계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140-20)
여러분, 사춘기 시대가 왜 좋으냐? 사춘기 시대가 좋은 때입니다. 시집장가가기 전인 처녀 총각 때가 제일 좋은 때라는 겁니다. 여기 있는 아저씨들, 그래요? 사춘기 시대가 제일 좋다는 거라구요. 아줌마들도 그랬어요?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때는 어떤 때냐 하면 말이예요, 여러분 자신이 파장을 주는 때라구요. 자기가 자꾸 먼데에 파장을 주고, 먼데 있는 것과 인연을 맺으려고 범위를 넓히는 때입니다. 알겠어요? 주고받는 길이 넓어지게 되면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 시대가 어떤 때냐 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를 주체로 해 가지고 '내가 제일이다' 하는 때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다구요.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라톤 경기장에 가 가지고 늠름하고 멋지게 일등으로 골인하는 선수를 보면, 그 사람이 아닌 자기가 일등으로 골인한 것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일등을 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운동을 보더라도 전부 다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때가 사춘기 때인 것입니다.
그때는 자기 나름대로 문학하는 사람 아닌 사람이 없고, 시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 해 가지고콧노래도 부르고 , 귓노래도 부르고, 눈노래도 부르고, 입노래도 부르고, 팔노래도 부르고 ,몸뚱이 노래도 부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돌아 다니는 거예요. 눈도 가만히 있지 않고, 귀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입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렇게 전체를 움직여 가지고 자기와 인연 맺으려고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이러한 심정은 한번밖에 없습니다. 늙어 죽도록 그러한 심정이 있으면 좋겠는데 왜 그때만 지나면 싹 가셔 버리고 일생동안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내 한 생애에 있어서 사춘기 시대와 같은 결과 시대가 있어야 되겠는데, 그 결과 시대가 어느때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그 결과 시대가 바로 영적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게 되면 사춘기와 같이 미남 미녀의 모습을 해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좋지요? 그러면 좋겠지요? 거기는 얼굴이 밉지 않고 언제나 홍조를 띠는 청소년 시절입니다. 언제나 사춘기 시대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쓸쓸한 가을 날, 감나무 가지 끝에서 나뭇잎 하나가 한들한들하고 있다가 바람이 쌩 불어서 그 잎이 덜렁 떨어지면 그것을 보고도 헤헤하고 웃는 때입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섭섭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심각하게 생각할 때는 그것은 기가 막힌 장면이 아니예요? 잎이 다 떨어지고 그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잎마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웃는다는 거예요. 인간에 비교한다면 사람들이 다 죽고 한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그 한 사람마저 쓰러지는 것을 보고 헤헤 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떨어진 잎이 바람에 굴러가면 따라가면서 히히히 웃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에 동화되고 싶은 때요, 모든 것을 주관하고 싶은 때가 사춘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에 동화되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뭐냐? 여러분의 세포를 보게 된다면,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감정적 요소가 각각 달랐던 것이 한번 그 인연을 따라 가지고 줄 수 있는 운동을 해보는 때가 사춘기라는 것입니다. 줄 뿐만이 아니라 받아 보겠다는 작용을 할 수 있는 때가 사춘기이기 때문에 사춘기가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50-268)
사춘기라는 것은 외적인 모든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열리는 때라는 거예요. (136-32)
2) 사춘기의 특징
일생에 있어서 사춘기라 하게 된다면 사춘기에는 눈도 사방으로 크게 뜨고, 마음도 사방으로 크게 부풀어 오르고, 몸도 사방으로 부풀어 오르고, 전체가 전부 다 좋을 수 있는 환경 가운데서 뒹굴면서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확장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확장되면서 우주와 더불어 관계맺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러한 때가 사춘기라는 거예요.
모든 것이 봄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봄은 확장의 계절이예요.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그냥 그대로 발휘하는 때예요. 자기가 본래 가진 요소의, 모든 힘의 전체를 발휘해 내는 때입니다. (166-209)
아담 해와는 커 가지고 어떻게 돼요?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이렇게 커 가지고 사춘기가 되는 거예요. 여기에 와서 세상만사를 자꾸 알게 되는 거예요. 자꾸 크면 자꾸 알아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어디로 자꾸 오느냐? 친척을 알고 자꾸 알아 간다는 거예요. 세계를 알고 자꾸 알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이구, 이런 것이 사랑이구나' 이러면서 자꾸 커 간다는 거지요.
그래서 여기에 와 떠억 보니, 사랑의 눈으로 보니 세계가 전부 다, 우주가 전부 다 자기 권내에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나는 요 권내를 중심 삼은 모든 요소를 대표한 자다. 나는 요 권내를 중심삼은 모든 것을 대표하는 위대한 나다' 이러게 되는 거지요, 이게. 그때는 자기가 제일입니다. 그렇지요? (130-156)
여러분, 사춘기 시절에는 말이예요, 천하의 왕자가 되는 기분인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뒤넘이쳐 가지고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이렇듯 사춘기 시대는 반박하는 시대이기에 자기를 몰라주면 얼마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청소년들의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를 중심삼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하고 관계를 맺었을 때는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해도 신난다는 것입니다.
20세 전후 되는 아가씨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예요, 괜히 '히히히히…' 하고 웃습니다. (웃음) 가을에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서 홍시가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하하하하 웃습니다. 그것은 뭔지 모르게 통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전부 다 자기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최고의 감정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라는 것은 모든 것에 접해 가지고 인연맺을 수 있는 전환점인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성과 여성을 완전히 백 퍼센트 하나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본성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그러지고 밟히고 부서져서 마치 좋은 그릇에 금이 간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33-333)
3) 사춘기의 마음과 몸의 상태
여러분, 사춘기 시절을 가만히 보게 되면, 이성에 대한 눈을 뜨게 되면 전체 생각이 그리 다 집중되지요? 모든 세포작용이 그리 다 집합되는 거라구요. (108-233)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있는 인간들이지만, 사춘기 때에는 영과 몸의 세포가 사랑에 화할 수 있는 평행선상에 서는 겁니다. 할아버지들, 그런걸 모를 거라구요. 모르고 다 늙었겠구만요. 그래서 그때에 남자 여자나 커지는 거예요. '야 우주가 이렇구나!' 한다구요. '시적이고 문학적이고 천하의 모든 게 내 사랑 분위기에서 춤을 추고 놀아나는구나, 하하하' 이런다구요. 그래 가지고 영과 육, 세포의 문, 무슨 문 할것없이 활짝 열어 놓고 '환영합니다! ' 한다구요. '사랑을 가져오시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런 사춘기 시절을 만들었더라면 인간세상에는 비참이라는 것이 없고, 타락이라는 것이 없고,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돼 버려요. (130-121)
남녀도 사춘기가 되면 완전히 청춘으로서, 젊은이로서 모든 기구가 완성됩니다. 기구라면 이상하지요. 모든 기관이 말이예요. 물건에 대해서 기구라고 하지요. 모든 기관이 백 퍼센트 완성적으로 도달하게 되면 그때는 정지 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모든 것이 포화상태로 들어간다 이거예요. 운동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화선을 거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정지하든가 더 돌든가 해요. 그렇지 않아요? 반드시 그렇다구요. 포화상태에 들어가 가지고 정지한다 이거예요.
그런 포화상태로 들어가기 전 단계가 뭐냐 하면 사춘기예요, 사춘기. 알겠어요? 그렇게 얘기하면 이해가 될 거라구요. 사춘기라는 것은 뭐냐? 내 육체 발육에 있어서 모든 세포와 모든 기관이 완성하는 때라구요. 기구로 말하면 짜부라진 기구였는데 공기를 부욱 넣어서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구요.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는 거예요. 조금만 더 들어가면 '팡' 하는 거예요. 그것을 생각할 때, 터지는 것이 뭐냐? 그게 사랑이면 얼마나 좋겠나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18세쯤 되면, 입김을 불어넣는 뭐예요? 고무풍선처럼 푸욱 해서 뺑뺑뺑뺑 하게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터지기 직전의 입장에 들어간다구요. 그래 가지고 거기서 영원히 멋지게 굴러갈 수 있다 이거예요. 들어가 가지고 이 우주와 더불어 생활하고….
여러분 아이들에게나 저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너, 대한민국을 돌아다니고 싶어,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 하고 물어 보면 '뭐 세계 일주지요' 이렇게 대답할 거라구요. 여러분들도 나를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거라구요.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구요.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예」그러면 나를 닮았게? (웃음) (110-84)
본래는 마음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성숙되었다면 자동적으로 화합되는 거예요. 몸이 느낀 것을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느낀 것을 몸이 느끼는 거예요. 공명이라는 게 있지요? 음차라는 게 있지요, 음차? 같은 주파수를 가진 것은 플러스가 울리면, 한쪽에서 진동을 일으키면 다른 쪽에서 자연히 공명작용을 하지요? 공명작용을 하는데 플러스 마이너스가 상대적 자리, 같은 주파수 자리에 들어가면 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때 이루어지느냐? 사춘기, 이렇게 성숙한 그때는…. 성숙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말이예요, 세상 이치를 아는 거예요. (118-309)
여러분들 사춘기에 들어가게 되면 말이예요, 마음도 격동하게 되고 얼굴도 격동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 가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도 사랑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105-194)
여러분, 사춘기가 된 청소년들을 보라구요. 여자를 보게 되면, 눈이 깜짝깜짝하고, 오색의 옷을 입고 궁둥이 싸매고 다니는 거예요. 궁둥이 크면 큰일나거든요. 흉이 될까봐 그저 작게 하고 나가 다니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에게 있어서 지혜와 모든 육적 작용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때가 사춘기예요. 세포 전부가 작용하는 데 백 퍼센트해요. 그때만이 백 퍼센트 활용한다는 거예요.
여자들이 예쁘장한 것, 알록달록한 것을 왜 입으려고 그래요? 그게 전부 다 신호등과 마찬가지입니다. (144-202)
4) 사춘기의 계율
① 사춘기를 잘 지내라
처녀 총각들, 사춘기에는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서로서로 만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마음이 싱숭생숭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난 여러분의 마음을 모르겠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여러분들의 마음이 진짜 그런가요? 여자만 보면 괜히 눈이 이렇게 되지요?(웃음) 안 보려고 하지만 봐진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지려고 하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렇습니다」솔직해야 돼요. 요 우리 아가씨들도 그렇지요? 남자가 있으면 남자한테 '치-피-' 하고 시치미떼면서….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예요.
남자들은 17, 8세면 벌써 꺼떡꺼떡하고 저 철길 연변 같은 데 있다가 여학생이라든가 참한 색시가 가는 걸 보게 되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 하고 생각한다구요. 여자들은 '이 다음에 시집갈 때 저런 남자 같으면 가겠다' 그런 생각 한다구요. 그런 생각밖에 없다구요. (웃음) 어디 가서 그런 생각 들면 선생님은 기분 나빠요. (웃음) 감정이 빠르다구요. 쓱 보면 벌써 알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래요」 너희들도 그렇구나! (웃음) 사춘기는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뭐 야단하는 때라구요. 그런 바람이 부는 이 천지에서 통일교회 패들은 절대 그럴 수?「없다」 없다. 요놈의 사춘기(思春期)가 '생각 사(思)' 자 사춘기(思春期)가 아니라 '죽을 사(死)' 자 사춘기(死春期) 입니다. (웃음) 알겠어요?「예」 뭐라구요?「죽을 사(死)자 사춘기」 기분 좋아요, 나빠요? 어디 요걸(思春期) 택할래요, 요걸(死春期) 택할래요? 야, 기가 막히구만. (웃음)
그러니, 그놈의 눈깔을 도려내라 그 말이라구요. (웃음) 죽으니까 쓱 이놈의 눈깔을 도려내라는 거예요. 이놈의 콧등을 비틀어 놓아라 이거예요. 이놈의 구멍을 막아 버려라, 이놈의 혀를 오그라뜨려 버려라 이거예요. 그래야 죽을 것 아니예요. 야, 이거야…. 이걸 해먹을 수 있어요? 그러면 예수님에게는 사춘기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지요. 예수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는데 무슨 사춘기? 이('생각 사' 자)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이('죽을 사'자)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어떤 사춘기를 걸어갔겠어요? 아무한테나 휘파람을 획 불고 신호하는 그런 사춘기?「아닙니다」 '생각 사' 자 사춘기를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우선 여러분들은 이 사춘기를 잘 지내야 됩니다. 살고자 하는 것은 이것 (思春期) 이요, 죽고자 하는 것은 이것 (死春期) 입니다. 죽고자 해서 이것을 벗어나면, 한 바퀴 뒤집어 놓으면, 180도 돌려놓으면 사춘기 (死春期)가 변해서 사춘기 (思春期) 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사춘기를 통해서 소망의 봄날, 새로운 산 봄날인 신랑 신부의 사춘기를 향해서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역사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봄날을 못 맞이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봄날이 오게 되면 효자 되겠다는 녀석들이 자기들만 봄날을 맞이해요? 부모를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봄입니다. 우리 같이 나가서 오늘을 즐깁시다' 이래야 효자지, '어머니, 아버지! 오늘은 봄인데 봄에는 낮잠 자는 것이 적당합니다'라고 해 놓고, 떡 낮잠 재워 놓고 자기들 끼리끼리 가서 노래부르고 춤추고 하는 녀석들이 효자예요, 불효자예요?「불효자입니다」 불효자일 뿐만 아니라 때려죽일 자식이라구요. 그렇지요?
타락이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편에 있어서는 사춘기(死春期)로 시작한 것입니다. 죽을 사(死)자 사춘기라구요. 사춘기(死春期)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에게는 봄이 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오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57-159)
오늘날 틴에이저(TEENAGER;십대) 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게 뭐예요? 이건 뭐 플러스(+)나 마이너스(-)나 어디든지….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말이예요, 막 돌아다니려 한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회에 파탄을 가져오고 자기 자체에 파탄을 가져온다 이거예요. 또, 사춘기는 변하는 때이기 때문에 누가 한마디만 해도 '에이!' 해 가지고…. 전부 다 그렇다는 거예요. 막 변할 때이기 때문에 막 돌아다니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서를 따라 상황을 바라보면서 가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지금 이것을 전부 정리해야 됩니다. 전부 다 정리해야 된다구요. 꼼짝도 안 하는 걸 다 정리해야 돼요. 자, 선악 가운데 악은 뭐냐? 파괴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런 보호작용이 성립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118-197)
사춘기 때에는 여자나 남자나 위험한 때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에 자리를 잘못 선택하면 일생을 망칠 수 있는 것이요, 잘 선택하면 일생을 흥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124-120, 50-270)
젊은 청춘시대는 한때입니다. 청춘시대는 한때다 이거예요. 레버런 문은 가장 귀한 때를 잘 넘긴 사람이라구요. 어떤 것이 플러스되느냐? 젊을 적에 놀고 싶은 대로 놀고 뭐 춤추고 이렇게 헛된 데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으며 참 것을 본질화하기 위해서 이 길을 가는 거예요. 선생님의 노정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이 길은 언제나 마찬가지예요. (129-180)
② 질서를 잘 지켜라
자, 셀프 센터 (자기 중심)가 뭣이 나쁜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는 관념이 없으면 질서 자체의 위치를 확보 못 하지만, 그게 왜 나쁘냐 하면 질서를 어긴 입장에서 행동을 하도록 주장하기 때문에 나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질서를 어기는 것이 나쁘다는 거예요. 사랑이 나쁜 것이 뭐냐? 사랑이 다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랑은 때를 따라서 전부 다 갖게 되어 있는데 질서를 어겨 가지고, 때를 어겨 가지고 한 것이 나쁘다구요.
자, 이렇게 볼 때 사탄하고 하나님하고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하면 이웃집이다 이거예요. (웃음) 싸이드 바이 싸이드(SIDE BY SIDE;나란히) 란 말이 실감이 나요?「예」 뭣이 다르냐? 질서, 순서가 다를 뿐이라구요.
오늘날 사탄은 이러한 작용을 세계로 확대시킨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부모를 반대하고.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은, 이 법도에 있어서 이것은 질서를 파탄시키기 때문에 악이라구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파괴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파괴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파괴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파괴되니 이것은 악이 아닐 수 없다구요.
사춘기 때는 힘을 내 가지고 영화에서 나오는 그 스릴 있는 장면을 실천해 보고 싶기도 하다 이거예요.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 나쁘냐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이래요. 그러한 방종이 벌어져 가지고 환경을 파탄시켜 버리는 놀음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의 지성이 다 밝아져 가지고 사회의 체험과 환경적인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그때에는 되어도 지금은 안 된다 이거예요.
자, 아이들 앞에 왜 칼을 주지 말라고 그래요? 막 휘두른다 이거예요. 벨 줄은 안다구요. 자르는 것은 아니까 막 자른다 이거예요. 그래서 어머니 손도 잘라 버리게 된다구요. 막 자르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질서를 파괴하니 주지 말라 이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우리가 시간을 정해서 '8시에 와라' 이렇게 해서 8시에 오기로 딱 약속을 했는데 8시 10분에 왔다 할 때, '8시 10분인데 왜 그래?' 하는 것은 안 된다구요. 8시 1초에 왔으면 그거 잘됐어요, 잘못됐어요? 「잘못됐습니다」 그거 얼마나…. 10분쯤에도 오는데 1초야 용서해 줘야지…. (웃음) 거 안 돼요. 이 세계에서 안 통한다 이거예요. 8시가 가장 질서 있게 딱 되어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이거예요.
만약에 8시인데 6시에 온 사람, 7시에 온 사람, 7시 59분 59초에 온 사람과 어떠한 차이가 있느냐 이거예요. 질서로 볼 때 이건 마찬가지예요. 이(7시 59분 59초에 온 사람) 사람이 참 시간을 절약한 것이고, 참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구요.
자, 여기 이 사람이 '나는 시간을 지키는데 제일이다' 그럴 때는 둘 다 좋다는 거예요. 이거 불평할 수 없다구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질서와 순서라는 법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질서라는 것이 필요한 거예요. 우주는 그렇게 유지해요. 질서와 법에 따라서 운행되어 나온다구요. 우주도 그렇다구요. 보라구요. 달이 말하기를 '아이구, 나 지구를 이만큼 돌았으니 싫증나는데 태양을 한번 돌아 보겠소! ' 그러면 달 자체는 옥살박살 되어 없어져요. 자체의 가치가 없어진다구요.
또 지구가 말하기를 '아이구 나 태양계, 태양을 중심삼고 도는 것이 싫증나니 태양아, 네가 나를 중심삼고 한번 돌아 봐라'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요?(웃음) 어떻게 되나요? 이 우주가 파괴된다구요. 그 외의 위성들이 다 혼란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우주가 파탄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117-184)
천하의 어느누구든지, 더구나 사춘기 시절의 청소년들은 전부 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최고의 자유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세상의 뭐 법도적인 제도를 누가 만들었어? 적당히 필요한 그 녀석들이 다 만들었지, 내가 안 만들었다. 나는 이 법도를 무시한다' 하며 천하를 안 무서워하는 거예요. 전부 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 젊은 사춘기 시대의 생활이요, 용솟음치는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156-84)
③ 첫사랑을 하나님 앞에
㉠ '따먹지 말라'의 뜻
하나님이 말하기를, 신이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성경을 중심삼고 보면, '따먹지 말라' 했습니다. 왜 '따먹지 말라' 했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처음부터 어느때까지냐, 아니면 영원히냐? 「어느때까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따먹지 말라'는 그 말이 과정적인 내용을 중심삼은 사랑의 경고라면 모르지만…. 그것은 사춘기라는 성장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말했지, 영원히 따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예요. 그럼 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문제예요? 그것은 인간과 하늘을 파탄시킬 수 있는 그런 동기의 내용이 있기 때문에 문제시했지, 그렇지 않으면 문제시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원리에서 말하는 타락이라는 말, 오늘날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에게 있어서 타락이라는 말은 위대한 복음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위대한 복음입니다. 고통시대에 있어서 타락이라는 경고는 지극히 위대한 복음이다 이거예요.
그래 선악과, 이놈의 선악과가 열매라면 이것은 전부 다 뭐뭐…. 그러니 열매일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열매예요? 열매를 중심삼고 억천만세의 인류가 신음해요? 이렇게 파탄의 자리요 싸우는 투쟁의 노정에서 신음하는 현상을 이룰 수 있는 열매를 하나님이 왜 만들었어요? 이것은 지금 레버런 문이 말한 사랑의 내용을 중심삼은 열매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이론적인 길에 가까운 겁니다. (128-87)
여러분은 지금 한창 피어나려고 하는 꽃봉오리가 좋아요, 활짝 핀 꽃이 좋아요? 「봉오리가 좋습니다」선생님은 활짝 핀 꽃이 좋은데,「봉오리가 좋습니다」그건 여러분이 봉오리니까 봉오리가 좋다고 하지. 피어 나려고 하는 꽃이 좋아요, 활짝 핀 꽃이 좋아요? 「피어나려고 하는 꽃이 좋습니다」여러분이 바로 피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이지요? 「예」
피어나는 데 있어서는 네 마음대로 활짝 피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의 힘에 의해서 피지 말고 네 마음대로 활짝 피라는 거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자연스럽게 자라 가지고 자연스럽게 사춘기를 지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활짝 피어서 사랑하고 싶은 남편을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피지도 못한 채 찌그러져서는 안 됩니다. 잎이 떨어지고 가루가 떨어져서 피는 꽃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도 활짝 피어야 됩니다.
아직 피지도 않은 봉오리인데 수단 방법을 중심삼고 편지하고 연애질이나 하는 그런 못된 녀석들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연스럽게 활짝 피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게 될 때 '야! 순전히 본성적으로 피었구나. 향기를 맡아 보니 숫것이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희망이 많다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께서 숫것을 원하시겠어요, 찌그러진 것을 원하시겠어요? 그럼 여러분은 어때요? 숫것을 원해요, 찌그러진 것을 원해요? 「숫것 요」 타락한 여러분도 숫것을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더 원할 게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순정을 가지고 활짝 피어서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슬픔의 고비에 걸리지 말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47-88)
㉡ 첫사랑은 귀하다
첫사랑은 몽땅 점령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거예요. 원래 첫사랑은 하나님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해와가 누구하고 사랑했습니까? 「천사장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좋아 하면서 사랑해야 되는데, 상을 찡그리고 울면서 사랑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타락할 때 해와가 '아이구 좋아라! 선악과 따먹으니 참 맛있다, 맛있어' 했겠습니까? 해와가 천사장한테 겁탈을 당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싫어하면서 천사장의 유혹에 끌려들어 갔다는 겁니다. 모든 세포가 기뻐 가지고 꽃이 상춘을 바라듯 사랑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포가 사그라지고 심정이 사그라진 자리에서 찡그리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첫사랑이 귀하다고 하던가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여러분은 어때요? 「귀합니다」 여러분이 나보다 낫구만. 그래, 대답한 녀석은 첫사랑을 한 경험이 있는 모양이지?(웃음) 그런 말을 할 때는 가만히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 들으라고 한마디 해본 거예요. 만약 여기 있는 처녀들 가운데서 그런 대답을 했다면 기합을 주려고 했는데, 도깨비 같은 남자가 대답해서 내가 참는 거예요. 하여튼 첫사랑이 좋다고 하는 말은 들었을 것입니다.
㉢ 첫사랑을 하나님 앞에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20대에 가까운 청소년으로서 더럽혀지지 않고 물들지 않은 거룩한 순정을 고이 꽁꽁 싸 가지고 어디에 갖다 놓을 것이냐? 하늘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그 제단 앞에 놓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그다음에는 자기와 같은 순정을 가진 그런 사나이와 혹은 아낙 네가 만나서 하나님이 같이 묶어질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이건….
선생님 마음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어요.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이제 여러분들이 오래지 않아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내고 나서 대한민국의 실전무대를 책임져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실무를 책임져야 할 청소년들이 아니겠느냐. (64-84)
㉣ 순종(純種)이 되라
자기의 몸은 귀한 것입니다. 이것을 더럽히지 말고 효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봉사하는 그 책임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그 몸을 가지고 사탄의 사망권으로부터 탈출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목적이며 또 그것이 기준인 것입니다. 창조원리로서 말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5-202)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순종(純種)이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못 되었습니다」 순종이 못 되었으니까 순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순종(順從)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을 안 들으면 패서라도 순종하는 법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모든 종교의 중심이 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제 순종의 씨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씨를 쪼개면 그 씨의 중심은 뭐예요? 여러분, 씨의 중심이 뭐예요? 「배젖입니다」 배젖의 중심이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의 골통을 쪼개보면 그 중심이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겁니다. 씨의 중심, 즉 뿌리가 될 수 있는 동기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내 비록 보기에는 초라하고 육신은 5, 6척도 못 되지만, 이 사나이의 붉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친다' 그래 봤어요? (33-332)
지상이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몸을 정히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순종하는 깨끗한 마음, 깨끗한 몸이 깨끗한 어버이에 대하여 참된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15-201)
㉤ 첫사랑 갖고 영계까지
첫사랑의 마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129-149)
저나라에서 첫사랑과 더불어 간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간다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129-135)
이 땅 위에 사는 사람으로서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은 첫사랑을 중심삼고 살고, 첫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첫사랑 때문에 죽고 살겠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을 잘해야 돼요. (L28-85)
3. 성화(成和)의 길
1) 성화(成和)의 의미
여러분은 성화(成和)라는 말의 뜻을 알아요? 성화라는 이름을 왜 젊은이들에게 붙여 주었느냐? 여러분 가운데 늙은 사람과 하나되기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늙은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늙은이끼리 하나되면 좋겠어요? 또 아주머니들끼리 하나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타령이나 한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도저히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끓는 젊은이, 순결의 피가 끓어 올라 하나님의 감정에 동화될 수 있는 피를 가진 젊은 청소년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성화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입니다.
성(成) 은 창조이상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즉, 우주 전체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래 완성의 기준을 세우는 시기는 인간시조가 타락했던 연령인 17, 18세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화 20대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미래의 완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년 시기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소생 장성 완성 단계를 알고 있습니다. 장성을 이루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학의 '화(化)'자 하고 성화의 '화(和)'자 하고 뭐가 다릅니까? 화학의 '화(化)' 자는 자기의 본질적인 성격과 형태까지도 변해 버리는 것이고, 성화의 '화(和)'자는 주체적인 관이 뚜렷한 절대적 주체로서 상대적 여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형식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래야 성장하는 것이고 한 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화(成和)의 뜻이 뭐냐 하면 이루어서 화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화합한다는 것입니다. 화합했기 때문에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누룩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가 있지만 아이들이 웃음동이가 되어야만 그 집안에 웃음꽃이 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화의 젊은이들이 지닌 바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7-80, 21-83, 25-107)
2)'나는 하늘의 자녀다' 하는 자각을 하라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진정으로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 저희의 심정과 인연맺고 아버지의 심장의 동맥이 저희의 심장의 동맥과 인연되는 일체적인 관계를 이루어, 아버지가 가시는 길이 저희의 길이요, 아버지의 사정이 저희의 사정이요, 아버지의 뜻이 저희의 뜻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27- 270)
타락한 아담 해와는 몰랐지만 우리는 사탄의 모든 사실을 다 해명하여 다시는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심정적인 기준을 갖추어 역사적인 사탄까지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호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내 아들아 딸아, 이제는 네 때요 네 날이다. 이제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고 축복을 받는 그 날까지 나아가야만 비로소 참 바라던 그 곳, 참 가고 싶은 그 곳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10-212)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민족이다', '나는 하늘의 백성이다', '나는 하늘의 자녀다' 하는 자각을 가지고 살게 되면 반드시 싸움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3-41)
여러분들이 자신있게 온 하늘땅 앞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만우주에 선포해야 됩니다. 그 아들된 것을 부정할 무엇이 있어요? (137-304)
참부모의 자녀라는 인식을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의 것 이상 확실하게끔 증거해야 됩니다. 싫더라도 자꾸 부르라는 거예요. 천번 만번 '참부모, 참부모' 하면서 증거하라는 거예요. 자꾸 증거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를 잊을 정도로까지 '참부모, 참부모' 하라는 거예요. 그러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그 의식구조를 변경시킬 수 없어요. 입 다물고 전부 다 가만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여리고성에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가 가지고 점령하게 될 때는 말이예요, 나발 불고 북을 치면서 함성을 지르고 전부 다 '하나님 백성이 왔다. 너희들은 굴복되는 것이다! '라고 외치다 보니 무너졌지요?「예」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내 것이다. 우리는 참부모 아들이다. 사랑의 소유 결정권이 문 앞에 왔으니 이것을 부정하면 손해배상을 몇 배로 해야 돼!'라고 증거하라는 거예요. 졸장부 노릇하지 말라는 거예요. (237-304)
강아지 새끼로 났으면 강아지로 살아야 된다 이거예요. 강아지로만 살아야 돼요. 돼지 새끼로 났으면 돼지로 살아야 되고, 우리 무니는 무니로 태어났으니 무니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130- 266)
여러분들은 호랑이 새끼가 되어야지 고양이 새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래 호랑이 새끼 될래요?「예」 그러면 호랑이 소리 한번 내 보세요? 「어흐흥」 작더라도 호랑이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옹하고 고양이 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고양이 새끼가 아니라 호랑이 새끼가 되어 가지고 삼천리 반도에 쭈그리고 있는 고양이 새끼들을 다 쓸어 버려야 됩니다. (37-88)
3) 끝날엔 성화가 자각할 때
끝날은 무얼 두고 말하느냐 하면, 일년 중 가을과 같은 때를 말합니다.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잎이 떨어지는 데는 어디서부터 떨어지느냐? 줄기에 있는 잎부터 떨어진다구요. 가지에 있는 잎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구요. 옛날, 구시대의 것이 먼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권력이 다 떨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으로 보게 되면, 우리 30대가 세계를 요리할 때에 들어왔다 이겁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지나면 10대 20대가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때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대학가가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70, 80대가 되어야 나라를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것이 60대로, 50대로, 40대로, 30대로 점점 내려오고 있습니다. 20대를 지나 앞으로 그것이 10대로 넘어오게 되면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대학생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앞으로 고등학생 들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요즈음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구세대라고 해서 축에 들지도 못하지요? 대학의 교수들 중에서도 나이 많은 교수들을 구세대 모델 케이스로 취급한다는 거라구요. 30대라야 학생들이 흥미진진해 한다는 거예요. 이상하지요?
그것이 뭐냐 하면 잎이 떨어지는 거라구요. 인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오래된 사람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옛날에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말씀이라 하게 되면 동네 전체가 왔다갔다 했는데 이제는 동네 개도 할아버지 말에는 꿈쩍도 안 한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시대가 지나가고, 아버지 어머니 시대가 지나가고, 형님 누나 시대도 지나가고, 이제는 나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어떤 때냐? 지금은 청춘시대입니다. 젊은 세대예요. 대한민국에서 지금 제일 골치 아픈 것이 뭐냐 하면 여당 야당이 골칫거리가 아니라 대학가입니다. 조금 더 나가면 고등학교일 것입니다. 마지막 판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는 끝날이 가까워졌다는 거예요.
타락의 동기가 뭐냐하면, 개인주의가 발로되는 것이 타락의 출발점입니다. 개인주의의 발로가 타락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세계고 무엇이고 없다 이거예요. 그다음에 자유분방의 터전을 지니게 된 것이 타락의 요인입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게 뭐야? 법이고 무엇이고 없으면 좋겠는데 법이 왜 필요해? 제약이 왜 필요해? 우리 마음대로 하면 되지' 하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예요? 그러면 안 된다구요.
자유스러우면 자유스러울수록 그 세계는 질서와 규약이 지켜져야 되는 것입니다. 정밀한 기계면 기계일수록 종횡으로 원리원칙에 의한 질서대로 법칙적인 궤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에 따르게 될 때 자유활동의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과학문명과 사회제도를 중심삼고 볼 때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구조도 자유로운 형태를 요하고 있습니다. 인간만 자유를 요하고 사회제도는 자유를 요하지 않느냐? 사회제도는 인간과 상응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제도가 조직과 체계의 규제 밑에서 형성되었으면 인간은 그 체계화된 제도에 응하고 거기에 대비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도리어 보장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방종적인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는 데에는 반드시 길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사상은 무방향적이지요.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방향이 있겠어요? 그러나 방향 없는 마음이 어디 있어요? 그런 사고방식은 멸망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런 퇴폐적인 사상은 멸살해 버려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어렵고 고차적인 것일수록 가는 길이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잡한 게 좋아요, 단순한 게 좋아요? 복잡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체 가운데서 눈을 두고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하다는 거라구요. 눈 세포도 각각은 전부 다 복잡합니다. 전부 다 복잡하지만 하나의 생명체로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조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눈이고 뭣이고 다 싫고 손이 제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후 좌우 상하 관계에 있어서 위치와 계급에 따라 반드시 각각 제약된 법도와 조건에 순응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통할 길이 없는 거예요. (49- 190)
4) 성화의 활동자세
선생님은 청소년기에 소원의 표준과 생애의 목표를 세우고 결심하였어요. 선생님은 어느덧 청년기와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슬픈 것은 청소년 시대에 완성하여 아버지를 부르지 못한 것입니다. 즉,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와 같은 시절에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이 슬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정통을 인계받은 자로서 직행해야 합니다. 뜻을 모르는 학생 들과 스승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옳지 못한 것은 굴복시켜야 합니다. 힘에 대항하여 힘 아닌 것으로 굴복시키려면 몇천 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도 수습하여 정복할 수 있는 충효의 절개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하고 확고부동한 행보(行步)로써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원리는 교통 순경이요, 원리의 목표는 선생님의 생애입니다, 성심성의껏 목표를 향해 가면 표시등은 나타납니다. 여러분 각자는 자기의 처해진 환경에서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의 씨를 뿌리고 가꿔야 합니다. (21- 83)
여러분 마음의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이 있다면, 우리 소년소녀들이 이것을 빼앗아야 합니다. 한 사람으로 부족하면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이라도 달라붙어서 빼앗아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중고등학생이 얼마나 됩니까? 몇백만 명 가량 됩니까? 떼거리들 많더구만. 한 백만 명이 개미떼거리같이 달라붙어야 빼앗아 올 수 있는 좋은 것이 있으면, 여러분이 백만 명을 동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사람들을 동원해 가지고 빼앗아 올 수 있는 운동을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어요. 여러분을 동원시켜야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동원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은 영영 여러분들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내가 몇 년 동안에 백만 명을 동원시키겠다' 하고 자진해서 나선다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 있는 모든 청소년, 중고등 학생들을 다 밀어 제쳐놓고 우리나라 학생이 차지한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 중고등학생 챔피언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래야 할 기분이 나지 않겠어요? 그 기분을 몰라서 그렇지, 여러분이 알면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할래, 안 할래?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한테는 아주 자극적인 말로 '할래, 안 할래? ' 해야 됩니다. (웃음) 지금 여러분들 중에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은 '우리 선생님은 점잖고 훌륭한 분인 줄 알았는데 이럴 줄 몰랐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점잖게 해서는 신이 안 납니다. 큰소리로 이렇게 '할래, 안 할래?' 해야 신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것도 잘 알아야 여러분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안 해보고 싶어요? 「해보고 싶습니다」 (33-277)
자, 여기에 만약 학생이 있으면 공부하는 학생들도 눈물을 많이 흘려야 돼요. 오늘날 중고등학생으로부터 대학생들이 어떻게 돼 가는가를 볼 때 여러분들이 편안히 잠잘 수 있느냐 말이예요. 내 손으로, 내 이 몸뚱이로서 저 대학이면 대학, 저 고등학교면 고등학교의 젊은이들을, 저 세계를 구하고 말 것이다 해야 돼요. 내 힘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눈물과 더불어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다짐하며 나서는 움직임이 얼마든지 있어야 된다구요. (94- 323)
내가 여러분에게 '고생해라' 할 때, '아이구 선생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까지 6년 했으면 그만이지 또 하라구요? 난 못해요' 하겠지만, 보라구요. 효자나 충신은 죽을 때까지, 죽음과 같이하지 않고는 진짜 충신은 없는 것입니다. 진짜 충신은 죽기 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 아무리 고생을 했더라도 오늘 한마디 후회하는 말을 하게 되면 충신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충신이 됐더라도 이시간에 불충하게 되면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죽음의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충효의 도리를 하고 가야만 충효를 다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길에 있어서는 충과 효는 그 과정이 같은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이고,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아들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64- 75)
5) 성화꾼이 되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걸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복잡한 지상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세워 가지고 소망하시는 세계를 이루려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젊은 사람들은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15-81)
선생님도 나이 많은 축에 들어가니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지만 늙은 축에는 안 들어갑니다, 선생님은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생들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너무 기분 좋아하면 곤란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중고등학생을 성화학생이라고 합니다. '성화', 성화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성화(成和)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야단 났을 때나 다급할 때는 뭐라고 합니까? 그것도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를 한글로 쓰면 똑같습니다. 발음도 같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성화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네방네의 성화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전도할 때에도 편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아이구 그까짓 공부가 문제냐? 내가 많은 친구들을 이끌고 가서 믿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런 사람 봤어요? 그저 '듣기만 해보라'고 사정을 해야 되지요. 안 되면 멱살이라도 한번 잡아 보라는 거예요. 나쁜 의미로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말입니다. (25- 102)
선생님은 성화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성화꾼입니다. 또 마을에 가면 마을의 성화꾼입니다. 사탄세계의 성화꾼인 동시에 하나님세계의 성화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점에서 출발해서 한 점에서 열매맺는다는 것입니다. 한국말의 의미는 참 묘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예수꾼, 절에 다니는 사람은 절꾼, 여러분은 무슨 꾼이예요? 성화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성화꾼이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식에게 '공부 잘해라. 말 잘 들어라.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는데 그것이 성화꾼입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이 녀석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열등생이 되니 공부 잘해라 잘해라' 이것도 성화이긴 성화입니다. 또, 자식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부모가 사랑의 마음으로 알뜰히 무엇을 해준 것을 다 들고 나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불쌍하다고 나눠 줍니다. 이것도 성화입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십 년이나 걸려서 무엇을 하나 정성들여 마련해서 주었는데, 이것도 두어 시간 채 못 돼 전부 다 다른 애들에게 나눠 줍니다. 그것도 성화지요?
성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망하는 것이요, 하나는 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복을 주는 것이요, 하나는 복을 퍼내는 것입니다. 하나는 쌓아 올리는 것이요, 하나는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25- 103)
이제부터 성화학생 여러분은 내 육신에서부터 원수에게 복수하고, 내 육신에서부터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릴 수 있는 기수가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싸워 나오신 신념 이상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뜻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47-80)
나 자신이 외로우면 주변의 학생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학교를 함락하고 '나는 승리했다'고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거울 앞에서 자기의 얼굴을 바라 볼 때마다 '아무개야, 너는 뜻 앞에 출발한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있느냐'고 물어 봐야 합니다.
'성화'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고, 버틸 수 없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 도와주소서' 해야 자주성 있는 사람이 됩니다.
제4절 학교와 공부
1. 학교와 선생님
1) 학교는 뭐냐
교회는 하늘을 위한 것이요, 학교는 후손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후대를 위해서 남기는 것입니다. 개인을 희생시켜 더 큰 후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은 망하더라도 후대에 더 큰 나라와 세계가 찾아올 것을 알고 그것들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들인 것입니다. (96-33)
2) 학교 다니는 이유
여러분들은 다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국민학교면 국민학교를 출발한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국민학교 학생으로서 매일매일 일과를 대하는 상대적 관념을 통해 가지고,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과정을 거쳐서 국민학교 졸업이라는 한 과정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민학교를 졸업한 그 목적 위에, 졸업했다는 그 목적 기준 앞에 새로운 동기를 가입시켜 가지고 새로운 세계와 상대관계를 맺어서 새로운 목적의 세계로 나가는 것이 중학교라든가 고등학교라든가 대학교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66-242)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 왜 다녀요? 학교에 다니는 것은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야 돼요. 그거 달라야 된다구요.(117-95)
아이는 젖을 먹고 좋아하면서 얼굴도 알아보게 되고 '아이구, 저 사람이 제일 좋다. 저분이 나에게 젖을 먹여 주는 사람이다' 이러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젖만 먹이면 되겠어요? 진짜 사랑하는 부모라면 훈련도 시키고, 운동도 시키고, 싫다는 것도 시켜야지요. 커 가면 커 갈수록 세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부모, 세계적인 모든 힘든 훈련을 시켜 가지고 세계가 당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려는 부모, 그런 부모가 참된 부모다 이거예요.
그 말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보내 가지고 훈련을 시켜 가지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계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자 이거예요. (95- 87)
3) 교육과 선(善)
학교 공부시간 중에 도덕시간이 있지요? 이 도덕을 요즘에는 뭐라고 해요? 「바른생활입니다」바른생활이라고 해요? 이 바른생활 시간에 선생님이 악한 사람은 악으로 갚고, 선한 사람은 선으로 갚으라고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을 대할 때는 참으라고 합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자신이 없거든 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악으로부터 격리되라고 합니다. 분립되라는 것입니다. (39-308)
오늘날 대한민국에 학교가 많고, 중고등학교, 무슨 교육기관이 많지만 그거 정의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한국 사람이 4천만, 지금에 와서는 6천만이라고 말을 하는데, 5천만 이상 되는 한국 백성들이 선과 악이라는 말은 알지만 도대체 그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냐? 제일 기준이 무엇이냐?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말도 그래요. 자기하고 조금만 달라도 나쁜 것이라고 한다구요. '나는 이런데 저놈은 저러니 아주 나쁜 녀석이야' 말을 이렇게 하듯이 전부가 그렇다는 거예요. 행동에 있어서도 '저 나쁜 녀석' 그럽니다. 기준이 없어요. 변하는 것을 기준하는 것은 파괴를 동반하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 그렇잖아요? 모든 측정기들, 미터 (METER)면 미터, 저울이면 저울의 그 기준이 변하는 게 아니라구요. 그게 변하지 않는 것이 단위가 되는 거예요. 절대 변하지 않는 단위가 무엇을 중심삼고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136- 110)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든지간에 이 세상에 태어나면 한 시대를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 인류 생활은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한 것은 하기가 쉽다 이거예요. 악한 것은 까딱 잘못하면 걸리기 쉽지만, 선한 것은 어렵다 이거예요. 쉬운 것은 나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제재(制裁)하고, 이것을 방어하기 위한 법은 많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묻게 될 때, '너, 좋은 길을 가겠느냐, 나쁜 길을 가겠느냐? 하면, 전부가 '나는 좋은 길을 가겠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어릴 적부터 그렇게 말을 한다구요. 아이들 때부터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어디를 가면 갈수록 일생 동안 전부 다 좋은 길을 가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거예요. 나무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어려운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한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98- 232)
오늘날 우리는 역사 도상에 있어서 두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 할 때 반드시 반대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래의 선을 세우기 위한 사회가 아니요, 선을 반대하던 역사적인 사회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은 하기가 어렵지만 악한 일은 하기가 쉽습니다. 열 가지의 악보다도 한 가지의 선을 행하기가 더 힘든 사회적인 실정 가운데 내 몸이 잠겨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악이 기반을 닦고, 악의 사조가 다시 역사적인 배경으로부터 현실적인 무대를 거쳐 미래에 우리가 추구해 나갈 세계를 정복하려는 사회적인 사조를 앞에 놓고 오늘날 우리들이 이것을 관망하는 입장이나 도피하는 입장에 서면 선한 나라를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선한 개체를 완성할 수 없는 것이요, 선한 개체를 완성할 수 없다면 선한 가정을 완성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요, 선한 가정이 없으면 선한 국가, 선한 세계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54- 12)
4) 학교 과정
국민학교 학생에게는 국민학교의 학과가 구속줄입니다. 그렇지요? 학과가 자기를 구속하는 파워줄이예요. 자기를 구속하는 줄이라구요. 대학에 가면 대학의 학과가 자기를 구속하는 쇠고랑과 마찬가지예요. 그걸 풀어야 돼요. 그렇지요? (L26-42)
무얼 하나 하려면 7년 이상 넘어가야 돼요. 요즘의 국민학교도 6년이지요? 중고등학교도 6년이지요?「예」 그거 누가 6년으로 만들었어요? 6수를 지나지 않고는 한 단계를 못 넘어가는 거예요. 6수는 3대상의 대상수예요. 소생 장성 완성을 갈라놓은 거라구요. 이상수는 7수입니다. 요것이 연결되게 될 때는 7수 중심이예요. 7수는 완성수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L8L-90)
어떤 국민학교 학생이 '나는 국민학교 필요 없어' 그럴 수 있어요? 그 국민학교가 싫다면 절대 중학교에 갈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요?「예」 중학교를 졸업 못 하고는 고등학교에 절대 못 간다는 겁니다. 그거 뭐 그래요? 왜 못가요?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못가요? 갈 힘이 없어요? 미남이 아니예요? 가진 것이 없어요? 옷을 못 입었어요? 「아니요」 싫더라도 그 과정을 거쳐야 된다구요.
배움의 단계에 있어서 우리가 유치원에서 배우고, 국민학교에서 배우고, 중고등학교에서 배우고 대학으로 올라가 쭉 배워서 학박사 자리까지 나간다고 볼 때, 그러면 탑 프로세스(TOP PROCESS;높은 과정)까지 나가는 데 있어서 로우 프로세스(LOW PROCESS;낮은 과정)는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국민학교에서 배운 것이 왜 필요하냐? 국민학교에서 기초를 배우는 거예요. 그거 다 필요한 거예요. 그것을 다 배웠다는 것을, 그것을 자연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 때문에 배웠다는 것을 잊어버렸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에는 그것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구요.
자, 유치원에 가서 배우는 것은 뭐냐? 국민학교에 가서 편리하게, 국민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을 쉽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하러 유치원에 가는 것이다 이거예요. 국민학교는 왜 가는 거냐? 국민학교는 중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게 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중학교는 왜 가는 거냐? 고등학교에 가서 지장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등학교는 왜 가나요? 대학은 왜? 박사 석사 코스에 지장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논리라구요. 거 맞는 거예요?「예」 (122-176)
보라구요. 유치원보다 국민학교가 배우기가 더 비참하고 국민학교보다 중학교가 더 비참하고 더 힘들다 그 말이라구요. 또 중학교보다 고등학교가 더 비참하고 고등학교보다도 석사코스가 더 비참해요. 석사 그다음에 박사 코스가 더 비참해요. 박사코스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보면 사회가 더 비참하다구요. 이런 것이 연속이라구요. 점점 어려워지는 거예요, 점점.
여러분, 통일교회 레버런 문한테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 안 배우고 있어요?(웃음) 이런 강의는 대학에서도 안 한다구요. 이런 강의는 말이예요, 가만히 들어 보면 근본적인 교육이다 이거예요. 그런 게 느껴져요? 「예」 여러분들은 말할 수 없는…. 여러분들이 사회에 나가게 되면 사회가 다 눈 아래 보이고, 잘났다는 누가 얘기해도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참 똑똑하다구요. 그 뭣을 갖고 있다 이거예요. 이게 정평이예요.
보라구요. 여러분이 유치원에 다닐 때는 고운 옷 입고, 국민학교 다녀도 고운 옷 입고, 중학교 다녀도 고운 옷 입고 다니지만, 고등학교 가고 석사 코스 때는 고운 옷이 뭐예요? 머리를 깎을 시간이 없고 수염 깎을 사이도 없어요. 거 얼마나 비참해요. 보게 된다면 옛날 유치원 때가 그립고, 국민학교 때가 그립다구요. 그렇다고 그 놀음하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117-40)
5) 좋은 선생님이란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선생이 교실에서 앉는 것부터 말하는 것, 행동 하는 것, 전부 다 규제를 하고 '이건 하면 안돼' 하는 것이 맨 처음엔 많지요. 전부 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대학을 가고 학박사가 되더라도, 자기가 틀을 잡고 어디에 가서 앉더라도 거기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을 그때부터 준비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전부가 하지 말라는 것뿐이예요.
그저 맘대로 뛰어 놀고 싶고, 담도 넘어다니고 싶고, 문도 차고 다니고 싶은데, 빠른 것을 원하는데 '아이고, 그래서는 안돼' 하며 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권진이도 그래요, 우리 애기 권진이도. 이 녀석,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가 '너 여기에 있는 거야. 나가서 장난치면 안돼' 하면서 주의를 줘요. 그런데도 어머니 아버지가 없게 되면 새벽이라도 나가 뛰려고 합니다. 그러니 '하지 말라, 하지말라' 하는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교재를 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낚시질을 하는 데 있어서 좋고 달콤한 미끼를 쓰지 않습니다. 규제하는 거예요.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요. 타락한 세상의 동서사방의 전부가 까딱했다가는 더러움을 탈 것인데 하라고 하겠어요? 하는 데는 '요렇게 요것만 해라' 이거예요. 높이 뛰는 게 좋다는 거예요. '높이 뛰어라. 높이 뛰어라' 하는 거예요. 모가지가 걸릴 수 있도록 말이예요. 그런 놀음을 시켜 왔다는 것입니다. (136-209)
학교 가면 어떤 선생님이 좋아요? '야, 야! 오늘 시간이 되었는데, 너희들 젊은 놈들이니 전부 다 공부하기 싫지? 공부하는 대신 꽃밭에 나가 놀자' 이런 선생이 좋아요, '이놈의 자식아, 봄철이 뭐야? 공부해라. 공부해!' 이런 선생이 좋아요? 어떤 선생이 좋은 선생이예요? 「두번째 선생님요」 그래. (131-117)
학교에 가게 되면 말이예요, 학교에 가게 되면, 눈을 딱 부릅뜨고 분필을 들고 엄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예요, 그저 노는 식으로 편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예요? 어떤 선생님이 참된 선생님이예요? 「엄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요」 알긴 아는구만.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무서운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예요. 알겠어요? 욕을 하고 뭐라고 하더라도 순종하고 그 욕을 모두 소화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동참하는 거예요. 동참되어 가지고 그 선생의 직계 제자가 된다 이거예요. 그게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그거 그래요?「예」 그게 원칙이예요. (161-37, 125-82)
스승은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주어야 됩니다, 큰 사랑을 주려고 하는 그 앞에 제자들은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즘 학생들 합격자예요, 불합격자예요? 「불합격자요」 불합격자도 위험한 불합격자라구요. 용서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니 모든 우주는 절대 복종할 지어다 (164-50)
오늘날 학교문제가 시급한 사회문제로 미국이나 일본이나 전세계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승은 부모 대신 사랑을 가지고 그 제자들을 교육해야 됩니다. (127- 17)
2. 학생의 본분
1) 학생의 위치와 책임
학교에 가게 되면 학교에는 교장 선생이 있고, 선생이 있고, 학생이 있어서 주체 대상 환경이 벌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반대하면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는 학생이 공부보다도 다른 생각을 갖고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추방되는 것입니다, (118-19)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소속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들어가면 부모를 모시는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혹은 어머니면 어머니, 아버지면 아버지의 위치를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맡겨진 바의 책임을 우리는 다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부모의 아들로서 장래를 바라보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에게는 학생으로서의 위치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위치가 없다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치가 없고, 그러한 관계와 인연 가운데에서 어떠한 책임을 갖지 못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 모든 위치가 뚜렷하고 그 위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후 좌우 상하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질서 있게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될 때, 이 사람은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위치가 결정되어 있고, 그 환경이 구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관계되고 인연되어진 모든 주위의 환경이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동행하지 못하고 반대될 수 있는 엇갈린 환경이 될 때에는,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어려움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행로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한 사회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41-130)
오늘날 젊은 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갑니다. 그런데 가방을 들고 어떤 목적으로 가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나는 사회로 나간다, 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국가의 중대한 책임을 지고 나간다, 세계가 있으니 세계를 이끌기 위해 나간다 하고 나가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늘이 있다면 엑스(X)가 가로놓입니다. 세상 만사가 이와 같은 곡절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5-178)
한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적관이 확실해야 돼요. 목적관이 확실 해야 됩니다. 가는 도중에 지그재그로 올라갔다내려갔다하게 되면 시간적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때에 대한 소모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할 때, 국민학교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가지고 학사, 박사 코스를 쭉 거쳐 나가는데 내가 무엇을 전공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자기가 처해 있는 때, 만약 국민학교면 국민학교 시대에 보다 노력하게 된다면 중학교 시대를 맞을 수 있는 자리에도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석사 코스까지 가기 위해서는 한 18년 내지 19년, 박사 코스까지는 20년 내지 21년을 공부해 나가야 되는데, 그 공부하는 연한은 정해져 있지만 시간적인 면에서 이것을 어떻게 압축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는 여기에 배가의 노력의 투입이 필요한 겁니다.
그 기간을 18년으로 줄이느냐, 10년으로 줄이느냐 하는 것이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때에 대한 한계가 그것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때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때에 대한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거 그렇지요?
일정한 어떤 목적을 중심삼고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일정한 때가 있는데 그 일정한 때에 자기의 일정한 노력의 양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일정한 시간에 자기의 일정한 노력의 양을 투입한다 해도 거기에 얼마만큼 정성을 들이느냐? 얼마만큼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서 투입되느냐 하는 거기에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정성을 들이고, 모든 정력을 다할 수 있는 그 힘을 어디서, 원동력을 어디서 가져오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타력에 의해 보조를 받느냐, 자력으로 자기가 주체성을 띠느냐 하는 두 가지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길에 있어서 어떤 길이 효과적이냐 이겁니다. 그것은 자체적인 이런 원동력을 가질 수 있어야 상대적으로, 외적으로 누가 협조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바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체적인 원동력을 갖는 데 있어서 그 자체적인 인간으로서 제일 필요한 것이 뭐냐? 그 동기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어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거기에는 심정적 문제로부터 부대껴 가지고 자기가 주체성을 지닐 수 있는 길이 장구한 정성을 들일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추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차적인 사랑의 심정이, 어디서 그런 폭발적인 원동력을 나에게 제시하겠느냐? 그건 반드시 상대적 관계, 부모와 자식간이라든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라든가, 이런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폭발적인 자극을 어디서 받느냐? 사랑에서 받습니다. 사랑인데 사랑도 그 처하는 자리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서로서로가 좋은 환경이냐, 나쁜 환경이냐 하는. 여러분은 어때요? (98-9)
여러분들이 유치원에 가고, 국민학교에 가고, 중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가는 것이 무엇 때문에 가는 거예요? 왜 가는 거예요? 「책임 때문입니다」 어차피 그 책임을 져야 할 운명에 있기 때문에, 책임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잘하기 위한 해결방법, 보다 가치있고, 보다 큰 책임을 할 수 있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그래요?「예」 (98-234)
2) 학생시절은 준비하는 때
학생은 뭐냐? 제반 사회의 핵, 요소를 집결시킨 거예요. 사회의 제반제도를 중심삼고 상대적 기준을 갖춘 거기에서 뿌리 될 수 있는 것을 학교에서 전부 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전문분야 하게 되면 경제면 경제분야 등 각 전문분야가 다 있는 거예요. 정치면 정치분야, 다 연결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훈련장소, 그것이 학교예요. 사회의 제반 제도를 핵으로 해 가지고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거예요.
사회와 학교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XY관계예요. 마찬가지예요. 이것도 이렇게 연결되는 거예요. 공부 잘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도 활동을 잘하느냐 하면 그냥 그대로 통하지 않아요. 공부 잘한 것 이상 사회에 나가서 활동해야 되는 거예요. 앉아서 먹겠다면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같이 커 가야 합니다. 공부 잘했으면, 이것이 이만큼 컸으면 말이예요, 그 큰 만큼 상대적인 조건을 세워야 된다구요.
아무리 공부 잘했다 하더라도 앉아 가지고 사회에서 출세할 수 없어요. 공부 잘해 가지고 아무리 취직을 잘했다 하더라도 10년, 20년 그냥 지내게 되면, 그대로면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같이 뻗어 나가야 된다구요. (180- 130)
여러분들을 보면 다 젊은 사람들이지만, 한 사람이 성공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어느 한때에 결정돼요. 한때가 중요해요. (91-29)
학교 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는 전부 다 내 선생님이요, 내 제자요, 전부 다 같지마는 일년 지나고 나면 낙제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때는 선생님이 '너를 늘 사랑했지만 할 수 없다. 너는 떨어져야 되고 이들은 올라가야 되고 나는 이들을 따라가야 한다. 넌 못 따라온다'고 딱 할 때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낙제하고서 선생님이 나쁘고 친구들이 나쁘다고 암만 해봐야 통하지 않는다구요. (123-204)
학생은 학생시대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또, 여러분은 개척시대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모든 일에 전부 다 그것을 다짐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대인관계에서도 무엇을 남길 것이냐? 완전히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96-331)
3) 참된 학생
① 참된 학생
오늘날 인간들 가운데에 참된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여러분은 금을 좋아하지요? 여러분은 순금을 원합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섞인 것을 원합니까? 「순금을 원합니다」 다른 것을 합해 놓고 그것이 진짜 순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싫어할 것입니다. 순금은 순도가 99퍼센트가 아닌 백 퍼센트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금과 순금이 합하면 그것은 무슨 금이 되겠어요? 순금끼리 합하면 순금이 되지만 그 순금에 조금이라도 가짜를 합하면 가짜금이 됩니다. 그러므로 순금에는 순금을 얼마든지 가해도 좋지만, 거기에 조금 이라도 가짜를 가하면 본판의 순금까지 여지없이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과연 참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느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기 학생들이 있는데 흔히 '참된 학생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참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을 말할 때 하는 말입니다. 그 동네를 중심삼고 볼 때, 동네 학생들 가운데 조금 나아 보이니까 '참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동네에서 말하는 참되다는 그 말은 절대적인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41-171)
어떠한 학교의 학생들이 있다면 그 학생들 가운데서 제일 참된 학생이 누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학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학교를 두고 볼 때 거기에는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학교에서 현재 가장 참되다고 하는 학생이 과거도 대표할 수 있느냐? 현재의 수많은 학교의 학생들 가운데 으뜸 가는 중심이 될 수 있겠느냐?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수많은 학생들 앞에 있어서 중심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참된 사람이라고 공인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사람이 과거를 대표할 수 있느냐, 현재를 대표할 수 있느냐, 미래를 대표할 수 있느냐 하는 등등의 문제가 연결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40- 306)
'참된 학생' 할 때에 그 참된 학생은 무엇을 잊어버려야 하나요? 도서관에 열 사람의 친구가 들어가서 공부를 한다고 할 때, 공부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공부하는 사람, 힘든 줄도 모르고 낮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고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부하는, 그렇게 잊어버리기를 잘해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이 참된 학생입니다.
어디 가서도 참사랑만 하자 이겁니다. 형님한테 매를 맞고 차이고도 잊어버리고 말이예요, 여기 이 구석에서 맞았으면 저 구석에 가 가지고 '아, 형님 어디 가요? ' 하면서, 매맞고 나서 아직 아픈 것도 다 낫지 않았는데 따라 나서는 그런 사람이 참된 동생입니다. (174-28L)
② 좋은 학생
학교의 학생은 말이예요,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는 학생은 좋은 학생이요, 거기에 위배되는 학생은 나쁜 학생이다, 이게 이론적이예요. 집에서도 그렇습니다, 집에서도 어머니 아버지의 생각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거기에 반대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회사 사장의 생각대로 하는 사원은 좋은 사원이고, 틀리게 하는 사원은 나쁜 사원이다 하면, 틀렸어요, 맞았어요? 「맞았습니다」 통일교회의 무니들 가운데 레버런 문 생각대로 하는 패는 좋은 무니이고, 그 반대 패는 나쁜 무니다, 이거 맞아요?「예」 그럼 여러분은 어느 편이예요? 「좋은 무니요」 뭐가 좋은 무니예요? 레버런 문과 생각이 같고? 「행동이 같은 사람요」 알긴 아누만. 여러분들이 나보다 좋은 생각을 가졌어요?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원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요?「예」 이러한 논법으로 볼 때, 하나님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없다? 어떤 거예요? 「있다」(104-206)
굿 보이(GOOD BOY;좋은 학생)는 뭐냐? 배드 보이(BAD BOY;나쁜 학생)를 소화할 수 있고, 그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표준을 가져야 굿 보이 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굿 보이는 언제나 배드 보이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배드 보이가 굿 보이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배드 보이도 되고 굿 보이도 되는 건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굿 보이가 아니고 배드 보이가 되는 거예요, 배드 보이. 두 세계를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116- 195)
여러분 자신들이 생각하기를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 다시 한번 물어 보자구요. 「좋은 사람이예요」 여러분이 얼마나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하고 사랑해 봤느냐? 그러니 나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 형제를 얼마만큼 진정히 좋아해 봤느냐 이거예요. 그래 봤어요?「예」 그걸 못 해본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예요. 여러분 친구를 얼마나 좋아해 봤느냐? 여러분 선생을 얼마나 좋아해 보았느냐? 이 세계의 성현을 얼마나 좋아해 봤느냐? 제일 좋아해야 할 하나님을 얼마나 좋아해 봤느냐? 이런 문제에 들어가서 내가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묻게 될 때, 여러분은 어때요? 그렇게 묻게 되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입니다」 지금 좋은 사람이예요?(웃음) 여러분이 언제든지 그걸 생각해야 돼요. (76- 275)
내가 어제 수택리 들어가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 앞에 신세를 졌다면 그것이 좋은 게 아니니 그 이상 갚아야 된다고 했어요. 부모의 사랑의 씨가 크거들랑 열매 한 알이라도 보탤 수 있는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스승을 존경해야 하고, 사회와 나라 앞에 충성을 해야 됩니다. 부모 앞에 빛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8-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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