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장 ------ 超人 對 超人
천의전(天意殿)!
이 시대의 초강세력인 천하제일가의 의사청이 이곳임을 모르는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
지금 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인(四人)이 앉아있다.
한명은 바로 천하제일지자(天下第一知者)라는 천기수사 제갈수였
고 그의 앞에 앉아있는 세 사람. 일신에 백의장포를 걸친 초로의
노인은 그 위명이 사해팔황(四海八荒)을 떨치고 있는 무황 옥사황
이었으며, 또 한 사람은 천하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
현할 말이 없는 기도가 헌앙한 청년이었으며, 그 미청년의 바로 옆
좌석에는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도를 은은히 뿌리고 있는 여인이 조
용히 앉아 있었다.
이들, 바로 남궁세가를 떠나온 금천풍호와 음월이었다.
금천풍호.
자신의 가문을 멸망시킨 옥사황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그의 태도
는 기이할 정도로 담담했다.
침묵.
네 사람 사이에는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지는 괴기한 침묵이 흐르
고 있었다.
문득 옥사황이 담담한 가운데 더할 나위 없이 한기가 서려있는 음
성으로 침묵을 깨뜨렸다.
"금천풍호라 했던가? 자네의 소문은 익히 들었네......"
아마도 남궁세가에서 있었던 비무대회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다음 순간 옥사황은 문득 나직한 탄식음을 흘렸다.
"허나 자네가 바로 금천세형의유일한 후인인 줄은 몰랐네. 자네
는 부친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인가?"
어느덧 옥사황의 눈은 깊숙이 금천풍호를 직시하고 있었으며 그
의 눈은 비수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허나 금천풍호는 조금도 굴림이 없이 그 눈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무림이란 약육강식의 진리가 지배하는 세계... 저의 아버님께서
가주보다 무학이 약해서 패하셨다면 그 또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
을 하고 있습니다. 허나......"
"허나......?"
"저는 결코 본가의 무학이 천하제일가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돌아가신 저의 선친에
대한 저의 마지막 효도...... 가주의 검예를 한번 견식하고 싶습니
다."
이 말.
정식으로 옥사황에게 비무를 청한다는 말이 아닌가?
오오!
천하를 다 뒤져 과연 누가 있어 천하제일고수인 무황 옥사황을
향해 이렇듯 당당하게 비무를 요청할수 있다는 말인가?
순간 옥사황의 눈에 한줄기 기이한 광채가 피어올랐다.
허나 그것은 나타날 때보다 더욱 빨리 사라졌으며 대신 그의 입
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금천세형은 훌륭한 아들을 두었군. 상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당당함을 보이는 모습은 과거의 금천세형을 꼭 닮았네."
그것은 진정에서 우러나온 감탄이었다.
이어 옥사황은 담담한 음성을 재차 흘렸다.
"나와 비무를 벌이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네. 하지만 그 전에 자
네에게 한 가지 일러둘 것이 있네."
"......!"
"나는 자네가 무엇 때문에 본좌를 찾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네.
사실 이제 와서 자네에게 변명할 마음은 없네만... 자네 부친과 나
와 있었던 일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네."
오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면 금천세가가 멸망한 이면에는 또 다른 내막이 있다는 말
인가?
"십오 년 전 나는 금천세가가 화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그
곳에 갔었네. 허나 그 중에 자네의 시신이 보이지 않기에... 자네
가 이 하늘 아래 어딘가 살고 있으며 반드시 크면 나를 찾아오리라
생각을 했었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자네에게 말을 하려고 이제껏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다네......"
"......"
"사실 그때 일은......"
옥사황이 막 전대의 비사를 밝히려는 찰나!
문득 금천풍호는 담담하나 단호한 음성으로 말을 잘랐다.
"가주께서는 지금 뭔가 잘못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음?"
옥사황의 눈이 흠칫 커졌다.
금천풍호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말을 이었다.
"역시 밝혔거니와 저는 부친의 복수 때문에 가주를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저는 본가의 검학과 천하제일가의 대승천검도결을 비교
하러 온 것뿐입니다."
"자네 꼭 나와 비무를 하고 싶다는 말인가? 어쩌면 자네가 다칠
지도 모르네. 아니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지. 본가의 대승천검도결
은 시전된 이상 반드시 상대의 피를 보아야만 하는 마예이니....."
"무인이 생명을 아낀다면 그는 이미 무인이 아닙니다. 또한 천하
제일가의 대승천검도결이 비록 천하제일무적검학이라고는 하나 그
것도 인간이 만들어 낸 것! 반드시 저를 꺽을수 있다는 보장은 없
을 것입니다."
순간 옥사황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를
떠올렸다.
"자네의 그 설명도 금천세형을 꼭 닮았군. 좋네, 좋아...... 허
허......!"
그렇게 호탕하게 웃으며 옥사황은 조용히 일어섰다.
단지 그것뿐이었건만 태산(泰山)이 일어서는가?
금천풍호는 마치 하늘이 자신을 굽어보는 듯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옥사황의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
다.
"따라오게."
이인(二人)!
금천풍호와 옥사황.
두 사람은 태사청 아래의 마당에서 조용히 대치했다.
금천풍호.
(대단하다. 단순히 서 있는 자세에서 이렇듯 가공할 기도를 풍기
다니... 마치 태산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구나......!)
누구에게 위압감을 느껴보기는 맹세코 이번이 처음......
(과연 천하제일고수라는 위명이 명불허전이구나......!)
한편 이 순간 옥사황도 금천풍호를 바라보며 적지 않은 경악을 내
심으로 터뜨리고 있었다.
(놀랍구나. 저 나이에 벌써 상승검도에 극성까지 도달해 있다니.
대체 이 자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았기에......?)
옥사황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천하제일가의 독문검법인 대승천검도결을 꺾기 위해 어린 시절부
터 죽음의 섬 불귀도에 들어가 피와 살을 깎는 극도의 수련을 금천
풍호가 해왔다는 사실을......
게다가 찌금 금천풍호의 일신에는 백 년 전 무적의 초강자라 일컬
어지던 중원칠절과 정파 무학의 대조종인 무후대상인의 절예가 한
몸에 이어져 있었으니......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이 시대 최고고수이자, 명실사부한 초인,
그는 검을 천천히 천중(天中)으로 끌어 치켜들며 나직하나 위엄
이 깃든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조심하게......"
그 말을 시작으로... 금천풍호와 옥사황.
한 사람은 이미 하늘마져 오시하는 초인이며 또 한 사람은 초인
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젊은 초인.
이 두 사람의 무림사에 길이 남을 비무는 시작되었다.
쿠우우우......
우우우우우......
하늘의 한쪽이 열리고 대거력이 몰아치는가?
순식간에 사위는 노을빛 검기로 완전히 휘감겼다.
일초... 이초... 삼초... 십이초......
시간이 흐르고 초식의 횟수가 거듭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서 감탄과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완벽하다. 세상에 이런 검법이 존재할수 있다니... 바늘 끝만한
헛점도 찾아볼 수가 없구나. 과연 이것이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검도라는 말인가?)
금천풍호는 연신 수중의 막사검을 사용해 초식을 펼치면서도 내
심으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치 물이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옥
사황의 검법에서는 실로 바늘 끝만한 헛점을 찾아볼수 없음은 물론
이고......
쿠우우우우......
초식과 초식이 거듭되면서 변화되는 도승천검도결의 변(變)은 만
무(萬武)에 달통한 금천풍호로서도 도저히 짐작조차 할수 없는 신
비한 것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아무리 삼류초식이라 할지라도 고수의 손에 의해 펼쳐지면 무적
마학으로 바뀌는 것이며, 설사 갈대잎 하나라도 고수의 손에 들리
면 어떤 신병이기보다도 무서운 위력을 지닌다는 것을 금천풍호는
이 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순간 옥사황의 손에 들린 것은 나뭇가지였는데 그것은 금천풍
호의 막사검에 부딪쳐도 전혀 흠이 나지 않을 뿐더러 형용할수 없
는 어마어마한 진력이 그의 몸을 단숨에 찢어발길듯이 압박해 오고
있었다.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엄청난 진력이 전해져왔다.
그의 등줄기에서 자신도 모르게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이럴 수가... 인간의 내공이 어찌 이리 가공할 수가......?)
옥사황은 이미 신(神)이었다.
그의 내공은 마치 대해(大海)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나왔으며 그
잠재된 힘은 내공에 관한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금천풍호가
오히려 한수 꿀릴 지경이었다.
한편 이 순간 옥사황의 놀람은 더욱 큰 것이었다.
(이럴 수가? 본가의 대승천검도결을 이미 십오 초나 시전했는데도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다니... 금천세걸조차도 십이초를 넘기지 못
했거늘......?)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옥사황의 말은 사실이었다.
옥사황은 기이했다.
금천풍호가 시전하는 초식은 자신이 시전하고 있는 대승천검도결
의 화점을 정확히 찾아 막아내고 있어 그의 공격을 번번이 무위로
돌려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수십 년을 두고 대승천검도결의 파해법만을 연구한 것처럼.
그렇다.
지금 금천풍호가 시전하고 있는 검학은 바로 중원칠절이 대승천
검도결을 파해하기 위해서 십오 년이란 오랜 기간을 두고 창안한 태
극검마흔(太極劍魔痕)이었던 것이다.
헌데 한 순간이었다.
"하하핫... 조심하게!"
문득 옥사황의 호탕한 대소성이 사위를 울리는가 싶더니,
우우우우우웅------!
그의 공세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극강하게 일변하는 것이었다.
(우웃------!)
금천풍호는 갑자기 세차게 밀어닥치는 옥사황의 검세에 뒤로 두
발자국 빌려나가며 가슴에 큰 통증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옥사황의 검세가 빛살처
럼 그의 전신요혈을 파고 들었다.
실로 완벽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어디하나 허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공세.
피하거나 막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우우우우우------!"
금천풍호의 입에서 천룡이 울부짖는 듯한 장소성이 터지며 그의
검이 대기를 가르며 옥사황의 검세를 맞부딪쳐 갔다.
필살검식!
죽음을 각오한 최후의 절초------!
콰쾅!
우르릉......!
땅가죽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 올렸다.
동시에,
"으음!"
흙먼지 안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순간 음월과 제갈수의 안색은 밀랍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
다.
(저, 저것이 인간의 무예라는 말인가? 무학의 끝이 아무리 무한
하다 해도 어찌 저런 무학이 인간의 몸에서......!)
이것은 그 순간 두 사람의 뇌리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때, 장내를 자욱이 메웠던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두 사람의 흐
릿한 모습이 나타났다.
금천풍호.
그는 막사검을 지팡이로 사용하여 간신히 중심을 유지한 채 서 있
었다.
그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으며 입가에 쉴 새 없이 가는 선
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견해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듯.
그에 반해 옥사황은 단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그 자세에서 꼿
꼿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승부가 결정지어 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옥사황의 백의장포는 여기저기가 검기에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
으므로......
무승부(無勝負)!
외견상으로 보아 이것은 명백한 무승부였다.
옥사황은 이채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금천풍호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이번 비무는 무승부일세. 본좌가 생각하기에 우리들의 승부는
앞으로 일 년쯤 후에야 비로소 결판이 날 것 같군......! 어떤가 자
네의 생각은. 우리의 비무를 일 년 더 연장하는 것을......?"
오오!
이럴 수가?
천하에 누가 있어 이 시대 최강의 초인인 무황 옥사황과 비무를
하여 무승부라는 말을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가 있다는 말인
가?
순간이었다.
금천풍호는 문득 울컥 선혈을 토해내더니 옥사황을 향해 흐릿한
미소를 던졌다.
"가주. 본인에게는 아직도 쓸 만한 검법이 몇 가지 더 남아 있소
이다. 본인은 그것을 가주께 시험을 해보고 싶소이다."
옥사황의 눈에 한차례 기광이 일렁이더니 돌연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허허! 무서운 고집이로군! 좋네. 영웅이란 자고로 그런 고집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허나 알아두게. 우리의 승부는 결코 일 년 이
내에 결정지어 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어 옥사황은 금천풍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빙글 몸을 돌리더
니 걸음을 뚜벅뚜벅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더 이상의 비무를 포기한 것!
그런 그를 제지하려고 막 입술을 벌리는 금천풍호의 귓속으로 옥
사황의 음성이 파고 들었다.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네...... 따라오게......!"
금천풍호는 멍하니 그런 옥사황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몸이 기울어지며 천천
히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은......
그렇다.
그는 이미 옥사황과의 일전에서 실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던 것이
다.
안개처럼 가물거리는 의식 속으로 음월의 황망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풍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