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흥길
3코스: 축석고갯길 8.5km
-천보산 능선을 걷는 즐거움을 체험하는 길-
코스
축석고개삼거리(호국로표지석)-어하고개생태통로-소홀생활체육공원-소홀읍행정
복지센터입구
일시: 2021년12월16일 목요일 博霧
동행: 나홀로
경흥로 3길을 걸으려고 7시30분 출가하여 의정부역은 1호선 전철을 탔고 축석
령까지는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택시(9000원)를 타니
9시30분이 되었다
호국로 삼거리에서 우선 가이드북에 확인 도장을 찍으려고 스탬프함을 찾으려
숨바꼭질을 하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살펴보면서 술래잡기를 하였고 그리
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서울방향의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보광사 입구 알림 화
살표식을 봤고 그 옆에 천보산휴양림(12.5Km) 안내도와 범바위(효자바위)와
효자 오백주의 Story板이 있다
동선
1호선 의정부역→축석령→보광사입구→임도→토치카→마루금우틀→활공장→어
하고개→송전탑→천보산약수터→체육공원→43번국도→29번고속도로밑→횡단보
도→좌틀→29번고속도로밑→소흘읍주민센터→의정부역관광안내소
⚈ 護國路(Hoguk-ro)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대교에서 시작해 양주시, 의정부시, 포천시를 거
쳐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용암삼거리를 잇는 도로이다.
⚈ 祝石嶺
天寶山 기슭에 있는 고개로 포천군 蔬屹面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2백리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
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으로 효자 吳伯周(1643~1720)의 전설로 유명하다
경흥(대)로의 원형 노선이라 할 수 있는 43번 국도가 천보산 분수령을 넘어 포
천과 철원 방면으로 연결되는 등 예로부터 한수 이북의 심장부이자 교통의 요
지다 효자 오백주는 어룡리에 살면서 외지에 나가서 벼슬살이를 하던 중 아버
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벼슬자리도 팽개치고 고향으로 달려와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면서 특효약을 찾아다니는데 누군가가 石蜜이 좋다하여 석밀을 구하려고이리저리 헤메이다가 간신히 석밀을 발견했지만 석밀 곁에 호랑이가 웅크리
고 앉아 있어서 오백주는 호랑이에게 비나리로 애원을 하면서 싹싹 빌었다
⚈ 범바위 이야기
"내가 죽으면 우리 부친을 누가 돌보단 말인가"하며 통곡하자 호랑이는 간
데 없고 바위만 남아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 나왔다. 이에 부친의 병이 나으
니 사람들이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
시켰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렸으며, 그 후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
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이라고도 하였다
⚈ 吳伯周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로 본관은 寶城. 자는 國卿. 자식은 3남매를
두었고, 아들은 吳相虎이다.
어린 시절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활을 잘 쏘아, 사냥하여 잡은 짐승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1659년(효종 10) 무과에 응시하여 두 곳에서 으뜸을 차지하였는
데, 당시 시험관인 대장군 柳赫然이 뛰어난 활 솜씨 특히 騎射 능력에 감탄하
여, 자기 막부에 두고 훈련시켰다.
”孝感動天“ 이라 虞舜 임금은 하늘도 감동 시킨 효자로 알려젔고 孝는 百行之
根源으로 이 땅에 오백주와 같이 호랑이를 감동시킨 전설이 또 있으니 북한산
효자계곡에는 효자비가 있는데 효자 박성태의 이야기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
시자 아버지의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참배를 하려고 험난한 무악재와 박석
고개를 힘들게 넘나들었더니 인왕산 호랑이가 박성태의 효심에 감동하여 박성
태를 업고 묘소를 드나 들었다는 전설이 있고-
利川市 도드람산(猪鳴山349m)에도 효자 Story가 있다 저명산 인근에 효자가
노모를 모시고 사는데 어머니가 중환에 걸려 효자는 어머니의 병을 구하려고
勞心焦思하는데 스님이 찾아와서 “석이버섯”이 치료약이라고 일러주어서 효자
는 석이를 따려고 밧줄로 묶고 석이를 따고 있는데 어디선가 돼지 울음 소리
가 들려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밧줄을 살펴보니 끊어지고 있어서 질겁을 하고
낭떨어지 바위에서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천보산자연휴양림은 12.5Km로 한북정맥 왕방지맥 천보산맥 능선을 공유한다
보광사 입구로 길은 열려 있으니 보광사는 들리지 않고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면 좌측으로 납골묘가 보이고 언덕을 넘으면 우측으로 집한채가 있고 좌
측으로 토치카(tochka)가 있는데 길은 토치카 옆으로 가랑잎이 수북히 깔렸고
어제 내린 빗물에 젖어 있어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
⚈ 吳伯周가 살았던 魚龍洞
본래 포천군 서면 지역으로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이라 하여 오룡
골 또는 어룡동, 어룡리 라고 부르며 마을 뒤편으로 조득산이라는 험준한 산이
있는데 왕방산에서 내려다 보면 위쪽으로는 용의 머리 모양을 하고있으며, 아
래쪽으로는 냇물이 흘러 물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있는 잉
어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어룡리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용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조득산의 용머리 부분이 무겁지
않게 나무를 심지 않고 황무지인채 남겨두었다고 한다.
반려견 등산 안내가 있다
“반려견은 목줄을 해야하고 사나운 개면 입막음을 그리고 배설물 처리 봉지는
주인이 몫”이라니 개들도 등산시대가 왔다
곧 너럭바위(마당바위)가 나와서 배낭을 등 받이로 보온병을 찾아서 따끈한 물
한모금 하려니 수락산은 박무로 흐릿하게 보이고 엷은 구름 사이로 붉은 아침
해가 보였다가 사라지곤 한다
잠시 후 능선과 접속하니 우틀하여야 하고 조난신고는 천보산맥 위치번호 25
로 위도와 경도 표시되어 있고 조금 진행하면 축석령 1.5Km 어하고개 3.5Km
의 팻말과 긴의자가 있고 산길은 부드럽고 오르내림이 약하다
• 山行三昧에 젖는다
순수하게 걷는 것에만 집중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마루금에는 종종 塹
壕가 눈에 들고 천보산맥 참호에 근무 했던 병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
고 있을 가- 궁금한데 밧줄 설치지역이 나왔다 아담한 바위를 밧줄을 잡고 오
르면 GS 양주자이5단지 아파트들이 조망된다
또 그곳에는 천보산휴양림입구가 있고 1.1Km요 어하고개는 1.2Km가 남았다
는 알림을 볼 수 있고 활공장이 나왔고 젊은이가 긴 의자에서 휴식을 하고 뒤
에는 삼각점 있고 안내문은 “왕방지맥 376.2m 맨발”-
조금 전에 맨발로 마루금을 밟고 있는 중년부부와 교차했거니 나도 “맨발”이
라는 닉네임을 가진 步行 동행이 있었는데 혹여 그가 아닐까- 지금도 맨발은
산행이나 걷기 프로그램에서는 맨발로 걸을 것이다
갈림길이 나왔다 어하마을 0.8Km 어하고개 0.5Km- 어하고개로 방향을 잡는
다 이정은 “0.32Km 150m”로 줄어들고 밧줄이 설치되어 있고 150m는 급경
사로 밧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삼거리가 나왔고 어하고개는 우측
으로 빠지고 경흥로는 생태통로를 걷는 다 걸어온 들머리 축석령은 3.5Km-
하지만 경흥로 3코스는 8.5Km로 어하고개까지가 4.6Km로 절반을 넘어선다
⚈ 어하고개
경기도 양주시 삼숭동 삼가대에서 포천시 소흘읍 서쪽의 이동교리로 넘어가는 고개.
조선 태조가 무악대사와 檜巖寺를 찾았을 때 산세를 보려고 봉양리의 칠봉산
(당시 어등산이라 했음)을 올랐다가 천보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20리쯤 되는 이
고개로 내려와서 어하고개라 하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원바위고개라고 하는
데, 이는 미군이 전략상 필요에 의해 표시한 ‘1Y(원와이)’를 그대로 읽으면서
변한 이름이다. 으악고개라고도 부른다.
어하고개의 남북으로는 의정부시 천보산에서 동두천시 소요산까지 지맥으로
연결되는 천보산맥이 뻗어 있고 2차선 포장도로와 생태이동통로로 변모되었다.
양주시에서 포천시로 넘어가는 시 경계에 어하고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생태통로를 지나면 급경사를 올라야 하는데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100m 진행하면 경고문이 있다 “등로 이탈금지” OO부대장. 문구가 섬뜩하고
11시46분이다 경고문 앞에 털석 주저 앉아서 간식을 먹으면서 할멈에게 전화
하기를 “외출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수술후유증으로 “의사가 넘어지 말라
는 권고”의 전달하항이고 지난 날에 있었던 추억을 회상한다
※ 回想
오늘 걷는 경흥로 3코스는 천보산맥과 왕방지맥 종주로 몇 차례 산행을 했
는데 그 중에 白 선생은 極樂山으로 갔고 兪 동지는 투병중이고 望九十의 兪
대감은 건재한데 유 대감에게 어하고개에서 들머리를 잘 못 잡았다고 원위치
확인하라고 하여 급경사를 왕복하면서 헉헉거리면서 오르락했고 칠봉산을지
나면서 조망터를 스치기만 한다고 야단맞던 일 또 원사장과 김총무랑 칠봉산
으로 빠지면서 봉긋한 봉우리에서 라면을 먹던 일 그리고도 잊을 수 없은 사
연들이 떠 오른다
석문령. 회암고개. 이정이 있고 그리고 양주시는 감동의 도시라고 하는데 살면
서 “感動”을 받을 일이 무엇일 까-
어하고개부터 마루금에 삼각점의 꼭지점 표식처럼 정사각형 모양의 대리석 작
은 돌(천주교 글씨)이 마루금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서 유도표식 같은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 생각하기를
학자이며 종교인으로 “聖敎要旨”를 저술한 광암(曠菴) 이벽(李蘗 1754년(영
조30)~1785년(정조9)선생이 경기도 포천 출신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늙은이들 셋이 땀을 뻘뻘흘리면서 나를 추월하여 꽁지가 빠지게 날아갔다-
하. 나도 한때는 땀방울 흘렸건만... 송전탑을 지나서 내리막을 내려오니 4거
안부로 좌측에는 천보산약수터가 있고 직진은 칠봉산으로 가고 경흥길은 우틀
하여야 하는데 체육공원 415M로 내리막길은 돌 계단과 밧줄이 설치되었다
산자락에서 벗어나면 축구장이고 우틀하다가 좌츨하는데 출입 못하도록 막아
놓은 것은 축대를 공사하기 때문이고 소흘읍인공암벽장이 보이고 먼지 털임개
가 설치되어 있고 체육공원으로 접어들면 테니스장도 있다
좁은 수로를 따르면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천보산둘레길 안내도가 있고
큼직한 영문 “YATS”가 눈에 들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페리아도워터파
에는 수영장이 있다 홀리어린이집 앞을 지나서 43번 국도와 접속하여 우틀하
고 29번고가도로 밑을 지나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좌틀하면 다시 29번고가도로
밑을 지나서 진행하다가 좁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소홀읍행정복지센터가 있고
보건소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하려고 젊은이들이 죽~ 줄을 서서 차례를 기
다린다
입구에 행정센터 건물을 새로이 짓고 거대한 표석으로 소흘읍 기념비를 세웠
고 표석 뒷면에는 포천시 문화원 초대 회장 임관영 시인의 “蘇屹頌歌”시가
있고 주변에는 작은 조각공원이다
蘇屹頌歌- 임관영
“내 고장 포천엔 소흘이 있지
소흘이 어디냐고 묻지 말게나
소흘땅 어떻더냐 묻지 말게나”
마을마다 인정이 둥둥
떠돌아 자자손손 고웁다
정따라 지금은 팔도 사람 모인다” -이하 생략-
나는 소흘읍에는 2020년9월28일 금요일 맑은 날에 고모리저수지둘레길을 걸
으려고 왔었고 내 수첩에는 “포천연가”가 있다
⚈ 며느리의 전설
옛날 소흘읍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金進士가 살았는데 며느리가 玉童子를 분만하여 집안에 경사가 생겨 웃음꽃이 만발했는데 好事多魔라 며느리의 풍성한 점샘이 말라버렸고 소문은 확 퍼져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며느리가 젖샘이 말랐대~”라고 비양거리면서 수군수군 거렸다- 하여 김 진사의 마누라가 며느리를 데리고 태봉산 약수터를 찾았고 산신령에게 비나리로 애원하니 갑짜기 약수가 펑펑 쏟아졌고 약수를 마신 며느리도 점샘이 약수처럼 콸콸 솟아났다는 Story가 있는데 명심보감에 “積善之家必有慶”이라 하였다
묵은지골 식당을 찾아서 보약인 맑은 물 두어컵 마시고 인근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찾아서 138번 버스를 타고 의정역역 정류장에서 내려 관광안내소를 찾아서 “의정부시의 관광 안내도”와 “의정부 소풍길”안내지도를 챙겼다
⚈ 의정부시 소풍길
대구간 6코스 소구간 3코스가 있다
대구간: 1. 명상의 길 2.하늘전망대 길 3. 불로장생길 4.산림욕 길
5. 부용길 6. 장재울길
소구건: 1. 행복길 2. 쌍둥이 길 3. 맑은물 길
※ 參考
• 天寶山
포천시와 양주시의 경계상에 위치해 있는 반원형의 특이한 모습을 가진 산맥이다. 북쪽으로는 천보산과 칠봉산이 연접해 있고, 남쪽 방향으로 반원형의 곡선을 그리며 양주시를 감싸는 형태로 휘어서 뻗어 있다. 200m~ 400m의 산봉우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맥의 남쪽에는 높이 291m의 축석령과 286m의 백석이 고개가 있고 일원에는 고구려 시대의 보루군이 분포하고 있다.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거나 혹은 호랑이 때문에 백명씩 모여 다녀야 하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백석이고개, 회암동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회암고개, 율정동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돌문이 있던 고개라 하여 석문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난을 당하여 이산에 피신하였다가 난이 끝나자 목숨을
건진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라”고 신하에게 명하였다. 신하가 난리 후라
금은보화를 구하기는 어렵고 이름을 하늘 밑에 보배로운 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이라고 불리워 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남해의 “錦山”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나를 임금으로 시켜주셔라- 비나를 하면서 만약 임금이 된다면 산자락을 금은보화로 두르겠다고” 公約을 하고 임금이 된 뒤에는 그 많은 금은보화를 구할 수가 없어서 절묘한 꾀로 비단금 “錦” 字를 내리면서 “錦山으로 부르도록 하라”고 변명을 했는데 오늘날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善心(空約)을 베푸는 꼴과 Story가 비슷하다
• 七峰山(506m)
천보산 지맥이 북쪽으로 이어져 솟은 산이다. 발리봉·응봉·석봉·깃대봉·투구봉·솔치봉·돌봉 등 7개 봉우리가 솟아 있어 칠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세조가 말년에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이곳에 올랐다 하여 御登山이라고도 하고, 가을단풍이 아름다워 비단병풍에 비유하여 錦屛山이라고도 한다.
1봉: 發離峰- 임금이 처음 등산을 하기 위해 떠난 곳이라는 뜻
2봉: 매봉鷹峰- 임금이 수렵에 필요한 매를 날렸던 곳
3봉: 깃대봉旗臺峰- 임금이 수렵 표시 깃발을 꽂았다는 뜻
4봉: 石峰- 임금이 돌이 많다고 말한 곳
5봉: 鬪具峰- 사냥 중 임금이 쉴 때 호위하는 군사들이 갑옷과 투구를 잠시 벗어 놓았다는 뜻
6봉: 돌봉突峰- 임금이 사냥터를 떠나며 돌이 많으니 뜻하지 않은 일에 조심하라고 당부했다는 곳
7봉: 率離峰- 임금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날 채비를 하던 곳
천보산- 배경섭
양주땅 회암사
무학대사와 태조 李成桂가
무슨 밀담을 했는지
뒤쪽 천보산 흰바위
10여 그루의 늙은 소나무
용트림을 하며
바위에 매달려
누워 있는데
어떤 이는 죽지 못해 붙어 있다 하고
어떤 이는 그 모진세월 잘도 버티었구나 하고
어떤 이는 굳세고 장하다 예술이다 하고
어떤 이는 신의 작품이다 감탄하는데
나는
한마디 말없이
그냥 내려 왔다.
⚯ 포천시 이야기 1
-生去抱川 死去長端-
살아서는 포천에 가야 양반이고 죽어서는 장단 가야 양반”이라는 말로 그만큼
포천엔 벼슬을 놓고 자연을 즐기려는 선비들이 많았고 빼어난 인물도 많았다.
“오성과 한음” 일화로 유명한 오성 이항복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
이로다”라는 시조를 쓴 양사언,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유응부도 포천사람이고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학자이면서 항일의병장이었던 최익현도 포천에서 나고 자
랐다. 일찍부터 포천 땅은 그들로 묵향으로 그득했다.
抱川戀歌
찾고 싶고
머물고 싶은 청정지역
한북정맥과
명성지맥의 산길
영평천과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한탄강
주상절리 모습 절경이다
포천둘레길은
• 한탄강 주상절리길
• 산정호수 둘레길
• 반월산성(제43호 265.1) 둘레길
• 청성산둘레길
• 고모리 저수지 둘레길
• 백운계곡 둘레길
步行有樂
누려야 하고
억새꽃 피는
명성산에선
궁예와
두견이 지새워 슬피 우는
포천아리랑
부르다가
아 그 사람이 그리워서
찾아온 내 고향 포천
무얼 하며 살고 있을 까
어여쁜 포천 아가씨
산정호수
좋아하는
포천 아가씨랑
천년만년 살으리라
2020년9월28일 금요일 맑음
경흥길 3코스를 걷고
축석령에서
산길로
소홀읍행정복지센터 앞까지
축석 고갯길 8.5Km
7시30분 출가하여
1호선으로
의정부역에 도착하고
택시를 탈가
버스를 탈가
망설임 끝에 택시를 탔다
축석령에서
경흥길 패스포트에
인증 스탬프 찍고
보광사 입구로 들어서서
임도 따르다가
입산되니
어제 내린 비로
가랑잎 푹 젖어 있고
너럭바위에
앉아
구름사이에
햇님 방긋웃고
수락산은
박무로 조망어렵고
천보산휴양림가는 길 따르면
왕방지맥
천보산맥 산길 공유되고
때로는
밧줄도 설치되었고
어하 고개
생태통로 스치고
천보산약수터에서
산길 접는다 2021년12월16일 목요일 미세먼지
感懷
살다보려니
어찌하다가 또 왔다
경흥길 3코스는
한북정맥(2020.3.17. 수)
왕방지맥(2005.7.20. 금)
천보산맥(2005.7.29. 금)과 공유되는데
또. 또 왔다
동행되었든
白 선생은
極樂山을 맴돌고
柳 선생은
투병중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아직도
주변에서 交友되지만
오늘은
나 홀로
어하고개로 오려니
도라지꽃
한송이에
感動했던
그 옛날 회상되고
당시
동행들의 모습
아련히 떠오른 다
금수강산이
좁아서일가
늙어지니
할 일 없어서
되풀이 되는 것인지 모르리다 2021년12월16일 목요일 미세먼지
天寶山脈
축석고개에서
한북정맥 따라 걷다가
갈림길에서
어하 고개로 가면서
회암령
천보산 칠봉산을 넘는 다
산새들은
낮잠에 푹 빠졌지만
도라지랑 달개비 꽃
눈에 들고
나리꽃 방실 웃는 다
동행인 더러
“여보 쉬었다 갑시다”
솔나무 그늘에
폴삭 주저않으면
능선엔
바람 불어
땀방울 식혀주고
칠봉산 정상엔
“無所有山門者 祥瑞”
리본
나뭇가지에서 졸고 있는데
“無所有”
한다는 것이
쉬운 것
만은 아닌 데...
2005년7월29일 금요일 맑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