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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별 산악회(불광동 천주교회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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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스크랩 옛 이야기가 펼쳐지는 머들령재
이테파노-2 추천 0 조회 190 18.02.14 17: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베푸는 마음 행복한 마음


조화로운 인간관계란 
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문을 열기는커녕 
경계하는 마음이 된다.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나를 낮추는 것은 
열린 마음의 시작이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다.

벽도 없고 담장도 없다. 
거기엔 아무런 시비도 없다. 
갈등도 없다 장애도 없다.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요 
열린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다. 
울타리가 좁으면 
들어 설 자리도 좁다. 


 



더 많이 쌓고 싶으면 
아예 울타리를 허물어라 

열린 마음은 강하다. 
아무 것도 지킬게 없으니 
누구와도 맞설 일이 없다. 

진정 강해지려면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어라.




낮은 것이 높은 것이고 
열린 마음이 강한 것이다. 

손은 두 사람을 묶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 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 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마음의 손에 달려있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바로 볼 줄 알고 
노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에 참맛을 아는 사람이다.
좋은 글중에서....
學琳님 고맙습니다


 

    

 클릭☞ 삶이 아름답다면 죽음 역시 아름다워야 합니다

 


장산저수지 건너편이 하늘물빛정원이고

뒷편 화살표 방향이 상소동으로 넘어가는 등산로이다.

 가운데 붉은점 머들령.




하늘물빛정원

충남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하늘물빛정원 참숯 가마 찜질방을 뒤로 하고

등산로로 접어 든다.





옛 이야기가 펼쳐지는 머들령재



과거 조선왕조부터 경상도와 전라도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으로

옛 조상들이 과거 보러 다니던 발자취가 어려 있는 곳이다.


말 한필 겨우 통행 할 수 있는 좁은길 이라는 옛말

'머들령'에서 유래되었다.






머들령 고개는

사람과 가축의 왕래가 가능하여

일반 서민들의 왕래가 빈번해

산적들로 인한 피해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머들령 산 정상 부근에

산성을 비롯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보루

 머들령재가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머들령


               정훈(鄭薰)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심장사 쉬여넘고
도적이 목 직히던 곳


 분홍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하라버지와 이재를 넘었다

뻑꾹기 작고 우든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리트고
파랑 갑사 댕기
손에 감고 울었드니


 흘러간 서른해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

정훈 (丁薰,1911 ~ 1992)

충청시단의 선구자. 향토문단을 발전시킨 초석.

1938년 동인지 '자오선'에 '6월공' 발표 후 문단활동 시작.

주요저서 '머들령' ,  '파적' , '피맺힌 연륜' 등






금산군에서 머들령 고개 하나 넘으면

 대전 동구 상소동 산림욕장이다.




대전 상소동 산림욕장



지압으로 건강을 지키세요



상소동산림욕장

만인산과 식장산 자락 중간지점

(대전 시내에서 금산방향-옛17번국도-으로 약10㎞지점,

 남대전IC에서 약5㎞)에 위치해 있으며

가는 길에는 버즘나무 가로수 터널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상소동 산림욕장

자연체험과 휴양을 할 수 있는 각종 시설이 조성되어 있고

특히 수많은 돌탑이 조성되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봄에는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고

여름에는 물놀이장에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으며,

가을에는 단풍나무 숲길 산책,

겨울은 얼음동산 감상으로

산책과 등산과 휴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울러 삼림욕장 앞에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최적의 휴양 장소로 꼽히고 있다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물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 갑니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에 기대고

슬픈 날에는 가로등에 기댑니다.


기쁜 날에는 나무에 기대고

 부푼 날에는 별에 기댑니다. 
사랑하면 꽃에 기대고 이별하면 달에 기댑니다. 
우리가 기대고 사는 것이 어디 사물과 자연뿐이리요.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아 갑니다. 
내가 건네는 인사는 타인을 향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 아닌 타인입니다.


나를 울게하는 사람도 타인

나를 웃게하는 사람도 타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비스듬히 기댄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내 맘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겠지요. 
그 인연의 언덕은 어느 날은 흐리고

어느 날은 맑게 갤 겁니다. 
흐리면 흐린 대로 개면 갠 대로

그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인연의 덕목이겠지요

 

 - 송정림  '참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中 -






신정식 시비




배낭이 무거워







'배연국의 행복편지' 중에서






 

클릭☞ 노년 십계명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忠州 林忠愍公 忠烈祠)

충주시 충열1길 6 (단월동)


자료


충주문화관광

https://www.chungju.go.kr/tour/





충렬사 안내도



임충민공 유적 정화 기념비




충렬사는

인조때 임경업장군 (1594~1646)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숙종23년 (1697)에 건립하고 영조3년 (1727)에 사액되어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렬사(忠烈祠) 현판(懸板)

숭정기원후 정미년(1727년,영조3)에 사액 받은 현판인데

하단의 패인 부분은

영조(英祖)의 낙관(落款)이 있었던 자리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낙관을 삭제 · 손상시킨 흔적이다.






충렬사의 건물은

사당이 목조와가 3간 맛배지붕이며

강당은 목조와가 10간 8작 지붕으로 단청되어 있었는데, 퇴락되어

정부의 특별지원성역화 사업으로 1978년 충렬사를 완전 해체하고

 오늘의 충렬사를 새로 건립하였다.





임경업(林慶業)



임경업장군

선조 27년 (1594)에 판서 임정의 후손인

 임황의 아들로 충주 풍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영백이며 호는 고송이라 했으며

본관은 평택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뛰어났으며 전쟁놀이를 좋아했고

전쟁놀이를 할 때마다 스스로 항상 대장이 되어

남을 지휘하는 성품이었다.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25세 때인

광해군 10년(1618)에 무과에 급제를 하였으며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 훈일 등으로 공신이 되었고

인조 14년 (1636) 병자호란때에는 의주부 윤으로서

청군의 침입을 저지코자 백마성을 쌓아 지키고 있었는데,

청군은 이를 피하여 서울을 함락하고

 남한산성을 포위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반청친명의 인물로서 북벌의 명장이다. 

명나라의 힘을 빌어 청에 대항코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명나라에 망명하였고,

청이 명나라의 남경을 함락하자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충절을 굽히지 않았다.


 때마침 심기원의 모반사건에 관련되어

인조는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선으로 송환하였다.


인조는

그가 모반에 관련이 없음을 알고 석방하려 하였으나

 반대파인 김자점의 모함으로 피살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 50년 후인

숙종 23년(1697) 관작이 회복되었고,

숙종 32년(1706) 에는 충민의 시호가 내려졌다.


충렬사는 1727년 사액되었고,

1791년 정조가 친히 ‘어제달천충렬사비’라 글을 지어

 비석을 세우게 하여 오늘에 전한다.


 묘소는 충주시 풍동 산 45-1에 있다.




어제달천충렬사비 (御製達川忠烈祠碑) 


장군의 충렬

부인 완산 이씨의 정열비가 있는데

충렬비는 정조 15년 왕이 친히 글을 지어

비석에 새겨 전하게 하였으니

어제달천충렬사비이다.


또한 비문은 조선금석총람에 실려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임경업장군영정.어제달천충렬사비.정렬비.정렬쌍성문서.

어제비문.어제비문초록.제문.각조홀기.각조홀기초록.

임경업장군유필.부산진도.영남연해편도.압록강연변방위도.

충민공시호교지.임장군전판목.임장군 형적.임충민공실기.

충렬사 연혁.계하사목.어제달천충렬사비 탁본.계하사목 초록.

충렬사원지.충렬사현판.강당 현판. 홀기.홀기초록.

행목사.추련도.경업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충주의 축제



장어구이



노년 십계명 (老年 十誡命)


일:  일일이 간섭하지 마라 (자식에게 간섭말라)
이:  이말 저말 옮기지 마라 (이것저것 따지지 마라/ 젊은이의 행동에 간섭말라)
삼:  삼삼오오 모임에 참여하라 (삼삼하게 살라)
사:  사생결단 하지 마라 (사랑으로 감싸라)
오:  오기부리지 마라.
육:  육체를 많이 움직여라 (육체적 접촉을 아끼자 마라 : 스킨십) 
칠:  칠십 퍼센트 이룬 것에 만족하라.
팔:  팔팔하게 살아라.
구:  구구절절 따지지 마라 (구질구질한 것 버리고 살라)
십:  십분의 일을 베풀면서 살아라 (지갑을 많이 열어라)


- 출처,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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