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의 랜드마크로 등장한 kt 위즈파크 |
“야구장은 백화점입니다.”
2011년 9월이었다. 당시 기자는 일본 센다이에 있었다. 도호쿠(동북부) 대지진이 발생한 지 채 6개월이 안 된 시점이었다. 센다이는 도호쿠 대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곳으로 인근 후쿠시마 원전 폭발까지 겹친 탓인지 일본인들도 좀체 오길 꺼리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기자는 센다이 연고지 프로야구팀 ‘라쿠텐 골든이글스’ 취재를 위해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사전 일정을 잡아놓은 까닭이었다. 센다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기자의 머릿속은 ‘일정을 연기할 걸 그랬나’하는 후회로 가득했다. 그러나 정작 라쿠텐 홈구장인 크리넥스 스타디움(현 라쿠텐 Kobo 스타디움)에 도착해 라쿠텐 관계자들을 만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들로부터 프로야구 마케팅이 무엇인지, 구단 수익을 어떻게 창출하는지, 구장 활용을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은지를 한 수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기자의 뒷머리를 강하게 내린 친 말은 바로 ‘야구장은 백화점’이라는 이케다 마쓰오 라쿠텐 부사장의 발언이었다.
이케다 부사장이 야구장을 백화점으로 비유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야구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해 3, 4시간이 지나야 끝납니다. 관중의 구장 체류 시간이 매우 긴 편이에요. 달리 말해 구매 시간도 그만큼 길다는 뜻입니다. 이는 백화점과 매우 유사해요. 백화점도 체류 시간이 길어야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라쿠텐은 처음부터 ‘야구장은 백화점’이란 인식 아래 ‘관중이 어떻게 하면 3시간 넘는 체류 시간 동안 이것저것을 소비할 수 있을까’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구장 어디서 어떤 음식을 갖추면 잘 팔리고, 어디서 어떤 상품을 팔아야 매상이 오르는지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백화점 직원들이 몇 층에 신사복을 팔고, 어디에 화장품 판매대를 배치해야 수익이 증대되는가를 연구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습니다.”
![]()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 홈구장'인 크리넥스 스타디움(현라쿠텐 Kobo 스타디움).야구장 앞은 마치 작은 유원지처럼 떠들썩하고, 생기가 넘쳤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그래서였을까. 크리넥스 스타디움의 본부석 혹은 내야석 주변엔 유독 스테이크 매점이 많았다. 그 좌석의 주 이용자가 직장인들이기 때문이었다. 라쿠텐은 ‘회사를 마치고, 곧바로 야구장으로 달려온 이들이라면 분명 허기를 느낄 것’이라 예상했고, 그 예상을 토대로 스테이크 매점을 직장인이 자주 앉는 곳에 집중 배치한 것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유독 그쪽에서만 스테이크 도시락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부모와 아이들이 주로 앉는 외야 잔디석엔 어린이를 겨냥한 캐릭터 판매점을 설치했는데 이 역시 예상대로 판매량이 무척 높았다.
이케다 부사장은 “야구장은 프로구단이 수익을 올려 구단을 항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재원 마련의 무대”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최신식 백화점에 더욱 많은 고객이 몰리듯 구장 역시 첨단 시설과 편의 시설을 두루 갖추지 않으면 절대 관중을 불러모을 수 없다”며 “야구장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구단 경영 실적이 좌우된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단의 대부분 수익이 결정되는 곳. 바로 야구장이다. 크리넥스 스타디움 앞에 있는 '라쿠텐 랜드'(사진 1), 거대한 라쿠텐 마스코트 풍선(사진 2), 에어 미끄럼틀과 어린이 '구속 측정기'(사진 3)(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케다 부사장의 설명으론 프로야구단의 수익창출 방법은 5가지였다. 핵심은 역시 야구장이었다.
“프로야구단의 수익창출 방법은 크게 5가지입니다. 첫째 티켓 판매, 둘째 유니폼·저지 등을 비롯한 상품 판매, 셋째 스폰서 광고료, 넷째 매점 수입, 다섯째 방송 중계권료에요. 이 가운데 구단에 가장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건 티켓과 상품 판매에요. 다음이 매점 수입이고, 그다음이 스폰서 광고료와 방송 중계권료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건 티켓, 상품 판매, 매점 수입, 스폰서 광고료 등 구단의 대부분 수익이 구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라쿠텐의 경영 실적은 어땠을까. 라쿠텐의 전해(2010년) 수익은 무려 90억 엔(당시 한화로 약 1천382억 원)이었다. 라쿠텐은 수익 대부분을 야구장 운영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었는데 전폭적인 구단 투자에도 적자액은 6억 엔 남짓에 불과했다.
더 놀라운 건 라쿠텐의 홈구장인 크리넥스 스타디움이 새 구장과는 거리가 먼 ‘헌 구장’이었다는 데 있었다.
크리넥스 스타디움의 모태는 미야기구장이다. 미야기구장은 1950년 5월 5일 개장한 야구장으로 2004년 11월 창단한 신생구단 라쿠텐이 홈구장으로 삼기 전까지 무려 55년간 사용된 낡고 오래된 스타디움이었다.
라쿠텐이 2005시즌부터 퍼시픽리그에 합류한다는 걸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4개월 만에 새 구장을 짓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따라서 라쿠텐은 처음부터 미야기구장을 리모델링(증·개축)해 쓰겠다고 공표했는데, 그즈음 일본야구계에서 기존 야구장을 증·개축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나 미야기구장은 원체 오래된 구장이라, 손 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러나 라쿠텐은 ‘새로 짓는 게 전부는 아니다. 미야기구장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최첨단 시설을 갖춘다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최고의 야구장이 될 것’이라며 30억 엔을 들여 1차 증·개축에 들어갔다.
![]() 미야기구장 1차 리모델링 장면. 내야 스탠드 일부만 남겨두고 외야는 허물고, 그라운드마저 다 갈아엎은 상태에서 구장을 증개축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미야기구장의 1차 대변신은 4개월 만에 끝났다. 야구장 그라운드를 갈아엎고 내·외야 좌석을 모두 허물고 새로 짓는 대공사임에도 라쿠텐이 약속했던 2005년 3월에 1차 증·개축 공사가 끝나자 일본 야구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쿠텐은 증·개축한 미야기구장을 미야기 현(縣)에 기부 체납했다. 그리고서 미야기현으로부터 15년 동안 구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장기 구장운영권(장기 임대권)을 받았다.
라쿠텐은 2006년 2차 증·개축에 들어갔고, 지난해까지 해마다 증·개축 공사를 전개해 ‘낡고 오래된 구장의 대명사’였던 미야기구장을 2만 8천736명이 입장하는 최첨단 야외구장으로 변신시켰다.
일본야구계에 오랫동안 퍼져있던 ‘새 구장이 흥행을 이끈다’는 미신을 라쿠텐이 보기 좋게 무너트린 것이었다.
전국체전용으로 지어졌던 수원구장. 10구단 창단으로 살아나다. 리모델링 이전의 수원구장(사진=수원시)
kt·수원은 라쿠텐·센다이와 닮은 점이 많다. 2005년 라쿠텐이 일본 프로야구에 신생구단으로 참여했다면 kt는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5년부터 한국 프로야구 1군 무대에 참여한다.
라쿠텐의 연고지 연착륙을 위해 미야기 현과 센다이시가 모든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면 경기도와 수원시도 그에 못지 않다. 수원시만 놓고 본다면 그 이상일지 모른다. 특히나 시민의 세금을 쏟아부은 새 구장 대신 기존 구장을 증·개축해 새 구장에 버금가는 변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kt·수원과 라쿠텐·센다이는 쌍둥이만큼이나 닮았다. 구(舊) 수원구장(현 kt 위즈파크)의 변신이 대표적이다.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자리 잡은 구 수원야구장은 1989년 4월에 개장했다. 구장을 세운 목적은 과거의 야구장들처럼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개최를 위해서였다. 1989년 경기도는 전국체육대회를 유치했는데 도내 마땅한 야구장이 없어 수원종합운동장 내 여유 부지에 야구장을 세웠다.
전국체육대회 개최 차원에서 지어진 만큼 그라운드 시설과 내부 편의 시설은 한숨이 나올 만큼 조악했다. 그저 내세울 게 있다면 좌·우 100m, 중앙 125m로 잠실구장에 버금가는 그라운드 규모뿐. 하지만, 이마저도 훗날 현대 유니콘스가 수원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며 5m씩 펜스를 줄인 탓에 ‘국내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졌다.
수원구장은 인천·경기 연고지 팀이었던 태평양 돌핀스가 제2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프로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가 태평양을 인수한 뒤론 현대의 제2 홈구장으로 활용됐다. 그러다 2000년 현대가 서울 입성을 앞두고 수원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삼으며 풀 시즌 프로야구가 열렸다. 현대와 수원구장의 ‘이상한 동거’는 현대가 서울 입성을 차일피일 미루며 2007년까지 지속했다.
![]() 현대 유니콘스가 임시 연고지로 쓸 당시의 수원구장 풍경(사진=수원시) |
수원구장의 명운이 다한 건 2008년 현대를 인수한 히어로즈(현 넥센)가 서울 목동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기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2014년까지 수원구장에선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고교야구대회나 사회인야구, 연예인야구 경기 등이 열릴 뿐이었다.
가뜩이나 열악했던 수원구장은 프로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노후화가 시작됐고, 급기야 수원의 흉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던 2013년 1월. 수원이 전북과의 10구단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며 수원구장은 재생의 기회를 맞는다. 수원과 연고지 팀 kt가 새 구장을 짓는 대신 기존 수원구장을 증·개축해 사용키로 합의한 까닭이었다.
그해 8월 재건축 허가가 떨어지자 수원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수원시 조인상 체육진흥과장은 “2015년부터 kt가 1군 리그에 참여하는 까닭에 무슨 일이 있어도 2014년 겨울까진 공사를 마무리해야 했다”며 “시공사인 동부건설과 함께 매일같이 머릴 맞대 수원구장 증·개축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그라운드만 남겨둔 채 관중석과 각종 수익·편의 시절을 새로 만들어야 했던 미야기구장처럼 수원구장도 난공사의 연속이었다. 차라리 미야기구장은 양반이었다. 수원구장은 애초부터 전국체육대회용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미야기구장보다 손볼 곳이 더 많았다. 게다가 최근 신축 야구장의 흐름에 발맞춰 두루두루 최신 설비도 갖춰야 했다. 한마디로 선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추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 리모델링에 들어가기 바로 전의 수원구장. 천연잔디 구장이었지만, 잔디 질과 그라운드는 프로가 쓰기엔 부적합한 것들이었다(사진=수원시) |
가장 큰 관건은 공사비였다. 수원시는 야구장 증·개축비로 470억 원을 준비했다. 1차 공사비로 310억 원, 2차 공사비론 160억 원을 책정했다. 수원구장의 현상태를 고려한다면 이보다 더 많은 공사비가 투입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야구계 일부에서 ‘과연 460억 원으로 구장 증·개축을 완벽하게 이룰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나타낸 것도 지나친 비관은 아니었다.
조 과장은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수원구장을 제한된 예산에서 멋지게 증·개축하는 길밖엔 없었다”며 “이를 위해 공사 전부터 수원시·kt·동부건설 직원들이 ‘10원의 예산도 낭비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똘똘 뭉쳤다”고 회상했다.
구장 건설의 세 주체는 열심히 연구에 들어갔다. 수원시 공무원들은 일본 야구장들을 찾아다니며 벤치마킹에 매달렸고, kt 직원들 역시 미국 야구장을 방문해 조사와 연구를 거듭했다. 동부건설은 수원시와 kt가 요구하는 사항을 100% 충족하기 위해 나름의 연구를 계속 했다.
새 구장 건설 시 툭하면 튀어나오는 지자체·구단·시공사의 유착과 비리 그리고 갈등이 수원구장 증·개축 땐 아직까지 불거지지 않은 것도 구장 건설의 세 축이 초심을 잃지 않은 덕분이었다.
‘좌석수’보다 ‘관중 편의적 좌석’에 집중한 kt 위즈파크
기자가 수원구장을 찾은 건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본공사가 시작한 지 정확히 13개월 만의 방문이었다. 기자는 현대 시절부터 수원구장을 찾았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달라져야 얼마나 달라졌겠는가’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자가 알던 수원구장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간 듯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곳엔 새 구장보다 더 새 구장 같은 ‘kt 위즈파크’가 서 있었다.
기자를 안내한 동부건설 이성기 차장은 “1월 말 자질구레한 공사가 모두 끝나는 만큼 아직 완공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미 kt 위즈파크는 새 구장으로 거듭난 터였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외야 스탠드였다. 이 차장은 “과거 수원구장 외야 스탠드는 시멘트 바닥의 계단형 스탠드였다”며 “이걸 4단짜리 잔디밭 스탠드로 바꾸고, 고급스러운 나무 난간(데크)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수원시 체육진흥과 조인상 과장은 “3천명 수용 규모의 외야 잔디석은 가족과 함께 누워서 혹은 돗자리를 편 채로 맛난 걸 먹으면서 경기를 관전하는 곳”이라며 “앞으로 누구든 잔디에 앉아 편안하게 야구를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외야 잔디석은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와 포항구장, 울산 문수구장 등 신축 야구장들이 도입한 방식으로 크리넥스 스타디움도 외야는 잔디석으로 운영되고 있다.
![]() kt 위즈파크 장애인석. 미 메이저리그 구장의 장애인석보다 자리가 넓고 시야성도 좋았다. kt 위즈파크 장애인석은 총 100석 규모로 국내 야구장 가운데 최대 규모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내야 좌석도 최신식이었다. 이 차장은 “모든 좌석에 양쪽 팔걸이를 설치하고, 팔걸이 끝에 음료 거치대를 만들어 안락함과 편의성을 동시에 높였다”며 “팔걸이와 팔걸이의 거리 역시 50cm로 넓혀 편안한 관전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여기다 좌석 간 거리 역시 80cm로 설정해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신체 접촉이 거의 없도록 배려했다.
백스톱 뒤 본부석 탁자석은 더 안락했다. 내야 좌석의 양쪽 팔걸이 거리가 50cm라면 본부석 탁자석은 55cm로 5cm가 더 넓었다. 특히나 관중의 사생활 보호도 고려했는데 시공을 담당한 이 차장은 “테이블을 최대한 낮춰 중계 방송 시 카메라에 여성의 치마가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고 강조했다.
양쪽 불펜 뒤에 위치한 총 486석의 익사이팅존도 흥밋거리였다. 익사이팅 존과 파울라인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불과 1.5m밖에 되지 않아 익사이팅존에 앉은 관중은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전망이다.
1·3루석 내야 통로 자리에 100석 규모의 장애인석을 만든 것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조 과장은 “시장(염태영)께서 장애인분들도 야구를 편안히 볼 수 있도록 독립된 공간을 사려 깊게 만들 것을 지시해 미국 구장보다 더 넓은 장애인석을 만들었다”며 “장애인 야구팬들의 이동성을 고려해 휠체어가 문제 없이 드나들 수 있게 넉넉한 공간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스카이박스는 kt 위즈파크의 자랑이다. 이 차장은 “총 16개의 스카이박스를 설치했는데 이용객 수에 맞게 사용하도록 8명부터 최대 4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박스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스카이박스 옆에 설치된 ‘파티 플로어석’도 다른 구장에선 볼 수 없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수원시 조 과장은 “구장 내야 2층 스카이박스 좌·우 끝에 2개의 파티 플로어석을 설치해 파티나 행사를 하면서 야구를 볼 수 있게끔 배려했다”며 “홈경기가 없는 날에도 돌잔치용으로 자릴 임대할 수 있어 구단 수익창출에 적지 않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관중뿐만 아니라 야구계 종사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동부건설 측은 “2층 스카이박스 라인에 대형 기자실과 6개의 방송실을 설치했다”며 “2층 정중앙에 만든 메인 카메라실은 한꺼번에 3개의 카메라가 들어갈 만큼 공간이 넉넉하다”고 설명했다.
좌석수를 손해 보면서 기록원실을 본부석 중앙에 설치한 것도 이채로웠다. 수원시 관계자는 “애초 기록원실을 스카이박스 하나를 떼 제공하려 했으나,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정확히 체크하려면 최대한 그라운드와 가까이 있는 게 좋다’고 요청해 본부석 좌석을 떼고 거기다 기록원실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안락함과 편안함. 여기다 안전과 관중의 시야 확보에 주력한 위즈파크
좌석 전체가 안락함과 편안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그라운드 시설물은 안전과 시야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먼저 그물망이 그랬다. kt 위즈파크의 그물망은 15m 높이다. 파울라인과 가까운 익사이팅존은 3m 높이의 그물망을 추가 설치했다. 이중으로 설치한 그물망 덕분에 안전사고가 날 확률은 현저히 떨어졌다는 게 시공사 측의 설명이었다.
그렇다고 안전에만 치중한 건 아니었다. 그물망은 모두 검은색으로 썼다. 기존 녹색 그물망은 플레이하는 선수보다 그물망이 눈에 더 가깝게 보여 경기 관전에 마이너스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검은색 그물망은 녹색보다 덜 눈에 띄고, 선수들의 움직임도 더 집중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과 일본 구장 대부분이 검은색 그물망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차장은 “그물망 선택도 기존 일본산이 아닌 미국산을 사용했다”며 그 이유로 “미국산 그물망이 일본산에 비해 실 꼬임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 투시성이 더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중의 시야 확보를 위해 기둥 설치물을 최소화하고 고강도 와이어(선)를 사용한 것도 눈에 띄었다. 이 차장은 “기둥이 많으면 관중의 시야가 가려 경기 관전에 악영향을 준다”며 “최대한 시야 확보를 하고자 비싸더라도 고강도의 얇은 와이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오락성을 극대화한 부분도 많았다. 우선 양쪽 더그아웃 천장을 투명한 고강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조 과장은 “구장 증·개축 시 일부 팬들이 ‘투명 천장을 통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싶다’는 요청을 해와 이를 적극 수용했다”며 “불펜투구장을 밖으로 내놓은 것도 선수들의 준비 상황을 지켜보고 싶다는 팬들의 바람을 적극 받아들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조 과장은 “더그아웃 바로 뒤쪽의 응원석 역시 국내 최대 규모다. 야구장에서 팬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 크리넥스 스타디움의 '이글스 네스트석'. 실내외에서 음식을 먹으며 편안히 관전할 수 있는 곳이다. kt 위즈파크의 스포츠펍이 완성되면 아마 사진과 같은 곳이 될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다만 외야 정중앙에 위치한 까닭에 옥상에서 관중이 서성일 경우 타자들의 타격에 지장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원시와 동부건설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고려해 이미 대안을 준비해두고 있다”며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문제가 있으면 즉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고 경기력을 외면한 것도 아니었다. 애초 익사이팅존은 지금보다 그라운드를 향해 더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kt 조범현 감독이 “너무 앞으로 튀어나오면 좌·우익수가 수비 코치의 사인을 볼 수 없다”고 조언해 익사이팅존을 뒤로 물렸다.
잔디와 흙 그리고 펜스도 선수들의 안전과 경기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시공사 측은 “그라운드 흙은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흙과 같다”며 “천연잔디 역시 사계절용 잔디를 깔아 선수들의 부상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kt 위즈파크의 펜스는 전부 메이저리그급의 안전펜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군 야구장 최초로 플라스마 조명탑을 설치한 것도 야구계로부터 큰 환영을 받고 있다. kt 위즈파크가 도입한 ‘플라스마 라이팅 시스템(PLS)’은 가장 자연색에 흡사한 빛이다. 덕분에 3시간 가까이 조명 아래서 플레이해야 하는 선수들과 그걸 지켜보는 관중의 눈 피로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특히나 깜박임이나 눈부심 현상이 거의 없어 외야수가 조명에 시야가 가려 공을 놓칠 확률도 매우 낮다는 평이다. TV 시청자 역시 박진감 있고, 보다 깨끗한 중계화면을 볼 수 있다고.
수원시 권기준 체육시설 팀장은 “기존 메탈할라이드 조명의 재점등 시간이 평균 15분인데 반해 PLS는 5, 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여기다 조명 수명도 메탈할라이드가 3천 시간이라면 PLS는 2만 시간 정도”라며 “메탈할라이드가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지는 반면 PLS는 늘 일정한 밝기를 유지해 구장 조명으론 최고”라고 평했다.
![]() kt 위즈파크의 자랑인 플라스마 조명. 국내 기술로 만든 최첨단 조명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kt 위즈파크에 도입된 PLS는 LG전자가 공사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 관계자는 “국내 경기장 조명을 독점 제공했던 외국 업체 대신 국내 업체가 조명 공사를 맡았다는 건 꽤 의미가 크다”며 “LG전자의 기술력이 뛰어나고 PLS가 원체 호평을 받는 까닭에 외국기업이 독점하던 국내 경기장 조명 시장이 kt 위즈파크 공사를 기점으로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와 시공사는 더그아웃에 유니폼을 털고, 스파이크화를 닦을 수 있는 에어건과 샤워기를 설치하는 작은 배려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급 라커룸은 선수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수원시 “프로구단은 시 대신 시민의 여가생활을 책임지는 파트너”
수원시와 동부건설은 kt 위즈 구장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관중 친화적, 선수 친화적, 구단 친화적이 그것이었다.
수원시 조인상 체육진흥과장은 “관중이 편안하게 관전하고, 선수가 부상 위험없이 만점 경기력을 선보이고, 구단이 원활하게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여유공간이 많아야 구단 수익이 증대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프로구단은 시를 대신해 시민의 여가생활을 책임지는 중요한 파트너인 만큼 최대한 구단 입장에서 구장을 증·개축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공사의 전체적인 진행을 kt와 머릴 맞대 상의했고, 잔디 하나를 구매해도 구단 측이 선택하도록 배려했다. 동부건설 역시 구장 증·개축 내내 시와 구단 입장을 반영해 수시로 설계를 바꿨고, 그럴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기보단 ‘증·개축한 구장도 새 구장만큼이나 뛰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다짐으로 흔쾌히 재공사에 착수했다.
![]() (사진 좌측부터) 지정상 과장, 이성기 차장(이상 동부건설), 양기선 주무관, 권기준 체육시설팀장, 조인상 체육진흥과장, 김운남 부장(동부건설). 이들이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보여준' 이들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그런 연유로 kt 위즈파크는 새 구장 건설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310억 원(1차 공사비)으로 새 구장 못지 않은 멋진 야구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조 과장은 “1천억 원 이상 들여 새 구장을 만들지 않아도 충분히 새 구장처럼 만들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준 것이야말로 우리의 최대 자랑”이라며 “최신식 설비를 구축하면서도 구(舊) 수원구장의 전통미를 살리려 노력한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힘줘 말했다.
실제로 시와 시공사는 외야 바깥쪽 담을 그대로 살려 구 수원구장의 향취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
조 과장은 “kt가 사용할 사무실 공간이 세팅되면 모든 공사가 끝난다”며 “추가로 160억 원이 소요되는 2차 공사를 끝내면 관중석이 2만 200석에서 2만 3천 석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시는 kt 위즈파크 개장과 발맞춰 향후 지하철역을 구장 입구 앞이나 지하에 설치할 예정이다. 수원시 권기준 체육시설 팀장은 “kt 위즈파크 앞 사거리는 서울 광역버스가 오가는 교통의 요지”라며 “많은 팬이 편안하게 야구장에 도착하도록 제반 교통 시설 완비에 마지막 정성을 쏟아부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원시장 "시정(市政)도 정치와 같아 페어플레이와 약속 준수가 생명" kt 위즈파크 외벽. 시와 시공사는 구 수원구장의 향취를 간직하고자 외벽을 그대로 뒀다. 이 외벽은 수원산성의 디자인을 차용한 것으로 시 관계자는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야구장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했던 기본 목표였다"며 "kt 위즈파크에 숨겨진 전통에도 집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kt 위즈파크가 갖는 상징성과 의미는 구장 자체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건 지자체의 약속 준수다.
2012년 11월. 전북과 10구단 유치 경쟁을 벌이던 수원시는 10구단 창단 기업에 구장 명칭 사용권을 주고, 야구장 장기임대(25년) 부여, 구장 내 편의시설 및 매점 운영권, 광고권 등 수익 사업권을 100% 내줘 흑자 구단 운영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다 기존 수원구장을 2만 5천 석 규모의 대형 구장으로 증·개축하고, 관중이 많아져 신규 구장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돔구장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야구계는 수원시의 지원책과 비전을 두고 “과연 얼마나 약속을 지킬 수 있겠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지 않은 야구인은 “어떻게 정치인의 말을 믿느냐. 막상 10구단 유치에 성공하면 말을 바꿀 게 뻔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지나친 냉소도 아니었다. 새 구장 건설을 추진한 몇몇 지자체는 처음엔 “누구의 도움 없이 시민을 위해 시가 적극적으로 야구장 건설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가 정작 구장 건설이 구체화되자 슬그머니 연고지 구단에 “돈을 내라”고 요구했고, 돈을 내면 또다시 “더 돈을 내라”고 압박하기 일쑤였다.
서울시만 해도 앞에선 ‘스포츠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야구 발전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적으론 잠실구장 광고권을 회수하고, 고척동 돔구장과 관련해 자주 입장을 바꾸는 등 야구계의 기대와는 다소 동떨어진 행동을 취했다.
![]() 수원구장 리모델링 전, 시공사의 브리핑을 듣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사진 가운데). 야구계는 염 시장을 "최고의 스포츠 지자체장"으로 꼽고 있다. 정치인이든 그 누구든 잘하면 잘한대로, 못하면 못한대로 평가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염 시장은 한국 스포츠계 입장에선 박수 받아 마땅한 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그러나 수원시는 달랐다. 놀랍게도 수원시의 말과 행동은 정확히 일치했다. 수원시는 시비 310억 원을 들여 수원구장을 성공적으로 증·개축했고, 160억 원을 들여 2차 공사에 들어갈 계획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구장 명칭권도 약속대로 kt에 내줘 현재 수원구장은 ‘kt 위즈파크’로 불리고 있다. 야구장 장기 임대와 구장 내 편의시설 및 매점 운영권, 광고권 등 수익사업권을 100% 보장하겠다는 약속도 군말없이 지켰다.
kt 관계자는 “현재 구장 내 매점 계약을 우리 구단에서 진행하는 중”이라며 “광고 역시 구단 차원에서 계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수원시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있던 건 염태영 수원시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kt의 10구단 창단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염 시장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정치인을 두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은데, 어떻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며 “정치도 스포츠와 같아 페어플레이와 규칙 준수가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염 시장은 “처음부터 수원시는 kt와 약속한 내용을 위반할 생각도, 양보받을 계획도 없었다”며 “‘프로스포츠 구단은 시를 대신해 우리 시민의 여가생활과 삶의 질 향상을 책임지는 파트너’란 믿음 아래 더 많은 지원과 도움을 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염 시장의 ‘연고지 구단 kt 지원’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건 아니었다. 염 시장은 “수원구장 증·개축 시 어려움은 없었다”며 “정작 어려웠던 건 지역 내 다른 스포츠팬들을 설득하는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틀린 말도 아니다. 수원은 K리그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연고지로 유명하다. 수원 삼성은 평균 관중이 가장 많기로 소문난 명문 구단으로 열성적인 홈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수원 삼성은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장기임대하지 못해 원활한 수익사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위해 수원시가 각종 혜택과 지원을 내세울 때 축구계가 ‘왜 기존 수원 연고 프로구단인 수원 삼성은 그 같은 혜택과 지원을 주지 않느냐’고 발끈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염 시장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지분을 경기도가 6, 수원시가 4를 갖고 있다”며 “수원시는 ‘야구처럼 축구도 구단에 장기임대권을 주자’는 입장이지만, 도가 우리와 생각이 달라 수원 삼성의 바람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연유로 한때 염 시장은 ‘야구 편향적인 시장’이란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설득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오해는 대부분 해소된 상황이다.
![]() kt 위즈파크 조감도(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염 시장은 “지하철 ‘신수원선’이 2021년까지 개통하면 프로야구는 수원이 합세한 ‘수도권 지하철 리그’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한 뒤 “그때까지 kt가 팀을 잘 정비해 꼭 2021년엔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수원은 상무(尙武)의 도시다. 염 시장은 “조선 정조 때 한양 외 지방에선 수원에서 최초로 무과 과거시험이 시행됐고, 이 무과 시험에 가장 많이 합격한 이도 수원 출신들이었다”며 “그 정기(精氣)를 받아선지 현재 수원엔 프로축구 1·2부리그, 남·녀 프로배구, 프로야구 등 각종 프로스포츠 팀이 우리 시를 연고지 삼아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염 시장은 “씨름 전용경기장까지 갖추고 있는 우리 수원은 앞으로 프로농구팀까지 유치해 그야말로 ‘스포츠의 메카’가 될 것”이라고 다짐한 뒤 “단순 프로스포츠 팀 유치에 그치지 않고, 이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발전으로 연결시켜 명실공히 수원을 ‘스포츠 산업 도시’로 이끌 계획”이라며 “이것이 가능할 때까지 수원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한 태도를 일관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수원시는 애초의 약속대로 kt에게 구장 명칭권을 줬다. 시 관계자는 "'구장을 부를 때 '수원'자를 빼고 'kt 위즈파크'로 부르셔도 된다"며 "어차피 kt 위즈파크가 수원에 있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텐데 굳이 '수원'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연고지 구단 kt의 가치가 높아지는 게 우리 시의 가치가 올라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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