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수박 / 김분홍
넝쿨이 뻗어가는 방향을 편애하면 더 많은 네모를 찍어낼 수 있을까 네모를 찍어내던 빛 그 빛에서 멀어진 나는 타인을 가두고 타인은 나를 가둔다 가지런하게 붙어 있는 타인과 타인 사이에 틈이 생긴다 맥락 없이 튀어 오르는 불만들 벌어진 틈을 메우기 위해 발라내야 했던 위선의 관계를 실리콘으로 봉합할까
타일은 넝쿨에 묶여 있는 유배지 가로와 세로가 직교되면서 익어가는 타일에 곰팡이가 증식한다 우리의 대화도 골이 깊어간다 대화가 번식할수록 넝쿨은 더 많은 타일을 찍어낸다 실금이 생기면서 폭발하는 욕설은 사각이다 모서리부터 물어뜯는다 나는 욕실 바닥에 낀 오래된 물때일 때가 많았다 구획이 선명하지 않은 덜 익은 대화를 선별하는 시간 사다리가 바닥에서 생겨났다 각과 각 사이에 밟아야 할 난간이 주렁주렁 열렸다 ㅡ 웹진 《시산맥》 (2023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