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반도는 서쪽은 백제(전라도), 동쪽은 신라(경상도), 북쪽은 고구려(북한)가 지배하고 있었음.
신라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 멸망
원래 자기 나라 망하게 한 나라 안 좋아하게 됨.(일본이 우리나라 망하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연히 안좋죠)
신라가 백제 고구려 망하게 했기 때문에 백제 고구려 사람은 당연히 신라사람 안좋아함.
그리고 통일신라 후 백제는 정치참여가 완전 막혀버렸고, 고구려는 중국 당나라 놈들 손에 빼앗김.
그래서 전라도에 사는 사람이나 북에 사는 사람이나 경상도 다 안좋아했음.
통일신라의 수도는 경주였음.
통일 신라 망한 후 고구려의 후예(북한쪽사람)들이 고려를 건국.
고려의 수도는 평양.
고려말기 고려는 옛 고구려의 영토를 찾으려고 북으로 군사를 보냈는데 이성계라는 사람이 배신하여 나라가 망함.
이성계는 왜구(일본)를 때려잡던 장군이었음. 그래서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
이성계는 고려를 망하게 하고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어 서울을 수도로 지정.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도 지역감정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음.
그러나 왕이 지지하는 지역이 바뀔 때 마다 피바람이 불었음.
왕이 경상도를 지지하면 전라도사람들이 때거지로 죽고, 전라도를 지지하면 경상도사람들이 때거지로 죽었음.
북한쪽은 허허벌판 변방취급당함. 귀향살이라 하여 감옥으로 이용. 정치에 불만품었다가 모함받으면 보내져버림.
조선시대 경상도 전라도 서로 싸움질만 하다가 결국 일본에 멸망.
일본이 북한쪽에 자원이 많아 광산개발, 철도개발을 함. 북한 공업력 발전. (개발중에 많은 조선사람들이 죽음)
일제시대 때 그래도 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북쪽사람은 러시아로
전라도사람은 중국으로
경상도사람은 일본이나 미국으로 많이 갔음.
러시아나 중국 간 사람들은 총칼들고 열심히 싸우고(만주, 시베리아에서 활동, 기차타고 유럽간 사람도 있음)
일본 미국 간 사람들은 공부하거나 돈벌이.(미국과 일본에서의 독립운동은 아주소극적, 가끔씩 미국에 일본이 하는 짓거리를 고자질하였으나 미국놈들은 자기들 전쟁하기도 바쁨)
돈 없는 사람들은 일본에 의해 만주로 강제 징집되어 철도건설하고
필리핀 태평양에 가서 공항건설하다가 굶어죽거나 맞아죽거나 폭탄터져죽음.
미국때문에 일본망함.
한국에서 일본앞잡이 하던 애들 모두 일본으로 도망감.
일본망해서 우리나라는 무정부상태가 되었으나 불과 몇 일만에 전국에 "인민위원회"를 세워 자주독립 준비를 함.
(그 당시 인민위원회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었음. 그냥 우리 민족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음.)
그런데 일본이 망하니까 중국애들이 공산당과 국민당 둘로 쪼개져서 대판 싸움. 그당시 우리나라 독립군은 공산당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서 활동하고 있었음.
북한으로 러시아에서 독립운동하던 애들이 돌아오고(공산주의 사상을 배워옴)
전라도에 중국에서 독립운동하던 애들이 돌아옴.(공산당 지원 받던 독립군은 대부분 중국에 남아서 공산당과 국민당 전쟁에 참가하여 중국공산당을 도움, 임시정부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독립준비)
경상도에 일본 미국에서 공부하던 애들이 돌아옴.(경상도출신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경상도에서 독립운동하다가 잡혀서 해방되기도 전에 대부분 깜빵에서 죽음)
러시아에서 독립운동하며 공산주의 사상을 배워 온 애들이 대한민국독립준비.
(러시아에서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은 하루빨리 조선이 독립하도록 준비를 다 해놓고 있었음.)
미국은 일본에서 승전축하~를 띵가띵가 하고 있다가 러시아가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하니까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함.
(한국이 걱정되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먹은 일본이 공산화 될까봐 걱정, 왜냐하면 일본이 지리적으로 미국보다 러시아에 더 가깝기 때문, 그래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한국이 필요) 미국은 재빨리 일본을 독립시켜줌. (러시아가 와서 일본을 해방시키면 일본은 러시아편이 되기 때문에 그전에 자기들이 먼저 해방시키고 미국의 꼭두각시들을 정부관료로 임명.)
한국에 군대를 파견해야 하나 군대를 파견할 때 쯤이면 이미 대한민국은 독립함. 그래서 이승만을 보내서 미국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도록 시킴.
이승만이 독립을 방해하고 시간을 자꾸 끌자 결국 러시아에서 온 애들이 북쪽에서 조선인민공화국 독립선언을 해버림.
임시정부출신이자 하나된 조국의 독립을 꿈꿨던 김구는 북한에 찾아가 철회를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미 정부가 조직되어 있었고, 이승만 마저 남한에서 북한을 포함하지 않는 단독정부를 수립하겠다고 하자 노발대발하며 이를 말리다가 암살당함.(원래 남한에서 제일 유력한 대통령 후보는 김구였음. 빨갱이가 김구를 죽였다고 소문냄, 그러나 제일 득본 사람은 이승만)무정부상태 끝.
김일성은 북한에서 이승만은 남한에서 대빵짓을 함. 이때까지도 미국은 열심히 일본에만 주둔. 한국은 그냥 방패.
김일성입장에서 볼 때 남쪽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미국 식민지배 받고 있는 우리동포들이 불쌍해짐.
김일성은 러시아에 가서 "나 우리 동포들 해방시켜야 하니까 군대 좀 빌려주쇼!" 함.
근데 러시아는 직접 나서기 좀 그럼. 유럽이 동독 서독 마주하고 있고 일본에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음. 전쟁일어나면 동서로 싸워야 할판. 스탈린 말하길 "내가 직접 도와주기는 좀 그러니까 중국에 가서 좀 빌려봐라." 하며 편지를 써줌.
중국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우리독립군의 힘을 빌려 국민당VS공산당 전쟁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여 중국본토를 통일한 상태였음.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망가서 대만애들을 조지고 그 섬에 틀어박혔음. (대만에는 원래 중국인이 아닌 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국민당이 들어오기전에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고, 일본이 지배하고 있을 때 잘 살고 있었는데 국민당애들이 와서 대만애들 막죽였기 때문에 대부분 대만원주민들은 일본을 더 좋아함.)
중국공산당 대빵 마오쩌뚱은 그래도 공산진영 제일 대빵인 러시아 말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자기가 지원하고 도움 받았던 조선독립군과 무기를 북한에 보내 줌. 중국에서 일제시대 독립운동하던 조선독립군은 이제서야 한반도로 돌아오나 고향으로 가지는 못함. (전라도는 남쪽땅.) 조선독립군은 빨리 고향에 있는 고향사람들을 빨리 해방시켜야 겠다고 생각함.
이승만은 남한에서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려고 하였으나 인재가 없었음. 그리고 자기의 정치적 기반이 약함. 미국에 이러한 이야기를 하니까 조선에서 일본앞잡이하다가 일본으로 도망친 애들을 데려가서 쓰라고 소개시켜줌. 이승만은 일제시대 때 계속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남한에 가더라도 정치적 기반이 별로 없음. 그래서 조선에서 일본 앞잡이 하면서 통치하던 경험있는 애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들어와서 대한민국정부를 세움.
남한은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일본앞잡이 출신들에 의해 통치되어졌으나, 제주도는 달랐음. 제주도는 섬이였기 때문에 남한정부의 간섭을 좀 덜 받을 수 있었고,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등 비교적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 그래서 초창기 북한과 남한 정부가 수립되기전 설립되었던 "인민위원회"가 아직 살아있었고 이들은 일본 앞잡이들로 구성된 이승만 정부를 인정하지 않음. 이승만은 미국에게 병사를 빌려 군대를 동원해 제주도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렸음. 모든 일이 끝난 후에는 언제나 처럼 제주도에 빨갱이가 나타나서 죽였다고 국민에게 알림.
이승만은 남한에서 일본 앞잡이 출신 관료들과 함께 기생을 끼고 띵가띵가 서울에서 잘 놀고 있었다.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남한군인들은 주말을 맡아 외출하여 토요일 저녁의 여흥을 즐기고 깊은 잠에 들어있었다.
소련제 탱크는 포 한발 쏘지 않고 아무소리도 없이 38선을 지나 내려오기 시작했다.
38선에는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만 있을 뿐 그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김일성은 "인민해방전쟁" 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남쪽 동포들 우리가 왔소!! 우리가 해방시켜주겠소!!" 하면서 쳐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곧 서울함락이라는 전보를 받자마자 바로 일본 앞잡이 측근들과 함께 서울을 버리고 남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도망치는 중에 한강대교를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북한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그러나 그 한강다리에는 많은 피난민들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꾸궁!
다리는 폭파되고 그 위를 건너던 피난민들은 폭발하는 폭탄과 함께 분해되고 찢기어져 한강 밑으로 수장되었다.
다리를 이미 건넜거나 건너기 전이었던 사람들은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었다.
북한의 진격은 거침이 없었고 전라도까지 이미 북한군에 점령되었다.
그 북한군에는 중국에서 활동하던 조선독립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드디어 조국으로 그리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라도 사람들은 군인을 본적이 없다. 군인들은 이미 경상도 낙동강 까지 도망간 상태였다.
전라도 사람들은 북한군이 "해방하러 왔다!" "고향사람이다" 라고 하니까 그냥 밥 한끼 지어줬다.
낙동강 밑으로 있는 경상도 사람들은 그래도 겨우 한숨을 돌림.
낙동강에서 북한군, 소위"해방군"이라 칭하는 그들을 저지할 수 있었고, 일본에 있던 미군들도 부산항에 상륙하기 시작.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남한은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전라도에 있던 북한군은 보급로와 퇴로가 완전히 끊겨버리고 전라도는 대한민국 국군이 다시 점령한다.
북한군은 퇴로가 끊겨있어 도망갈 수 없어 산으로 도망갔고 근데 산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밤이면 마을로 내려와야만 했다.
근데 이 과정에서 북한군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려서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중국에서 조선독립군 활동을 하다 북한군이 된 자식을 둔 부모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들을 몰래 숨겨놓고 먹을 것을 주다가 걸려서 일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하였다. 낮에는 남한 군인들이와서 빨갱이라고 죽이고, 밤이 되면 북한군들이 산에서 내려와 남한군을 도왔다고 죽였다. 둘다 안도와주면 안도와준다고 죽였다. 전라도는 지옥이 되었다. 남한군인은 대부분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경상도에서 징집된 경상도 사람들이었다.
또 한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이승만 정권은 남로당 민족주의자들이 걱정이 되었다. 적군은 아니지만 아군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죽이기로 한다. 그런데 죽이려면 한번에 모두를 깨끗이 죽여야 후환이 없기 때문에 남로당 출신 박정희에게 제안을 한다. "남로당 명부를 넘기면 너는 살려주겠다." 남로당 출신이었던 박정희는 혼자 살아남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 공로로 박정희는 남한육군장군이 되고 훗날 쿠데타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 박정희의 배반으로 대부분이 죽고 겨우 살아남은 몇몇이 북한으로 도망친다. 북한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국민들은 또 그들을 빨갱이라고 생각했다. 이 민족주의자들은 훗날 북한에서도 작살이 나면서 처참한 결말을 맞게된다.
남한군은 북한을 패배시켰다. 북한은 괴멸직전이었고 곧 통일이 될 듯 보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마오쩌뚱은 과거 자신을 도와주었던 조선독립군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 그리고 미군이 바로 앞마당에 진을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포함시켜 중국군을 파견한다. 마오쩌둥 아들은 미군 비행기의 폭격을 맞고 전사했다.
38선에서 서로 교착되던 전쟁은 그렇게 2년을 더 끈 뒤 1953년 38선 근처에서 러시아와 미군장군들이 만나 휴전선을 긋고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며 끝이났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한에서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골이 점점 깊어져간다.
전라도사람들은 경상도 사람에게 죽임당한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경상도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전라도 사람들이 그냥 빨갱이인 줄 안다. 방송에서 그렇게 나오니까.
이승만이 독재하고 박정희가 독재하고 전두환이 독재하니까, 이 두지역 사람들은 힘을 모을 기회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7, 80년대는 투쟁의 역사였다.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으로 전국에서 최루탄 냄새가 사라지질 않았다.
독재에 투쟁하는 데모가 많아지니까 전두환이는 시선을 돌릴만한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전두환이는 독재에 대항하는 전라도를 본보기로 조져버렸다.
광주로 들어가는 모든 길을 막고 건물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모두 총으로 쏴죽여버렸다.
그리고는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전라도에서 빨갱이가 나타나서 처치를 했다고 그랬다. 그 후 사람들은 광주에 빨갱이가 나타난 줄 알고 지냈다. 광주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은 줄 몰랐다. 사람들에게 독재보다 빨갱이사건에 더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유일하게 힘을 모았던 때
노무현 탄핵 때 경상도 전라도 모두 촛불들고 노무현 탄핵 반대.
한나라당 민주당 모두 쫄딱 망하고 열린우리당 집권.
열린우리당이 집권하게 되지만 힘 발휘 한번 못 해보고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망함.
노무현은 검찰개혁 한번 해볼려고 젊은 검사들은 정의로울 거라 생각하고 그들을 불러 토론했지만
이미 썩어있었음.
이 시대의 젊은이는 배고픈 소크라테스 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고 당당하게 소리치는 개막장상태.
연예인들이 맨날 나와서 나는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 고 외치니
학생들이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줄 알고 자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하면 잘난척 한다며 까는 이상한 나라.
옛날에 해먹던 놈들 계속 해먹으라며 국민들이 뽑아준 한나라당과 민주당 컴백.(딱히 대안이 없다는 것이 국민들 판단. 대안이 없도록 이미 정부가 구성되어 있음. 일본앞잡이 했던 놈들은 이미 다 잘살다가 죽고, 후손들은 미국이나 일본 이중국적자가 되어 한국에서 손 볼 수 없는 불사신이 되었음. 법도 이들을 보호하는 법으로 모두 개정되었고 그들의 재산을 후손들에게 잘 전해질 수 있게 대한민국법으로 잘 보호되어있음. 그들은 억울하면 국회의원하라고 함. 국회의원 되도 1~2명으로는 법을 못고침. 그들은 똘똘 뭉쳐있음. 국회의원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법개정을 마음대로 못하도록 똘똘뭉침. 국개의원 과반수 넘어야 법개정 가능. 법을 개정하려는 의지를 가진 국개의원이 150명 이상이 필요함. 한국국개의원들은 자기 의사대로 투표하지 못하고 무조건 당의 지시를 받아서 당원 전원 찬성, 또는 반대. 국민들이 독재라고 할까봐서 가끔 반대 1~2표와 기권을 일부러 함.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대한민국헌법을 바꾸기보다 망하는게 더 나을 지경.)
빨갱이 타령은 21세기 오늘날 2012년에도 계속 쭉~
이승만 정권과 한나라당의 관계는...? 한나라당이 자주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한나라당의 이유있는 변신.
나쁜 짓 할 때 마다 이름을 바꿈. 이름을 바꾸면 모든 죄가 사라지고 국민들이 용서하고 끝.
조조에게 패한 관우가 중국에서 추앙받는 이유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에서 그가 의리와 충의의 사나이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관중은 관우를 실제 보고 쓴게 아니죠. 그 시대에 관우가 있었다라는 사실만을 가지고 그의 행적을 비춰 추론해서 쓴 것이지. 사람들에게 추앙받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참역사는 아니지요. 진짜 역사는 "관우가 있었다"하는 사실 뿐이고, "관우가 어떤 인물이었는가" 하는가는 역사가의 주관이 섞여있는 것입니다.
조선후기 경상도 차별이라면... 이인좌의 난이 있겠군요.. 조선후기 최대의 난으로 기록된 이난으로 소론과 남인은 몰락하게 됩니다. 당시 영남의 주류학파는 남인들 이었는데 이후 그들의 조정 출사가 원천적으로 봉쇄 당해.. 흥성대원군의 집권기 까지 이어진 기간이 됩니다. 물론 영남유림들이라고 모두 출사가 봉쇄 당하지 않았지만 영남기호학파가 아닌 영남학파 남인은 조정출사 하지 못하게 되었죠.. 유림이 과거를 보지 못하는 것은 당시대의 큰차별이었습니다. 영남 유림의 대부분이 그때 몰락합니다.
'제가 말한 역사가 진실이다라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런 사실들도 존재했다라는 것을 말한 것 뿐입니다.'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사실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써의 역사'영역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 역사적인 근거(라고 하기에도 빈약한)를 대시면서 말씀하시던분은 어디로 사라지시고 '그저 제 생각입니다. 역사 해석은 자유아닙니까?'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하죠. 그리고 역사 해석은 말씀대로 자유입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사실에 부합하게 해석해야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근거와 사서를 가지고 와서 얘기하는건 역사 해석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하는거죠.
신라에 의해 백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백제사람은 신라사람을 안좋아할 수도 있다고 말한겁니다.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사람을 싫어할 수 있다고는 말 안했습니다.
이인좌의 난은 노론과 소론연합의 대립이었고 그중심에 영조 경종 사도세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 경상도 지역차별이라곤 하지 않습니다.
신라에 의해 백제가 패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사실이 아닙니까? 저는 제 나름의 역사적 사실들을 잘 부합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이해,그리고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이 북한 빨치산이 된 배경. 어떻게 일본매국노가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였나.|
선생께서 쓰신 글 제목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영국와 스코틀랜드는 좀 그럼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고, 서독과 동독사람도 조금 감정이 있죠. 오랜시간을 역사를 공유한다 하여 그런것이 없다고 하면 독립국가가 없어야 하는데, 독립하려는 국가는 항상 출현합니다. 완전히 영향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께서 쓰신 댓글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전라도가 나오고, 글 맨 처음부분부터 백제를 언급하면서 마치 이 때부터 지역감정이 싹트고 있었다..식으로 쓰시고는
이제와서 백제 멸망때문에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한테 감정있는거 아닙니다. 하시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럼 글에다 백제 이야기는 꺼내시지 말았어야지요. 선생께서 국사 공부를 얼마나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역사에 대한
지식또한 풍부해야합니다. 이덕일 같은 사람보세요. 국사를 그정도 공부했기에 환빠성 짙은 글과 노론 음모론을 당당하게 중앙일보에 게재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제가 보기엔 선생께서는 '이이화 선생님이 들려주는 만화 한국사 시리즈'를 한번 정독해보시는게 좋을 것같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 제가 잘못 했습니다. 역사도 모르는 제가 우리민족의 역사를 언급하려다 보니 범위를 너무 방대하게 잡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전라도 경상도 색깔논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결론을 <아주 나쁘게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전라도 빨갱이만 죽이지 말고 경상도 쪽바리도 죽이자!" 인데 사실 전라도 경상도라는 지역명은 글을 단순화하기 위해서 억지로 끼워맞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의 논점은 경상도 전라도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의 비극입니다.재 맘대로 휘갈긴 글일 뿐인데, 여기 계신분들은 모두 똑똑하신 분들이시니 제가 쓴 글이 큰 영향을 끼칠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기대는있지만요.
고려의 수도는 평양???
틀렸습니까???
네, 틀렸습니다. 개경(지금의 개성)입니다.
근데 이건 중학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ㅋㅋ 진짜로 물어 보신것임? 당연히 개성이죠.
개경이 평양이고 남경이 서울인줄 착각하고 있었음. 평양은 서경이라고 또 따로 있군요.
역사 관련 나열은 너무 뭐랄까 본인 상상에 의해 쓰여진 글들이 많아서 제목에 감히 "무엇에 대한 이해"라 적긴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중국공산당님의 생각엔 동의합니다.
지역감정, 색깔론을 떠나서 하나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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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중심으로 책을 읽으면... 박정희는 일본사관학교 졸업 후 만주로 가서 독립군 때려잡다가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로 돌아와 민족주의 계열 정당에 참여하였고, 6.25와 함께 민족주의계열이 미군의 비호아래있던 일본매국노들에게 숙청을 당하자 민족주의자들 명부를 넘기고 자기는 다시 그 일본매국노들의 장군이 되어서 나중에는 쿠데타로 대한민국을 독재통치하였다 하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책은 안보이고, 박정희는 새마을운동과 경부선철도 건설로 우리나라를 경제대국으로 이끌었다. 뭐 이런 내용밖에 없음.
사실 제 지식이 짧아서 저 위의 글은 사실 논란의 여지가 많고, 허접스럽긴 합니다. 토론을 하면서 여러가지 사실과 생각을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접스런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분들은 당시에 돈 많으셨던 위인들이니 동서남북으로 마음대로 가시지만, 일반적으로 저 분들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돈 없는 사람들로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으로 간 경우가 많을 거라 판단하여 적은 겁니다. 중요한 것은 경상도 사람이 중국에 갔느니 러시아에 갔느니 전라도 사람도 미국에 갔느니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저렇게 일본 때문에 각국으로 흩어져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한 곳에 모이니 우리민족끼리 싸우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일본만 살판 났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붕당정치의 중요 파벌들은 다 기호사림(서울, 경기, 충청도 유림)들입니다. 영남사림, 호남사림의 경우 기호사림들처럼 무슨 학파처럼 난립하는 구조가 아니었고 남명(후에 남인), 퇴계학파(영남학파)도 끝내 기호사림에 의해서 정계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붕당의 당파는 기호사림의 분열이었습니다.
영남사림, 호남사림의 대립이라는 관점이 애초에 사실도 아니며 그런것은 있을 수도 없죠.
경상도의 정치사에서 경북과 경남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됩니다. 부산 경남은 동남권 밸트는 정통적 야당지역 이었으며 김영삼의 3당 합당 전까지 집권당의 우세지역이 아니였습니다. 전라도 VS 경상도의 대립적 시각으로 정당사를 본다고 한다면 경남, 부산은 집권을 지지한 지역이 아닌 야당지역이 됩니다. 3당합당 전까지..
전쟁중 빨갱이 처단사건... 그 피해는 호남지방보다 경상도 특히 경남 서부지역이 더 컸습니다. 일명 보도연맹사건이라고 하는데.. 호남에선 국군의 갑자기 철군을 해 보도연맹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면.. 하동, 남해, 산청, 거창, 진주,통영, 마산에서는 그 피해자 규모는 작게는 수집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보도연맹으로 피해를 본 지역은 경남의 대부분으로 아직도 발굴중이며 그것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해야 합니다..
정확하지 않은 풍설이나 이설로 피해를 보신 분들도 많은데 억측으로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을 전쟁중에 빨갱이라고 했고 죽였다는 식의 글은 상가해 주기시 바랍니다. 보도연맹사건을 자료를 알고 싶으면 '역사비평사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을 추천해 드립니다.
억측이 아니라 과거에 저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목이 두렵다하여 안좋은 과거라 하여 숨기면 안되고 그냥 까놓고 왜 그렇게 되었나를 이야기 해보자는 거죠. 경상도가 잘못했다, 전라도가 잘못했다 이야기 하자는게 아니라, 이 두지역의 반목은 그 지역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정치하는 윗 대갈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현재한국의 지역감정의 기원은 박정희 시대 때, 위협적인 지지도로 급부상하던 김대중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그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전라도(+경남) 역시 여러의미에서의 견제받게 된 것에 있다고 봅니다.
박정희 이전에는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 간에 서로 견제하는 그런 일이 없었나요?
과거 정치체의 충돌이나 사회변화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갈등이 생겨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갈등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악감정이 문화적으로 유전되는건 몇 세대 뿐이지요. 가령 임진왜란 관련 컨텐츠를 접하며 느끼는 대일 적개심같은 건 경험이 문화적 유전자속에 남아있어서라기 보단 아직 증인이 많이 살아있는 2-3세대 앞의 일제감정기시대의 경험의 소급일 뿐이죠. 이순신같은 캐릭터도 근대에 재발굴되어 유행했던 것이구요 80년대초 학생들 란도셀 가방에 적지않게 붙어있었죠.
현재의 지역감정은 과거의 역사적갈등을 계승하지는 않습니다. 정권에 필요하에 창출 조작되고, 과거역사가 덧붙여 진 것이죠
지역감정은 과거의 역사적갈등을 계승하지 않는다 하셨는데, 그러나 결국은 정권의 필요하에 창출되고 조작되어 다시 계승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득한 시대부터의 갈등의 실체가 존재하는 듯 연출하는거죠. 예를들어 지금의 영호남 갈등구조속에 신라백제갈등구조의 실체가 존재합니까 그건 허상이죠.
표면적으로는 없지만, 잠재의식이나 내재된 정신 속에 남아있지 않을까요. 나비효과 같은.
해방전까지 주된 지역감정은 기호파와 서북파사이의 갈등입니다. 기호파는 간단히 수도권을 중심 학자(이자 정치가)이고, 서북파는 평양을 중심으로 황해도지역 출신 학자입니다. 주로 기호파가 세력을 잡고, 서북파가 차별을 받는 형국..(그럴수밖에 정권의 중심인 한양을 기반으로 한게 기호파)
닉스님이 말씀하신데로 영남이나 호남은 기호파 계열 출신들입니다. 기호파는 기호파끼리 서북파는 서북파끼리 똘똘 뭉쳤습니다.(물론 권력층인 기호파 내에서 동인 서인이니 북인 남인이니 갈라지기는 했지만, 그건 주로 중심 인물이 한양내 위치가 어디냐로 갈라집니다.
예를 들어 동인/서인 갈라지는게 심의겸과 김효원의 충돌인데, 한양내에서 김효원집이 심의겸 동쪽에 있다고 김효원 세력을 동인, 심의겸을 서인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북인/남인도 이발이 한양내 북쪽인 북악근처에 살았다고 그 세력을 북인, 우성전이 한양내 남쪽인 남산근처에 살았다고 그 세력을 남인이라 칭함..)
간단히 한양 내에서 지지고 볶고 갈라치고 했습니다.
기호파는 기호파끼리, 서북파는 서북파끼리 똘똘 뭉쳤는데, 예를 들어 첫 민족주의 정당인 한국독립당 내를 도산계와 이동령계로 나누는데, 한쪽은 기호파(이동령계), 한쪽은 서북파(도산계)입니다.
일제시절 민족운동가 탄압사건으로 수양동호회, 흥업구락부 사건이 있는데, 이 역시 한쪽이 기호파, 한쪽이 서북파..
일제 당시 기독교를 서북파가 주도하는 경향이었는데,(이는 중심 권력에서 밀려나서 보다 외부 문물 수용 관대한 경향이 있고, 중국과 거리가 가까워서 외국 문물이 더 쉽게 접할수 있어서 서북파 내의 기독교의 비율이 높음)
이에 대응해서 기호파 기독교인들이 적극신앙단을 만들어 대응했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여기는 서북파가 주도)에 의해 이단으로 얻어맞고 지지부진하다가 해체됨..
기호는 기호, 서북은 서북끼리 단결하는건 독립운동가/친일파 사이에도 예외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방응모의 경우, 안창호 선생이 체포, 투옥, 입원 생활을 지원해준게 친일파 방응모.. 조만식이 경영난에 시달리던 조선일보를 안정적 운영을 위해 조선일보 인수를 권한 인물도 방응모.. 해방뒤 김구가 국내에서 만든 정당인 한국독립당의 상무위원이 방응모.. but, 방응모와 안창호, 조만식, 김구와 큰 친분은 없었다고 합니다만, 이렇게 지원을 해준건 모두모두 서북파..
같은 파벌내에서 독립운동가/친일파 가리지 않고 서로 교류하며 돕는 반면, 독립운동가 사이에서도, 친일파 사이에서도 기호/서북파로 나눠서 서로 갈등했다고 합니다.
방응모를 예를 든건, 일명 민족지도자 또는 부유한 친일파의 경우 독립운동가를 하다가 또는 관련하다가 친일로 전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친일파 시절 독립운동가와의 교류를 과거 업적(독립운동)과 어떻게 연관할 가능성이 있지만,
방응모는 진퉁 친일파.. 독립관련 없는 알짤없는 걍 올곧은 친일 자본가..라서 예를 들었습니다.
(방응모가 독립운동을 했다 또는 지원했다라는 멍멍이 소리가 아님. 방응모는 그런거 한적없는 걍 친일 자본가)
이세상을 참 단순하게 보시네요
모든 역사를 무슨 경상도vs전라도의 구도로만 보시려고 하나; 참 편협하시네요
우리민족역사가 너무 복잡하게 꼬여있어서 귀찮아서 단순화 시켜버렸습니다. 경상도 전라도는 그냥 지역적, 문화적인 차이를 잠깐 언급한 것인데, 어차피 논문을 쓰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제 생각대로 휘갈기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보아주세요.
이거 참.... 진실 반에 거짓이 반이군요.
이현령비현령
제가 이 글을 처음부터 무슨 역사에 대한 사명이나 책임의식 가지고 쓴 것도 아니고 몇년의 역사적고증을 거쳐 쓴것도 아니고 단시간에 그냥 제 생각대로 날림으로 썼는데 글에 대한 책임을 원하시니, 어차피 판단은 독자들이 하는 것이고, 제가 쓴 글이 너무 책임이 없다고 하면 그냥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철저한 고증과 역사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세밀하게 기술했어야 하는데, 사람들을 설득시킬 근거없이 제 생각을 적은 것이 잘못이겠지요. 여러분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완벽한 글을 쓸 수 있게 되면 그 때 글을 올리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_-; 걍 얌전히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위에 댓글을 보고 결국 입을 열지 말입니다.
뭔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의 책임에 대해 좀 잘못 생각하고 계신게 있는데, 자기 일기장처럼 자기만 허용된 폐쇄공간이 아니라, 공개장소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이상 반드시 따라붙게 되는게 그 비판을 마주할 책임이지 말입니다. 애초에 그러한 의견표명의 자유는 오로지 그 의견을 낸 사람으로써의 책임 - 그에 따라오는 모든 비판과 비난 - 을 마주한다는 약속 아래에 성립이 되지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명의식도, 책임의식도, 고증도 없으면서 역사에 대한 글을 (감히) 쓴다는 것은 시작부터 "이건 내 상상과 추측에 기반한 픽션에 불과하니 부정확한 점이 조낸 많으오"라고 깔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우선 생각해보셔야 하고, "제 판단은 독자들이 하는 것이고"라고 하셨는데, 다무슨 착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앞서 여기에 댓글 단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 "독자"들이지 말입니다.
그래놓고서는 이 난리통 벌어지니까 이제 와서 "그럼 삭제하지, 뭐"는 까놓고 말해서, 이상한 소리해서 사람들 성질 긁어놓고서는 "아냐? 아님 말고" 한 마디로 스리슬쩍 넘어가는건데, 다른 무엇도 아니고 사람들은 바로 그런 태도에 화가 나기 때문에 비판과 비난으로써 글을 올린 사람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이지 말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더 열받는 것은, 이로 인해 발생한 논란을 걍 '오픈' 상태로 마무리 하는 정도가 아니라, 논쟁 벌어지는 내내 무수한 사람들이 그 의견의 무리수를 지적했음에도 잘못 알았다던지, 내가 틀렸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지 말입니다.
지금 이딴 식으로 논쟁 마무리 한다고 댓글 다신 것은 쉽게 말해, "아오 샹 나 죽어도 내가 틀린거 인정하기는 싫지만, 다들 조낸 화내니까 걍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지. 꼬우면 글 삭제하면 되는거지?"
...이런 식의 아주 무책임한 인상만을 남길 뿐이지 말입니다. 실제 의도도 그런 것 같다는 심증도 매우 짙고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상황 마무리 지어버리고 나서 다음 글 쓸 때 사람들에게 선입견이 없기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가 될 공산이 크지라.
참고하시면 좋겠심더.
(ps) 자기는 아무런 근거나 고증이 없어도, 그걸 지적하는 사람들의 견해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기가 쓰는 글이 남을 설득하기를 바라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거참...댓글을 다 안읽어보셧나??? 백제와 신라를 전라도와 경상도랑 연관지어 이야기 한것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뭘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건지. 제 눈에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남들이 다 까니까 슬그머니 나타나서 같이 까는 걸로 밖에 안보이는 군요. 자기 생각이나 주장도 없이 남들이 했던 이야기 반복해서 똑같이 주장하는거 지겹지도 않습니까??
이런글에 열심히 글올려주신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백제는 원래 경기도(한성시절)아니면 충청도(공주, 부여시절)로 봐야되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