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페 “시인과 농부”(Suppe-Ouverture zu “Dichter und Bauer”)
프란츠 주페 (Franz Suppe, 1819∼1895)의 "시인과 농부 (Dichter und Bauer)", 이
유명한 서곡은, 젊은 시절, 고전 음악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내게 이정표 노릇을 하던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도 묻는 이가 있다면 이 작품을 고전 음악 입문의 길잡이로 추천하곤 한다.
내용이 풍부하여 초심자에게도 지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인", "농부"
예민함과 투박함을 대변하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단어가 나란히 나열된
제목은 호기심마저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측하건대, 연주에 높은 기교를 요하고 있지 않음인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악단들에 의해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프란츠 주페 (Franz Suppe)는 비엔나에서 주로 지휘자로 활동하였지만
작곡도 하며 "경기병" 아름다운 갈라테아 (The Beautiful Galathea) 등 30여 개의
오라토리오를 선물하며 그곳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주페의 유명한 서곡 "시인과 농부"는 애초 오라토리오의 서곡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칼 엘마르 (Karl Elmar, 1815 - 1888)가 쓴 코미디 희곡
"시인과 농부 (Dichter und Bauer)"의 공연에서 사용되었던 무대 음악의 일부분이었다.
연극 "시인과 농부"가 1846년 8월 비엔나에서 초연되었을 때 적절한 도입부가
필요하였던 젊은 지휘자 주페는, 잠시 일시적으로 소용될 것으로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을 제시하는 주제에 개정을 단행하였다.
이후 주페는, 초연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자,
이 작품에 대대적인 개정을 단행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윗 사진은 Karl Elmar, 이것은 필명이며 본명은 Karl Swiedack이다)
한편 초연을 관람하던 악보 출판업자 조세프 아이블 (Josef Aibl)은, 크게 감명을 받고
즉석에서 이 작품의 판권을 사들이게 되었는데, 그 가격이, 믿어지지 않겠지만
겨우 8 Guidler (길더)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궁색했던 젊은 음악가 주페는 이 계약을 받아들였지만, 그는 이 날의 어리석었음을,
눈을 감을 때까지, 후회하였다고 한다.
물론 출판업자 아이블은 52여 개의 편곡 버전까지 펴내며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시인과 농부의 줄거리는 자신이 돌보는 한 여학생에 대한 후견인의 오해를 그리고 있다.
이 소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농부라는 낮은 신분을 가지고 있어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를 포기해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소녀의 연인은 비록 농부의 신분이었지만, 한 도시에서 거행된 문학적 결투에서
이름있는 시인을 물리친 바 있는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그 소녀에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기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농부는 그 기회를 살릴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이가 지극한
한 농부의 지혜 덕분에 Happy Ending을 맞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무겁게 현들이 깔리는 가운데 도입부를 준엄하게 시작하는 관악기들은
앞으로 공격적인 그 무엇이 닥쳐 올 것임을 암시한다.
리고 이어지는, 현들의 신코페이션 (Syncopation) 연주,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이유 중에 하나인 이 선율은 높은 도약을 위하여 폭넓게 가라앉는다.
이를 방해하는 보다 평온한 분위기의 왈츠는, 꼬리를 물고 숨 가쁘게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응축된 총주에 밀려 황망히 자리를 피하더니, 꼬라를 무는 반복으로
과감한 배경을 그리며 다시 돌아온다.
결국엔 힘차고 빠른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대세를 장악하지만, 마무리는
안간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신코페이션으로, 마치 로시니를 연주하듯 힘차게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