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귀여운 막냉이 지성이!
나도 수없이 뒤엉키는 하고픈 말을 평평한 곳에 좌악 쏟아놓고 하나씩 들여다보며 그 중에 예쁜 것들만 알알이 골라낼 시간을 갖느라 공편 올리기를 차일피일 미뤘더니만 우리 지성이가 먼저 편지를 보내줬네. 지성이한테는 늘 선수를 뺏긴다. 귀엽기부터(?) 있는 힘껏 마음을 표현하는 것까지 죄다. 그래서 하이퍼토닉 활동 때에는 우리 지성이 때문에 몇 번이나 눈물이 났다구 이제야 머쓱하니 얘기해 봐. 포스트잇에 말로 하긴 부끄럽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내 소중한 사람들아, 너희를 참 많이 아껴'를 적어간 팬싸 날, 단상 제일 첫 번째에 앉아서는 포스트잇을 읽자마자 "어떡해, 눈물날 것 같아." 라고 말하던 네 눈에 진짜 찰방이던 그 눈물이 아직도 남아 내 마음을 짜르르하게 해. 우리 막내 보고싶어서 우짜누.
원래 말이야,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추상적인 상태 그대로 두는 대신 언어로 구체화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그 말 자체가 가진 힘이 내게 당초의 의미를 더 명료하게 느껴지게 하잖아. 나는 그러한 말의 힘을 꽤나 겁내는 편이라 지성이에게도 손편지를 마지막 즈음에야 겨우 전할 수 있었어. 너는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그저 생각으로만 하는 것과 어떤 말로 전해줄까 한참을 고민하고 다듬어서 글자로 새겨넣는 건 정말로 다른 거라서 나는 그저 나를 위해, 나중에 내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위해서 꽤나 오랜 날짜를 회피한 채로 흘려 보냈던 거야. 그러면서 그렇게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지성이가 내가 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줄 수도 있지 않은가 억지도 부려보고. 그치만 사실은 알고 있었어. 말로 해야만 전해지는 것도 분명히 있다는 걸. 그래서 그렇게 글로써 너와 내게 선언한 탓에 지금 내 마음이 조금 더 쓰리고 아픈 것일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건 무척이나 잘 한 일이었다고 생각해. 다만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다면 하루라도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이야기해 줄걸,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원래 지나간 것에 후회한들 바뀌는 건 없다는 만고불변의 이치를 다시 되새기기로 했어. 지난 날 우리가 했던 노력과 그로 인한 결과를 소중히 여기기에도 시간이 한없이 부족한 기분이 든다 지성아. 그래서 그때 편지에 적었던 대로 나는 '재밌는 누나' 칭호를 얻어 나와 대화하는 그 잠깐 동안만이라도 너를 즐겁게 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해.
그치만 마무리라니, 행복한 마무리라니. 네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그 부분에서 유난히 쓸쓸한 기분이 들었어. 아주 요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비뚜른 심리가 들기도 하고 말야. 제주에서의 너희는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여서 제주에서 돌아온 너희가 조잘조잘 하나씩 꺼내주는 이야깃거리나 사진을 보며 나도 덩달아 같이 신이 났었어. 그러면서도 또 동시에 묘하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동화의 마지막 완결 장면을 보는 듯한 기시감도 들었던 거야. '티에이엔'이라는 내가 더없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야기를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문장으로 끝맺는 듯한 아주 서운한 기분이 들더라. 너희의 행복을 바란다고 계속 말했으면서 너희가 행복하게 웃는데도 서운하다니 나란 사람은 아주 모순덩어리구만 생각하면서. 나에게서 너희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려서, 떼어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에 나버리는 생채기가 지나치게 깊고 아팠어. 그러면서 진정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끝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원래 끝이라는 건 내가 소중히 여겼던 그 무게만큼을 고스란히 다 견뎌야만 온전히 맞이할 수 있는 건데, 하고 생각했단다. 그치만 그건 내 스스로가 초래한 무게니 내가 견뎌낼 것이고 너희는 너희 각자의 무게를 견뎌내며 예쁜 마무리를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겠지. 하지만 아프거나 좀 미운 마무리면 뭐 어떠냐 하는 생각도 사실 해. 사랑한 만큼 양껏 아플 수 있을 때 데굴데굴 굴러놓아야 지금 생긴 상처가 뒤늦게 덧나지 않기도 할 테니까. 그치만 내 몫의 무게를 너희에게 얹을 순 없는 거라 지금 나는 너희 바지가랑이를 질질 붙잡는 추잡한 짓만은 안하려고 아주 이를 꽉 깨물고 있는 거야 으히히.
우리 지성이. 음반사에서 후딱 넘어가라고 해서 어어 가야 한대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 잠시만, 하고 붙잡으며 꽉꽉 채워주던 포스트잇이나 대화할 때면 항상 반짝거리던 눈동자나 조금이라도 네 얼굴을 소다들에게 더 비춰주고 가까이에서 인사해주려던 마음을 장난끼로 살짝 숨긴 너스레나 그 모든 것들이 네 진심인 걸 알아서 소중하고 예뻤어. 왜인지는 몰라도 네가 포스트잇을 길게 적을 때면 손으로 가리고 적어 내려갔었는데, 나는 그런 때면 이런저런 말로 네 정신을 산란하게 하기보다는 가만히 그런 너를 지켜보곤 했었거든. 그 덕분에 그때 열심히 글을 적으려 꽉 힘주어 쥔 펜이나 포스트잇을 가리려고 쭉 뻗은 되게 길고 큰 손이나 조금 숙인 채 집중한 네 정수리 같은 것들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 네게는 지나가는 순간이었을 그 때가 내게는 오래도록 남아 가끔은 날 울게 하고 또 웃게도 하겠지.
으휴 으른인 줄 알았더니 완전 애기였던 우리 지성이.
난 애기도 아닌데 지성이랑 눈물배틀을 많이도 했다. 그치만 내 친한 소다가 나보다도 더 요 근래 아주 호되게 울고 다녔는데, 특히나 우리 지성이 얘기만 나오면 거의 주먹을 입에 넣고 와아아악-! 하고 울지 뭐야. 팬콘 때 너희가 팬들 댓글을 읽는 VCR을 보다가 문득 옆을 봤더니만 꾸허어엉 하고 울고 있어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사이에 누가 때리고 가기라도 한 줄 알았어ㅎㅎㅎ 지성이도 알아? 옆에서 누가 그렇게까지 격하게 울면 같이 눈물이 나기보다는 어어? 하면서 달래주느라 내 울음은 쏙 들어가버린다는 거(ㅋㅋㅋㅋ) 그런데 나중엔 우리 막냉이가 무대에서 우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아유 나도 기왕 울망울망할 거면 지성이 앞에서 아예 우당탕탕 바닥을 구르면서 울어서 같은 원리로 눈물이라도 뚝 그치게 해줄 걸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한 걸 지성이는 모르겠지! 지성이에게 제대로 와닿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이렇게 너를 아끼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네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없이 많다는 걸, 너는 그럴만한 사람이라는 걸 전하고 싶다는 말을 참 희한하게도 한다 지금.
지성이가 더 나은, 장애물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적은 걸 보면서 기특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마음 속을 꽉 메웠어. 내 스스로에게는 내가 넘어온 고난들이 어찌됐든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을 거라고 제법 야멸차게 말할 수 있는데, 역시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방지턱도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 들고 마는 거야. 정말 내가 할 수만 있었다면 지성이가 가는 길에 네가 헤쳐나갈 장애물이 다 뭐야, 작은 돌 하나라도 네게 튀지 않도록 매일 새벽마다 맨 손으로 하나 하나 땅을 골라주고 싶은 기분이었어. 하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네게 아무런 장애물이 없기를 기도하기보다는 그것들이 너에게 큰 좌절과 슬픔을 가져다주지 않도록 지성이의 단단함을 믿고 기원하기로 했어. 그러다 가끔 지성이가 숨고르기를 하고 싶어질 때나 네 여정에 대한 하소연이나 혹은 이룬 것에 대한 무용담을 잔뜩 풀고 싶을 때를 위해서 너의 근처에 얼마든 있어주기로 했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해주고 싶어지면 그것만큼 마음이 괴로운 게 없어서,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너에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란다.
지성아, 내가 마지막 팬싸에서 상장 뒤에 많은 게 변하겠지만 또 의외로 변하지 않는 것도 있노라고 적어줬잖아. 많은 변화를 지켜봤을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 네 성장을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너의 인사를, 너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줘서 고맙다는 감사로 돌려 주고 싶어.
고생 많았다 우리 막냉이. 너무 보고 싶네. 내가 진짜 많이 아껴.
곧 또 볼 거지만서도 그때까지 있는 힘껏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