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무 남자
김진초
분명 내가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네가 끊은 거였나?
전화도 문자메시지도 먹통이다. 무슨 일인지 나는 알 수가 없고 따로 알아낼 방법도 없다. 네가 보내준 사진들, 주고받은 대화들 그 모든 게 다 가짜였나? 그럼 너한테 빌려준 돈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가슴이 벌벌 떨린다.
네가 보내준 카톡 사진을 열어본다.
나무들은 가짜가 아닐 것이다, 설사 네가 심은 나무가 아니라 해도. 은행나무 숲을 확대하며 여기가 진짜 베트남인가 살펴본다. 내겐 베트남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전통의상인 백색 아오자이와 원뿔처럼 생긴 모자 농라를 찾아본다.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 여긴 어딜까. 혹시 네가 한국에 있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숙제 다 마친 이모가 왜 불안해 보이냐며 무슨 일이냐고 조카가 자꾸 캐묻는다.
“별거 아니야.”
조카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제발이지 나도 별거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를 처음 만난 곳은 월미도 어느 나무 밑이었다.
눈에 띄게 외로운 모습으로 기다랗게 홀로 우뚝 서 있던 나무. 잔가지 하나 없이 미끈하게 훌쩍 솟구친 나무 꼭대기엔 그다지 무성하달 것 없는 가지들이 소담스레 아니, 마치 기도라도 드리듯 하늘을 향해 손을 모은 자세로 서 있었다. 둥치의 굵기로 보아 제법 나이배기인 그 나무는 어쩐지 제자리가 아닌 곳에 놓인 오브제처럼 생뚱맞아 보이기도 했다.
버스 종점에서 월미산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기다란 나무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갔다. 아직 이파리가 나오지 않아 소속을 알 수 없는 나무였다. 이파리가 있다 해도 모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나는 일단 이파리 핑계를 대며 그 나무에 다가갔다. 생김새가 특이해서 다가갔는데 세로로 쭉쭉 갈라진 수피의 골이 너무 깊었다. 식물이라기보다 파충류 등짝 같았다. 얼마나 오래 살면 수피의 골이 이렇게 깊어질까. 어쩐지 경건한 마음이 되어 나무 둥치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가끔 식물에서 동물을 발견하곤 한다.
여름날 칡넝쿨이 막무가내 길가로 뻗어 나오는 모습이나, 호박 덩굴손이 허공에 길게 손을 뻗치고 잡을 곳을 찾아 더듬대는 모습에서 동물적인 욕망을 본다. 오래된 메타쉐콰이어 밑동을 보면 코모도도마뱀 발가락이 연상된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나게 된다.
수령이 퍽 된 것 같은데 무슨 나무일까.
해마다 자라면서 수피가 터져 깊어진 골에 나무의 나이가 들어 있을 터이다. 일단 수피의 깊이에 경도된 나는 그것을 저장하고 싶어 폰카를 찍기로 했다. 밑에서 올려다보며 찍으면 좋겠지. 은회색 수피가 주인공이니까, 주인공을 클로즈업해야지. 밑동에 바짝 붙어 위를 향해 두세 컷 찍을 즈음이었다.
“무슨 나무인지는 알고 찍으시는 겁니까?
딱 미루나무처럼 기다란 네가 호감인 듯 시비인 듯 모호한 질문을 하며 다가왔다.
“모르면 사진도 못 찍나요?”
그 나무는 바로 미루나무였다.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서 미류나무로 불리기도 하는.
“사실 이 나무가 제 나무거든요.”
너는 계속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별명이 미루나무라는 너, 너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복장인 아웃도어를 입고 건들거렸다. 눈코입이 큰 서구적인 얼굴에 키까지 큰 네가 튀는 인물을 감추려 일부러 옷을 아무렇게나 입은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모처럼 내게 보상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너무 오래 걸린 길이었다. 집 장만이라는 과제에 집중하다 좋은 시절 다 보냈다. 후진이 안 되는 인생인 줄 모르고 그만 젊음을 갈아 넣고 말았다. 한 고개 넘으면 그보다 더 큰 고개가 기다리는 걸 빤히 알면서도 한 가지 목표에 심취하면 다른 걸 못 본다.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아무튼 한눈 한 번 안 팔고 미련곰탱이처럼 걸어왔다. 아무리 걸어도 걸은 만큼 길이 뒤로 물러나는 기이한 현상에 가끔은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왔다. 온 길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가야 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다.
길은 끝나는 법이 없다.
길은 길로 열리면서 가지를 친다. 점점 늦어지는 집 장만에 오기가 생기면서 목표를 수정했다. 좀 이상한 셈법이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힘든 집 장만 내 생전에 두 번은 못 하겠지? 평생 한 번인데 작은 평수는 옳지 않아. 단 한 번이란 허영 때문에 집 장만은 더욱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고생 끝에 성적표를 받았다. 마침내 삼십 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아 꿈을 이룬 것이다. 막상 입주하니 허무했다. 겨우 이걸 위해 인생을 탕진했나?
그래도 나를 칭찬하고 위로하는 절차는 거쳐야 했다. 이제 그만 독기 빼고 말랑말랑 살자. 앙가슴 단추 느슨하게 풀어놓고 여유를 즐기던 중, 너의 등장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든 탑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마련이고, 좋은 일엔 나쁜 일이 업혀 오는 법이다. 동티가 나면 큰일이다. 실없이 다가오는 네가 위험했다. 엄중히 경계해야 했다.
“그러시군요. 주인장 허락도 안 받고 실례 많았습니다.”
더럭 겁이 나서 일단 내빼기로 했다. 네가 난처한 얼굴로 그게 아니라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너를 다시 만난 곳도 월미도다.
가볍게 일상을 환기시키기 좋아 월미도를 종종 찾는 편이다. 운동이 필요하면 월미산 둘레길을 걷고, 잠시 머리를 식히려면 문화의 거리를 걸으며 바닷바람 쐬는 게 딱이다. 유람선을 따라가며 야아야아야아, 관객을 부르는 갈매기들의 자유로운 공연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비어진다.
그럴 땐 얼마 만에 웃는지 짚어보게 된다.
요샌 개그 프로도 흥미를 잃어 잘 보지 않는다. 예전에 ‘개그콘서트’는 본방을 사수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 월미도에서는 갈매기뿐 아니라 가족과 함께 나온 아이들 모습도 미소를 깨물게 한다. 아이들의 대화나 동작이 어여쁘고 신기해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나와 하등 상관없는 아이들인데 화초처럼 고웁다. 싱글맘이 된 동생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시집갈 때, 선뜻 조카를 맡아 키운 것도 아기한테 반해서다.
나는 한 번도 훼손된 적 없는 원형 그대로의 처녀다.
처녀가 조카를 키운다는데 엄마는 역시 언니는 언니라며 등을 두드리며 흐뭇해했다. 동생은 눈물바람을 하며 꼭 은혜를 갚겠노라 다짐했다. 조카는 아직도 나와 함께 살고 있다. 내 주변의 누구도 내가 결혼하는 걸 원치 않는다. 꼭이 그 때문은 아니지만 난 때를 놓쳤다. 때를 놓치자 시나브로 관심도 증발했다. 조카를 잘 키우고 집 장만을 하는 것만이 내 삶의 목표였다. 거기만 집중하고 사는 것도 버거웠다. 딴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신축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나는 안방을 쓰고 나머지 두 개의 방은 조카가 쓴다. 조카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 조카가 결혼해도 함께 살 생각이다. 조카도 으레 그러려니 한다. 괜찮다. 아니 좋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고 편안한 시절이다. 요즘 나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초여름 햇살이 뜨거워 양산을 쓰고 걸었다. 월미구장 근처 무장애길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여자들 몇이 나무 밑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지? 여자들 시선을 따라가니 나무 위에 노란 꽃들이 질서정연하게 피어 있었다. 여자들은 노란 찻잔이 피었다며 연신 폰카를 눌러댔다. 여자들 말마따나 노란 찻잔이 하늘을 향해 가지런했다. 꽃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있어 정작 꽃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줌을 당겨 찍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꽃이었다.
“어이쿠, 이렇게 또 만났군요.”
거기서 너를 또 만날 줄은 몰랐다. 네가 내 휴대폰을 거의 빼앗듯 해서 꽃을 찍어줬다. 미루나무처럼 큰 너는 비교적 아래쪽에 핀 꽃을 찾아 선명하게 꽃의 얼굴을 잡았다.
“원래 이렇게 일방적이세요?”
“그건 아니죠. 저도 취향이란 게 있는데.”
그 나무는 목백합이었다. 꽃이 튤립 모양이라 튤립나무라고도 하고. 너는 나무에 대해 상당히 해박했다. 뭐하는 사람일까? 호기심이 일었지만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정돈했다.
“유감스럽게도 제 취향은 아니군요.”
나는 또 너를 따돌리고 돌아섰다. 어쩌면 네가 헷갈렸을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이 아닌 게 목백합인지 넌지……. 여전히 아웃도어를 입은 너. 어쩌면 옷이 그것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싶자 다시 겁이 부풀었다. 무서운 세상이다. 저이가 나를 찍었다면 어쩌지?
“혹시 다음에 또 만나면 우리 사귀는 겁니다.”
애들 같은 너의 말이 아주 싫지는 않았는지 가슴이 일렁거렸다. 당황스러웠다. 경직된 얼굴로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섰다. 혹시 내게서 냄새가 나나? 집 가진 여자의 냄새가 나서 네가 들이대는 건 아닐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그만큼 두려웠던 거다. 사실은 네게서 냄새가 났던 거다. 그걸 내가 직관적으로 알아챘던 거다. 잘 알지도 못하는 네가 평생 걸려 마련한 내 집에서 나를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올라왔던 거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집 장만이라는 숙제가 해결되자 형편이 좋아진 다음으로 미루었던 여가 즐기기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멍때리는 시간을 즐기는 중이었다.
교동도 대룡시장에서는 60년대 풍경을 만났다. 좁은 골목 여기저기 붙은 옛날 영화 포스터와 표어들이 과거를 붙들고 있었다. 방앗간, 이발관, 약방, 신발가게 등은 거의 옛 모습 그대로였다. 좁다란 시장 골목만큼이나 작은 가게들,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만큼 낮은 천장과 비좁은 가게엔 비치한 물건도 몇 가지 없었다. 허물어져 가는 슬레이트 지붕 처마에는 제비집이 몇 개씩 잇대어 지어져 있었다. 마치 옛날 영화 세트장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장소였다. 거기 전통 쌍화차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옛날식 다방이었다.
엄마가 마신 쌍화차 맛을 볼 수 있을까?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 묻지도 않고 시켜준 쌍화차를 마시다가 너무 뜨거워 목구멍을 데웠다는 엄마. 그래도 그 쌍화차 덕분에 배가 불러 재건 데이트를 몇 시간이나 했다는 엄마. 그 추억이 뭐 그리 재밌다고 계속 재방송하던 엄마. 엄마는 그만큼 추억거리가 없는 거였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엄마가 간신히 건져 올린 쌍화차의 추억 때문에 나는 엄마가 내게 무슨 서운한 말을 해도 넘어간다. 일찍 죽은 아빠 대신 다 받아준다. 세상에 진짜 낭만적인 사랑이 있긴 할까? 혹시 다 판타지 아닐까? 없기 때문에 만들어낸 꿈의 판타지.
물어물어 찾아간 궁전다방은 사방에 포스트잇이 겹겹이 붙어 벽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 벽으로 모자라 천장에서 내려온 사연들이 주렴처럼 매달려 흔들거렸다. 사랑을 약속하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오늘의 감상을 적어서 붙여놓은 사람들……. 다들 얘기가 하고 싶은 거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기 마음을 들려주고 싶은 거다. 이건 메아리를 기대하지 않는 자기 폭로다. 자기 폭로? 마음이 동했다. 나도 포스트잇을 한 장 가져와 나를 폭로하려 붓방아를 찧었다. 쓸 게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쓰려하자 건드린 더듬이처럼 생각이 쏙 들어갔다. 잠시 망설이다가 아무렇게나 썼다.
쌍화차는 둘이 마시는 차겠지요? ㅎㅎ
둘 쌍雙에 조화로울 화和, 쌍화차는 음양의 조화로 몸을 이롭게 하는 차다. 음양의 조화를 모르는 나는 물이 많아 몸이 차갑다. 잘 체하고 여름에도 춥다. 둘이 마시면 더 좋겠지만 혼자 마셔도 이로운 차를 천천히 마셨다.
청란이 들어가 걸쭉한데다가 견과류가 푸짐해 스푼으로 떠먹어야 하는 쌍화차는 생각보다 고소하고 떠먹는 재미가 있었다. 죄책감 없이 마실 수 있는 차, 몸에 좋은 차였다. 다방 자리가 옛날엔 면사무소였다며 주인 여자가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가 있는 섬, 연산군 위리안치가 있는 섬, 주민의 8할이 농민으로 광활한 평야가 자랑인 섬이 바로 교동도라며 이왕 온 김에 신기한 은행나무도 보고 가라고 권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갔다. 나무 애호가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특이한 나무를 만나면 한 번 쳐다보게 되고 만져보게 되고 좀 더 마음이 가면 폰카에 담아두는 나이기에 마음이 동했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무학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9백 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노거수였다. 천년이 넘었다는 용문사 은행나무에 비해 체구가 너무 작아 의아했는데 아픈 사연이 담겨 있었다. 고려 중엽 마을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뉘 집 뒤뜰에 있던 은행나무가 함께 타버렸다. 한데 이듬해 봄 시커먼 숯덩이 같은 그루터기에서 기적처럼 새싹이 움터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만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얘기가 이어졌다. 암수딴그루인 은행나무가 수나무 없이도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이다. 바다 건너 황해도 연백의 수나무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기적처럼 수정이 이루어진다고.
분단으로 사람은 오고 가지 못해도 새는 자유롭게 왕래하고, 나무도 바람을 타고 교접하여 종족 번식을 한다.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나무, 평생을 그 자리에 붙박여 사는 나무는 곁에 짝이 없으면 바람이 도와준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결국 만물의 영장이라며 잘난 척하는 인간만 제 발로 마음껏 돌아다니고 수많은 짝을 스치면서도 짝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나저나 은행나무도 꽃이 핀다고? 금시초문이다. 손바닥 안의 선생님 휴대폰한테 물어볼밖에.
은행나무꽃은 암수가 다르게 생겼다고 한다. 수나무 꽃은 연두색 오디처럼 생겼다. 암나무 꽃은 T자형으로 생겼는데 크기가 작고 새순 밑에 숨어 있어 웬만해선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니 4월 중순쯤 비 오고 난 뒤 은행나무 가로수 아래 무더기로 떨어진 수꽃들은 많이 보았다. 다만 그것이 은행나무 수꽃인 줄 몰랐을 뿐이다.
은행나무는 장수하는 수종이라 그런지 성체가 되는 데 오래 걸린다. 수정을 이루어 열매를 맺는 어른나무가 되기까지 30년은 좋이 걸린다니 종족 번식이 어렵겠다. 가을이면 가로수 낙과 냄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수나무만 심고 싶어도 꽃을 피우기 전까진 암수를 구분할 수 없어 애로사항이 많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아무튼 성체가 될 때까지 성별을 감추고 성장하는 은행나무가 신기하긴 하다.
생태계의 96%를 날려버린 고생대 페름기를 지나온 은행나무는 식물계의 살아있는 화석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가로수로 흔한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이란다. 씨앗이 커서 바람에 날아가지도 새들이 먹지도 못해서다. 그 옛날 공룡시대엔 매개 동물이 있었지만 이젠 사람의 도움 없인 번식도 불가능한 처지다. 결국 은행나무한텐 사람만이 매개 동물로 남았다.
게다가 유독성 열매다.
기관지에 좋은 은행이지만 많이 먹으면 독성이 있어 몸에 해롭다. 성인도 하루 열 알 이상 먹으면 안 된다. 웬만한 건 다 먹어치우는 미생물이나 곰팡이조차도 은행은 잘 안 먹는다니 알아볼 조다. 누군가의 양식이 되어야 비로소 번식하는데, 일부는 소화되고 일부는 배설하면서 영역을 넓혀 종족 보존을 해야 하는데, 은행나무는 먹히지 못해 멸종으로 간다. 다 먹혀도 멸종되지만 안 먹혀도 멸종된다니 생태계에도 중용의 법칙이 작용하는가 보다.
뭐니뭐니해도 은행나무는 맹아력의 제왕이다.
뿌리를 제거하고 줄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몇 년은 거뜬히 잎이 돋아난다. 명승지마다 고승이 꽂아두고 간 지팡이에 싹이 나 고목이 된 은행나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심지어 히로시마 원폭 투하 폭심지에서 2km 안에 있던 은행나무가 아직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렇게 천하무적이니 가로수로 적격일밖에. 어쩌면 매개 동물이 사라지면서 맹아력을 키워 스스로 살아남는 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인류가 멸종하면 함께 멸종할 생물 1순위가 은행나무라는 대목에서는 어쩐지 동지애까지 느껴진다.
무학리 은행나무는 불타 죽은 자리에서 다시 돋아난 맹아목이다. 끊어졌다 이어진 목숨이다. 부활한 목숨이 밭 가운데 서서 9백 년을 살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발등에 열매를 떨어뜨리면서 번식을 기도하지만 주변 어디에도 은행나무는 없다. 할머니 나무 혼자 기나긴 목숨을 건사한다. 동네 사람 중 누구도 할머니 나무에게 젊은 수나무를 선사할 의사가 없었나 보다. 그래도 가을이면 은행알은 알뜰히 수확하겠지. 참 인색한 사람들이다. 9백 년이나 인색한 사람들이다.
“어? 이제 우리 어쩔 수 없이 사귀어야겠군요”
네가 다가오며 싱긋이 웃었다. 장수동 은행나무 앞이었다. 4월이 기울 즈음, 8백 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를 찾아갔다. 8백 년 노거수의 꽃은 어떤지 궁금해서였다. 인천대공원 근처라 그런지 사람들이 들끓었다. 마치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며 한 말씀 듣는 무리처럼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에워싸고 있었다. 은행나무 밑에서 무슨 공연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은행나무 가까이 다가가 늘어진 줄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놀라워라. 통통하게 살진 수꽃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버드나무처럼 낭창거리는 가지들이 마치 연둣빛 폭포를 연상시켰다. 마음껏 자란 그 나무는 어디도 훼손되지 않은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했다.
전복은 오래되면 녹아버리고 홍합은 오래되면 쫄아버린다는데, 팔백을 넘어 천년을 향해 가는 장수동 은행나무는, 찢어진 겨드랑이에 스테인리스 부목을 대고 눈부신 봄 햇살 아래서 아이처럼 까르르 웃고 있었다. 천수관음보살처럼 늘어뜨린 가지마다, 젖은 바가지에 깨 달라붙듯 다닥다닥 매단 생명이 연둣빛으로 쏟아져 내리는 봄날, 나뭇잎 폭포수 앞에서 무릉도원을 느끼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 때, 네가 나타났던 거다.
처음 만났을 때로부터 일 년이 좀 지난 시점이었다. 세 번을 우연히 만나면서 어쩌자고 매번 나무 앞에서만 만나는지 그것도 참 희한한 일이었다.
“혹시 형사예요?”
네가 어깨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네겐 말이 막 나갔다. 너의 그 무식한 복장 때문인지, 너의 그 츤데레 같은 관심 때문인지, 줄잡아 나보다 서너 살은 어릴 것 같은 모습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평소의 나답지 않게 말이 막 나갔다.
“위치 추적당하는 것 같아서요.”
네가 큰소리로 웃었다. 아, 하하하 웃는 사람이구나. 네 웃음소리로 인해 경계심이 약간 풀어졌다. 너처럼 하하하 크게 웃는 사람은 명랑하고 호탕하며 거리낌 없이 건강한 사람이다. 요즘은 MBTI가 유행이지만 웃음소리로도 사람을 알 수 있다.
“지금 내 통장은 텅장이지만 내 통장은 매일매일 자라고 있습니다.”
“누가 물어봤어요?”
“물어봤잖아요. 눈빛으로.”
너는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했다. 은행을 열 가마나 심었다고 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을 어디다 심었냐고 물으니 베트남 북부 중국 접경지역이라고 했다. 네가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비탈진 넓은 땅에 사람들이 일렬횡대로 서서 은행알을 파종하는 사진, 너른 땅에 군데군데 은행이 싹을 틔우고 나온 사진, 그다음은 사람 키만큼 자란 나무들 사진이었다. 그것을 보여주는 너의 표정은 자식 자랑하는 사람과 닮아 있었다. 마지막 사진이 벌써 5년 전이라고 말하는 네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났다.
“지금은 내가 우스워 보여도 이 나무들이 열매를 맺으면 끝장나는 겁니다.”
문제는 네가 나무를 심어놓고 이젠 밑천이 떨어져 오도 가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무들이 보고 싶어 죽겠는데 이젠 여비도 없어 못 간다며 엄살을 떠는 너. 왜 내 앞에서 저러지? 누가 물어봤어? 물어봤냐고? 마음이 불편한 나는 뭘 어떻게 도와줘야하나 궁리하다 이게 아니지, 정신을 차렸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내 성정은 늘 위험하다. 내 인생은 남보다 내가 더 문제다. 앞서가는 내가 문제다. 부탁도 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내가 문제다.
“인간은 미래에 중독된 종족이라죠. 그 대가는 불안이고. 제가 딱 그렇습니다.”
나무를 심고 기다리는 너. 미래에 중독된 종족이라고 자평하는 너.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라 말을 골라 했다.
“길을 떠나지 않으면 길 잃을 일도 없는데, 지금 길을 잃은 거잖아요. 잘 사시는 중인데요 뭘.”
“사실 이게 다 조바심이고 노파심이죠. 가보지 않는다고 잘 자라던 나무가 성장을 멈추진 않을 텐데 미친놈처럼 이러고 있습니다. 하하하.”
너의 하하하에 나는 기어이 넘어갔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넌 신불자였다. 은행을 심느라 몇 군데 투자를 받고 갚지 않아 그렇게 됐다는 너의 말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백만 평의 땅을 임대하고 사람을 사서 파종하고 어쩌고 하면서 십억 넘게 베트남에 들이부었다는 너와 연거푸 몇 번 만나면서 나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뭔가에 씐 시간이었다. 역시나 네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자발적으로 그리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사기꾼일 수 없는 남자였다. 사기꾼은 너처럼 시원찮은 모습이 아니다. 잘 나가는 사람으로 포장해 깐밤처럼 맨질맨질 세련된 모습으로 사람을 홀린다. 너처럼 촌스럽고 서툴고 진지하지 않다. 내가 네게 돈을 보낸 날 너는 나를 찾아와 한 번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네 품에 들어가 있었다. 내 가슴도 뛰었지만 네 가슴은 더 무섭게 뛰었다. 나는 항복하듯 손을 든 자세로 네게 안겨 있었다. 너를 밀어내려다 그렇게 안겨버리고 말았다. 키가 작은 내 손은 네 가슴을 짚고 있었다.
“잠깐만, 잠깐만 가만히 있어줘요. 부탁이에요.”
네가 나를 당겨 안으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리곤 말했다.
“이런 포옹 내 인생에 딱 두 번째예요.”
참 답이 없는 너였다. 그런 말을 굳이 왜 하는지. 이미 안겨버린 나는 어쩌라고.
“첫 번째는요?”
“청량리 588에서요.”
나도 588은 안다. 하필이면 거기서 왜?
전농동에 살던 너는 호기심에 588번지 골목을 지나다녔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그 길을 지나가는데 한 여자한테 손을 붙들렸다. 그럴 때 동네사람이에요, 하면 바로 손을 놓고 보내주는데 그 여자는 안 그랬다. 학생, 나 한 번만 안아주세요,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너를 안아버렸다. 불시에 당한 너는 저만치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그만 풀고 싶은 동작을 취했다. 여자가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 주세요.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마나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여자가 느끼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네게도 전이돼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 흘렀다고. 세상에 다시 없는 포옹이었다고. 오늘에야 그런 포옹을 하는데 이번엔 입장이 바뀌었다고. 네가 안아달라는 입장이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자세를 달리했다. 만세 자세를 풀고 네 허리께를 안았다. 네가 무릎을 낮추고 내려왔다.
“588 그 여자는 키가 컸어요?”
“아니요. 작았어요, 당신처럼.”
두고두고 친구한데 588기둥서방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너. 그래도 너는 기분이 좋았다고. 모르는 사람들이 나누는 온기, 잊을 수 없는 포옹의 흐름이 좋은 느낌으로 남아서 가슴에 새겨졌다고. 가끔 그 느낌이 그립기도 했지만 그녀를 찾아가지는 않았다고. 그날 이후 588의 호기심은 졸업했다고…….
“그땐 내가 나무 같았어요. 매미처럼 내게 매달려 뭔가 알 수 없는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그 여자, 슬픈 눈을 한 그 여자가 힘을 얻고 부디 용기 내기를 바랐지요. 그 여자를 안고 있으면서 내 안의 좋은 기운은 모두 그 여자에게 흘려보냈어요.”
그럼 이번엔 입장이 바뀌어서 내가 너니, 나도 내 안의 좋은 기운은 모두 너에게로? 에이 그건 아니지. 이미 네게로 간 담보대출만도 너무 과한데…….
며칠 소식이 없더니 카톡으로 베트남 사진이 들어왔다. 은행나무 사진이었다. 앞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덩치가 커진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네가 베트남으로 간 뒤부터 우리는 하루 한 번 카톡 통화를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은행을 그렇게 심은 거예요?”
“넌 뭐가 되고 싶어 때문에 그렇게 됐어요.”
어려서 너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라는 질문이 제일 골치 아팠다. 번번이 즉답을 못 했기 때문이다. 넌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아이로 웃음거리가 됐다. 대통령이든 선생님이든 기관사든 길거리 엿장수든 아무거라도 대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을 향해 너의 입이 열렸다. 마침 그날이 식목일이라 너는 식목인이라 대답했고 다시 웃음거리가 됐다. 그리고는 식목인을 잊어버렸다. 미루나무란 별명을 얻은 뒤에도 식목인은 생각나지 않았다.
가구 디자인을 공부한 너는 가구공장을 했다. 부동산이 활황을 타면서 덩달아 가구업도 상승세라 제법 재미를 봤다. 너는 은행나무 책상을 주로 생산했다. 은행나무는 쉽게 변형되지만 복원력이 좋은 게 매력이다. 비자나무 다음으로 수복 능력이 뛰어난 소재다. 은행나무 상판은 연필로 눌러써도 들어갈 만큼 약하지만 일주일 정도면 원래대로 복원돼서 일상 속의 마술을 보는 듯 신기하다.
호사다마라고 한창 잘 나갈 때 공장에 화재가 났다. 공장은 재만 남았지만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경기가 좋아 욕심껏 쟁여뒀던 어마어마한 목재가 모두 연기로 사라졌다. 바로 그때 너는 잊었던 식목인을 기억해냈다. 돈은 벌어봤으니 이젠 나무를 심자. 태워 먹은 나무 벌충하려면 많이 심어야 한다. 어려서 네가 식목인이 되겠다고 한 것도, 은행나무 책상을 생산한 것도, 공장에 불이 난 것도, 은행을 열 가마나 심은 것도 다 예정된 것처럼 순서대로 흘러갔다면서 네가 물었다.
“그쪽은 이다음에 뭐가 되고 싶어요?”
“무슨 질문이 그래요? 지금 나 놀리는 거지요?”
“그럼 이렇게 말할게요. 그쪽은 늙어서 뭐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한테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묻는다면 어른한테는 이다음에 늙어서 뭐가 될 거냐고 묻는 게 맞긴 한데 답을 찾기는 더 어렵다. 이다음에 늙어서? 생각할수록 웃기는 질문이다. 그래도 아무거나 대답해야 한다. 네가 어려서 식목인을 생각해내듯이 나도 생각해내야만 했다.
“음……, 나는 이다음에 늙어서 놀고먹을 거예요. 남 생각 안 하고 나만 생각하고 살 거고요.”
말을 하고 나니 너무 유치했다. 그래도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는 이 나이 되도록 해외여행 한 번 못 가 여권도 없다.
“여권이 없다고요?”
너는 진심 놀란 듯했다. 어서 여권을 만들어 놓으라고 성화를 댔다. 다음번에는 나도 함께 베트남에 가서 은행나무 숲도 보고 거기서 멀지 않은 하롱베이도 가자고 했다. 바다 위에 심어진 3천 개의 섬들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거기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가보지 않아 나는 모른다. 내가 키운 조카는 세계 각국을 누비며 배낭여행을 하지만 나더러 같이 가잔 소리는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같이 살기만 바랄 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동행을 얘기하는 네게 작은 감동이 온다.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난 어떻게 산 걸까. 제대로 살긴 한 걸까. 빨간불이 들어온다. 위험신호다. 혼자 사는 여자는 작은 호의에 쉽게 기울어진다. 한데 너의 제안이 정말 작은 호의일까?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다.
“청신호예요. 어쩌면 내년쯤 수확이 시작될 것 같아요.”
전화기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너와는 왜 자꾸 정신을 놓았다가 차리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은행을 수확하기까지 30년은 걸린다. 네가 거짓말을 하는 거다. 굳이 안 해도 되는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걸까. 너한테 실망한 내 목소리가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너한테는 특히나.
“왜요? 내가 배신 때릴까봐요?”
그러든 말든 은행을 수확해 돈을 벌면 아파트 대출금 갚아서 나도 좋지 뭐. 불안할 일이 사라지니 얼마나 좋아.
“제발 배신 때릴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안 믿는 거예요? 왜요?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베트남에서도 난리지만 소문 듣고 한국에서 취재 나왔었는데…….”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아니 거북함에 통화를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데 다 듣지 않고 그냥 끊어버렸다. 마치 연결 상태가 나빠서 끊어진 것처럼 가장했다. 뒤에 남은 여음이 비명 소리 같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놈의 나무가 문제다.
미루나무부터 시작해 튤립나무를 거쳐 은행나무까지 모두. 은행을 심었다는 너를 믿고 너를 도왔다. 그게 진짜 도움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혼자 취해서 마구 달려갔다. 1억을 벌려면 난 또 얼마나 땀을 흘려야 할까. 얼마나 더 늙어야 할까. 설렁설렁 놀러 다니며 멍때리던 호사도 이제 끝장이다. 그동안 집값이 뛰어 주택연금으로 살아도 되겠지만 빚이 있는 건 싫다. 온전히 내 집이어야 한다. 호텔 룸메이드로 다시 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온몸이 뻐근하다.
나무의사 장 모 씨가 테러를 당해 하노이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칼로 복부를 두 번 찔렸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장 모 씨는 십오 년 전 베트남 사막지대 백만 평을 임대하고 실험적으로 은행을 파종해 성공을 점치는 와중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는데 빨래를 개느라 보지 않고 듣기만 했다. 나무의사 장 모 씨를 말할 때만 해도 너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백만 평 임대, 은행 파종까지 가서야 귀가 번쩍 띄었다. 네가 보내줬던 최근 은행나무 숲 사진이 텔레비전 화면을 스쳐갔다. 너와 연락이 두절되고 하도 들여다봐서 익숙한 사진이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무안해서 얼굴이 홧홧거린다.
장 모 씨는 은행 매개 동물을 자청한 나무의사입니다. 가구공장을 하다 나무의사가 됐습니다. 은행나무가 성체가 되려면 15년에서 30년 걸리는데 성장 속도가 빨라 내년이면 첫 수확을 예견하는 가운데 당한 사고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범인은 현지인으로…….
성체가 되려면 30년이 걸리는 줄 알았는데 15년부터 시작이구나. 그것도 모르고 너를 의심했네. 그런데 나무의사라니, 그런 의사도 있나?
나무에 토양, 기후, 대기, 병충해로 인해 발생한 피해 원인을 조사하고 치료하는 전문가가 나무의사란다. 네가 의사구나. 나무의사구나. 네가 심은 은행나무는 거기가 어디든 안심해도 되겠다. 나무의사가 관리하니까.
그보다 나는 이제 늙어서 놀고먹어도 되겠네. 먼지 먹고 더럽게 힘든 호텔 룸메이드 안 해도 되겠네. 너만 털고 일어나면 베트남도 가볼 수 있겠네.
설레는 맘으로 구청에 간다. 난생처음 여권을 내러 간다. 내가 해외여행을 가면 처음으로 보는 게 젊은 은행나무일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수정하지 않은 신삥 나무들. 나도 신삥이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