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9월 19일까지 전시되는 '비욘드 더 스크림'은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과 에드바르 뭉크(1863~1944) 서거 80주기를 기리기 위해 기획됐다. 뭉크는 '절규'를 유화와 템페라, 파스텔 등 4점으로 남겼으며 석판화로 제작된 48점을 프린트로 남겼는데 이번 전시에는 뭉크가 판화 위에 직접 채색한 단 두 점 가운데 하나를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뭉크가 그린 '절규'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893년 두 번째로 그린 파스텔화다. 잘 눈에 띄지 않는 연필 글씨로 '미치지 않고서야 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적어뒀던 그 작품이다.
노르웨이의 축구 유망주로 나중에 유명인의 예술 소장품들을 훔치는 도둑으로 변신, 1994년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뭉크의 대표작 '절규'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을 훔쳐 유명세를 떨친 팔 엥거가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AP 통신이 2일(현지시간) 전했다.
엥거가 10대 시절 뛰었던 오슬로의 축구클럽 발레렌가 폿발의 홍보 담당 티나 불프는 고인이 지난달 29일 저녁 운명했다고 통신에 뒤늦게 알렸다. 그녀는 엥거가 어떤 여건에서 죽음을 맞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면서도 고인이 올 여름 발레렌가 클럽과 접촉한 일이 있다고 전했다. 현지 일간 다그블라뎃은 가족 소식통을 인용해 고인이 오슬로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엥거는 열아홉 살 나이에 처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인 1988년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 창문으로 침입해 회화 작품 '사랑과 고통'을 훔치는 등 일련의 예술품 및 보석류 절도 범행의 첫 발을 뗐다. 1994년 2월 12일 엥거는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훔치는 대담한 범행에 나섰는데 이날은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일이었다. 그의 범행 모습이 보안 카메라에 50초 분량으로 잡혔는데 두 도둑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창문을 깨고 그림을 들고 달아나는 모습이 담겼다. 그림의 가치는 당시 적어도 5500만 달러로 평가됐다.
두 도둑은 엽서를 남겼는데 “보안이 허술해 감사하다”고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 도둑맞았다는 소식은 전 세계 언론의 주요 뉴스를 장식했고, 그가 체포되자 곧바로 노르웨이의 유명인이 돼 지난해 다큐멘터리 '절규를 훔친 남자'를 비롯한 다큐멘터리들과 텔레비전 시리즈들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경찰의 함정 수상에 걸려 체포된 엥거가 가족이 대대로 살고 있는 자택의 거실에 비밀 구획을 만들어 숨겨뒀다고 자백함에 따라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돌아왔다. 엥거는 수십년 저지른 다른 절도와 약물 범죄 때문에 거듭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계속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1999년 엥거는 보안이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교도소에서 외박을 허가 받아 오슬로의 유명인들이 들락거리는 카페에 나타나거나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뷰에 나서 경찰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한밤 중 선글라스를 끼는 행동으로 관심을 모은 뒤 체포당하기도 했다. 2007년 교도소에 머무르던 중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동물들을, 나중에는 추상적인 내용을 그렸다. 2011년 그는 노르웨이의 한 갤러리에 전시된 일련의 추상화 작품들로 전문 화가로 데뷔했다.
자신의 소행을 솔직히 고백하는 이 예술 애호가는 절도를 멈추지 않았다. 2015년 엥거는 오슬로 중심가의 한 갤러리에서 그림 17점을 훔친 혐의로 다시 기소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가 범행 현장에 지갑과 신분 카드를 놓아두고 가는 바람에 경찰은 쉽게 체포할 수 있었다.
전에 고인을 변호했던 닐스 크리스티앙 노르두스 변호사는 그의 조국에서 "많은 이들이 그리워할 젠틀맨" 도둑이라고 묘사했다고 다그블라뎃은 인용했다. 발레렌가 폿발의 스베인 그라프 단장은 "많은 이들이 팔 엥거가 계속 축구선수로 활약했으면 얼마나 좋은 선수가 됐을 것인지 궁금해 한다"면서 엥거의 답변은 최고의 축구선수가 아니었으며 최고의 범죄자이기 때문에 그 경력을 열심히 좇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라프 단장은 “엥거와 법과 질서(law and order)의 관계는 널리 알려졌는데 (발레렌가의) 팀 동료이며 경찰관 크누트 아릴드 뢰베리가 그를 몇 차례 철창에 집어넣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엥거는 정식으로 결혼한 적이 없다. 다만 2011년 일간 VG에 따르면 그는 "네 나라 출신의 네 명의 다른 엄마 밑에서 네 자녀를 뒀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뭉크가 자신의 전작을 돌아보며 매만지던 1910년 네 번째로 그린 '절규' 역시 2004년 8월 22일 복면강도들이 훔쳐 달아났다. 이듬해 4월 8일 노르웨이 경찰이 범인들을 검거했지만 작품 회수에 성공하지 못했다. 범인들이 작품을 태워버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2006년 8월 31일 노르웨이 경찰의 비밀 작전 끝에 작품은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어떻게 작품을 회수할 수 있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