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9일 (토) 촬영.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국립 익산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으로 입장하면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미륵사지 목탑 모형입니다. 축척/ 1: 20.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처음 만들어진 탑은 목탑이었습니다.
미륵사지에도 거대한 목탑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습니다. 목탑이 언제 무너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덕왕 18년(719)에 '금마군 미륵사에 벼락이 쳤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발굴 조사로 목탑지 주변에서 확인된 불에 탄
흔적을 보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시기)에 대규모의 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목탑의 기단은 석탑과 유사한 형태이고 목탑 기단 한 변의 길이는 18.5m에 이릅니다.
미륵사지 석탑 기단 한 변의 길이가 12.5m인 것을 고려하면 목탑의 높이는 최소 40m 이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시된 모형은 목탑의 본래 모습을 추정하여 20분의 1로 만든 것입니다.
미륵사 추정 모형. 가운데 제일 높은 탑이 목탑.
금동제 여래입상, 청동방울 / 통일신라,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국보.
유리제 사리병, 금제 사리병 받침, 금제 사리 내함 / 통일신라,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국보.
1 도금은제금강경판. 통일신라,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국보.
2. 주칠된 금동사리외함. 3 유리구슬. 통일신라,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국보.
4 금동 경판 내함 5 주칠된 금동 경판 외함, 통일신라,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국보.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 높이 불상 156cm, 광배 326cm, 대좌 40cm, 삼국시대 (백제 7세기), 복제품.
익산 석불사 금당 안에 안치되어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석조여래좌상의 복제품입니다.
여래좌상과 광배 그리고 대좌석이 각각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머리 부분은 언젠가 손실되어 현재는 승려형 불두가 올려져 있습니다.
통견 법의를 입었습니다. 벌어진 어깨와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넓은 하체가 당당한 인상을 줍니다.
흘러내린 옷자락이 대좌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광배는 배 모양의 거신광으로서 두광과 신광으로 구별됩니다.
불상 머리의 뒤쪽에 맞추어 원좌를 두고 짧은 무늬를 돌린 다음 큼직한 연꽃무늬를 조각했습니다.
거대한 광배면에는 좌우에 3구씩의 화불을 정상에는 구의 화불을 새겼습니다.
금동 향로 / 통일신라, 중원 북회랑지, 보물.
미륵사지 출토 금동 향로는 화사향로(火舍香爐)의 범주에 속하고 수각형(獸脚形) 다리가 달린 다족향로입니다.
다족향로의 기원은 한 대(漢代)로 추정되는데, 이 금동 향로는 당대(唐代) 유행했던 향로의 한 유형으로 생각됩니다.
당대의 것이 일반적으로 다리 다섯 개가 달린 것에 비해 이것은 4개이며 장식 문양 등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보살 손. 靑銅菩薩手 / 고려, 미륵사지.
치미는 전통 건축의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올려놓는 기와로,
이를 지붕에 설치하는 것은 장식적인 의미와 화재나 재앙을 피하기 위한 벽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치미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지붕 위의 치미 그림으로 보아 적어도 4세기 중후반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백제 왕흥사 터 출토 치미를 비롯,
신라, 통일신라, 후삼국의 대표 치미 12점이 전하고 있습니다.
치미는 한자어로 '솔개 꼬리'라는 뜻이지만, 그 기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중국 후한(25~220) 때 유행하던 봉황의 날개를 형상화했다는 견해와 물고기 지느러미를 보고 만들어졌다는 견해,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물고기 괴물 '마카라'에서 기원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화재가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물에 사는 물고기 지느러미 형태로 치미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크고 둔중한 기와집에 새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치미를 올려 시각적 무게감을 줄였을 수도 있습니다.
첫댓글 귀한
작품들
즐감합니다
날마다 정성스런
사진. 해설
많은 불자님들께
보시 하심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