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八大 明堂
안동 金씨 김번(金璠)의 墓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소재. (시조 : 金宣平)
광산 金씨 김극뉴(金克忸)의 墓 :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청풍 金씨 김인백(金仁伯)의 처(妻) : 안동권씨의 묘 :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동래 정(鄭)씨 정문도(鄭文道)의 墓 :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464-1
동래 정(鄭)씨 정사(鄭賜)의 墓 : 경북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속칭 鄭墓
장절공 평산 신숭겸(申崇謙)의 墓 :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 1리
청주 한(韓)씨 시조 한난(韓蘭)의 墓 : 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산 18
반남 박(朴)씨 시조 박응수(朴應珠)의 墓 : 전남 나주시 반남면 흥덕리
묘(墓)의 혈형사상(穴形四象) 조형
명당국세(明堂局勢)에서 가장 중요한 혈(穴)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명당에는 자연의 생기(生氣)가 생성됩니다. 이 생기가 직접 방출되는 곳이 혈(穴)이지요. 따라서 혈은 ‘기(氣)를 모아 맺는 곳, 생기가 솟아 나오는 구멍’아란 의미로 정리해도 되겠습니다. 사신사(四神沙)가 꽃을 보호. 유지시키는 줄기 및 가지라면 꽃송이에 비유해도 무방하겠지요. 혈(穴)은 곧 음기(陰氣)인 지하의 지기(地氣)와 양기(陽氣)인 지상의 천기(天氣)가 만나 음양의 조화를 이룬 곳입니다. 즉 산수(山水)의 정기(精氣)가 뭉쳐진 곳이지요. 그래서 자연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다고 봅니다.
명당이 자궁에 비유되는 것은 생김새 이외에 이런 의미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비유를 아주 못마땅히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궁의 종족보존 역할과 명당이 인간에게 베푸는 부(富)와 귀(貴), 그리고 자손의 번창은 생산(生産)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양자간에 유사(類似)한 점이 많지요.
이 혈(穴)에는 네 가지의 형태가 있습니다. 즉 와(窩), 겸(鉗), 유(乳), 돌(突)이 그것인데, 혈형사상(穴形四象)이라 하지요. 여기에도 음양의 조화가 있습니다. 네 가지 형태 중 와혈(窩穴)과 겸혈(鉗穴)은 음혈(陰穴)이요, 유혈(乳穴)과 돌혈(突穴)은 양혈(陽穴)이라는 얘기입니다.
음혈은 우묵한 형태이기에 여성에 비유되고 양혈(陽穴)은 돌출한 모습을 띄기 때문에 남성에 비유됩니다.
먼저 와혈(窩穴)을 보시면와혈(窩穴)은 소쿠리나 제비집처럼 오목하게 생겼습니다. 인체에 비하면 마치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있는 듯한, 양손으로 물건을 움켜쥐고 있는 듯한 형태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돌출한 부분이 있습니다. 즉 음(陰) 중의 양(陽)인 셈이지요. 이 돌출된 부분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평지 보다는 높은 산에 많다고 합니다. 음과 양의 조화이지요. 팔공산 성전암을 이 와혈(窩穴)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겸혈(鉗穴)은 와혈(窩穴)과 비슷합니다만, 양쪽으로 맥(脈 : 산자락)이 뻗어 있습니다. 즉 사람이 다리를 뻗고 있는 형태를 취합니다. 이 혈형(穴形)과 관련하여 풍수학계에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예천 지보면에 8대 명당에 든다는 유명한 정사(鄭賜)의 묘(墓:鄭墓)가 있습니다.
형국으로 흔히들 옥녀측와형(玉女側臥形 : 미녀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양의 형국)으로 보는 묘소인데, 후손들 중 정승, 판서만 수십 명이 배출되었다는 명당입니다. 원래 이 묘소의 마을 이름이 지보였다가 행정구역 명칭으로 확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명유래 사전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서적으로는 지보(知保) 또는 지포(芝圃)라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유혈(乳穴)은 산자락이 길게 뻗어 내린 곳에 위치한 혈입니다. 혈형(穴形) 중에서 가장 많지요. 성숙한 여인의 늘어뜨린 젖가슴과 닮아서 이 명칭이 붙었다고 하지만, 어떤 이는 남자의 생식기와 비교하여 ‘x x’혈이라고도 합니다.
돌혈(突穴)을 보면 말 그대로 혈(穴)이 우뚝하게 솟은 형태입니다. 마치 엎어놓은 솥모양입니다. 누워 있을 때의 ‘남자’의 모습이라고 하면 어울릴 만도 하겠군요. 산을 양(陽)으로 보고 평지를 음(陰)으로 본다면 평지에 있는 돌혈(突穴)이 진짜라고 하겠지요. 특히 주변에는 솔밭과 같은 바위가 사방에서 받쳐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돌혈(突穴)은 찾아보기가 조금 힘듭니다.
예천군 호명면에 정탁(鄭琢) 공(公)의 묘소가 이 돌혈(突穴)입니다. 이 묘소에도 얽힌 일화(逸話)가 전해져 옵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장수로 출정(出征)한 두사충(杜思忠)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이 왜군(倭軍)과의 일전(一戰)에서 패(敗)한 적이 있었는데, 목숨까지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답니다. 하지만 정탁(鄭琢) 공이 변호 해 준 덕택에 무사하게 되었다지요. 이에 그 은혜(恩惠)에 보답하기 위해 점지해 준 명당이 지금의 자리라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두사충(杜思忠)이라는 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겹쳐 출정하여 조선에 귀화(歸化)한 분으로 대구의 풍수학계에 큰 족적(足跡)을 남기신 분입니다.
대구의 ‘대명동(大明洞)’도 이 분으로 인하여 나타난 지명이라고 합니다.
끝으로 이 혈(穴)을 구성하고 있는 흙, 즉 혈토(穴土)는 어떤 모습일까요. 흔히 ‘비석비토(非石非土)’라고 합니다. 돌같이 보이는 데도 조금만 건드리면 흙처럼 부스러집니다. 이 혈토(穴土)는 구성이 아주 치밀하여 물이나 나무뿌리, 벌레 등이 침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그 속에 안치된 시신은 편안합니다. 마치 자궁으로 되돌아 온 기분, 몸과 마음의 원초적 고향으로 되돌아 온 상태겠지요. 아무런 고통이나 고뇌가 없는 곳 말입니다. 이 편안한 기운이 후손에 전해져 발복(發福)이 된다고 보지요. 이 혈(穴)에 정확히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들면 머리 부분이 비혈(非穴) 부분에 뉘어져 있다면 이 부분에 물이나 벌레 등이 침입하겠지요. 그러면 후손들 중에 머리와 관련된 질병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로 유추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첫댓글 풍수공부 잘봤습니다
새롭게 알게됩니다. 감사합니다.
朝鮮 八大 明堂에 동래정씨 묘소가 2곳이니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