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9일 (토) 촬영.
익산 왕궁리 유적 / 사적 제408호
왕궁리 유적은 백제 왕궁의 모습이 잘 남아 있어 삼국 시대 도성을 이해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1989년부터 시작한 발굴 조사에서 궁궐 담장, 정전, 정원, 후원, 화장실, 공방 등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궁성은 장방형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담장의 길이는 동서로 약 240m, 남북으로 약 490m이다.
담장의 폭은 3m 가량이며, 담장 양쪽에는 1m 폭으로 편평한 돌이 깔려 있어 보도시설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궁성 안은 동서 방향으로 축대를 쌓아 공간을 남쪽인 전반부와 북쪽인 후반부로 나누었다.
전반부에는 경사면을 따라 단이 지도록 4곳에 축대를 쌓아 대지를 평탄하게 만들고,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했던 정전 건물, 사용했던 기와를 쌓아 건물을 올린 와적기단 건물, 1동 2실 구조 건물 등을 세웠다.
후반부 북동쪽의 높은 지대에는 왕이 휴식을 취하는 후원을 만들고,
북서쪽의 낮은 지대에는 금과 유리를 생산하는 공방과 화장실을 두었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600~641 재위) 때에 궁성으로 건설하여 사용하다가 백제 말, 통일신라 시대에 와서 사찰로 바뀌었다.
1965년에는 왕궁리 오층 석탑을 해체하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를 발견하였다.
궁성을 지을 대지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로 흙을 쌓은 성토층과 동서 방향으로 쌓은 축대, 당대 최고의 위생 시설을 갖춘 화장실,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 주는 공방 등은 삼국 시대 궁성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데 상당히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수부명 인장와(수부, 라고 도장을 찍은 기와), 전 달린 토기(위쪽에 손잡이처럼 넓적한 면을 붙인 토기),
중국제 청자 조각 등은 왕궁리 유적의 위상과 중국과의 교류 사실도 보여 준다.
왕궁리 유적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현지 설명문 -
왕궁리 유적에 있는 오층 석탑.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 국보 제289호.
탑은 사찰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이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이다.
단층 기단, 얇고 넓은 지붕돌, 3단의 지붕돌받침이 특징이다. 1965년부터 1966년까지 해체와 보수를 하였는데,
이때 1층 지붕돌 중앙과 기단에서 <금강경판> 19장,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 등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가 발견되었다.
또한 석탑의 건물 기초는 가로 16.8m, 세로 12.7m 크기인데, 흙을 다져 메운 판축 기법을 사용한 점으로 보아
이 석탑은 본디 목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탑 주변에서 '왕궁사', '관궁사', '대관관사', '대관궁사' 라는 글자가 새겨진
통일신라시대 기와가 발견되어 탑이 세워진 시기를 놓고 "백제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 시대 초기, 등 여러 견해가 있다.
-현지 설명문 -
첫댓글 작품도
유명하지만
찍기도 잘
담으신사진 아름답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제289호)
부처님 사라를 모신 탑이라니
함 순례길 떠나 보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