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業報).....석우 스님(무불)
우리가 흔히 쓰는 업보라는 말은 범어로 ‘carm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어떤 ‘행위’나 ‘행적’을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업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행위를 저장하는 기억창고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 그 행위는 그대로 업식(業識)에 저장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위는 선업이 있고 악업이 있습니다. 즉, 착한 행위도 저장되고 악한 행위도 저장되는 것입니다.
업식은 전문 용어로 7,8식(말라식, 아뢰야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생명체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혼은 그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여러 가지 집착과 행위들이 집합하여 하나의 체(体)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집합 요소들을 하나 하나 까버리면 마치 양파가 나중에 아무것도 없듯이 영혼이라는 존재도 집합요소들을 제거하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집착과 행위들이 모셔서 체(体)를 이루었기 때문에 3생을 윤회하는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업보는 선업일 경우 살아가는데 좋은 영향을 주지만 악업일 경우는 나쁜 결과가 나타납니다. 때문에 악업이 나타날 때는 그 피해가 큽니다. 물론 작은 업보가 나타난다면 피해가 작지만 큰 업보일 경우는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중생이 3생으로 윤회하는 이유는 인과응보 때문입니다. 전생에 지은 어떤 행위가 있으면 그것을 다 갚고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생에 받아야 할 업보가 없어지나 만약 다 갚지 못하고 죽는다면 다음 생에 반드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또 다시 태어나서 전생에 갚지 못한 것을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입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업보를 받지 않고 윤회하지 않는 것을 목적합니다. 일반인들은 열심히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면 윤회가 중지되고 수행자들은 깨달음을 얻어서 붓다의 세계에 들어가면 윤회는 중지됩니다.
그런데 주가 깨달았다 하여도 전생의 업보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그 과보는 받아야 합니다. 즉, 깨달으면 윤회가 중지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다음 생에 한해서 그렇다는 말이지, 이미 전생의 결과에 의하여 몸을 받아난 이상은 전생의 업보에서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 깨달으면 업보가 많이 소거됩니다.
부처님은 전생에 친구의 허벅지를 칼로 찔러 바다에 빠트려 죽게 한 악업을 지은 일이 있었는데 그 결과 수많은 생 동안 지옥에서 고생하였고, 지옥고를 벗어나서도 날 때마다 일에 마장이 있었으며 나중에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는데도 길가다 가시에 찔려 발등을 뚫는 고통을 겪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외에서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곤란을 당하였던 일화가 몇 가지 더 나오는데 모두 전생의 업보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옛 선사들 중에 깨달음을 얻었던 영가스님은 39세에 죽는 단명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 송나라 때 깨달음을 얻었던 대혜스님은 10년간 귀향살이를 했었고, 고려시대 나옹 스님은 왕사였지만 50세 사망하였는데 역사학자들간에는 정치세력들이 주문한 자객에 의하여 죽었다는 심증을 굳히고 있습니다.
또한 근세의 여러 큰스님들 중에는 병환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은 예가 있는데 이 모두 전생의 업을 벗어나지 못한 예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경우는 순수한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었으므로 피할 수 없는 경우이나 조금만 마음을 갈고 닦으면 충분히 업보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무불선원에 다니던 한 병원 수간호사는 병원 조합장이었습니다. 35세였던 불자는 똑똑하고 대찬 데가 있어서 7년 동안 투표에 당선되어 조합장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찾아와서 그만 두고 싶다하기에 불자는 명예에 초월해야 한다면서 그만두라고 하였는데, 마침 조합장 선거가 있던 겨울에 제가 선원에 들어가 3개월 결제 수행을 하고 돌아오니까 그 불자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망 이야기는 옮기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선거는 갑자기 직선제가 아닌 대의원제로 하여 뽑기로 하였는데 거기서 다른 사람이 조합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담담히 지켜보던 불자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습니다. 모든 조합이 직선제로 바꾸는 민주화 시대에 유독 본 조합만 대의원제로 조합장을 선거하는 것은 중앙노조의 농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났고, 며칠 뒤 전국 조합장 회의실에 신나통을 들고 들어가 “어용노조는 물러가라.”
“정부는 노동탄압을 즉각 중지하라.” 라고 소리치고 분실 자살하여 죽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불자의 전생록을 보니까 그 때 그 불자는 대세를 따르고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만약 한 생각 일으켜 자기 뜻을 세우면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한 생각 일어나면 우주가 생하고 한 생각 멸하면 우주가 멸한다 하였습니다. 만약 모든 것을 전생의 업보로 돌리고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의 운명은 극복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중한 전생의 업보도 염불을 열심히 하고 마음 닦는 일을 부지런히 하면 업보는 소멸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특히 한 생각 툭 일어날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 생각이 착한 것이고 좋은 쪽이면 곧 복이 나타날 징조이나, 그 생각이 악한 일이거나, 남을 미워하는 일이거나, 의심하는 일이거나, 옳다 그르다 따지는 일이거나 등등의 나쁜 생각이라면 곧 불행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므로 즉각 차단시켜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더러움도 깨끗함도 옳음도 그름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생각이 지은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허망한 개념에 이끌려 자기 온 몸을 밀고 들어가기 때문에 전생의 악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를 짓고, 또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무불선원 회보집 반야선(般若船)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