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갑사, '너도바람꽃'
낙엽 숲이 '바람난 여인'들의 '사랑놀이'로 어지럽다.
3월 17일(일), 경기도 광주 소재 무갑사에 다녀왔다. '너도바람꽃'을 만나기 위해서다. 무갑산 등산로 옆 산비탈에 피어 있는 야생화들. 너도바람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꽃들이 시들지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아직은 싱싱하다. 견우직녀가 만나듯 오작교를 건너 조금 더 오르면 좌측 계곡 바위비탈 사이로 여기저기 '너도바람꽃'들이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3월, 4월은 야생화가 절정인 계절이다. 봄이 되면 여인들 만 바람이 드는 건 아니다. 이보다 먼저 꽃들이 바람이 난다. 복수초가 눈 속에서 노랗게 치장하고, 꿩의 바람꽃, 변산바람꽃, 너도 바람꽃 등 이름 그대로 '바람난 꽃'들도 저마다 치맛바람을 일으킨다. 너도바람꽃의 꽃말은 '사랑의 비밀'이다.
바람꽃의 뒤를 따르는 건 노루귀들, 겨우내 숨겨왔던 속살을 드러낸다. 보일 듯 말듯 매혹적인 솜털로 보는 이들을 유혹한다. 복수초, 바람꽃 등이 지나간 뒤, 숲 속에는 '얼레지'들이 연이어 온갖 요염한 자태를 뽑낸다. 한마디로 '요정의 화원'이다. 그래서인지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다. 그녀들의 눈길이 따갑다. 낙엽 숲이 '바람난 여인'들의 '사랑놀이'로 어지럽다.
서울 근교에서는 경기도 안산시 구봉도, 광명 구름산, 경기도 광주시 무갑산, 안양 수리산, 남양주시 천마산, 영흥도 국사봉, 가평 화야산 등이 야생화가 많다. 복수초를 비롯, 노루귀, 개별꽃, 꿩의 바람꽃,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현호색, 얼레지 등을 볼 수 있다. 구봉도는 노루귀, 무갑산은 너도바람꽃, 수리산은 변산바람꽃, 화야산은 얼레지꽃이 많은 편이다. 천마산에서는 만주바람꽃, 힌 얼레지 등 희귀종들도 만날 수 있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경기도 안산시에 속하는 풍도 섬이 특히 야생화로 유명하다. 가히 야생화 천국이라 할 만 하다. 이름도 우연히 '바람 난(?) 섬'이다. 나 역시 바람이 나서 그 '바람난 섬'에 혼자 살며시 다녀온 적이 있다.
풍도에서는 복수초, 현호색 등 일반야생화는 물론,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도바람꽃, 풍도대극 등도 만날 수 있다. 풍도를 갈려면 인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가야하는 섬이기 때문에 적어도 1박2일은 잡아야 한다.
단체로 당일일정으로 다녀오고싶을 경우에는 영흥도 해양파출소 앞 낚싯배선착장이나 탄도항에서 아침 8시 이전 낚싯배를 빌려 다녀올 수도 있다. 행정구역상 풍도는 경기도 안산시에 속하지만 거리상으로는 충남 서산의 삼길포항이 가장 가깝다. 이 때문에 삼길포항에서는 풍도까지 비정기적으로 전세유람선도 운행하고 있다.
류병구 시인(가천대 명예교수)의 시 '무갑사 바람꽃'이 생각난다.
무갑사 뒷골짝,
그늘볕을 쬐던 어린 꽃
가는 바람 지나가자
여린 목을 연신 꾸벅댄다
전등선원 동명스님은
깜빡 졸음도 수행이라 했다
꽃도
절밥을 하도 먹어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요새
무갑산엔
허물 벗은 봄이 바람이고,
바람이 꽃이다
마경덕 시인은 "무갑사...어디쯤인지 굳이 알고 싶지않다. 마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처럼, 어딘가에 존재할 그런 곳으로 간직하고 싶어진다. 오직 꽃과 바람이 사는 곳에 풍경소리만 오갔으면 좋겠다. 봄이 알몸으로 뒹굴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런 곳이 무갑사가 아닐까? 속세의 티 한 점 들지않은 무갑사, 절집의 청아한 풍경소리만 얻어먹은 그늘에 살던 바람꽃들이 귀가 트여 바람의 말도 알아듣고 가녀린 목으로 끄덕거리는"이라고 풀이한다.
"깜박 졸음도 수행이고...허물벗은 봄이 바람이고 바람이 꽃'이라니, 시는 해석의 영역이 아니다. 그냥 주관의 거울 속에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느낄 뿐이다. 졸음 끼가 많은 필자로서는 '졸음도 수행'이라는 알듯 말듯한 싯귀에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