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형성
이기원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지낸다. 그 관계는 다양하다. 취미가 같아 활동하면서 맺는 인연도 있다. 인척 관계로 맺어지는 사이도 있다. 배움이 같아 맺어진 인연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맺어진다. 가장 가까운 인연은 가족이다. 부부 사이가 있고, 부모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인연으로 맺어져 있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사회적•혈연적 천륜지간 이다.
사회의 흐름에 따라 관계 형성의 과정이나 사회적 과정이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할아버지 세대, 부모 세대, 자식 세대가 따로따로의 문화가 형성이 되어 가는 것이 못마땅하다. 예전 농업사회 시절에는 한 집에서 삼대가 엉켜 살면서 효 또는 가정교육 문화가 잘 형성되면서 아기자기 오손도손 살아가면서 가족 관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오래전하여 내려온 풍속에서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아왔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가 경제적 글로벌 사회로 변하여 핵가족이라는 문화로 바뀌면서 이전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던 효 문화와 가정교육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모 집이 멀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또는 직장에 얽매어 시간이 없어서, 아니면 자기들끼리 여행을 즐기느라 그렇다고 한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아들 내외 손주들을 보고 싶어서 찾아가려고 하여도 쉬운 일 아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외부 차량은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세대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들여보내 준다. 손주의 몸에 손을 대려면 먼저 내 몸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 이유야 알지만 괜시레 마음에 부담이 간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스트래스를 받는 이유도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고부간의 갈등이, 요즈음은 장모 사위 간의 갈등으로 변해간다고들 한다. 떨어져 자주 못 보고 살아가니 고부간의 갈등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편하다는 아내의 말에 동감이 간다. 그런데 나는 손주들을 보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 그 또한 스트레스가 쌓인다. 재롱을 떠는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들 내외가 해외여행을 둘이서만 갔다 온다고 우리에게 손자를 맡기었었다. 할머니 따라 주방으로, 안방으로, 거실로 향하여 아장아장 걷거나, 네발로 기어 다닐 적에 시선은 그 모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어디에 머리를 부딪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귀엽기도 하였다. 혹시 음식을 잘못 먹여 탈이나 나지 않을까? 세균에 감염이 되어 아프면 어쩌나, 별의별 걱정도 태산 같았었다. 그러면서도 집안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 내외는 정말 행복했었다. 손자를 낳아준 아들 내외에게 무척이나 고맙고 효도 다했다, 는 생각도 들었었다.
얼마 전 손자와 열흘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공원에도 나가 놀아주고, 수영장도 가서 물놀이도 할 때는 정말 이것이 행복이구나 했었다. 재롱을 떨고, 어깃장 놓는 것 또한 애교스러웠다. 수영장에서 제 할머니에게 귀엽고 조그만 고사리손으로 물을 끼얹지며 놀리는 모습은 왜 그리 귀엽던지 밉지가 않았다. 손자가 보고 싶을 때는 수영장에서 놀던 모습을 담아놓은 동영상으로 위로를 삼는다. 한동안 못 보면 보고 싶고, 찾아올 때는 반갑고 돌아갈 때는 더 고맙다는 이야기 하는 주위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갈 때도 있다.
관계란 어떻게 맺고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고 꺼림직한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가족 관계에서도 언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물며 타인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대등한 관계에서 모멸적인 비판자이거나 아니면 차분한 격려자로서 비약적 관계 개선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 대등한 관계가 아닌 상하 관계에서도 충고이냐, 비난이냐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해주고, 슬픈 일에는 함께 나누며 걱정해주는 사이에서 관계 형성은 향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모두가 관계 형성이 잘되어 좋은 훌륭한 문화로의 승화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내 자신에게 충고의 한마디, 내가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를 한 번 더 생각하고 말을 하여야겠다. 는 생각으로 餘桃之罪(여도지죄)라는 성어을 되새겨 본다.
첫댓글 누구한테는 일침이 될 수도 있는 글입니다. 특히 상하 관계에서는, '충고이냐 비난이냐' 가 관계 형성에 절대적이라 사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