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심을 품다
김윤애
초여름 더위가 30도 가까이 오르며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 낮 수은주가 한여름을 찍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고양이가 더위를 피해 차 아래로 숨어들듯이 태양을 피해 콘크리트 건물로 찾아들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색상의 연필 꾸러미로 디자인된 벤치와 연필 모양의 안내판이 시선을 끌며 여기가 연필 박물관임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아담한 4층 건물로 2층, 3층이 전시관이며, 4층은 전망 좋은 카페이다. 각종 연필과 박물관 기념품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커피 맛도 괜찮다고 입소문이 나 있었다. 야외테라스에 앉아서 탁 트인 바다의 풍경과 옛 어촌의 정겨운 느낌을 그대로 관망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다. 전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박물관이고 우리나라에선 유일하다는 직원의 설명을 들으니 지역주민으로서 가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연필의 탄생 과정과 제작 과정 그리고 월트디즈니 캐릭터 기념 연필의 종류를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는 전시실,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진기한 디자인의 연필들, 이어령, 김훈 작가 등 유명인들이 연필로 쓴 친필 원고와 건축가의 스케치를 볼 수 있으며 계단참에는 연필에 대한 궁금증 등을 풀어놓기도 하였다.
연필 박물관이 뭐 별거 있을까 하고 기대하지 않고 찾아온 나는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점차 심장이 뛰고 가슴이 뭉클해지며 신기하게 유년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서툰 솜씨로 칼을 잡고 연필을 깎다 손을 다친 기억, 깎다 보면 심이 부러지고 다시 깎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길이가 짧아진 연필,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지원요청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자가 풍족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몽땅 연필이라도 버리지 못하고 볼펜 자루에 끼워 겨우 깎아서 쓰던 시대에 맵시 좋게 쭉 빠진 연필은 부의 상징이었다. 외국에서 온 친척이 형제가 많은 우리 집에 외국산 연필 몇 다스를 선물로 가져오면 어찌나 고급스럽고 매혹적인지 연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친구들한테 자랑할 생각으로 해가 뜨길 기다리며 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연필 박물관은 유년의 나를 만나게 하는 메타포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짝꿍은 심술궂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깎아준 연필 몇 자루를 필통에 넣고 학교에 가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내 연필을 부러뜨리는 것이었다. 책상을 반으로 나누어 연필로 까맣게 줄을 그어놓고 내가 조금이라도 선을 넘어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연필을 부러뜨리며 심술을 부리곤 했다. 너무 속상하여 몇 번이고 울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약이 올랐다. 예방 접종 후 부어있는 아픈 자리를 툭 치며 괴롭히던 원수 같은 존재로 일생에 그렇게 미워했던 사람은 없을듯했다. 어서 학년이 바뀌어 그 애와 헤어지는 것이 내 최대의 소원이었다. 당시 학급 인원이 80명 가까이 되었고, 한 학년 학급수도 15반이 넘었으니 다시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5학년이 되어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여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장 한쪽에서 주로 고무줄놀이하였고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칼을 가지고 다니며 고무줄을 끊어버리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남자아이들이 우리한테로 다가오자 여기는 건들지 말라고 그 친구가 막아서며 말렸다. 덕분에 우리는 맘 편하게 고무줄놀이를 즐길 수가 있었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그 친구의 흑심이 양심으로 돌아온 걸까? 지금은 중년을 넘겼을 나이가 된 그 친구가 밉게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누구를 미워할 패기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만큼 늙어간다는 얘기일 게다. 연필 뮤지엄은 잠시 나를 초등학교 시절로 소환하였다.
중학교를 지나며 친숙했던 연필이 점차 쓰임이 덜해지고 잉크 펜과 볼펜을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우리 곁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 건 고교 시절 샤프펜슬이 등장하면서였다.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었음에도 기억 속에 갇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불현듯 오늘에야 그리움을 풀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연필로 글자를 배웠고 마음의 상처를 연필이 기록하며 어루만져주고 성숙해져 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학창 시절의 동반자였던 연필이 샤프펜슬의 등장에 존재감을 잃고 추억의 뒤편으로 밀려나 여기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육각의 삼나무 속에 흑심을 감추며 언젠가 세상으로 나와 검은 선으로 빛을 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연필은 흑연, 물, 점토를 농도와 경도에 따라 일정 비율로 혼합하여 반죽하고 국수 가닥을 뽑듯이 뽑아내어 연필 길이로 재단하여 1,000도 이상의 고온에 구워 왁스를 발라 고정한다. 나무판 두 장에 연필심이 들어갈 정도의 홈을 만들고 한 장의 나무판 홈에 접착제를 바르고 구운 연필심을 넣고 나머지 판으로 덮어 압축 건조한다. 그리고 육각 또는 원형으로 성형하여 페인트를 칠한다. 그 후 연필에 지우개를 부착한 것은 아이디어의 한 수였다. 점토와 흑연의 비율에 따라 농도를 조절하는 데 무난하게 쓸 수 있는 HB를 기준으로 B 숫자가 높을수록 더욱 진하고 무르며, H 숫자가 클수록 연하고 단단해진다. 6B, 4B, 3B, 2B, HB, 4H, 2H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연필은 모든 예술과 창작 활동의 베이스이다. 건축가들도 설계하기 전에 연필로 스케치하며 화가들도 그림을 그리기 전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어떤 작가들은 아직도 작품을 쓸 때 연필을 고집하기도 한다. 연필로 글을 쓰면 다시 고쳐 쓸 수 있어 새롭다고들 하지만 나는 동심으로 잠시 돌아가 순수해지고 마음이 숙연해져 글이 과장 되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묘사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가느다란 샤프심에 내 마음을 의지하기보다는 연필심이 주는 든든함에 생각을 맡기는 것이 안정적이지 않은가?
『철암에서 돌아오는 길』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명문대학교의 한 학생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 경찰에게 쫓겨 탄광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관리직을 마다하고 광부로서의 삶을 선택하여 살다가 무너진 막장에서 젊은 생을 마감한다. 그가 쓴 일기 중에서 평범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 있었다. “지상에서는 삽질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과거를 묻어가는 역사가 엮어지지만, 막장에서는 곡괭이 소리를 쉼 없이 내며 현실을 풍요롭게 하려고 수억 년 전 과거를 파헤친다. 인간들이 지금껏 하는 짓이 묻고 파냄의 반복일 게다. 그럼에도 탄갈피에는 ‘검어도 빛이 된다’라는 약호가 숨어있다.”
어둠의 끝에 찾아오는 것은 한 줄기 광명이다. 어둠은 기어코 빛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검은 석유가 문명의 동력이 되고, 석탄이 연료가 되어 빛을 발한다. 연필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 빛이 되기 위해 흑심을 보호하고 어둠 속에서 새로운 날에 광명을 밝힐 수 있는 때를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필기감이 좋고 부드럽다는 연필을 한 자루 샀다. ‘BLACK WING’. 설레는 맘으로 연필을 깎아 글자 몇 자를 적어보았다. 역시 필기감이 좋고 농도도 적당하고 글이 매끄럽게 춤을 춘다.
“새 연필을 찾아냈어. 지금껏 써본 것 중에서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아, 이름은 ‘BLACK WING’인데 정말로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까” 『에덴의 동쪽』의 저자 존 스타인벡의 찬사이다.
이 연필은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 것인가? 이름처럼 내 글에 날개를 달고 좋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은 아닐까? 삼나무 속 깊이 감춰져 있는 흑심이 어떤 빛을 낼 수 있을 것인가, 내심 기대하며 써 내려간다. 연필은 과거의 나를 반추하며,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의 밑선을 그려주는 듯하다. 연필과 내가 흑심을 품은 이유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