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바지를 입어 다리가 훤히 드러난 여성의 모습만을 집중해 찍었잖아요.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진이란 게 명백합니다” (검사)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일 뿐입니다. 전신(全身)을 찍었는데 이를 두고 ‘다리만 부각됐다’고 주장하면 어떡합니까.” (변호사)
지난 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김우수) 심리로 ‘몰카범’ 강모(35)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강씨는 작년 5~8월 지하철역이나 길거리, 건물 앞 등 공개된 장소에서 외국인 A(27)씨 등 여성 15명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한 언론사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현행법상 성적 흥분·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타인의 신체 부위를 허락 없이 카메라로 촬영하거나, 촬영한 사진을 공공연하게 인터넷 등에 올리면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 받게 돼 있다.
강씨는 여성만을 골라 사진을 찍었다. 대부분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날 정도의 짧은 하의, 몸매가 다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있다. “피고인은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을 쫓아가면서 여러 장씩 사진을 찍기도 했다”는 검사의 설명에 배심원 7명은 물론 ‘그림자 배심원’으로 방청석에 앉아있던 이화여대 학생 30여명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림자 배심원’은 재판 참관을 원하는 일반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나 정식 배심원과 달리 평결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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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카범' 강모(35)씨가 길거리에서 여성들의 뒷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사진(왼쪽)은 유죄, 몸매가 덜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은 사진(오른쪽)은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배심원들 사이에서도 유무죄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하지만 강씨가 찍은 사진들이 한장씩 공개되면서 ‘혼란’이 번졌다. 강씨는 통상의 ‘몰카범’들처럼 아래에서 위로 치마 속 부분을 찍거나(Up skirting) 위에서 아래로 가슴 부분을 찍지는(Down blousing) 않았다. 자기 가슴 높이에서 앞쪽으로 핸드폰을 들고 찍었고, 다리·가슴만 찍기보다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를 찍었다. 또 대부분 뒷모습 또는 옆모습을 찍어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변호인 측은 “통상의 시각으로 길거리에서 그냥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이게 어떻게 성적 욕망이나 성적 수치심으로 이어진단 말이냐”고 반박했다.휴정 시간 삼삼오오 모인 여대생들은 “헷갈리긴 하는데 유죄는 맞는 것 같아” “아니야, 솔직히 성적 수치심이 느껴진다고 볼 수는 없잖아”라며 갑론을박했다. “분명히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다리 예쁜 여자만 찍었잖아요. 그런데 막상 ‘죄’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인 것은 맞으니까요.” 학생 송지윤(24·간호학과)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익명을 요구한 다른 학생은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해서 누구나 내 모습을 촬영해도 된다고 허락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 강씨의 행위는 당연히 범죄이고 처벌받아야 할 사항”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배심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7시쯤 시작된 평결에서 배심원들은 사진 한 장 한 장에 의견을 내놨다. 명백히 ‘유죄’ ‘무죄’ 평결이 나온 사진도 있었지만 4대3, 5대2로 의견이 갈린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판단하는 기준도 제각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배심원은 “다리를 집중해 찍었으면 유죄”라는 기준을 댄 반면, 또 다른 배심원은 “어디를 찍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왜 찍었느냐가 중요하다”며 범의(犯意)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 50장을 일일이 ‘판독’ 하느라 재판부는 결국 이날 선고를 하지 못했다.최종 결론은 강씨가 ‘어디에’ 초점을 맞췄느냐에 따라 갈렸다. 4일 재판부는 강씨에 대해 징역 400만원을 선고하고, 성범죄 예방 프로그램을 16시간 이수하라고 명령했다. 강씨가 촬영한 사진 50장 중 20장이 ‘유죄’ 판정을 받았다. 초점이 여성의 엉덩이·허벅지·가슴에 맞춰져 있어 이 부분이 특히 부각되는 사진들이다. 특별히 이 같은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거나 몇m 간격을 두고 찍은 사진 30장은 ‘무죄’ 판정을 받았다. 같은 사람을 찍은 사진 중에서도 ‘유죄 사진’과 ‘무죄 사진’이 갈렸다.재판부는 “강씨가 인터넷에 사진과 함께 올린 ‘예뻐서 무심코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등의 글을 보면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이 맞는다고 판단되나, 촬영 대상이 외부로 노출된 신체부위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성적 수치심 정도가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배심원 7명도 모두 벌금형(300만~500만원)을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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