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해설위원 이순철과 삼성라이온즈 이성곤이 주고받은 편지
성곤에게.
폭우가 쏟아진다. 이내 멈추더니 햇빛이 쨍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네. 야구선수들은 여름이 참 얄궂다. 성곤아, 더위 속에 야구하느라 고생이 많다. 푹푹 찌는 날씨에 야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빠도 잘 안단다.
올스타전에서 너와 함께 챔피언스필드에 서 있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비록 과거 무등구장은 아니지만 아빠가 현역 시절 터를 일군 곳에 장성한 아들과 있는 것 아니겠니. 표현은 안 했지만 아빠는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큰 키와 당당한 체격을 가진 네가 유난히 늠름해 보이더라.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좌우지간 키 하나는 나를 닮지 않아서 마음에 든단다. ^-^
과거 해태는 응원을 할 때 선수의 자녀 이름을 넣었어. 타이거즈 팬이 모두 '성곤 아빠 잘해라' '성곤 아빠 안타'라고 외쳤지. 그때 너는 5살 꼬마였어. 그 뜨거운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빠는 네가 야구 선수가 되는 걸 반대했어. 사실 정말 야구만은 안 했으면 싶었다. 평생 야구인으로 살아온 아빠는 현장을 잘 안다. 날마다 이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부상으로 영영 야구계를 떠날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타고난 자질이 없는 사람은 도태되는 냉정한 세계다. 특히 너에게는 '아버지 이순철'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일거수일투족 내 젊은 시절과 비교될 거야. 때로는 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진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걸 아빠도 잘 안다. 언젠가 1군 무대에 올라가면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더 무거워질 거야.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이 또한 너의 숙명이고 견뎌내야 할 몫이다.
무뚝뚝한 아빠는 너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한다. 이따금 네게 '카카오톡'을 보내 이런저런 야구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야. '조언을 달라'는 너의 문자를 볼 때마다 아비는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남들 다 하는 하트 표시 하나 없이 '스트라이드가 좁다, 배트 스피드가 떨어진다, 어깨가 너무 빨리 열린다'는 기술적인 답을 하는 아빠가 서운하진 않을는지….
얼마 전 아빠가 너에게 크게 화를 냈던 것 기억하니. 한 달 전이었나. 우연히 네가 함평 2군 구장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중계로 봤단다. 타석에 선 네가 방망이를 돌리고 있더라. 그런데 깜짝 놀랐다. 배트 스피드가 정말 느렸어. 우려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더라. 아마 너는 그날 저녁 아빠가 너에게 했던 말 중 가장 모진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이성곤. 오늘 처음으로 네가 야구하는 장면을 화면으로 봤다. 그건 프로선수의 배트 스피드가 아니었다. 아빠는 네가 하는 말에 모두 동의해 왔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안쓰러워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모두 핑계였다. 그런 스피드를 갖고 외부 환경이나 어려움을 탓하는 건 말 그대로 핑계다. 너는 당장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 프로로서 자질이 없다. 어차피 그 정도로는 살아남기도 어렵다. 네 실력을 인정하지도 않고 왜 남 탓을 하는가."
아빠가 보는 손아섭(롯데)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지. "네 선배 손아섭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프로답다. 아무리 더워도 탄산음료는 입에 대지 않는다. 시련을 이겨냈다. 내야수로 빛을 보지 못하고 외야수로 전업했지만, 날마다 펑고를 받으며 부족한 수비를 보강했다. 지금 손아섭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우익수가 됐다. 방망이는 어떤가. 느린 배트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망이를 돌렸다. 손아섭은 4할대 타율을 노릴 수 있는 타자로 꼽히고 있다."
아마 네 22년 삶에 가장 혹독한 말이었다고 생각해. 네가 어긋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기쁘게도, 이후 네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훈련이 끝나도 따로 타격 훈련을 하는 것 같다. 고맙다. 아빠는 네가 누구의 아들도 아닌 성곤이로 너른 들판에 혼자 서길 바란다. 자생력을 갖췄을 때 비로소 좋은 선수가 된다고 믿는다.
아들아.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들아. 아빠가 편지에서도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올스타전 해설도 냉정하게 했는데…. 아빠의 진심을 너는 알 거라고 믿는다. 서두에 밝혔듯 성곤이 네가 가질 부담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너도 성인이다. 내가 들어도 가슴 아픈 일들을 잘 치료하고 극복해서 지혜로운 어른이 돼 주길 바란다. 고맙고 미안해.
삶을 살아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뭔 줄 아니.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거란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할 때 매사 최선을 할 수 있다. 야구든, 인생이든, 사랑이든 나에게 당당해야 한다.
성곤아. 내 아들아. 아빠가 볼 때 너는 비교적 잘 걸어가고 있다. 스물두 살 청년답게 씩씩하다. 앞으로도 그래 주길. 늘 건강하길. 생에 충실해주길 바란다.
이순철이 이성곤에게.
아버지께.
지난번 보내주신 편지는 모두 다 읽어봤습니다. 평소 하시던 말씀을 그대로 하셨더라고요. 사실, 제가 야구를 시작한 뒤로 아버지를 뵙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도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집에 가면 아버지가 방송 해설 일정으로 집을 비우실 때도 있고요. 평소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 받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편지글로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어요.
아빠의 진심처럼, 저도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요. 아빠. 저는 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말해왔어요.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프로에 입단해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때는 마냥 좋기만 할 때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이순철이기에 남들이 할 수 없는 경험과 기회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어요. 야구선수 이성곤에 대한 모든 평가가 아버지를 기준점으로 시작돼 답답해요. 어릴 때부터 언론에 노출이 되면서, 선수 이성곤보다 '누구의 아들 이성곤'으로 평가받는 데 익숙합니다. 이제 '아빠만큼 해야 한다', '아빠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은 이제 농담 반 진담 반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있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듯 제가 극복해야 할 숙제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서 선택한 야구였어요. 갓난아기 때부터 장난감 야구공과 배트, 글러브를 갖고 놀았습니다. 친구들과 동네 야구를 하며 부지런히 골목을 누볐고요. 야구는 제게 너무나 당연한 숙명이었던 것 같아요. 야구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어요. 부모님이 만류하셨지만 끝까지 이 일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한 번도 제 타격이나 수비에 대해 따로 지도한 적이 없으셨어요.^-^ 언젠가 말씀하셨죠. '내가 선수 출신이지만, 너의 야구에 손댈 수 없다. 너에게는 감독과 타격 코치가 따로 있다. 아비가 별도로 지도를 하면 그분들께 누가 되는 것이다. 예의가 아니다. 또한 고작 한두 경기 보고 섣불리 지도했다가 괜한 혼동만 줄 수 있다. 너의 야구는 스스로 풀어나가라.' 저 역시 동의했습니다. 한 번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드린 적이 없었던 이유에요.
대신 독학을 시작했어요.^^ 몰래 아버지 현역시절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몰래 아버지 현역시절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야구 서적을 읽으며 아빠 타격에 대해 공부도 했고요. 그거 아세요? 아버지 방을 뒤져서 수첩이나 노트도 찾아 읽은 거요. 현역시절에 쓰시던 수첩이었는데 상대 투수의 장점과 약점, 피칭 유형을 정리해 놓으셨더라고요. 이따금 아빠의 현역 시절과 제 지금의 모습이 겹쳐서 '피식' 웃을 때도 있었어요. 프로선수들이 꾸준하게 생각과 기록, 그날의 경기를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 야구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편지에서 '3루수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옮기면서 새롭게 배우고 경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 수월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3루수에 애착이 있어요. 아직 생각하는 단계라고 여겨주시고 조금 더 지켜봐 주세요.아빠. 집에서는 제가 별로 살가운 편이 못되지요. 여느 집처럼 서로 만나면 간단한 안부만 주고받는 무뚝뚝한 부자에요. 이따금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 저도 참 행복합니다. 자주 연락 드릴게요. 중계 때문에 출장이 잦으실 텐데 늘 건강 조심하셔요.
성곤 올림
순페 와중에 " 무뚝뚝한 아빠는 너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한다. 집에서는 일절 야구 이외의 말은 안하니…. (중략) 그런데 깜짝 놀랐다. 배트 스피드가 정말 느렸어." 팩폭ㅠㅠㅋㅋㅋㅋㅋㅋㅠㅠ
첫댓글 ㅜㅠㅠ 나만 눈물나나봐 성곤 선수 잘 되셨으면 좋겠다
순페이 왜 날 울려..
비상이다.. 근데 배트스피드 얼마나 느렸길래ㅜㅋㄱ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아 울다가 댓글보고 웃음 진정한 야구팬ㅋㅋㅋㅋㅋㅋㅋ
성곤 힘내라 ...
순페이....
와ㅏ이 엠아크라잉.... 흡꾺꾺꾹ㄱ끄엉
비상이다.......와엠아쿠라잉.....
비상... 비상이다🚨
순페이ㅠㅠㅠㅠㅠㅠ 나 성곤 선수 홈런쳤을때 순페이 영상 찾아보고 눈물 찔금했잖아...
두산 시절에 이순철이 성곤이 보러 이천에 자주 오고 그러는거 보고 되게 찡 했는데...ㅠㅠ 성곤이 꼭 더 빛 봤음 좋겠다....
비상이다...
순페이......눈물 좔좔ㅠㅠㅠㅠㅠㅠ성곤아 흥해라
별안간 손아섭 자기관리 알고감..
비상이다...
ㅠ . ㅠ 나중에볼래 ...
ㅅㅂ 버스에서 오열중....
진짜 눈물 완전 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뚝뚝해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는 그런 편지야ㅜㅜ
순페이........눈물나ㅜ
이성곤 잘좀해봐 ㅠㅠㅠㅠ
아시발 나 왜 우는중이냐....순페...ㅠ
이성곤 좀 잘해봐...
야 이순철 진짜...
비상이다
순페이 나 눈물나......
순페... 성곤아 아빠 생각해서 진짜 잘 좀 하자...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