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에 일어나 달걀을 풀어 넣은 컵라면으로 해장했다. 악양의 옻칠 공예가이자 동네밴드 리더인 성광명 형은 감은 눈으
로 동생들을 배웅했다. 그렇게 곧장 찾아간 곳이 김경구씨 집이다. 그는 악양 삼봉(구재봉, 형제봉, 시루봉)이 내려다보는 명당
에 손수 집을 짓고 들어온 8년 차 귀농인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별일 없이 산다’에서 퍼온 글로 그간의 이력을 돌
아보자.
“귀농 후 3년간은 3무 농법(무경운, 무제초, 무농약)으로 유기농 작물을 생산하고자 딴에는 꽤나 열심히 농사를 지었어요. 귀농
2년 차부터는 논도 여섯 마지기 마련해서 2007년까지 당시 유행하던 쌀겨 농법으로 논농사를 짓기도 했고요. 하지만 귀농 4년 차
들어 급속하게 농사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떨어지면서 게을러지더니, 귀농 7년 차로 들어선 지금은 급기야 ‘심는다, 거둔다,
중간 생략’의 혁신적인 ‘방치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요.”
논만 방치한 게 아니었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도록 방치한 암탉 두 마리가 밭이랑을 콕콕 쪼아대고 있었다. 그 뒤를 실하게 살이
오른 수탉 한 마리가 따랐다. 방치한 삶이 꼭 실패한 삶은 아니었다. 그동안 하는 일 없이 몇 년을 놀며 지냈다지만, 집 안 가득한
앰프와 CD 플레이어, 스피커의 조합으로 보아 뭔가 한 가지에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 같았다. 그는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젊은 학
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책보따리’란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여는 일에 힘을 보탰고, 얼마 전부터는 품앗이와 연계한 지역화폐 사
업에도 열심이었다. 그는 이날도 품앗이가 있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버들치 시인의 집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차를 달려 오르막길을 오르자 그 끝에 하늘색 지붕을 얹은 정갈한 집 한 채가 나왔다.『여행생활자』라는 책을 쓴 유성용 작가가 예전에 살던 집이라는 말은 광명 형에게 들었다. 섬돌에 굽 낮은 힐이 가지런히 놓
여 있을 것 같아 조심조심 다가갔다. 배낭 옆에 놓인 등산화로 보아 산 좋아하는 친구 분이 찾아온 듯했다. “버들치 시인님” 하
고 몇 번을 부르자 모깃소리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취재 안 한다고 말씀드린 걸로 아는데욧.” 찾아오는 여성 팬이 너무 많아
여성지 취재라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는 알피엠 누님 말을 들은 터라 한 귀로 흘려들었다.
얼굴이라도 볼 요량으로 몇 번을 더 보채자 수염이 더부룩한 분이 미닫이문을 열고 정중히 거절한다. 그 너머로 버들치 시인의
옆얼굴이 언뜻 스친다. 그대로 물러나 집 주변을 가만히 둘러본다. 노랑 방수포에 싸인 오토바이 뒤로 버들치를 넣어 기른다는
작은 연못이 보인다. 낯선 이를 경계하여 바위틈에 숨었는지 빈 연못처럼 고요했다. 차에 오르기 전 시인이 집 밖으로 나와 마당
에 모습을 드러냈다. 붙잡으면 잡힐 사람이었지만, 그걸로 되었다 싶어 그냥 차에 올랐다. 그 길로 닿은 곳이 쌍계사 초입의 단
야식당이다.
‘들깨 국물이 너무도 고소한 사찰국수, 표고가 고기처럼 씹히는 표고전, 갓 짜낸 참기름과 들기름에 무쳐낸 갖은 나물들’로 한
상 받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날은 영업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음주가무에 돌입하기 전 알피엠 누님의 통화로 단
야식당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주인의 어머님이 이번 설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길일에 상을 당해 부러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
지 않았다 한다.
단야식당에는 대문이 없었다. 네모난 나무판에 한 글자씩 새겨서 걸어둔 간판 아래로 발을 들이자 차나무와 매화 고목이 있는
소담한 정원이 나왔다. 혹시나 하고 들른 걸음이었다. 처마 밑 ‘할 일이 많아 참 좋다’는 글귀가 적힌 방에 있던 여인이 인기척
에 돌아본다. 그가 바로 ‘쌍계사 앞 음식점 미녀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은 애써 찾아온 일행을 내치지 않고 마당에 외따로 있는
‘다담실’로 불러 차를 대접했다. 10년간 백운장이란 여관을 운영했고, 1993년에 단야식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다.
“공 작가 책을 보면 내가 강남좌파(공 작가를 차에 태우고 지리산을 열심히 드나든 출판사 사장)한테 반했다는 대목이 나오잖아
요. 그 글을 본 지인들이 속이 상해 찾아와서 나한테 뭐라고 해요. 언니가 그럴 분이 아닌데 하면서. 나야 그런 말에 신경 끄고
살지. 남이 뭐라고 하든 내가 아니면 되니까. 그래서 강남좌파가 내려왔을 때 부러 손잡고 식당 한 바퀴를 돌자고 했어요.”
열 잔 넘게 차를 마시는 내내 다담실 벽에 걸린 액자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영화, 미술, 연극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 예술가로 통
하는 이익태씨가 보낸 연하장이 액자에 들어 있었다. 그림과 글귀를 받은 것이 지난 2003년이었다. 덕분에 미모의 여주인 이름
이 ‘월순’이란 것도 알게 됐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보로 사는 것’. 미녀 사장님은 “처음엔 잘 몰랐는데, 두고두고 생각나는
글귀”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오랜 세월 찻물을 머금은 백자 다완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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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공지영님 소설 보았지요 감사
한번 가보고 싶네요
저도 시간이 나면 한번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