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날 조식을 하고 08:00 교토로 갔다
▲기요미즈데라
청수사(기요미즈데라) 는, 1,200년을 넘는 역사를 가진 절로 교토에서도 굴지의 인기를 자랑한다. 길다란 언덕길로 된 산도(参道: 신사나 절에 참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를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 옻칠을 한 니오문(仁王門). 좀더 계단을 올라가면 높이 약 31m의 산주노토(三重塔: 삼층탑)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일본내 최대급의 높이로 교토 도심에서도 잘 보여서 본당의 무대와 함께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의 상징적 존재로서도 익숙하다. 옻칠에 극채색을 입힌 삼층탑은, 피사체로도 대인기다. 어디부터 촬영을 해도 그림이 된다. 내부에는 다이니치뇨라이(大日如来: 대일여래, 진언종의 본존)가 모셔져 있다.
▲데바 문
▲기요미즈데라의 입구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의 상징적 존재 [산주노토(三重塔)]
니오문(におうもん [二王門·仁王門)
에서 산도를 걸어가다 보면 정면에 보이는 것이 [지신인(慈心院) (淸水寺)]이다. “즈이구도”라는 본존에 유래한 통칭으로 알려져 있다. 1718년에 재건된 당내에 다양한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하는 본존으로 비불(역자 주: 비공개 불상)인 다이즈이구보사쓰 보살(大随求菩薩)을 비롯하여 연애나 순산, 육아의 신불을 모신다.
청수사(기요미즈데라) 는, 1,200년을 넘는 역사를 가진 절로 교토에서도 굴지의 인기를 자랑햔다. 길다란 언덕길로 된 산도(参道: 신사나 절에 참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를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 옻칠을 한 니오문(仁王門). 좀더 계단을 올라가면 높이 약 31m의 산주노토(三重塔: 삼층탑)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일본내 최대급의 높이로 교토 도심에서도 잘 보여서 본당의 무대와 함께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의 상징적 존재로서도 익숙하다. 옻칠에 극채색을 입힌 삼층탑은, 피사체로도 대인기다. 어디부터 촬영을 해도 그림이 된다. 내부에는 다이니치뇨라이(大日如来: 대일여래, 진언종의 본존)가 모셔져 있다.
본존인 천수관음을 모시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의 본당은, 험한 절벽위에 세워져 있다. 일본에 옛날부터 전해지는 [가케즈쿠리(역자 주: 산, 벼랑, 바닷가 등에 일부분이 돌출되게 짓는 방법)]라는 건축기법이 사용되어서 격자형으로 짜여 진 목재가 특징이다. 이 무대가 탄생한 것은 헤이안 시대 이후로 관음신앙의 고조와 함께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참배자의 증가에 따라 조금씩 본당 앞면을 확장하여 드디어 공중에 무대를 돌출시켰다고 한다.
무대를 지지하는 18개의 기둥은 수령400년 이상의 느티나무가 사용되어, 일절 못을 쓰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언제나 참배자가 긴 행렬을 만드는 오토와노타키(오토와 폭포)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의 명칭의 유래가 된 폭포다. 일찍이 승려인 엔친스님(延鎮上人: 엔친쇼닌)이 꿈에서 계시를 받아 오토와 폭포를 찾아가 청수사(기요미즈데라) 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샘솟아 오르는 물은 예로부터 [금색수][연명수]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3갈레로 나뉘어 흘러내리는 물을 대가 긴 국자로 떠서 마셔서 다양한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한다. 3갈레의 폭포 각각에 다른 복을 지닌다고 하는 속설도 있지만 어느 물도 복은 동등하다고 한다.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에는 다양한 부적이 준비되어 있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광객에게 인기인 것이, 꽃을 조합한 디자인과 청명한 음색이 귀여운 [가이운사쿠라스즈(開運桜鈴: 개운)]라고 한다.
다. 작은 조개껍질을 치리멘으로 감싼 [쇼후쿠마모리(招福守: 복)]도 귀엽다.
예로부터 사원이나 신사의 참배 후는 몬젠마치(신사, 절 앞의 시가지) 산책이 정석 코스 란다. 청수사(기요미즈데라) 를 방문했다면 산도의 몬젠마치도 즐겨 볼만 하다. 도자기가게가 줄지어 늘어선 차왕자카(茶わん坂)나, 기온 방면으로 빠지는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 등,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의 산도에는 기념품점이 늘어서 있어 관광객으로 늘 붐비고 있다. 와가시(일본 과자)나 츠케모노(야채절임) 등의 기념품이나, 도자기나 교토인형, 부채 등의 전통공예품 등, 교토 특유의 상품이 가득 진열되어 있어 자꾸만 눈길이 가게 된다. 유도후나 소바, 디저트 가게도 많이 있어, 교토 음식도 만끽할 수 있는 거리 같았다.
2)아라시야마, 도게츠교(dogetsuhgyo)
아라시야마(嵐山) 는 교토 서쪽의 관광명소로 아라시야마 산과 아타고 산이 만드는 호즈쿄 협곡과 이 사이를 지나는 가츠라 강이 넓게 펼쳐지는 지역이라한다. (가츠라 강은 교토 중심을 흐르는 가모가와 강과 만나 오사카로 빠져나가는 요도 강을 이루는 강이다.) 강은 달이 건너는 다리라고 불리는 도게츠교渡月橋 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주변으로 료칸과 상업시설이 발달해 있다. 주요 관광지로 덴류지天龍寺 를 비롯 교토를 대표하는 사원과 신사가 모여있으며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대나무 숲인 치쿠린竹林 이 유명하단다.
▲가츠라 강을 건너는 다리 도게츠교
달이 건너는 다리라해서 도게츠 다리란다 길이 155m 폭 11m의 콘트리트 다리로 주변 풍경과 어울리도록 난간과 지지대를 나무로 둘러 목조 다리와 같은 느낌이 든다.
3)아라시야마(嵐山) 치쿠린(竹林)
▲교토 아라시야마의 대나무 숲 지쿠린(竹林 ,치쿠린)
교토의 관광명소 중 한 곳으로 세계 유산인 텐류지(天竜寺)에서, 노노미야(野宮)신사를 지나는대나무 숲이다. 수천그루의 대나무가 만들어내는 시원한 그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걷는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산책로다.
아라시야마 죽림을 포함한 그 주변은 일본의 전통적인 이동수단인 ‘인력거’가 있다
커다란 바퀴에 레트로(retro)
한 좌석이 매력적인 인력거를 타고 죽림 일대를 둘러 보면 더 좋을것 같았다!
▲'아라시야만 나한' 석가모니의 제자상
▲인기 카페 '빵토 에스 프레스토 아라시야마정원'
▲죽림 안에 있는 ‘노노미야 신사’
▲대나무 숲이 끝나는 부근에 오코치 산소 라는 별장으로 가는 길이 보였는데 궁금 했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가츠라 강에는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호즈쿄 협곡에는 호시노야 교토 료칸이 있으며 도게츠교에서 배를 타고 료칸까지 이동 한다고한다.
대나무 산책로가끝나니 아라시야마 서쪽을 흐르는 가츠라 강 주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다시 도게츠교가 나왔다.
4)점심식사
레스토랑 아라시야마에서 유두부 정식을 먹고 다음 코스로 이동
5)로쿠온지(鹿苑寺)
킨카쿠지(金閣寺)로 더 알려저 있는 절이기도하다.
로쿠온지(일본어: 鹿苑寺)는 일본 교토부 교토시 기타구에 있는 일본 선불교 사찰에 있는 정자로 비공식적인 명칭으로는 킨카쿠지(일본어: 金閣寺)로도 부른다.이 건물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로쿠온지는 국가 특별 사적지, 국가 특별 경관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도 교토의 문화재 중 하나이다.
▲로쿠온지
로쿠온지는 본디 사이온지 긴쓰네의 별장으로 키타야마다이(北山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이후 1397년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은퇴 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의 정자를 짓고 관련 시설들을 만들었다. 이후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죽자,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 건물을 린자이 학파의 선불교 사찰로 그 용도를 바꾸었다. 이후 오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사찰과 함께 정자와 모든 건물들이 전소되어 버렸고, 이후 복원되었다.
로쿠온지는 1950년 7월 2일, 새벽 2시 30분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22살의 젊은 승려 하야시 요켄에 의해 화재에 휩싸였다. 이후 그는 사원 뒤쪽에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죽지 못했고 사람들에 의해 체포되어 곧바로 수감되었다. 하야시 요켄은 약 7년 동안의 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이유로 1955년 5월 가석방되었다. 이 화재로 인해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상이 손실되었으나, 현재 복원되어 다시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방화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1956년 미시마 유키오가 소설 <킨카쿠지>를 발표하였다.
▲1885년에 찍힌 사진. 금박은 세월의 흐름 때문에 벗겨져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정자는 1955년에 다시 재건한 것이다. 정자는 총 3층 높이로, 그 높이는 12.5m이다. 일본에서는 로쿠온지를 과거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옛날에도 지금처럼 정자에 엄청난 양의 금박이 덮여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1984년, 정자에 칠해져 있던 옻칠의 일부가 썩은 것으로 판명되어 이에 전보다도 훨씬 더 두꺼운 옻칠을 하여 보강하였다. 또한, 이 때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상도 복원하여 다시 안치하였고 안에 걸려있던 그림도 다시 걸었다. 2003년에는 지붕이 완전히 복구되었다. '킨카쿠지'라는 이름에서 '킨카쿠'는 정자 전체를 두텁게 덮고 있는 황금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금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생각, 감정들을 없애준다고 믿어졌으며, 사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사원에 칠해졌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 외에도, 로쿠온지는 무로마치 시대의 건축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무로마치 시대의 건물들은 대개 장식적이거나 화려한 분위기를 추구하였다. 햇빛이 로쿠온지에 반사되어 찬란히 빛나는 것, 고요한 연못에 정자의 모습이 투영되어 비치는 것과 같은 극적인 장치들을 통해, 로쿠온지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금각(金閣)은 로쿠온지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다. 탑의 2,3층은 금박이 입혀져있다. 탑은 부처의 유물을 보관하는 샤리덴(舎利殿, 사리전) 역할을 한다.
정자에는 총 3개의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며 섞여 있다. 첫째는 신덴즈쿠리 양식, 둘째는 부케즈쿠리 양식, 셋째는 선종 사찰의 양식이다. 먼저 신덴즈쿠리 양식은 11세기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으로, 1층이 이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참고로 1층의 이름은 법수원(法水院)이다. 신덴즈쿠리 양식에서는 인접한 베란다가 있는 열린 공간들을 주로 설계하며, 칠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목재를 주로 사용하며 백색의 석고를 사용하여 벽을 세운다. 이와 같은 수수한 양식은 주변의 풍경을 강조시키는 효과도 있으며, 정자 내부의 풍경도 변화시킨다. 1층의 벽에 있는 창문들은 보통 가리개가 있어, 정자 내부로 통하는 공기와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해 내부의 음영을 조절, 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2층을 이루고 있는 양식은 부케즈쿠리 양식이다. 2층의 이름은 조운동(潮音洞)인데, 무사 저택의 주된 건축 양식이었던 부케즈쿠리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2층에는 미닫이문과 격자 창문이 있어, 고요하고 정적으로 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곳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고, 관음보살에게 바쳐진 조그만 사원이 있다.
3층은 구경정(究竟頂)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곳은 선종 사찰의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어져 있는데, 이 곳에는 부처의 사리가 황금 항아리 속에 들어있고, 내부의 바닥과 천장, 벽을 모두 얇은 황금으로 발라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지붕은 얇은 나무껍질을 발라 덮은 피라미드 형 모습이다. 맨 꼭대기에는 청동으로 만든 봉황 조각상이 있다.
정원
로쿠온지를 둘러싸고 있는 정원은 일본 전통식 조경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외부의 자연풍경을, 정원 내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조경을 하였다. 이로 인해 정원을 바라볼 때 그 시각을 정원에만 한정되지 않게 하고, 그 바깥의 광경까지 확장되게 하여 더 심오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원에는 큰 연못 하나가 있는데, 이를 고쿄지(鏡湖池), 즉 거울 연못이라고 한다. 이 연못은 정자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여, 마치 정자가 상하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서 있는 것과 같은 착시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연못에는 총 10여 개의 돌들이 놓여져 있다. 선불교의 관점으로 놓여진 이 돌들은, 각자가 중국과 일본의 문학 작품들에 등장한 유명 장소들을 상징한다. 이 정원이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까지도 따로 표시해 놓았을 정도이다. 연못의 한 쪽에는 조그만 나루터가 있는데, 이를 통해 조그만 배를 연못에 띄울 수 있다. 이 나루터의 이름은 쯔리또노(釣殿)이다. 정원의 전체적인 배치는 불교의 극락정토를 묘사해 놓은 것으로,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이루어 '합일'의 경지를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섬은 일본 열도를 상징하고, 줄지어서 나란하게 배열되어 있는 네 개의 섬들은 극락 세계에 가기 위해 기다리는 네 척의 배를 상징하였다고 한다.
이 정원은 무로마치 시대 정원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무로마치 시대의 정원들은 보통 일본식 정원의 고전적인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되는데, 이 때에 건물과 그에 담긴 뜻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 주로 발전하였다. 당시의 일본 조경사들은 건물을 예술적인 방식으로 자연에 녹아들게 하는 것을 최고의 미로 평가했다. 특히 정원의 크기, 돌들의 크기를 조그맣게붙이고 더 가까이 배열함으로써, 실제로는 거대한 풍경을 조그마한 공간 안에 밀집해 표현하는 형식을 고수하였다.
▲셋카데이
17세기 경 일본 전통 다실풍 별채
▲부동당
암석에 새긴 부동 명왕신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
▲쿠리
금각사 사찰의 음식을 마련하는 공수간
▲주불당
금각사의 주지 스님이 사용하는 전용 불당
▲코코치
금각사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
▲금각사의 뒤쪽 출구쪽에 자리한 龍門滝.
"잉어가 용문 폭포를 오르면 용으로 변한다"
고하는 중국의 고사를 모방 한 것이라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