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연의(退魔演義)Ⅱ 183 - Case No.21 살인귀(殺人鬼)

[love]

 

퇴마연의(退魔演義)Ⅱ 183 - Case No.21 살인귀(殺人鬼)

피의 향기.

뼈를 잘라내는 느낌.

살점을 도려내는 쾌감.

다시 그 희열을 맛보고 싶어.

File#05     피어나는 의심

민우가 유치장에 24시간 동안 있는 사이 사건의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국과수에서도 테잎은 조작된 흔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목격자인 여자도 강경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테잎 이외에 민우가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용의자였다면 당장 구속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비청원의 요원이었기에 쉬쉬거리며 사건의 조사는 길어졌다. 그러다 사건은 조용히 진행하되 민우는 풀어주라는 명령이 위에서 내려와 민우는 만 하루만에 경찰서를 나왔다. 민우와 함께 밤을 샌 동완이 경찰서 앞까지 나오며 말했다.

“당분간은 미행이 붙을 거야.”

“네.”

“차라리 그게 나아. 네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을테니까.”

“알아요.”

동완이 얼마나 신경 썼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밤새 유치장에 있었던 민우보다 더 초췌한 모습으로 민우를 배웅하는 동완의 모습에 민우는 동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동완은 민우의 마음을 안다는 듯 푸석한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그럼 집에서 보자.”

“네.”

두 명의 형사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 챌 수 없게 잘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미행에 익숙한 민우에게 두 사람의 기척은 크게만 느껴졌다. 가을의 따가운 햇살 아래 별다른 기척 없이 걷는 민우와 그 뒤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두 명의 형사가 30분 정도를 걸어 민우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몸을 돌려 단지 안으로 들어선 민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지 불과 30초도 되지 않은 순간 걸음을 빨리한 형사들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민우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젠장! 김 형사님한테 전화 걸어!!!”

“뭐? 민우가 사라져?!! 알았어. 내가 당장 갈게.”

박 형사와 사건 현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전화를 받은 동완이 급하게 차를 돌렸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박 형사는 밤새 면도를 하지 못해 히끗히끗한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얼굴로 유리창 위의 손잡이를 잡아 몸을 지탱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정 형사하고 이 형사가 미행하던 도중에 민우를 놓쳤답니다.”

“어디서?”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서서요.”

“도주한 건가?”

“모르겠어요.”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친구지?”

박 형사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물었다.

“도망칠 마음이었다면 유치장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분명히 무슨 사정이 있는 걸 거예요.”

“그래도 어서 찾는 게 좋아.”

“네.”

동완은 걱정스런 마음에 사이렌을 켠 채 최고 속도로 달렸다.

자정이 넘은 시간.

택시에서 내린 여자가 아파트 라인 현관 앞에 서 열쇠를 찾는 순간 탁한 숨소리를 내며 주르륵 미끄러졌다. 바닥으로 쓰러진 여자의 몸에서 칼을 빼내는 모습이 여자의 눈동자에 비춰졌다. 떨리는 눈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여자의 목을 단숨에 그어버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지는 남자 뒤에 걸어 들어오던 소년이 지른 비명이 아파트 단지를 뒤흔들었다.

“으으...”

따가운 햇살과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잠이 깨 몸을 일으킨 민우는 자신이 집근처 공원 벤치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일으켜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해 내려 했다. 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제 미행하는 형사들을 뒤에 달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이후로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 이건...”

조금 지저분해진 흰색 티셔츠 앞의 흔적은 핏방울이었다. 그것도 날카로운 것에 베인 상처에서 튀어 오른 핏자국.

“젠장...”

“이민우!!!”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있다가 오는 거야?”

집으로 들어서는 민우의 모습에 소파에 앉아있던 혜성과 승민, 선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

“너 없어졌다고 경찰서는 난리가 났어. 어디 있다 이제 오는 거야?!!”

“...몰라.”

“뭐?”

혜성의 물음에 멍하니 대답하는 민우를 향해 혜성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저께 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있었던 걸로 부족해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미행하던 형사들을 따돌리고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아니라고 믿지만, 절대 범인일 리 없다고 믿지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니 믿음과는 별개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민우도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모르겠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우선 진정하고, 동완 형한테 전화부터 하자.”

승민은 흥분한 혜성을 진정시키고 동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뒤, 집으로 온 동완이 직접 민우를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동완은 운전대를 잡은 채 민우에게 물었다.

“누가 널 기절시킨 거 아냐?”

“그런 느낌 없었어요.”

“정신을 잃었다며?”

“형사들의 기척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어요. 내가 다른 사람의 기척을 못 느꼈을 리가 없어. 누가 내가 정신을 잃을만큼 공격하는데도 내가 못 느꼈을 리 없어요. 주변에는 일반 시민들 뿐이었어요.”

“하지만...”

민우의 확고한 대답에 동완도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일단 어제의 일을 조사받기 위해 경찰서에 도착한 민우를 담당하는 건 고참 박 형사의 몫이었다.

민우가 박 형사의 조사를 받는 동안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었다는 민우의 말을 동완을 통해 전해들은 남은 멤버들은 모여서 머리를 모았다. 답답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승민과 선호, 반대쪽에 앉아있던 정혁의 사이에서 첫 번째로 입을 연 건 혜성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민우가 기척조차 느낄 수 없는 사람이...”

혜성은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이민우가 기척도 느끼지 못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평소도 아니고 그런 일이 있은 뒤라면 혜성마저도 예민한 상태였을 게 분명한데, 민우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믿기 힘들었다.

“있긴 하지.”

“누구?”

승민의 말에 혜성이 놀라 물었다. 승민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암팀.”

“암팀?”

“그래.”

“암팀이 왜? 무슨 일로 민우 형한테 그런 짓을 해요?”

승민의 말에 선호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알 수 없어.”

“암팀이 우릴 타깃으로 잡았다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게다가 그 핏자국...”

혜성은 민우의 티셔츠에 묻어있던 핏자국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선호는 동완에게 증거물로 들려 보내기 전에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놓은 핏자국을 보며 말했다.

“일단 어떤 패턴인지 알아내서 정황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몰아가는 상태라면 그 핏자국마저도 민우가 불리할 거야. 완벽하게 증거를 조작했지 않겠어?”

“너희는 민우를 의심하지 않는 거냐?”

멤버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정혁의 말에 혜성이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라고요?”

“민우가 범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고. 모든 증거가 완벽하잖아. 그런데도 민우가 무죄일 거라고 믿는 거야?”

“그야 당연하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럼 형은 민우를 의심하는 거예요?”

정혁의 물음에 민우와 선호, 승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정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되물었다.

“왜?”

“뭐?”

“왜 민우를 의심하지 않지?”

“뭐라고?”

“너희는 왜 민우를 의심하지 않냐고.”

“그야 우리 멤버니까 당연하잖아!”

영문을 알 수 없는 정혁의 물음에 혜성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계속 민우를 의심하는 말만 하는 정혁에게 혜성은 화가 났다.

“그 이유뿐이야?”

“설마... 이민우가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민우가 멤버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하지 않는 건 바보같은 짓이야.”

“뭐야?!! 그럼 형은 이민우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정혁의 말에 혜성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어? 또 다른 목격자?!!”

“네. 어제 있었던 살인 사건 현장에서 현장을 떠나는 용의자를 본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현장을 떠났던 사람이 이민우라고 합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 형사의 말에 동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필이면 민우가 미행을 따돌리고 사라졌던 하루 사이에 다시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으로 부족해 목격자까지 있다니... 게다가 민우는 그 날 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민우가 불리하다 못해 범인이 확실하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하아...”

십여시간의 취조와 정신 감정 끝에 민우는 지친 표정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동완이 생수병을 내밀었다.

“고생했다. 가자.”

“가다뇨?”

“당분간은 내가 널 감시하기로 했어. 집으로 가자.”

동완의 말에도 민우는 선뜻 일어날 수 없었다. 이 이상 사건에 관련되면 동완이 곤란해진다.

“걱정마. 괜찮으니까, 가자.”

아무리 동완이 신원 보장을 해도, 그리고 민우가 비청원의 요원이라도 벌써 세 건의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받고, 그 외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집에서 머물다니...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처사였다.

나란히 병원의 주차장으로 나온 민우와 동완은 동완의 차에 올랐다. 막 주차장을 빠져나가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민우가 입을 열었다.

“...형.”

“응.”

“나... 내가 진짜 범인이 아닐까?”

“뭐어?!!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

“하지만 알리바이가 없잖아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거야 누군가 일부러 조작한 거니까 당연하지.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네 알리바이 정도야 미리 없애놓은 거야.”

“누가 그럴 수 있죠?”

“그야...”

하지만 동완도 딱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상해.”

동완을 경찰서에 내려주고 사린이 근무하는 검찰청으로 가기 위해 경찰서 방향으로 운전하던 승민은 동완의 중얼거림에 차선을 바꾸며 물었다.

“뭐가요?”

“민우는 외부에 드러난 것만 해도 벌써 세 건의 살인 용의자야. 그런데도 위에서는 계속 풀어주고 감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고 있어.”

“위라면 어디? 비청원이요?”

“모르겠어.”

“그건 수상한데?”

“선호한테 한 번 알아보라고 해.”

“알았어요. 아, 그리고...”

“왜?”

“정혁 형은... 민우를 의심하는 거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민우가 범인이 아닌 것을 믿느냐며...”

승민의 말에 동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알았어. 그럼 우선 넌 선호랑 대체 어떻게 위에서 그런 명령이 내려오고 있는 건지를 알아 봐.”

“알았어요. 그럼 조심해요.”

“그래. 너도.”

동완을 내려준 승민은 차를 돌려 검찰청으로 향했다.

민우가 집에 있는 사이 현관과 거실, 침실을 비롯해 욕실을 제외한 모든 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최신식 감시 장치라는 명목이었다. 카메라 설치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민우는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동완과 승민, 그리고 선호가 나가고 오전 내내 빨래는 하고 청소를 한 혜성은 점심을 차리고 거실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민우를 향해 소리쳤다.

“이민우 밥 먹어.”

“됐어.”

“먹어.”

“싫다고.”

“차려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좀 쳐 먹어라!”

버럭 소리를 지르는 혜성의 목소리에 민우는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식탁에는 민우가 즐겨먹는 나물류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앉아 밥 먹기 시작하는 민우의 맞은편에 앉은 혜성이 밥을 퍽퍽 퍼먹었다.

“무리하지 마.”

“뭐?”

“괜히 나 신경 쓰느라 그러지 말라고. 안 어울려.”

“내가 미쳤냐? 널 신경 쓰게? 난 배가 고플 뿐이라고.”

“신혜성.”

“왜?”

“너도 기억나지?”

“뭐가?”

“내가 얼마나 잔인했었는지.”

“무슨 뜻이야?”

“전생에서... 내가 얼마나 잔인한 놈이었는지...”

민우의 말에 혜성은 꿈에서 본 화랑 장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피투성이가 된 전장에서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칼을 휘두르던 모습.

“그건 그냥 꿈이야.”

혜성은 입에 밥을 구겨 넣으며 말했다. 전생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민우가 그걸로 힘들어 한다면 꿈이라도 상관없었다.

“꿈? 너랑 내가 같은 꿈을 꾼 게 진짜 꿈이라고 생각해?!!”

“그래! 그냥 꿈이야! 그리고 설사 그게 진짜 너와 내 전생이라고 해도, 그건 그냥 과거일 뿐이야!”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아.”

“그래. 하지만 넌 그런 놈 아냐.”

“못 봤어? 내가 사냥하는 거?”

“그건 나쁜 귀신들이고.”

“내가 귀신만 죽였다고 생각해?”

“그럼 아냐?”

혜성의 물음에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혜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다시 밥을 뜨며 말했다.

“니가 죽였으면 그게 뭐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너 끔찍해했잖아! 폭탄을 만들어 사람들을 죽인 선호의 과거를 끔찍해했잖아!!! 그런데... 그런데 난... 이 손으로 인간의 숨통을 끊었어. 이 손으로 직접 숨통을 끊었다고!!!”

“그랬어야 했으니까!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잖아! 니가 그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아닌데 왜 오버하고 지랄이야?!!”

숟가락을 집어 던지며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혜성의 모습에 민우가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사실이면? 내가 그 여자를 죽인 게 사실이면?”

민우의 말에 혜성의 눈이 크게 떨렸다.

“내가 살인 본능에 못 이겨 그 여자를 죽인 게 사실이면 어쩔래?”

“지랄한다. 니가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해? 넌 꼭 필요한 짓만 하는 놈이잖아. 무슨 짓이든 이유 없이, 그냥 그러고 싶어서 하는 놈 아니잖아.”

“쾌락을 느꼈어.”

“뭐?”

민우의 말에 혜성은 눈을 크게 떴다.

“난 살인을 할 때마다... 쾌락을 느꼈어.”

“이민우...”

“너도 봤잖아. 인간 백정... 그것 말고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수십... 수백의 사람들을 순식간에 베어 버리는 날... 다른 말로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냐. 아니야.”

“괴물이었어. 괴물이었다고... 온통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쓰고는 사람들의 목을 베던 괴물이었다고...”

“아냐. 아냐. 이민우. 넌 단 한 번도 이유 없는 살생을 한 적이 없는 녀석이야. 수백 년 전에는 공주와 나라를 위해...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살생을 했고, 또 그 다음 생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 다음 생에서도... 또 그 다음 생에서도... 넌 누군가를 위해서... 항상 누군가를 위해 그랬어. 그러니까 넌... 잘못 없어.”

“공주를 죽인 법륜이란 술사의 팔과 다리를 베어버렸어. 그리고 뿜어지는 피 속에서 도 복수심에 불타 돌아버렸어. 괴로움에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으며 더욱 괴로움에 몸서리치라고 소리쳤어. 그리고 그때 내 피는 뜨겁게 끓고 있었다구!!!”

“아니. 넌 누구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녀석이야. 그 누구보다 생명을 지키려는 녀석이라고. 난 알아. 난 널 알아.”

혜성의 단호한 목소리에도 민우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성은 민우의 팔을 잡은 채 말했다.

“그건 꿈이야. 꿈일 뿐이라고. 전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민우에게 그 말을 하는 순간 혜성은 가슴이 지끈거렸다.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것이 전생이 아닌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생이 민우의 발목을 붙잡는다면... 버려야만 했다. 과거의 기억은...

“결국 내 몸에는 살인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거야.”

“아냐.”

“너도 지난 번에 봤지?”

“뭐?”

“미래를 보는 거울. 내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본 거지?”

민우의 말에 혜성은 잊고 있었던 장면을 떠올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역시...”

“이민우...”

“그래. 요즘 모든 능력이 예민해진 넌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피에 굶주려 날뛰게 될 거라는 걸...”

“아냐.”

“역시 그랬어...”

“아냐! 아니라고! 아니라고 이민우!!!”

“그럼? 그럼 그날 네가 거울에서 본 건 뭔데? 뭐 본 거 맞지? 그렇지?”

혜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 민우의 모습에 혜성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민우의 시선을 피했다.

“그, 그건... 벼, 별 거 아냐. 그냥 별 거 아니었어.”

“근데 왜 나한테 얘기 못하는 건데?”

“그냥...”

“나에 관련된 거지?”

혜성은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속에 휩싸인 민우의 신경은 예민해져 있었고, 그래서 더욱 오감이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작은 거짓에도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역시 나에 대한 거잖아. 그런데도 그 장면을 본 게 아니란 거야?”

“그래!”

“그럼?”

“뭐?”

“그럼 무슨 장면을 본 건데?”

“그, 그건...”

“혹시 내가 죽는 장면이야?”

“아냐!”

“그럼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장면?”

“아니라고!!! 그따위 장면 절대 아니었어!!!”

“그럼?!!”

혜성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묻는 민우의 눈은 진정으로 답을 원하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혜성을 향해 묻고 있었다.

“..... 었어...”

“뭐라고?”

고개를 돌린 채 작게 대답하는 혜성의 목소리에 민우는 혜성의 입술 쪽에 더욱 가까이 귀를 갖다대며 물었다.

“........ 였다고...”

“무슨 장면이었다고?”

“씨발... 너랑 나랑 키스하는 장면이었다고!!!”

답답하다는 듯 버럭 소리치는 혜성의 목소리에 민우는 잠시 멍하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소리쳐버린 혜성도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두 팔을 꽉 잡은 채 도망 못 가게 옭아매고 있는 민우 탓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

“개새끼. 왜 내가 그딴 거짓말을 하냐?!!”

“니가 본 걸 속이려고.”

“병신같은 새끼. 맘대로 생각해. 근데 아니거든? 내가 본 건 진짜 너랑 내가 키스하는 장면이었거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는 혜성의 입에서 뿜어진 온기가 민우의 입술을 스치는 순간 민우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혜성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썰렁해진 분위기에 혜성은 민우에게 잡혀있던 팔 부분을 쓱쓱 문지르며 서 있었다.

“그, 그건... 그냥 잘못 본 거야. 그냥... 별 거 아니라고... 나도 혈기 왕성한 십대고... 넘치는 혈기에 그냥... 그러니까 그냥...”

중얼거리며 변명하는 혜성을 남겨둔 채 민우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제, 젠장...”

혜성은 민우에게 잡혀있던 팔 부분을 문지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선호야. 바쁘지?”

“아니. 들어와.”

선호가 있는 교수 휴게실로 찾아온 진은 들고 온 도넛박스를 내려놓았다. 말이 교수 휴게실이지 실제로 정교수는 각자 연구실이 있었고, 시간 강사들은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낼 여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요즘은 선호가 민우 사건의 조사를 위해 쓰고 있었다.

“민우 형 사건 때문에?”

휴게실의 이곳저곳에 펼쳐진 서류들과 영상이 돌아가고 있는 노트북을 본 진이 물었다. 선호는 휴게실 밖에 있는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실은... 정혁 형이랑 그 여자를 찾아갔었어.”

진의 말에 진의 앞에 머그잔을 내려놓던 선호가 물었다.

“그 여자라니?”

“Madam. Jin.”

“Madam. Jin?”

“응. 그리고 정혁 형이 그 여자랑 거래를 했어.”

“거래라니? 무슨 거래?”

“사건의 범인을 알려주겠다고 했어. 그 여자가.”

“그리고?”

“그 댓가로 형을 달라고 했어.”

진의 말에 선호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건 나도 몰라.”

“그래서? 범인은 누구야?”

“나도 몰라.”

“몰라? 그럼 거래 안 한 거야?”

“아니.”

“그럼?”

선호의 물음에 진은 정혁과 함께 Madam. Jin이 있던 집으로 갔던 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문정혁을 원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다시 반복되는 Madam. Jin의 말에 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혁은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좋아. 제의를 받아들이지.」

「형!!!」

정혁의 대답에 진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 소리 질렀다. 하지만 정혁의 표정에서 자신의 의지를 굽힐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주지.」

정혁의 대답에 Madam. Jin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진을 돌아봤다.

「대신... 전진 군은 이만 나가줘야겠어.」

「뭐라고요?!!」

「이건 아주 중요한 정보야. 함부로 알려줄 수 없는 정보지. 나와 거래한 건 문정혁 뿐이니, 정보를 알 수 있는 것도 문정혁 뿐이야. 그러니까 전진 군은 이만 나가줘.」

「형...」

「먼저 나가있어.」

「형!!!」

「차에서 기다려.」

정혁의 말에 진은 뭔가 반항하려 했지만, 얼른 나가란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Madam. Jin의 모습과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앉아있는 정혁의 모습에 진은 씩씩거리며 나가 버렸다.

“거래한 내용을 말해주기 전에 난 쫓겨났어.”

진은 뜨거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의 둘레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쫓겨나?”

“응.”

“그럼 정혁 형은?”

“형은 들었을 거야.”

갑자기 정혁의 목소리가 선호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너희는 민우를 의심하지 않는 거냐?」

「민우가 범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고. 모든 증거가 완벽하잖아. 그런데도 민우가 무죄일 거라고 믿는 거야?」

「왜 민우를 의심하지 않지?」

「너희는 왜 민우를 의심하지 않냐고.」

「민우가 멤버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하지 않는 건 바보같은 짓이야.」

선호는 머리를 흔들어 기억을 지우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아무 말 없었어.”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거래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 여자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정혁 형을 달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걱정돼. 걱정돼, 선호야.”

진의 걱정스런 말투에 선호도 걱정이 됐다. 그리고... 두려웠다.

“진이한테 들었어요. Madam. Jin이라는 사람이랑 거래했다면서요.”

집으로 돌아와 정혁의 옥탑방으로 올라가자 정혁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정혁은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왜요?”

“무슨 뜻이야?”

그제야 정혁은 책에서 시선을 떼어 선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사람... 무서운 사람이라는 거... 형도 알잖아요.”

“그래서?”

“그런데도 왜 거래한 거예요?”

“그 여자라면 답을 알고 있을테니까.”

“그래서 답은 뭐예요?”

“말해줄 수 없어.”

“왜요?”

“이번 일은 너희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이 이상은 개입하지 마.”

“어떻게 모른 척해요?!! 민우 형의 일인데!!!”

“모른 척 하라고는 안했어. 넌 네 방식대로 해결해. 난... 내 방식대로 해결할테니까.”

정혁의 말에 선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방에서 나왔다. 정혁 방의 문을 닫고도 한참동안 숨을 고르던 선호는 겨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거실로 내려왔다. 정혁은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창 밖을 바라봤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진이 나가고 현관이 닫히자 Madam. Jin은 붉은 매니큐어가 세련되게 칠해진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아까 홍차를 내왔던 중년의 집사가 와인과 와인잔을 가져와 여자와 정혁의 앞에 놓고 따랐다. 여자는 자신의 손톱에 잘 어울리는 붉은 와인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범인은 이민우야.」

Madma. Jin의 말에 와인잔을 들어 올리던 정혁의 손이 움직여 와인이 출렁였다.

[짱박힌오렌지]

아아아- 민우씨가 범인이라니...ㅠ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ㅠㅠ

[유래코]

흥미진진이란건 이런걸 두고 얘기하는거죠. 후아.. 멋진데요! 러브님, 바쁘실테지만 흑흑..ㅠㅠㅠㅠ 빠른 연재르류ㅠ!!!ㅎ ㅡㄱ흑...ㅠㅠㅣㅁ러;ㅠㅠㅠㅠ

[PINE]

허윽.ㅠㅠㅠ뭔가요 이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땡글]

꺅!ㅋㅋㅋ 키스하는 장면이었다고 그랬을때 완전 저 흥분 ㅋㅋㅋ 근데 저 여자는 도대체 뭘까요ㅜ 나쁜뇨자! 다음편도 기대할게요ㅎㅎㅎ

[forever]

거의하루한번꼴로확인한보람이있네요ㅠㅠㅠㅠ다음편빨리보고싶다며ㅠㅠ

[편애증]

와와와 기대되요... 진짜 매일 들어와서 인하는데

[외계인]

...........이런 !!!!!!!!!!!!!!!!!!ㅜㅜㅜ 어쩜이레요 ㅠㅠㅠ 갑자기 결말로 된건가 ㅠㅠㅠ ㅋㅋ 악 !!

[lorenz]

저 우연히 엑스 갔다가 개인홈에서 먼저 보구 여기에 글남겨요 ㅋㅋㅋ 점점 흥미 있어지는데요~~~

[perfumegreen]

아이고....... 진짜 한숨만 나오는걸요 숨이 막 턱턱막히는거 같아요. 범인이 민우일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렇다고 답이 나와버리니까 더 두려워요 이유는 있겠지만 민우가 본성으로 저지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걱정은 산 같이 쌓이는군요; 흥미진진하긴 하지만 그만큼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거울에서 본 미래가 나쁜게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이건 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블루 건]

....................흑, 민우군 안돼요....흑흑흑흑흑-

[류민하]

퇴마연의 정말 오랜만이에요 ㅠㅠㅠ 민우오빠가 범인이라니 흑흑흑 무언가 관련된 게 분명해요 이건 음모야! ㅠㅠ

[바리바리]

으아.. 빨리 전개되는건 좋지만.. 이거 민우의 위기와 더불어 혜성님과의 관계도 급전개좀..ㅎㅎㅎ

[봉봉이]

민우군이라뇨...말도 안돼...ㅠㅠ 근데 우리 정혁씨는 어떻게 되는거죠? 마담진에게 팔려가는건가요? 그럼 안돼ㅠㅠ

[하현-_-]

안돼~~~~!! 이럴순 없어~~

[천향비]

이민우씨가 정말로 살인에 쾌락을 느껴 살인을 저질렀을리는 없잖아요? 민우씨가 정말로 사람들을 죽였다면.. 정말 무슨 음모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이민우씨가 살인자라는게 음모야!!라며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이민우씨가 살인을 하고 싶어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ㅠㅠ 정말로 비청원 내부에서 무언가 음모가 있는건가요 ㅠㅠ

[제희]

살인은 이민우가 했지만 실제 범인은 민우가 아닐꺼예요. 누군가가 조종을 했겠죠..나쁜 놈들..안 그래도 힘든 사람 더 힘들게 하다니...그리고 혜성이가 본게 키스장면이라니...ㅋㅋㅋ

[Radiance]

10대가 아니라 20대죠 ?? ㅎㅎㅎㅎㅎ 키스하는 장면 .. !! 그 거울은 미래를 보여준댔으니까 .... 어머 - _-**

[재영군]

아... 저는 퇴마 연의를 읽으면서 천국과지옥을 왔다갔다 거려요... 심각한 상황에서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읽다가 키스 나오니까 푸훗 하고 웃어버린 저였답니다 ㅠㅠ

[민누]

범인이.. 민우오빠 라뇨.. 어찌 된일이예요? 이럴수는 없잖아요... 심각하게 읽다가.. 거울이야기에서.. 두분의 키스했다는 말을 읽고 피식했어요.. 으아.. 얼른 다음편 읽으로 가야겠어요!!

[바다빛민우]

심장이 두근두근,, 터질거같아요.. 씨~ 식탁에서 그 얘기하면서 진짜로 해버리지,, 근데 민우씨가 범인이라니,, 어떻게 된걸까요?

[즐거운하루]

으으으으... 어쩌지!!!!!!! 어떻게 하면....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