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봇대에 붙어 있던 구인 표지는 다름 아니라 어느 일식집에서 홀서빙할 여종업원을 급히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일식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 곳이 음식을 파는 곳이며, 적어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내 좁은 소견에도 얼른 들어왔다.
공중전화에서 위치를 물어보고 찾아 간 곳은 후암동.... 비교적 고급 주택가 입구에 자리한 해송이라는 음식점이었다.
문 밖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서 용건을 밝히니
의외로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때는 지금처럼 찌글찌글 늙지도 않았고, 살도 찌지 않았으며, 팽팽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배둘레햄도 별로 없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들이 내 미모에 반해 얼른 OK를 한 것이라 믿었지만 ...ㅋㅋ
나중에 알고 보니 워낙 급했던 모양이다.
홀서빙을 하던 아가씨 - 그들은 하꼬비라고 불렀다. - 가 주방장(오야붕 또는 오야지라고 불렀다.)과 크게 다투고 어젯밤 짐을
싸서 나갔단 얘기다.
나는 그날로 숙식을 제공하는 그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임금이야 형편 없었고 밤 늦은 시간까지 돌아가지 않는 손님 때문에 힘들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재미 있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사장님도 퇴근하시면 바야흐로 우리들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리버리 사장님이 잘 챙기지 못하는 관계로 주방 냉장고의 모든 식재료들은 곧 우리들의 좋은 안주로 변했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따뜻한 방바닥에 내려 놓고
정종을 따끈하게 데우고, 복어 지느러미를 살짝 태워 술잔에 얹는다.
히레사끼.....
오야붕 밑에서 생선도 잡고 매운탕도 끓이며 바쁠 땐 초밥도 짓는 주방 보조를 간떼기라고 불렀는데
둘 중의 막내 간떼기가 이런 일들을 도맡아 했다.
그는 나랑 동갑이었는데 나와 같이 순천이 고향이라 말도 통하고 여러가지로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 터라
애잔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었다.
우리들의 낭만적인 심야 파티는 매일 이루어졌으며
우리들 이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정종 재고가 그다지 많지 않은 날에는 손님이 마시다 남기고 간 소주를 마셨다.
소주는 얼마를 마셔도 사장님이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밤이 깊으면 미닫이로 가운데를 막은 길다란 방에서 앉은뱅이 테이블을 밀어 놓고
주방 아주머니와 나, 그리고 또 한명의 하꼬비가 잠을 잤다.
미닫이로 칸을 막은 바로 옆방에서는 간떼기 두명이 잤다.
오야붕은 퇴근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다음날이 휴무일이라 다들 고향을 내려가거나 친구집, 친척집으로 외출을 나가고
순천이 고향인 동갑내기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동갑내기 친구와 둘이서 어김없이 심야파티를 했다.
기회를 노린 것인지 술김인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사랑을 고백해 왔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던 고로...... 무척 기분 나쁘게 반응을 했다.
이것이 젊은 그의 혈기를 건드린 셈......
.............................#^$&$&**
다음날 새벽, 그가 잠든 사이 나는 얼마 안되는 나의 옷가지가 든 가방을 들고 그곳을 떠났다.
갈 곳이 없었다.
45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되돌아 오고 나서야 동쪽 하늘이 파랗게 밝아오는 듯 했다.
그 때 불현듯 고향 친구가 생각이 났다.
구로동에서 무슨 공장을 다닌다고 했는데..... 전에 가본 적이 있는 그녀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뚝방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서야 비둘기집 같은 그녀의 숙소가 나온다.
일자형 집에 작은 방들만 쭉 만들어 놓고 부엌은 따로 없다.
방으로 들어가는 문 한켠에 연탄불을 밀어 넣었다 빼었다하는 화덕이 있을 뿐이다.
마당에는 공동 수도와 화장실이 있었고 남녀 공용이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그녀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다.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부산하게 라면을 끓여다 주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날 이야기를 했다.
벌교까지 가서 꼬막 잡던 이야기랑 대나무 숲속에 작은 터를 우리의 본부라며 시도 때도없이 들어가 앉아 놀던 이야기,
보리농사가 끝난 후 이삭 주어다 모닥불에 튀겨먹던 이야기.......
여름날 밤,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 누워서 하늘의 별을 세던 이야기....... 혹여 지나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입을 크게 벌리고 후레쉬를 입가에 비춰서 놀래주던 이야기 등등........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했고.....
다음날 친구의 공장에 같이 출근을 했다.
얼마든지 취직할 수 있다고 했다. 가보니 텔레비전과 오디오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당장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친구는 쉴새없이 돌아가는 콘베이어벨트에서 납땜을 했다.
나는 초보인 관계로 그녀의 앞줄에서 모두들 힘들어 꺼리는 에어드라이버 박기를 했다.
공장장이 처음인데도 잘 한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나는 기고만장해졌다.
첫날 벌써 공장장 마음에 든 것이다.
마음씨 선한 공장장이 어느 날 공부를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글쎄....
언젠가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장은 배가 고팠고, 또 동생들 공부를 시켜야 했으므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터이다.
망설이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우리 공장 다음 건물에 야학이 있는데 생각해 보라고 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것이 또한 기회인 듯도 싶었다.
그러나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일상에서 또 공부를 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또 이미 나는 여러모로 망가져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공부를 해서 무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도 안하고 있는데..............
..........시작했다. 독한 마음을 먹고,
1년만에 고입검정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세상이 만만하게 보였다. 그게 아닌데......
내친 김에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수학급에 진학을 했다.
비록 야간이지만 나도 이제 어였한 여고생이 된 것이다.
고향을 떠난 지 수년 만에 열차를 탔다. 교복을 입고.......
차창 밖으로 빠르게 흐르는 풍경을 보자니 여러 회한이 겹쳐왔다.
고향을 떠나던 날....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린 사춘기 소녀.....나에게 엄마는 배추밭을 매고 오라며 호미를 던져 주셨고.....
다른 때 같으면 볼멘소리로 엉겼을 내가
발 밑에 떨어진 호미자루를 넋놓고 내려다 보다가
그것을 주워 들고, 둑너머 밭으로 갔다.
한여름의 후끈한 열기가 숨쉬는 것조차 거북스럽게 만드는 날이다.
밭 맬 생각은 않고, 밭둑에 앉아서 괜시리 풀만 집어 뜯었다. 몇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나?
멀리서 시외버스가 노란 황토먼지를 일으키며 깡총깡총 뛰다시피 지나가고...............
쓰르라미 소리가 늘어진 여름날 오후만큼이나 길게 이어진다.
나는 호미를 또랑에 집어 던지고 집으로 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을 시간....
옷가지 몇개를 싸고, 엄마 가방에서 돈을 꺼냈다.
...............
그리고 몇년이 흘렀으니.....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살고는 있는지 갑자기 어지러워진다.
첫댓글 읽다가 휴지 뜯고, 또 읽다가 휴지 뜯고,......그렇게 휴지 3번을 뜯어서 눈두덩이를 쓸어 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