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여행 2 - 멕시코시티를 구경하고는 쿠바 아바나에 도착해 호텔을 찾아가다!
1월 27일 영화 "쿠바의 연인" 을 보다!
부산시 대청동에 있는 가톨릭 소극장 "아트 씨어터" 에서 영화 "쿠바의 연인" 을 보았는데....
한국 여자가 쿠바에 여행을 갔다가 혁명 기념일 행사를 보러 가서는 아프리카 사람처럼
생긴 흑인 청년을 만나 결혼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여주인공이 캐나다에서 공부한
영화감독인데 영화는 실제 자신의 얘기로 실화인 데 방금 검색해 보니 아기가 태어났다네요!
하지만 양국의 문화의 차이는 결코 가볍지 않으니.... 그렇지 않아도 아프르카 흑인들을 조상으로 둔
열대 나라 관료주의 체제하에서 만만디가 생활화 된 사람들과.... 겨울을 대비해 무언가
저축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빨리빨리가 생활화 된 과소비에 젖은 한국인이 물자부족으로
아껴쓰기가 생활화 된 사람들과는.... "사람들은 일하는체 하고 국가는 월급을 주는체 한다"
는 대사는 영화에서도 백미가 되는부분으로 저임금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투잡스를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돈도 없고 언론의 자유도 없는 이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잘사는 나라 한국인들보다 더 표정이
밝으며 신나는 음악을 켜고 일하면서도 춤추는 사람들이라? 영화 첫 장면에 광란의 도가니에
빠진양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야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보아 혹시나 쿠바 춤 "살사" 인
모양이네? 브라질의 삼바와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제하면 소울, 룸바, 맘보, 차차차 와
살사는 모두 쿠바에서 태어났으며 뉴올리언즈로 이민간 이들은 재즈의 토대를 제공하였답니다?
스페인군이 중남미를 점령한후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 "메스티조" 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들과는 달리 쿠바의 인디오들은 가혹한 강제노역과 백인들이 옮겨온 질병으로 소멸
하자 아프리카 흑인노예를 잡아 왔으니 이들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 가 주류를
이루니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리듬이 이들의 혈관속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또 몇년 전에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등 쿠바 사람들과 자연을 주로 찍는 것으로 유명한
"코르다 사진전" 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으며.... 그 전 해에는 쿠바의
한인 후예들의 애환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시간의 춤" 이 상영되었습니다.
1905년 제물포에서 멕시코로 건너간 조선인 노동자 천여명이 애니깽 농장에서 계약조건
과는 다른 노예같은 대우를 받다가 4년후 그중 300명이 쿠바로 건너갔는 데....
마탄사스의 애니깽 농장에서 일했지만 범선이 사라지고 철선이 등장하니, 밧줄의 원료
애니깽의 시세가 떨어져 극도로 어려운 가운데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성금을 보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헤로니모 임" 은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에 참가하여 혁명후 노동부차관 까지
지냈는 데... 그 후손들은 이민 5세대에 이르렀으니 서툰 한국말로 초기 애국가와 나비야,
봄이오면, 꼬부랑 할머니와 자장가를 부르며 옛 추억을 되살리지만 한국과는 외교관계가
없으니!!! 하지만 우린 이런 영화와 사진전이 나오기 전에 멕시코와 쿠바를 여행하였던 것입니다.
1월 15일 : 멕시코시티 - 멕시카나 항공 비행기 - 쿠바 : 아바나
부산에서 일본항공 편으로 도쿄에서 트랜스퍼하여 캐나다 밴쿠버에서 같은 비행기로 트랜짓
했는데, 통과 비자를 발급받기 싫어 미국 대신에 캐나다를 경유해 멕시코시티에 들어가
쏘칼로 광장에 호텔을 정하고는 차를 전세내어 교외에 떼오띠우아칸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40분을 달려 ‘올멕’ 과 ‘고전기 마야’ 족을 이어 3번째로 멕시코 고원에 나타난 ‘떼오띠우아칸’
족의 도시에 도착하는데.... 버스로 오자면 지하철로 Autobuses del Norte 역에 내리면
바로 시외버스 터미널 인데, "Piramides" 가는 표를 편도 35페소에 끊어 1시간이면 됩니다.
떼오띠우아칸은 기원 전후 에 세력을 떨친, 당시 세계에서 인구 수로 6위에 해당하는...
12만명의 대도시는 온통 바위로 만들어진 계획도시인데... 그런데 서기 650년경
외부의 침략 을 받았는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수수께끼의도시이기도 하다네요?
저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 까지 과연 올라갈수 있을려나? 다행히 가파른 곳은
쇠 난간 이 있어 잡아가며 기어 오르는 데... 캄보디아 시엠립의 앙코르와트 처럼
중간에서 망설임을 떨쳐내고 정상에 까지 오르니 어질어질한게 고소공포증 이 느껴집니다.
멀리 사자(死者)의 길 맞은 편에 "달의 피라미드" 를 위시하여 거대 고대도시의 유적이
한눈에 들어오는게 이런게 바로‘일망무제’ 일런가... 그 정상부 비탈 옆에서
어떤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율동을 하는데 보기만해도 아찔합니다.
걸어다니며 내려다보자니 묘한 생각이 드는데 유적이 너무나 방대하여 ‘사자의 길’ 을 도보로
다 걷지 못하고 봉고로 제3입구로 이동하여 "달의 광장" 에 들어서는데, 아마도 폭풍과
비의 신인 ‘뜰랄록’ 에게 제사를 지낸 ‘달의 피라미드’ 는 해의 피라 미드와 쌍벽을
이룹니다. 여기 정상에서 보는 경치도 아주 훌륭한데.... 이어 광장의 민간인
주거지역을 둘러보는 데, 세상에나 ! 지금부터 1,500년전에 수세식 변기 를 사용하였다니?
유럽이 수세식 변기를 사용한 것이 불과 300년전 이고, 우리나라는 한 60년
되었나....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집은 농촌이라 재래식 변소를
사용했는 데! 바위로 된 건물마다 아름다운 채색과 모자이크 는 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며 그리고는 이웃한 ‘떼빤띠뜰라’ 궁전을 봅니다.
그러고는 다시 대절한 봉고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와서는 검은 얼굴의 성모
"과달루뻬 대성당" 으로 찾아가는데, 듣던대로 구성당은 호수를 메워
건축한 탓에..... 지반침하로 기울어져가므로 보수중에 있다는데,
옆문으로만 출입하여 구경하는데 기울 어진 앞문으로는 통행할 수 없답니다?
새 성당에서는 신도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는 데도, 듣던대로 지하에 평면
에스컬레이트를 설치하여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중이네요.....
때문에 관광객들이 왕복하면서 미사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교회
벽에 걸린 이른바 "과달루뻬의 성모" 를 올려다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스페인 신부들이 왔을 때 다신교 의 나라 멕시코 원주민 들에게 가톨릭
을 전도하는 것 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인디오 들은 하느님을 태양 으로, 마리아는 달 로, 성인들은
별 로 인지하여....... 자기네 판티온신앙 으로 흡수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로써 원주민들이 숭배하는 여신을 대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인 데... 전문 용어로는 Syncretism 이라고 한답니다!
신성당 을 관람하는 중에 현지 교포인 한국인 을 만나 얘기를 나눌수 있었는데....
택시 와지하철에 대해 물으니..... 택시 번호판이 S자로 시작되는 콜택시 는
괜찮은데 하지만 L자로 시작 되는 길거리 택시는 절대로 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하철도 소매치기가 들끓으니 이용하지 않도록 하고, 여행사 투어 를 이용하랍니다.
다음날 아침에 1일 투어에 나서 30여분을 달려 차풀테펙 공원 내의 인류학
박물관에 들어서니 검문이 예사롭지가 않은데.... 1964년에 세워진 박물관은
당시에도 전시 방법과 유물에서 수십년을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듣던대로 하나의 기둥이 거대한 일자 지붕인 캐노피 를 떠받치고 있어서...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는데 나중에 올라가 보니 위에서 쇠사슬로 건축물을 끌어당기고 있네요?
기둥에서는 뜰랄록 신 을 상징하는 물줄기가 지하에서 퍼 올려져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는데, 인류학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처음 3개의 방에는 인류가 탄생하여 진화한
과정을 나타내고 있으며, 4실인 메소아메리카 실은 도자기의 발달 과정을 보여 줍니다!
BC 1200년경 탄생한 올멕인 전사와 두개골을 납작하게 변형한 유골들을
볼수가 있고, BC 200년 경에 성립된 5실인‘떼오띠우아칸실’ 에서는
물의여신의 석상과 ‘께쯔알꼬아뜰 사원’ 의 벽이 장엄하게 버티고 서
있으며 장례식용 가면과 현무암 칼 등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 같습니다!!!
다음의 AD 900년경의 똘떽실’ 은 거대한 돌로된 인물상인 아뜰란떼스와 볼(농구)
게임에 사용되었던 구멍뚤린 원형 돌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진 팀이 아니라 경기에서 이긴 팀의 주장의 심장 을 꺼내어
하늘에 제사 지냅니다! ( 신에게는 최고의 것을 바쳐야 하므로?)
깃털달린 뱀을 뜻하는 ‘께쯔알꼬아틀’ 신 의 모습 ( 뱀 ) 이 여러점 보입니다.
오아하까와 멕시코만의 여러 유물들을 거쳐 ‘마야실’에서는 그들의 상형문자가 천에 쓰여져
있는데 그자체가 예술품입니다. 아즈텍에서 뜰랄록이라 불리는 물의 신은 여기서는
차크몰이라 불리는 데, 농업이 주업이었기 때문 이리라..... 가장 중심부에는 오늘날의
멕시코의 기원인 ‘메히까-아스떼까실’ 이 차지하고 있으니, 신에게 바치는 사람의 심장을
담았던 재규어 독수리형태의 그릇을 지나면..... 꼬아뜰리꾸에 여신의 찢어진 몸체가 나옵니다.
북부에서 내려온 아쓰떼까 인들은 AD 1325 년에 부족신인 우이칠로뽀츠뜰리 로 부터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위에 앉은 곳에 나라를 세우라” 는 계시대로....
호숫가 섬에 세운 도시가 오늘날의 멕시코시티 자리인 ‘떼노츠띠뜰란’ 인 데, 이
도시의 모형이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어 그들 제국의 찬란한 영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드디어 거대한 태양석 앞에 서니 숨이 막힙니다!!! 아쓰떼까인 들은 재규어, 바람, 물
및 비의 4개의 태양이 멸망하고 신들이 몸을 불살라 만든 제5의 태양이
천체를 운행하기위한 에너지를 지속하기위해 산사람의 심장을 바쳐야 했는데
신전이 완성된 1480년에는 무려 2만명의 전쟁포로 들의 심장을 받쳤다고 하며 동물
가죽과 깃털로 만든 방패와 수공예품 중에 현무암을 연마시킨 원숭이 신상은 아름답습니다.
몬떼알반의 신전 무덤 앞의 재규어 왕관을 쓴 인물상 도자기 항아리는 매우 독특한 느낌을
주며 또한 그 옆의 지하에 마야 빨란께왕의 무덤의 거대한 석관은 너무나도 경이
로우며.... 2층은 멕시코 인디오들의 민속박물관인데, 북쪽으로 갈수록 미국의
인디언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드니 화려한 색채의 의상과 장식 및 공예품들이 주를 이룹니다
박물관을 나오니 마침 발목에 링을 차는등 인디오 복장을 한 청년들이 북소리와
함께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추면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그러고는
다시 봉고를 타고 공원내의 큰 길을 가는데 온른쪽으로 보이는 현대미술관이
보이니 그기에 여러나라 말로 쓴 것 중에 한글 이 가장 먼저 적혀 있어 반갑네요?
오스트리아 잘츠 캄머쿠트의 호수마을 할슈타트에서 세계 여러 나라 말로 적힌
"시간여행" 이란 글귀를 보고 인상이 깊었었는 데..... 그러고는
차가 멈추니 큰 기둥들이 보이는데 바로 미국군의 침략에 맞서 멕시코시티
차풀떼펙성을 지키다가 전사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 "소년영웅기념비" 이네요?
1783년에 미국이 영국으로 부터 독립했을 때는 동부의 13개주에 불과 했으나
1800년에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플로리타를 탈취하고.....
이어 프랑스로부터 1,803년에 미시시피강 유역의 루이지애나(뉴 올리언즈)
등 여러 주를 매수하고 부터는 미국은 스페인령 멕시코와 경계를 접하게 됩니다.
짧은 시간에 정복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한 떼노츠띠뜰란의 아즈테카 제국은 1519년에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정복되어 식민지의 고난의 시절을 강요당하다가....
1810년 가톨릭 신부 이달고와 모렐로스의 봉기가 실패했으나, 1821년 끄레올레
엘리뜨들이 독립을 얻었지만 그후 50년간 대통령이 30번이나 바뀌는 혼란이 지속됩니다!
그러자 미국쪽에서 멕시코령 텍사스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1835년에 반란을 일으켜서는 알라모
전투를 통해 독립을 선언하니 멕시코가 진압을 못하는 사이 미국이 합병해 버립니다.
이어 충돌이 생기고 미국이 선전 포고를 하자 1,846년에 멕시코의 산타 안나 대통령
은 실지를 회복을 하려고 텍사스로 진군했다가 테일러 장군의 미국군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미군은 또 1847년에 침략에 나서니.... 스티븐커니 대령이 멕시코 해로로 베라크루스에 상륙해
진군하여 멕시코시티를 함락하고는 텍사스는 물론이고 북부의 멕시코 땅을 빼았았습니다!
다음날인 1월 15일 멕시코시티의 게스트하우스인 Hostal Mansion Havre 에서 빵
으로 아침을 떼우고 선배님과 둘이서 도보로 번화가 쏘나로사의 중심가인.....
Hamburgo 가와 Amberes 가 교차점의 MARCO POLO 호텔( Amberes 27번지 )
에 찾아 가는데, 쿠바 에 다녀온 후의 숙박을 미리 정해 두려고 합니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가며 2인 1실을 1박 요금에 100$ 에 2박을 예약합니다.
그러고는 우리 호스텔로 돌아오니 카운터의 흑인 아가씨가 음악을 들으며 연방 온 몸을
흔들기에 "Shall we dance ?" 라고 말했더니....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가 L자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달고 있어 신경쓰였는데, 공항까지
잘 데려다 주고(대화도 즐겨 하며) 호텔에서 들은대로 140 페소 주니 고맙다며 돌아갑니다.
물어 물어 Sala(구역) B 와 C 사이 구석에 있는 창구 에서 쿠바비자 대용인 Tourist Card
를 1인당 10$ 씩에 구입하고, 항공권 구입시 Sala B 에서 체크인 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Sala F2 에서 한답니다. 그런데 F1 이 끝이고 더는 없는데 어떡하나?
이런 황당한 일이.... 분명 없는데??? 또 물으니 세상에니...... 2층으로 올라 가랍니다!
멕시카나 항공 카운터에서 보딩패스를 발급 받는 긴 줄에서 짐 검사를 하는 데, 가방을 열고
리트머스용지 같은 흰색 종이 스티커 를 한번 쓰윽 훑은후.... 모니터 에 나타나는
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특이하며, 또한 가방은 직원이 일일이들어다 주는 데.....
어떻게 그많은 손님의 짐을 구분하는 걸까요? 의문은 스페인어로 작게
속삭이는 것이었는 데, 우리는 직접 짐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19번 Gate 로 탑승 하라는 데, 아무리 둘러 봐도 그런 게이트는 보이지
않으니 이런 황당한 경우가...... 또 물으니 G 게이트로
입장 하랍니다. 그러니까 G 게이트 안에 19번게이트 가 있는 것이네요!
여자들은 쇼핑을 하고 나는 책을 보며 기다리는 데, 처음에는 모니터에
19번게이트에 쿠바 아바나로 가는 멕시카나 항공이 떴는 데....
그래서 안심하고 19번 게이트에서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인데...
언제부턴가는 모르겠지만 모니터에 그 내용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그러고 보니 시간이 다되어 가는데도 19번 게이트가 의외로 한산 한 것이.....
뭔가 문제가 생긴게 분명합니다! 하여 19번 게이트에 가서 물으니 멕시카나항공에
문의하라기에 둘러보니 마침 1인 임시창구가 별도로 보이는 데 5-6 명이 줄지어 서있네요?
우선 달려가 줄부터 선 다음에 앞 사람에게 물으니 " May be..." 라며 32번 일지도 모르겠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이 32번 게이트로 변경 되었답니다. 천하태평으로 앉아 쉬고
있는 일행들을 재촉하여 32번 게이트를 찾아가는 데.... 멕시코시티 공항이
어찌나 큰지.... 좀체로 게이트가 나오지 않습니다? ( 인천공항 보다 더 큰 것 같네? )
숨이 턱에 닿도록 몇 번이나 굽이, 굽이 돌아 달려가니..... 체크인 때 봤던 사람들이
이제 막 탑승하기 시작 하는게 아닌가? 멍청히 앉아 있었으면 영락없이
비행기를 놓칠뻔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페인어로 방송을 하긴 했던 모양인 데.....
멕시카나 비행기는 멕시코만을 돌아 두시간을 나니 마침내 길게 드러누워 있는 섬이 나타나는데
그런데 난 왜 비행기가 멕시코의 꼬수멜에 들렀다 가는걸로 착각했을까? 시차가 1시간
으로 알고 있는데 또 한시간의 차이가 나는데다가(나중에 보니 멕시코와 2시간의 차가 납니다?)
스튜어디스가 서류를 주는데 받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이며 “꼬수멜” 이라고 들리는
등... 마야( 실제는 쿠바 ) 의 산은 아주 가파른데 외줄기 길을 따라 집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을 뿐..... 거대한 밀림 지대 를 날아 이윽고 평야지대 로 들어 섭니다
쿠바 아바나 공항은 듣던대로 자그만 한 데 ( 출국시에 보니 생각보다는 크더라만 ), 쿠반
항공기 를 보고서여 비로소 북회귀선에 걸친 상하의 나라 쿠바 에 왔음을 실감
합니다, 입국 창구가 의외로 많아 별로 기다리지는 않는 데, 공항에서 부랴부랴
입국카드 를 찾아 적으랴, 투어리스트 카드( 비자대용 ) 에 칸을 채우느라 법석을 떱니다.
직원이 오래토록 꼼꼼히 체크 하며 고친 것 (직원) 이... 성과 이름의 순서가 서양과
다르기 때문에 그녀석도 꽤나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집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밖에서는 문이 폐쇄 되어 안이 전혀보이지도 않고..
초조해하는데, 마침내 문이 열리고... 귀국 항공권을 보고 뭔가 착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 이젠 어떡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으로 낯선 공항을 두리번 거리는데 왠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잉그라떼라 호텔” 이랍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에서 보니, 우리
에게는 너무 비싼기억이 있어 숙박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물어보는 정도야... 역시나 비쌉니다!!!
한구석에 비좁은 한평 사무실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기에, 미리 수첩에 적어간
Casa del Cientifico Hotel 을 내보이니.... 바로 방이 다 찼다며
잉그라떼라 호텔을 권합니다. 이걸 곧이 곧대로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2인 1실 1박에 120 쿠바 페소( 12만원이나 환전수수료 떼면 14만원 ) 를 부르기에
더 싼 곳을 요구 했더니, 몇군데 전화를 하더니 없답니다.
그러고는 시간이 지나니 잉그라떼라도 다 찼다며 150쿠바 페소 특실 이 있다나?
괘씸죄에 걸렸나... 점점 점입가경이네??? 그래서 전에 책에서
본대로..... 나씨오날호텔? 은 하고 물으니, 어렵쇼? 그긴 별이무려 5개 랍니다.
정 안되면 밖에 나가 카사( Casa 민박 ) 를 알아 보거나, 직접 시내까지 가서 발로
뛰며 호텔을 알아보겠다고 하고는 나오니.... 불러세우고는 그제서야
몇군데 더 전화를 하더니... ‘Riviera Hotel (Vedado 소재)’ 이 106 쿠바 페소랍니다.
1쿠바 페소는 1달러 인데, 실제로는 환전시 수수료 등 20% 를 공제하므로
실제로는.... 1.2 달러에 해당 됩니다.( 유로화나 캐나다 달러는 10% 만 공제 합니다! )
그런데 론리플래닛 책의 지도 를 보니 위의 리비에라 호텔이 나와 있어 안심이 되는 것
이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호텔은 도심을 벗어난 곳이라.... 밤 거리 관광이
물건너 가는 것은 심히 애석하나 방파제인 그 유명한 말레콘 앞이라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데, 캐나다 달러를 환전해 방 2개 2일치 숙박비를 선불하고 호텔 바우처
를 받아 쥔 다음 택시를 타는데 할아버지가 공항 밖에까지 나와 택시를 직접 잡아줍니다.
그러고 보니 서양 젊은이 몇이 Information Center 에 들러 대형 지도에서 호텔 위치
를 확인중인 것 외에는 여기서 호텔을 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 귀국시 보니
여긴 사설여행사고, 건너편에 쿠바 국영여행사 인 ‘Cubatur’ 사무소가 따로 있습니다? )
*** 쿠바 아바나 공항에 걸려있는 수교국 국기,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수교 상태이다 ***
그런데 당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으니....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온 승객
들은 모두 단체관광객인 모양인지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고....
나중에 생각하니 Riviera Hotel 은 ‘황홀한 쿠바’ 를 쓴 화가 사석원 이 말레콘(방파제)
를 느끼기 위해 묵었던 바로 그 호텔이 아닌가? 그는 시내에 유서 깊은
잉그라떼라 호텔과 이곳에서 반반씩 보냈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20 쿠바 페소의 공항 택시 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데, 도로변의 집들이
대개는 낡은 모습이니 일행들은 쿠바가 사회주의 를 하니 이토록
못산다며 중국 보다도 훨씬 못하다면서 빨리개방을 해야 한다네요.....
미국의 극심한 경제봉쇄 조치 로 석유나 공산품은 물론이고 식량과
의약품조차 수입이 금지 되어 거의 아사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숨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무슨 사치스런 얘기이신지....
원래 미국 보호국 시절의 쿠바 는 사탕수수, 담배, 커피등 환금작물과 관광 수입으로
식량등 모든 생활물자를 수입하는 극심한 대외의존 경제이었던 것이니....
카스트로 가 1959년에 혁명 을 일으킨후 친미 정권인 바티스타 정부
를 전복시키고, 미국인들의 대농장과 회사를 국유화 해 버리자.....
미국이 보복에 나서 경제봉쇄를 하니 쿠바는 살기 위해서 쏘련편에 붙게 되었습니다.
카스트로는 이때까지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노선투쟁을 하던 실정이었는데,
( 당시 친미정권하에서 공산당은 독재 정권과 합작하여 내각에 참여하고 있었으므로
무력 투쟁이 아닌 점진적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카스트로는
이들 공산주의자들을 변절자로 규정하고 배척했으므로 서로 충돌하는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
그후 쏘련과 동구권은 석유를 싼값 에 공급하고 사탕수수와 커피, 담배를 수입 해
주니 쿠바 경제는 일약 호황 을 구가하였으니, 대학 까지 학비 일체
무료, 심장 수술비 까지를 포함하는 의료비 일체 무료 등을 실현하였습니다.
그후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쿠바는 쏘련 어린이 2만명을 데려와 치료를 해주며,
2천명 의사를 아프리카등 세계에 의료봉사로 파견하는 등 한때는 잘나갔습니다.
그러나 1989년 쏘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자, 절호의 기회를 맞은 미국이 경제 봉쇄조치를
더욱 강화하니.... 쿠바와 무역하는 회사는 미국은 물론 미국이 투자한 외국 회사
와도 무역할수 없으며, 쿠바에 입항하는 배는 미국 항구에 기항 할 수 없다 는 등.....
의사만 있으면 뭐하나, 마취제가 없어 수술을 못하자 중국으로 부터 침을 수입하여
마취를 하고, 약품은 약초나 아로마 요법 등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석유가 수입이 안돼는지라 발전소가 멈추니 전기가 끊어지고, 시내의 차량이
운행을 정지하자 중국에서 200만대의 자전거를 수입해 교통수단으로 대신했습니다.
식량 부족으로 굶어죽게 되니 미국 마이애미로 탈출하는 보트피플 이 급증
하였는데 ( 1980년 카스트로는 마리엘 항에서 미국으로 가는
보트피플을 허용했는데, 그중에서 절반은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
도시의 집집마다 마당이나 옥상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데, 농약과 비료가 없으니,
지렁이를 키운 흙에 톱밥 등을 배합하니 저절로 유기농법으로 가게
된 것이니... 덕분에 쿠바에서는 비만자가 급격히 줄었다고
합니다. 이즈음은 조금 숨통이 트이니 또 비만자가 느는 모양이라고 합니다만?
그후 쿠바는 1993년 일부 시장경제를 도입해 음식업, 택시업 및 숙박업 에서 개인기업을
허용하였으며 캐나다, 스페인 등과 접촉하여 투자를 유치 하며, 로마
교황을 초청하는 유화조치( 교회가 정치 발언만 안하면 종교생활은 보장 ) 등으로....
관광 산업이 번창하고 경제도 회복되어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집은 수리를 못해 낡아 허물어질 것 같고.....
40년도 넘었을 법한 차들이 뿜어대는 매연으로 길거리는 공해가 무척 심합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라 주택은 매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끼리
직접 만나 집을 교환하기도 한다는데, 나중에 프라도 라는 시내
중심지 도로사이의 공원을 가게 되는데 거기서 주로 모인답니다. 돈도
없지만 소유권이 없으니 더욱 집을 수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몇년전에 쿠바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의 정당 이 아니라, 호세 마르티 (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중국의 손문과 같은 인물임 ) 의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선언하였
으니...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니 그러니까 국제 공산주의와 결별 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윽고 Riviera Hotel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한 다음에, 라운지의 “Cubatur’
창구에서 모레 아침에 휴양지 ‘바라데로’ 까지 가는 차편을 예약하는 데...
돌아오는 시간이 맞지 않자 버스 대신에 우리 4명을 위해 따로 승용차 를 내주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