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수도산 자락을 따라 걷는 인현왕후길 경북 김천과 성주 사이에 자리 잡은 수도산에는 인현왕후길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둘레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현왕후길은 김천시가 2013년 조성한 둘레길로 수도리 주차장에서 시작해 청암사 근방을 거쳐 무흘구곡 구간을 거쳐 돌아오는 약 8.1km 정도 길이를 가진 숲길입니다. 2018년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전국에서 추천하는 걷기여행길 6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는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계비(繼妃)로서 본관은 여흥 민씨이다. 인현왕후는 장희빈과 숙종 사이에서 사랑과 권력에 희생된 비운의 왕후였으며, 유교적 이념이 팽배했던 조선시대 국모로서 왕자를 낳지 못하여 왕의 총애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과 백성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서인이 되었을 때, 이곳 수도산 청암사에서 3년간 머물며 복위를 간절히 기원하던 중 숙종의 교지를 받고 환궁하였다. 그 후 인현왕후는 청암사에 서찰과 선물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조선시대 말에는 궁녀들의 시주로 불사를 일으켰으며 현재 승가람마(僧伽藍摩)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김천시에서는 인현왕후의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인현왕후길'을 조성하였다. '인현왕후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8월의걷기 여행길'에 선정되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인현왕후의 따스한 인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 코스 : ☞수도리주차장-인현왕후길1지점<0.8km> (수도암 갈림길)-수도암 <1.5km>이정표-신선대-동봉-수도산정상-동봉-구곡령 단지봉갈림길-김천치유의숲-자작나무 왕복720m-인현황후길 입구-2.5.6.7-스토리존 갈림길-용추교-용추폭포-출렁다리-수도리주차장총거리 (14.51km 소요시간 5시간30분)
B코스 : ☞수도리주차장-인현왕후길입구-김천치유의숲-힐링센터-자작나무테크로드-자작나무강의장-힐링센터-인현왕후입구-쉼터2.5.6.7-스토리존 갈림길-용추교-용추폭포-출렁다리-수도리주차장 (총거리9.1km 약4시간소요)
▲ 김천 수도산(金泉 修道山)개요: 가야산(伽倻山)과 덕유산(德裕山)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수도산은 경상북도김천시증산면과대덕면,경상남도거창군가북면의경계를이루는산으로서 소백산맥중의명산의하나로서동쪽에는가야산국립공원,서쪽에는덕유산국립공원이있어경치가수려하다. 가야산을분수령으로한비교적높은산으로일명불영산,선령산이라고도한다. 수도산에서동남능선을따라가면단지봉(1,327m)과목통령을거쳐가야산에닿는다. 수도산-민봉산-가야산능선종주는평균고도1,200m고원에수림과초원,바위길이 잘어울려서마치지리산을종주하는느낌이다.수도계곡은구비구비마다독특한절경의연속이고 산기슭에는비구니스님들이수행하는청암사승가대학이있다.정상부근에는수도암이있다.
인현왕후길은 전반적으로 그렇게 경사지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완만한 경사의 숲길로 구성되어 있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무리 없이 다닐 수가 있고, 하늘까지 두텁게 가려진 나뭇가지 덕분에 맑은 날에도 햇볕을 직접 쬐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숲길에 매력을 더하는 것은 역시 인현왕후가 김천 청암사에서 보낸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 남인의 지지를 받았던 숙종의 후궁 장희빈의 농간으로 결국 폐위되고 궁궐에서 쫓겨난 인현왕후는 의지할 곳이 없어 외가가 있는 김천까지 내려왔고 바로 이곳 수도산 자락에 있는 청암사에 몸을 의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숲길에 매력을 더하는 것은 역시 인현왕후가 김천 청암사에서 보낸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 남인의 지지를 받았던 숙종의 후궁 장희빈의 농간으로 결국 폐위되고 궁궐에서 쫓겨난 인현왕후는 의지할 곳이 없어 외가가 있는 김천까지 내려왔고 바로 이곳 수도산 자락에 있는 청암사에 몸을 의탁하게 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이다.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전쟁 때 공비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전소된 뒤 최근 들어 크게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약광전(藥光殿)·선원(禪院)·관음전(觀音殿)·나한전(羅漢殿)·노전(爐殿) 등이 있으며, 1969년 도림당 법전대종사(道林堂 法傳大宗師)가 대적광전 등의 당우를 중건하였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약광전석불좌상과 동서 삼층 석탑(2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과 초석이 남아 있다. 이 중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특히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어 주목된다. 이는 약사여래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 흔하지 않은 예이다.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석굴암 불상보다 80㎝ 작으며, 9세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 불상 운반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서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하였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당시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 또 3층 석탑은 도선이 창건 당시에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지대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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